성가중(成假中)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三論宗에서 말하는 4종 中道의 하나. 假를 성립시키는 中道의 뜻. 有·無는 假이고 非有·非無가 中道이다. 正道에는 본래 有·無가 없는데 중생에게 中道를 알리기 위하여 임시로 有·無를 설한다고 함.
참고
삼론종(三論宗) : 中論 등의 三論(中論,十二門論,百論)에 의하여 宗을 세운 까닭에 三論이라 이름한다. 일명 性宗·空宗·破相宗이라 함. 인도 대승불교의 中觀系·瑜伽系 중의 중관계에서 시작되어 중국에서 크게 번성한 종파. 용수보살이 지은 <中論> <十二門論> 과 提婆가 저술한 <百論>의 3부를 주요 경전으로 하고, 성립한 宗旨로서 이를 相承한 것을 말하면 문수·마명·용수에까지 이르러 2파로 갈리다. 그 중 1파는 용수·제바·라후라·청목·사거왕자수리야소마·수리야발타·구마라집이고, 다른 1파는 용수·용지·청변·지광·사자광에 전하다. 또한 구마라집 문하에서 승조·승예·도생의 英俊들이 나오고, 다시 도생·담제·도당·승전·법당·길장으로 차례로 이어왔는데 승전에서 길장까지의 敎義가 크게 이루었다. 길장 이전을 古三論, 이후를 新三論이라 구별함. 특히 중국에서는 구마라집이 中論·百論·十二門論·智度論을 번역하고, 그 제자들이 모두 三論 大義를 품수하고 嘉祥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다가 禪宗이 들어오면서부터 점점 쇠퇴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때 원효대사가 三論의 宗要를 짓고, 백제의 慧顯이 三論을 강설했으며, 고구려의 慧灌이 일본에 이 宗을 전하다.
중론(中論) : 中觀論의 약칭. ...중관론→ 4권. 용수보살이 저술하고, 구마라집이 번역함. 구마라집은 여기에 梵志 靑目의 해석을 붙이다. 十二門論·百論과 함께 三論宗의 所依論. 그 내용은 가장 철저한 中道를 주장하여 空과 假를 破하고 다시 中道에 집착하는 견해도 破하여 八不中道 곧 無所得의 中道를 말하다. 주석서로 碩법사가 저술한 疏 12권, 元康이 저술한 疏 6권이 있음.
십이문론(十二門論) : 1권. 三論 가운데 하나. 용수보살이 저술하고 秦나라의 羅什이 번역함. 因緣門 내지 觀生門의 12門을 觀하고, 12章段을 베풀어 온갖 것이 다 空하다는 사상을 말한 책. 吉藏疏 2권, 略疏 1권, 元康疏 2권, 法藏疏 1권이 있음.
백론(百論) : 범어 Sata-sastra. 3세기 무렵의 인도 中觀派 승려 가나제바(Kana-deva)의 저술. 산스크리트본이나 티벳본은 전해지지 않으나 구마라집의 漢譯만이 현존한다. 인도에서의 유포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료도 없지만 중국에서는 中論 · 十二門論 · 百論이 三論이라 불리어지면서 三論宗의 근본 성전으로 중요시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삼론종의 유입과 함께 중시되었다. 대승불교의 空 · 無我說에 대하여 나가르쥬나의 中道說만을 채택하고 다른 철학과 종교의 說을 물리친 책이다. 원래 20품 100偈이었으므로 백론이라 한다. 그러나 후에 10품 50게는 번역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는 (1) 捨罪福, (2) 破神(atman을 파함), (3) 破一, (4) 破異, (5) 破情(감각기관을 현함), (6) 破塵(감관의 대상을 파함), (7) 破因中有果, (8) 破因中無果, (9) 破常, (10) 破空의 10품으로 구성되었다. 각 품에 가나제바 자신이 지은 본문과 바수(Vasu) 의 주석이 있다. 본서는 샹카라 학파와 바이세시카학파의 나야수트라의 본문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3세기 무렵의 인도 제학파의 학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주석서로는 疏 2권(길장), 疏 2권(도빙), 疏 3권(원강), 義疏 2권 등이 있다.
공종(空宗) : (1) 有宗에 대립하여 모든 존재에 실체란 없고 본질적으로 空이라는 입장의 불교의 한 파. 이 종은 삼라만상은 모두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고집하는 그릇된 소견을 물리치고, 교화하기 위하여 空의 원리를 宗旨로 한 것. 龍樹提婆의 학파이다. (2) 중국에서는 法相宗에 대한 三論宗을 가리킨다. (3) 소승불교에서는 說一切有部에 대한 成實宗을 가리킨다.
파상종(破相宗) : ① 3宗의 하나. 모든 법은 다 因緣으로 생겼고, 인연으로 생긴 까닭에 自性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空한 것이고, 그 空한 것도 역시 空하다고 하여 有相과 空相을 함께 破하는 것을 파상종이라 한다. 이것은 반야경·중론 등에 밝힌 종지. 화엄종 5교의 始敎 중 空始敎에 해당한다. ② 4宗의 하나. 모든 법은 아지랑이와 같아서 自性이 空한 것이므로 허망한 모양까지도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사람들이 먼 곳에 있는 아지랑이를 보고 물인 줄 알다가도 가까이 가서 보면 그 自性만 없는 것이 아니고, 물의 모양도 없다고 함. 大衍이 세운 4宗 중의 不眞宗에 해당.
사종중도(사종中道) : 三論宗에서 말한 것.
(1) 對偏中. 斷見 · 常見의 편견에 대해서 中道의 교를 말한 것.
(2) 盡偏中. 단견 · 상견이 없어진 곳에 나타나는 중도를 말한 것.
(3) 絶待中. 대승 · 소승의 수행인이 斷 · 常 · 有 · 無의 편견을 제거하였으므로 중도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이른바 中도 아니고, 偏도 아닌 것을 억지로 中이라 이름한 것.
(4) 成假中. 有와 無로 假를 만들어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면 中이 된다. 非도 아니고 無도 아니라 하므로 有無로 說한 것이 같은 中은 有와 無의 假를 성립하므로 成假中이라 한다. (三論玄義)
가(假) : 眞 · 實에 대응되는 말. 實體가 없는 것을 가리키고 혹은 虛 · 權 · 방편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 예컨대 실체는 없고 말하자면, 이름만 거짓 붙어 있는 존재를 假名有라 하고, 空에는 어긋나지 않는 有를 說한 진리를 假諦라고 하며, 內心과 外相이 다른 행위를 虛假의 行이라 하고, 방편의 敎를 假門이라 하는 등이 그것이다. 현상으로서의 諸法이 假라는데 대해 다음과 같은 분류가 있다.
① 二假. 窺基의 成唯識論述記 卷一本, 延壽의 宗鏡錄 卷六十七에 無體隨情假 · 有體施設假를 들고 있다. 無體隨情假란 어리석은 범부(迷情)가 實在하지 않는 實體를 實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假임을 말하며, 有體施設假란 經典에 說해 있는 바와 같이 현상계의 諸法이 實體가 없지만 그러나 緣을 따라 생겨나므로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깨달은 聖者가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거짓으로(假) 실체가 있는 것처럼 假設한 것을 말한다. 知禮의 金光明玄義拾遺卷五에는 生死假(妄假) · 建立假(施設假)란 말을 세워서 거의 비슷한 뜻을 나타내고 있다.
② 三假. 大品般若經卷二의 三假品에는 諸法에 自性이 없음을 밝힘으로 凡夫의 妄執을 타파하기 위해 受假 · 法假 · 名假의 三假를 說했고 이것을 三波羅攝提(범어 prajnapti의 음역), 三攝提, 三假施設이라고 한다고 했다. 慧遠의 大乘義章卷一에는 智度論卷四十一의 해석에 근거하여 (1) 受假란 많은 것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고 있으므로 그 하나는 결국 많은 것을 싸서 수용한 것으로 實體가 없는 것이란 뜻이며, (2) 法假란 法 그 자체가 因緣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無自性이고 空이므로 實體가 없는 것이란 뜻이며, (3) 名假란 無自性이고 空이므로 모든 것은 다만 이름만 있고 實體가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 智顗의 仁王般若經疏卷二에는 仁王經卷上 序品의 三空觀門을 해석하여, 法假란 色陰, 受假란 受想行識의 四陰, 名假란 그 두 이름을 취한 명칭이라고 했다. 成實論假名相品에는, (1) 因成假(일체의 有爲法은 因緣에 의해 성립된 것이므로 假), (2) 相續假(前念後念이 不斷히 相續하므로 有爲法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찰나로 改變生滅하는 假), (3) 相待假(현상계의 長短·輕重 등은 상대적인 것으로 그 기준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므로 假)의 三假를 들었다. 이와 같이 三假는 모두 虛無한 빈 말이라 하여 三假浮虛라 한다. 智顗의 摩訶止觀 卷五下에는 이것을 藏敎 · 通敎의 說이라고 한다. 成唯識論 卷八에는 依他起性의 法에 假와 實이 있다고 하여, 假에 聚集假 · 相續假 · 分位假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成實論의 三假와 거의 같은 뜻이지만 分位假란 不相應行法의 경우와 같이 하나의 사물로부터 그 작용정도가 다름에 따라 다른 것으로 되기 때문에 假라는 뜻이다. 十八空論에 分別假 · 依他假 · 眞實假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三無性의 說에 의한 것이다.
③ 四假. 普光의 俱舍論記(光記) 卷二十九 등에 나온다. 成實論의 所說로서 因生假 · 緣成假 · 相續假 · 相待假의 四假를 들고 있지만 因成 · 相續 · 相待의 三假와 거의 동일한 뜻이다. 즉 因成假를 열면 因生假와 緣成假가 되는데, 因生假는 三假施設에 있어서의 法假이고 緣成假는 같은 受假에 해당된다. 吉藏의 三論玄義 · 大乘玄論 卷五 등에는 智度論 卷一의 四悉檀의 說에 의해 세운 法朗의 說을 이어 받아서 因緣假 · 隨緣假 · 對緣假 · 就緣假의 四假를 세웠다. 여기서 말하는 假란 法門을 밝히는 施設을 의미하고 機緣에 응하여 그것이 여러 가지로 다른 것을 말하며, 각각 第一義 · 爲人 · 對治 · 世界의 四悉檀에 배치된다.
중도(中道) : 二邊. 곧 양극단이 따로 떨어지므로 얻을 수 있다. 치우치지 않는 中正인 道의 뜻. 中路 혹은 단순히 中이라고도 함. 中道는 佛敎의 근본적 입장을 말하고 있어 대승 · 소승에 걸쳐서 중요시되고 있다. 따라서 그 뜻하는 바에도 深淺이 있지만 각 종파에서 이 語句를 가지고 교리의 핵심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중도의 意義를 中道義, 중도의 眞理를 중도의 理, 중도의 敎說을 中道敎(三時敎의 하나), 중도를 종지로 하는 종단을 中道宗(법상종에선 唯識中道를 주장하므로 자신이 中道宗이라 한다), 중도를 觀하는 것을 中道觀(자세히 말하면 中道第一義諦觀이라 하여 三觀의 하나)이라고 한다. 또 중도는 우주만유의 진실상을 나타내므로 중도는 곧 實相이라는 뜻에서 中道實相이라 한다.
① 阿含의 八聖道의 실천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로 치우친 생활태도를 버리고 중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열반의 證得으로 가는 도이므로 팔성도를 中道라 한다(中阿含經卷五十六). 또 十二緣起의 진리를 옳게 이해하는 것은 常見(중생의 생명의 주체인 我는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과 斷見(死後엔 아주 滅無로 돌아간다는 생각). 또 有見(자연적입장, 世間의 상식)과 無見(허무주의)등과 같은 치우친 견해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십이연기를 옳게 觀하는 것이 중도의 正見에 住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잡아함경 권십이등). 초전법륜에서 석존이 설한 것인데 前者는 실천상의 중도이며 後者는 思想上의 중도이다.
② 部派불교의 중도. 大毘婆沙論卷四十九나 成實論卷十一등에서 아함의 교설을 받아 들여 중도는 斷 · 常의 二見을 떠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③ 대승의 中觀派에서는 般若波羅密을 근본적인 조건이라 하고 모든 집착이나 분별의 경지를 떠난 無所得의 상태에 있는 것을 중도라 한다. 中論 卷一 觀因緣品에, 緣起의 理法은 生 · 滅 · 斷 · 常 · 一 · 異 · 去 · 來의 여덟 가지의 잘못된 견해(八邪 · 八迷 · 八過 · 八計 · 八謬 · 八事 · 八迷의 戱論)를 타파하여 空의 진리를 밝힌 것이다. 萬有는 그 緣起의 道理에 순응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원래 八邪를 여의었으며 실체가 없어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이와 같이 八邪가 떨어져 無得正觀(無所得의 바른 견해)에 住하는 것을 중도라 하고 이것을 八不中道 · 八不正觀 · 無得中道 · 八不中觀이라 한다. 여기에 八不이란 생멸 등의 八邪를 否定하는 不生 · 不滅 · 不斷 · 不常 · 不一 · 不異 · 不去 · 不來를 가리킨다. 이에 의하여 모든 邪執이 파멸되어 諸法이 그대로 實相인 도리가 나타난다. 八不중에서도 不生 · 不滅이 그 근본이다. 특히 팔불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不生이 팔불 속에 들어갈 수 있다 한다.
吉藏의 中論疏卷二에 의하면 不生은 嬰兒闡提, 不滅은 邪見闡提, 不斷은 斷見의 聲聞, 不常은 常見의 聲聞, 不一 · 不異는 外道, 不來와 不去는 獨覺 및 初發心 보살들의 각각의 邪執을 파괴시킨다고 한다. 삼론종은 八不中道의 설에 입각하여 세 가지 중도를 주장한다. 즉 中論疏 卷一에는 八不中道를 二諦에 關係시켜 설명한다.
(1) 因緣에 의해 거짓 존재하는 現象面으로 말하면, 모든 사물은 실체가 아니고 空이면서 거기다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므로 無生滅의 生滅이니 生이나 不生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俗諦中道 · 世諦中道라고 일컫는다.
(2) 사물의 진실한 실재의 측면 곧 본체면으로부터 말하면 모든 사물은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면서 또 그 本體는 空이기 때문에 生滅의 無生滅로서 不生이라고도 非不生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하여 이것을 眞諦中道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二諦各論中道라고 한다.
(3) 그렇지만 無生滅의 生滅, 生滅의 無生滅이란 실은 生滅도 아니고 無生滅도 아닌 言語와 思慮를 여읜 究極的인 空이라고 하여 이것을 二諦合明中道 · 非俗非眞中道라 일컫는다. 또 三論玄義卷下에 중도에 一中 내지 四中의 구별이 있다고 했다. 곧 중도가 유일의 청정한 도인 것을 一中, 중도를 二諦에 대해 논하여 「世諦의 中」과「眞諦의 中」으로 분류하는 것을 二中, 그「二諦의 中」에「非眞非俗의 中」을 더하여 三中이라 한다. 四中이란 다음 네 가지이다. (1) 對偏中. 斷 · 常의 偏見에 대해서 설한 中. (2) 盡偏中. 그들 偏見이 滅盡되어 중도의 意義가 나타난 것. (3) 絶對中. 거기 나타난 中은 언어와 사려를 초월한 不偏不中인데,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中이라 한 것. (4) 成假中. 非有非無인 絶對中에 의해 현상으로서의 거짓 존재(有無)를 성립시켜 중생을 교화하는 수단(方便)을 말한다.
④ 천태종에서는 空 · 假 · 中의 三諦의 설을 주장하여 모든 존재를 一面으로만 생각하는 空 · 假를 초월한 절대적인 본체는 언어와 사려의 대상이 아님을 中諦라고 한다. 이 중제는 化法의 四敎중 別 · 圓의 二敎로 설명된다. 그러나 別敎에선 三諦를 각각 독립된 진리라고 생각하고(隔歷三諦), 空 · 假의 二諦는 현상면, 中諦는 본체면으로부터 말한 것이라 하여 但中, 圓敎의 三諦는 서로가 개별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一諦중에 三諦를 갖추고 있어 셋이 별개가 아니고 융합되어 있다고 보며(圓融三諦), 卽空 · 卽假 · 卽中으로서의 中諦이므로 이것을 不但中이라고 한다. 또 通敎에선 三諦의 설은 없지만 거기서 주장하고 있는 空理 가운데 중도가 들어 있다고 설명되고 있으므로 통교를 含中敎라고도 한다. 그리고 천태종에서는 중도의 理는 우주의 진실한 모습인 만큼 이 진리를 깨달으면 佛 내지 地獄의 十界를 敎化시키는 대상자에게 맞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應化의 本源이 중도에 있다는 뜻에서 中道應本이라고 한다. 藏敎와 通敎의 보살은 이것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前者는 本惑을 끊지 못하고 남겨 두어 三界에 남아 있고 後者는 誓願을 세워 煩惱의 習氣를 붙들어 三界에 태어나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⑤ 유식종에선 有 · 空 · 中의 三時敎의 敎判을 세워서 解深密經 등의 설처럼 有 · 空의 二邊(兩極端)을 여의고 非有非空의 중도의 진리를 완전하게 나타낸 敎를 中道了義敎라 하고, 有 · 空에 치우친 敎를 不了義敎라고 한다. 그 중도란 소위 唯識中道로서 곧 (1) 범부가 실재한다고 본 바의, 有情의 실체적 생명으로서의 我나 萬有의 구성요소로서의 法은 迷情의 집착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情有理無의 非有이다. (2) 萬有는 인연의 假有的 화합에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의 變現이므로 즉 識은 理有情無의 非無이다. (3) 또 만유는 고정된 본성(自性)이 없고 空이므로 자유자재로 현상될 수 있는 것으로 곧 공은 眞空妙有의 非無라고 한다. 이와 같이 宇宙의 眞相은 非有非無(非有非空)의 중도로 파악되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中道了義敎라고 한다. 三性說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我와 法은 遍計所執性에 해당하고 識은 依他起性, 空은 圓成實性에 해당한다(成唯識論 卷七). 우리 나라의 원효는 그의 梵網經菩薩戒本私記卷上에서, 「非有非無는 가(邊)를 여읜 중도의 戒를 나타낸 말이니, 그러므로 戒의 體를 말하면 因緣을 따라 생긴 것이지만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戒의 自性을 얻을 수 없으므로 非有며, 戒가 비록 非有라고 하지만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므로 토끼 뿔이 없는 것처럼 아주 없는 것은 아니므로 非無라 한 것이다.」라고 하여 戒를 非有非無의 중도의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효는 이어서 「만일 戒의 業을 말하면 막는다는데 戒의 뜻이 있는 것이니 그 막아야 할 대상은 곧 罪다. 그러므로 계는 결국 인연을 따라서 생기지만 그러나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하여 들어가 따지고 보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얻어질 실재의 客觀은 없다.」고 하고 한 걸음 나아가 계를 중도에 契合시키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전개했다. 「마음자리를 두고 논하면 뿌리의 자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므로 죄될 요소가 따라 붙을 수 없다. 따라서 그릇됨을 막는다고 하지만 실은 그 절대적인 객관화된 본질적 표준(罪性)이 있음도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罪性은 마음의 근본바탕에는 없다. 그렇지만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여기에 戒가 중도에 들어 맞는 도리가 있는 바이다.」원효가 一切法에 無碍自在한 一大理論으로 千經萬論을 막힘이 없이 꿰뚫은 것도 다 철두철미하게 一貫 中道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또 華嚴經序에 「원래 無障無碍한 法界의 法門은 法이란 것도 없고 법아닌 것도 없으며 門이 아니고 門 아님도 없도다. 그것은 大도 小도 아니요 促도 奢도 아니며 動도 靜도 아니며 一도 多도 아니다.」라고 했고, 金剛三昧經論序에 「破할 것도 없고 破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세울 것도 없고 세우지 않을 것도 없으니 이른바 아무 이치가 없는 것 같지만 지극한 이치이고 그렇지 않으면서 크게 그러하다」고 했다. 이러한 圓融無碍한 절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性 · 相 · 空 · 有 · 一 · 異의 일체의 相對性을 會通시킴으로 立 · 破 · 開 · 合에 조금도 걸림이 없는 중도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고려의 義天도 「대저 法에는 말이나 형상이 없으며 말이나 형상을 여읜 것도 아니니 말이나 형상을 여의면 뒤집힌 迷惑이요, 말과 형상을 집착하면 참으로 迷한 것이다」라고 했고, 「敎學者는 안을 버리고 밖으로 구하며 習禪人은 因緣法을 모르고 안으로만 밝혀서 偏執하므로 二邊을 다 읽는다」고 하여 역시 중도가 究竟임을 누누히 밝혀 주고 있어서, 원효의 중도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 있어서는 執空說을 취하는 南寺傳의 중도설과 體空說을 취하는 北寺傳의 중도설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먼저 집공설의 입장을 주장하는 남사전에 의하면 三性對望의 중도설을 주장한다. 곧 진여인 원성실성(眞有)에 의해 의타기성(假有)으로서의 현상이 있다. 그 現象의 相을 實有라고 집착하는 것이 변계소집성(理無)이므로 변계소집은 非有, 의타기와 원성실은 非無이다. 또 三性은 一法上의 三性이므로 三性을 상대로 하여 볼 때 여기에 非有非無인 하나의 중도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體空說을 취하는 북사전에서는 一法中道說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변계소집성은 情有이므로 非無, 理無이므로 非有로서 곧 중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三性이 각각 하나하나 다 중도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아가서 情有도 단순한 有가 아니라고 하여 많은 一法中道를 주장한다. 단 일법중도설 가운데서 변계소집성은 범부의 迷情이므로 중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설도 있다. 三性을 상대로 중도를 설명하는 것은 言說로 설명한 중도이므로 言詮中道라 한다. 一法中道는 모든 존재가 본래적인 진실한 相으로는 언어와 사려를 끊어버린 非有非空의 중도라 하여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도이므로 離言中道라고 하여 이들을 합해서 二重中道라고 한다. 이것은 중도에 따로 두 개가 있는 것은 아니라 前者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중도, 後者는 자기 스스로의 깨달음의 내용으로서의 중도이다. 또 중도란 말은 能觀의 智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所觀의 理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이변(二邊) : 中道를 여읜 兩極端을 말한다. 中論卷四에는, 有 · 無, 혹은 常 · 無常을, 順中論 卷下에는, 常 ·斷을 玄奘譯의 攝大乘論 世親譯 卷一에는, 增益 · 損減을, 止觀補行 卷三에는, 空 · 假를 각기 二邊으로 들고 있다.
중정(中正) : ① 곧고 바름. ② 바른 행위. 중도이며 바른 것. ③ 바른 도덕.
유(有) : 범어 bhava의 번역. 有情으로서의 존재. 生存의 뜻. 三有는 三界를 말하며, 欲有·色有·無色有. 七有는 地獄有(바람직하지 않은 有의 의미로 不可有라고도 한다)·餓鬼有·傍生有(畜生有)·天有·人有·業有(業은 생존을 이끄는 因이기 때문에 業有라고 한다)·中有, 二十五有는 四惡趣(地獄·餓鬼·畜生·阿修羅)·四州(東勝身州·南贍浮州·西牛貨州·北俱盧州)·六欲天(四王天·夜摩天·忉利天·兜率天·化樂天·他化自在天)·色界(初禪天·大梵天·第二禪天·第三禪天·第四禪天·無想天·五淨居天)·四無色界(空無邊處天·識無邊處天·無所有處天·非想非非想處天), 二十九有는 二十五有중 五淨居天을 無煩·無熱·善見·善現·色究竟의 五天으로 나눈 것이다.
혹은 또 初果의 聖者는 人天의 사이를 七返往來하며 生을 받고 그 이상은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경우 그 생을 中有와 生有로 나누어 二十八有라 하기 때문에 二十九有는 絶無를 뜻한다. 이상과 같이 迷惑된 생존의 상태는 가지가지로(특히 이십오유에) 분류되기 때문에 諸有라 하고 그 有는 널리 際限이 없기 때문에 바다에 비유해서 諸有海라 한다. 또 智度論 권十二에는, 물건의 존재의 방식을 3종으로 나누어 三種有로 한다. 大小長短등과 같은 상대적 존재인 相待有와, 多數가 집합한 假의 존재인 假名有와, 因緣으로 생긴 것이기는 하나 「물건」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法有 등이다.
무(無) : 非存在를 의미하며, 有에 대한 矛盾槪念이다. 불교에서는 有無의 二邊이라고 하여, 일방적으로 有에 치우치거나, 혹은 無에 치우치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은 잘못이라고 한다. 또 그 有無를 초월한 절대적인 경계는 부정적으로만 표현할 수 밖에 없어서 眞如를 無相이라고 한다. 또 禪宗에서는 無라는 말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임을 표현하고 있다. 또 勝論學派에서는 未生無·已滅無·更互無·不會無·畢竟無의 5종의 無를 든다.
비유비무(非有非無) : 모든 법의 실상은 있지도 없지도 아니함. 有와 無의 중도임.
실상(實相) :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실상을 관찰하는 것을 實相觀이라 하고, 唯識觀은 事觀임에 대하여 이것을 理觀이라고 한다. 또 諸法의 실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大乘佛敎의 印, 곧 標幟로 이를 實相印이라 한다. 大乘에서 一法印을 주장하는 것은 小乘佛敎가 三法印(無常·無我·涅槃)을 주장하는 것에 대조가 된다.
정도(正道) : ① 正眞의 師道, 三乘所行의 無漏道란 뜻. 一切法의 根本體性은 차별을 뛰어 넘어 一味平等한 絶對無爲의 경지이며 이것을 體達한 無漏智로 마침내 菩提涅槃을 證得하고 佛果에 이르게 하므로 이것을 正道라 한다. ② 八正道分을 가리킴.
무루도(無漏道) : 出世間道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허물을 여읜 無漏智로써 닦는 觀行. 小乘에서는 見道位 이후의 聖者가 四諦의 이치를 16行相으로써 觀하는 지혜를 말하고, 大乘에서는 眞如의 이치를 본 根本智와 根本智에서 나와서 萬有諸法의 모양을 보는 後得智와 같은 것을 말한다. 이 道로써 見惑과 修惑을 모두 끊어 버린다.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을 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六根(여섯 感官)을 犬 · 鳥 · 蛇 · 狐 · 鰐 · 猿의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의 喩라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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