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八正道)

사성제(四聖諦)와 八正道(불교입문,조계종)

근와(槿瓦) 2018. 6. 5. 01:52

사성제(四聖諦)八正道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연기와 삼법인(諸行無常,諸法無我,一切皆苦)의 가르침은 세상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리를 구현하는 수행의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사성제(四聖諦)이다. 사성제란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행한 첫 설법의 내용이기도 하다. 사성제는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부처님께서 연기법의 진리를 현실에 맞게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네 가지 진리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 진리인가? 이른바 괴로움의 진리(苦聖諦),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진리(苦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滅聖諦),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에 대한 진리(苦滅道跡聖諦)를 말한다.


사성제란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이를 줄여서 고 · · · , 사성제라고 한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두 가지씩 원인과 결과를 이루며,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대비를 설명하고 있다.


삼법인에서도 설명했듯이, 인간은 생로병사의 고통 속에 있다. 인간에게는 이 네 가지 고통 외에도 여러 가지 고통이 있다. 이것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현실이다. 이것이 고성제(苦聖諦)이다.


그러면 고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집착에서 비롯된다.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한 것을 찾고, 자기 것이 본래 없는데도 헛되이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설명한 것이 집성제(集聖諦)이다.


이 세상에 고통이 있다면, 고통 없는 세계도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있을 것이다. 멸성제(滅聖諦)는 고통의 원인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 열반의 경지가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멸성제이다.


그러면 고통의 원인을 없애고 열반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열반으로 가는 길은 여덟 가지가 있으니, 바로 도성제(道聖諦)인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팔정도란 여덟 가지 바른 수행의 길이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다.


정견(正見 :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부른다. 사물을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다. 바른 가치관이 확립될 때 우리는 어떻게 사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 길이 보인다.

정사유(正思惟 : 바른 생각이다. 바른 견해를 가져야만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깊이, 그리고 바르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정어(正語 : 바른 말이다. 말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욕이나 비방하는 말은 그 사람의 비뚤어진 생각과 시각을 나타낸다. 항상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말을 하여 구업(口業)을 짓지 않도록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을 해야 한다.

정업(正業 : 바른 행동이다. 모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 바른 생각과 바른말에서 나아가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정명(正命 : 바른 생활, 즉 바른 직업이다. 옳은 일에 종사하고 몸과 마음과 말, 즉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히 하면서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른 직업관을 가지고 생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정진(正精進 :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쉼 없는 노력을 말한다. 아울러 옳은 일에 대해서 물러섬 없이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정념(正念 : 바른 마음챙김이요, 바른 마음 집중이다. 마음의 움직임과 느낌에 대해서 마음을 챙겨 바로 깨어있는 것이다.

정정(正定 : 바른 선정이다. 마음챙김과 마음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바른 삼매의 상태에 들어가 고요한 평정에 머무는 것이다. 정정의 상태에서 지혜를 얻게 된다.


팔정도는 도성제의 내용이다. 괴로움과 집착의 상태를 벗어나 열반의 길로 들어가는 방법이 바로 팔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팔정도의 첫째 방법이 올바르게 보는 것(正見)’이라는 점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세상의 이치를 올바로 보지 못하면, 올바른 생각도 올바른 행동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극단적인 견해로 바라보면 극단적인 행동밖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모든 행동이 좌우된다. 즉 정견이 없으면 팔정도는 실현되지 않는다. 정견은 팔정도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러면 정견(正見)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것을 연기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만물이 모두 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모든 현상과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여실지견(如實知見)’, 즉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경전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버리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정견은 성립된다. 즉 연기의 관점에서 볼 때만이 잘못된 양 극단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극단을 떠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불교적 시각으로 삶과 세상을 보는, 올바른 가치관이 정견이다.


불자들은 중도적 사고와 실천을 삶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중도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초전법륜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관통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불자라면 중도, 즉 정도를 걷는 사유와 실천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생활에서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 그리고 그 전제조건인 정견, 즉 연기적 관점을 갖는 것이 올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자들 스스로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유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참된 불자라면 항상 이것을 잊지 말고 잘 익혀 생활에서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출전 : 불교입문(조계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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