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의식(細意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無始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상태로 간단없이 상속하는 미세한 心識을 말하며, 上座部의 說이라 한다. 經量部에서는 이것을 一味蘊이라 한다. 이 心識이 우리들의 윤회의 주체라고 생각되었다. 이것은 唯識說에 있어서의 阿賴耶識 사상의 先驅가 되기도 한다. 또 譬喩者·分別論師가 無心定에도 細心이 없어지지 않고 상속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다.(成唯識論卷三)
참고
무시(無始) : 일체 世間의 중생과 법이 모두 처음이 없는 것과 같이 금생은 전생의 인연을 따라 존재하고, 전생은 또한 전생을 따라 존재하는 것처럼 이같이 추구해 들어가면 중생과 법은 원래 얻을 수 없으므로 無始라고 한다.
상속(相續) : 因은 果를 내고, 果는 또한 因이 되어 또 다른 果를 내므로 이렇게 因果가 차례로 연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
심식(心識) : 小乘의 俱舍에서는 心과 識을 同體異名이라고 보지만, 大乘의 唯識宗에서는 그것을 別體로 보았다. 곧 唯識에서는 제8識을 心, 前5識과 제6意識은 識이라 한다.
상좌부(上座部) : 小乘 20部 중에 근본 2부의 하나. 佛滅後 백여년경 大天이 5事를 주창한 것이 동기가 되어 교단내의 보수파와 진보파가 대립되어 上座·大衆의 2부로 분리되었다. 상좌부는 보수파이다.
경량부(經量部) : 줄여서 經部라고도 한다. 上座部·소승 20部의 하나. 여기에 根本部와 枝末部가 있으니, 佛滅 후, 1세기 경의 鳩摩羅駄(根本部)와 室利羅多(枝末部)가 그 始祖이다. 근본부는 정신과 물질(色·心)이 도와서 生死가 相續流轉하는데 色·心이 서로 종자를 熏習하여 色·心이 없어질 때(곧 죽을 때)는 그 종자를 각각 서로 보전했다가 물질과 정신이 서로 도와 다음 생을 얻는다고 하는데 대해, 枝末部에서는 輪廻轉生의 주체인 영겁불멸의 細意識을 근본으로 하여 이것에 의해서 餘地의 邊蘊(五蘊)의 法을 일으킨다고 한다.
일미온(一味蘊) : 經量部에서 無始의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一味가 相續하여 輪廻轉生하는 主體를 細한 意識이라 하여 이것을 一味蘊이라 한다.
윤회(輪廻) : 범어 samsara의 번역으로, 僧婆洛이라 音譯하고, 淪廻라고도 쓴다. 또 生死라고도 번역하고, 生死輪廻·輪廻轉生·流轉·輪轉이라고도 한다. 수레바퀴가 굴러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業에 의해서 三界 六道의 迷한 生死世界를 거듭하면서 돌고 돌아 그치지 않는 것. 이 윤회설은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그 몸에서 떨어져 草·木·鳥·獸 등에 깃들인다는 轉住說로부터 발달한 것. 이 생각은 인도에서 유명한 業說과 결합되어 멀리 우파니샤드시대로부터 끊임없이 베단타(Vedanta)를 통하여 전해졌다. 샹캬라(Samkara)도 이를 채택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인도교 가운데 스며 들어와 보편적인 사상 또는 감정으로 되었다. 이 윤회는 불교에서 輪廻轉生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확실하게 윤회설을 브라흐만이 채택한 것은 고대 우파니샤드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B.C. 5세기 경에 배출된 六師外道 등으로 불리우는 여러 자유사상가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것을 주장하여 積集說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소위 육파철학에서도 베단타 학파 외에 상캬(Samkhya)학파는 윤회를 非情世間 즉 일반 자연물에게 까지 미치는 것으로 보고 그 해탈을 인생의 목적이라고 하고 바이세시카(Vaisesika)학파는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요가행의 수행을 역설하였다. 즉 윤회는 인도사상의 보편적이고도 뚜렷한 한 특색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個物이나 특수를 무시하고 보편자에 순종하여, 나아가서는 현세 초월적인 인도인의 사유방법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하늘의 六道가 있다고 說한다. 이것에 의하면 현재 우리들 앞에 있는 축생, 예를 들어 파리나 벌레 등도 전생에는 인간이었던 것이 바뀌어 태어났는지도 모르며, 또 장차 우리들이 저승에서 파리나 짐승 등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道 중의 어느 세계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와의 총체인 業(karma)에 의하는 것이라 하며 또한 이 業은 이승에 있는 우리들을 초월하여 생각되고 있어, 간단히 말하자면 善業에 의하여 善의 세계에, 惡業에 의하여 惡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한편 부분적이긴 하나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 중에도 이 윤회전생을 말한 이가 상당수가 있어, 예를 들면 니체의 永劫回歸의 사상 등은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한다.
윤회전생(輪廻轉生) : 중생이 사집(邪執)·유견(謬見)·번뇌(煩惱)·업(業) 등으로 인해 삼계 육도(三界六道)에 죽어서는 다시 나고, 또다시 죽으며, 생사를 끝없이 반복해 감을 이름.(국어사전)
유식(唯識) : 識 곧 心의 本體의 轉變을 떠나서, 어떠한 實在도 없다고 하는 說. 곧 우리들이 자기의 心外에 있다고 하는 物心의 모든 現象은, 우리들의 第八識 그 자체가 主觀(見分)과 客觀(相分)으로 變하여 나타나서, 인식의 대상과 같은 모습을 心外의 影像으로써 비쳐 떠올려 實在인 것처럼 인정하는데 불과하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건자체(本質)는 阿賴耶識중에 攝持하는 種子로부터 變하여 생긴 것이기 때문에, 識 이외에는 實在는 없다고 한다. 이것을 唯識無境이라 하고, 또 萬有는 識에서 變했다고 하는 의미로 唯識所變이라고 한다. 이 이론을, 成唯識論 卷二에는
(1) 因能變(因變·生變이라고도 하고, 온갖 것은 阿賴耶識중에 거두어 보존돼 있는 종자에서 變生한다)과,
(2) 果能變(果變·緣變이라고도 하고, 그 결과 八識위에 主觀客觀의 구별이 있어서 對象에 向하는 작용을 한다)으로 나누며 觀心覺夢鈔 卷下에는 (1) 熏習道理(種子는 스스로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識에 심어진 것이라는 것)와, (2) 轉變道理(識이 見相二分으로 變하는 것)로 나누어 說한다.
① 法相宗의 근본적 敎義로, 同宗에서는 唯識의 相을 說하는데, 五位百法이 모두 識을 여의지 않는다고 보이는 것을 總門의 唯識, 不離門의 唯識이라고 하고, 五位중 心王은 識의 自相, 心所는 心王에 응해서 작용하는 相應, 色法은 識이 變한 所變, 不相應法은 이상의 三位에 잠정적으로 세운 것. 無爲法은 이상의 四位의 實性이라 하고,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해서 唯識이라고 가리키는 것을 別門의 唯識이라고 한다. 別門唯識의 說은 어리석은 자를 위해서 能所를 분별해서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虛妄唯識·不淨品唯識·方便唯識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初地 이상의 보살이 唯識의 이치를 깨달아서 唯識無塵智를 證하여 眞識을 가지고 있는 것을 眞實唯識·淨品唯識·正觀唯識이라고 이름한다. 成唯識論 卷九에도, 唯識의 敎理에 대한 9種의 疑難(이것을 唯識九難이라 함)을 들어서 答釋하고 있다.
곧 唯識九難이라 함은,
(1) 어떠한 교리에 의해서 立論한 것인가(唯識所因의 難).
(2) 世間의 사실로 말하면 心外에 實在가 있는 것이 아닌가(世事乖宗難).
(3) 經典에 色등의 十二處가 있다고 說하는데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聖敎相違難).
(4) 諸法이 空이라고 하는 것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識도 空無한 게 아닌가(唯識成空難).
(5) 物的은 形狀이 있는데 어떻게 唯識이라고 할 수 있는가(色相非心難).
(6) 外界의 實在가 없다면 어떻게 外界의 事象을 직접 인식하는 現量智에 의해서 色 등을 알 수가 있는가(現量爲宗難).
(7) 꿈속에서 보는 대상은 깨고 나면 妄境임을 알 수 있지만, 깨어 있을 때의 일에 대해서는 그 例를 쓸 수 없는 것이 아닌가(夢覺相違難).
(8) 他人의 마음은 자기의 마음 밖에 있으니 他心智에 의해서 그것을 알려고 한다면 他人의 마음은 心外의 境이 아닌가(外取他心難).
(9) 앞의 물음에 대해서, 만일 自心중에 他心의 影像을 비추어 그 影像에 의해서 아는 것이므로 唯識無境이라고 한다면, 그렇더라도 自心 ․ 他心의 구별이 있으니 唯識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異境非唯難). 이상의 9를 말한다.
또 義林章 卷一 끝에는 모든 經論의 唯識說을 분류해서 境唯識·敎唯識·理唯識·行唯識·果唯識의 五種唯識으로 하고 있다. 특히 同宗의 修行으로서 五種唯識觀이 있다.
② 華嚴宗에서는 三界는 모두 一心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이것을 설명하는데,
(1) 相見俱存의 唯識·(2) 攝相歸見의 唯識·(3) 攝數歸王의 唯識·(4) 以末歸本의 唯識·(5) 攝相歸性의 唯識·(6) 轉眞成事의 唯識·(7) 理事俱融의 唯識·(8) 融事相入의 唯識·(9) 全事相卽의 唯識·(10) 帝網無礙의 唯識의 十種唯識을 說하여, 究極적으로는 帝釋宮의 網珠(因陀羅網)와 같이,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그 일체중에 또 각각 일체가 있어 窮盡함이 없고, 重重無盡事事無礙한 것이 唯識이라고 한다. 이것을 다시 五敎에 맞추어 처음의 3은 始敎, 다음의 4는 終敎 및 頓敎, 뒤의 3은 圓敎의 說이라고 한다(華嚴經探玄記 卷十三). 단, 華嚴經大疏鈔 卷三十七에는 처음에 假說의 唯識을 더하여 小乘의 說이라고 하여 (6)을 除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 阿賴耶는 범어 alaya의 音譯. 阿梨耶識이라고도 쓰고, 약하여 賴耶 · 賴耶識이라고도 한다. 八識(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의 각 識)의 하나. 九識(八識에 阿摩羅識을 더함)의 하나. 無沒識 ·藏識이라 번역하고, 제8識 · 本識 · 宅識 등 가지가지의 명칭이 있다. 無沒識이라 함은 諸法을 執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藏識이라 함은 諸法展開의 의지할 바탕이 되는 근본 마음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또 八識의 최후에 두기 때문에 제8識, 諸法의 근본이기 때문에 本識이라고도 하고 따라서 諸識 중 특히 識主라고도 한다.
① 成唯識論 卷二에 의하면, 藏識의「藏」에 能藏 · 所藏 · 執藏의 三義가 있다. 이것을 賴耶三藏이라고도 藏三義라고도 한다. 能藏이라 함은 이 識이 諸法을 展開生起하는 種子(能力·原因)를 攝持하고 감춘다는 의미이며, 所藏이라 함은 이 識이 諸法을 生起하는 種子를 諸法으로 훈습하여 감춘다(藏)는 의미이며, 執藏이라 함은 이 識이 末那 곧「思量의 뜻」을 가지고 스스로를 愛著한다는 의미이다. 增一阿含經에 의거해서, 阿賴耶에 愛 · 樂 · 欣 · 憙의 四義가 있다고 說하는(이것을 四阿賴耶라고 한다)것도 , 여기서 말하는 執藏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다.
② 能藏과 所藏의 관계는, 阿賴耶識이 그 種子의 작용에 의해서 諸法 곧 우리들의 현실세계를 만들어 가매(이런 경우, 阿賴耶識의 相分 곧 對境으로서의 객관적 境界는 종자와, 眼·耳·鼻·舌·身의 五根에 의해서 드러나는 육체와, 山河大地 등의 器界이며, 이것을 種根器라고 한다), 만드(作)는 것에 의해서 逆으로 諸法에서, 다시 새로이 諸法을 창조하고자 하는 종자를 自己 중에 轉變 · 變異 · 成熟시켜, 감추어(藏) 간다고 하는 相依相待 · 展轉 · 緣起의 관계이고, 執藏은 이와 같은 아뢰야식의 轉變이, 諸法에 있어서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아뢰야식 스스로의 愛著 작용을 原動力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執藏은 확실히 아뢰야식의 自相이다. 또 아뢰야식은 과거에 있어서의 善·不善의 業의 결과(곧 異熟·果報)에 의해 끌리므로 이 점은 아뢰야식의 果相이며, 그래서 아뢰야식을 異熟識(곧 果報識)이라 한다. 또 아뢰야식이, 모든 法을 生起하는 種子를 감춘(藏)다는 점에서, 그 因相으로서의 의미에 의해 아뢰야식은 一切種識(또는 種子識)이라 불리워진다. 이를 自相 · 果相 · 因相을 賴耶의 三相이라고 한다. 唯識敎學은 이상과 같은 구조아래 일체를 아뢰야식의 變現으로서 唯心論을 樹立한다. 이것은 일체를 아뢰야식에서 緣起한 것이라고 說하기 때문에, 이것을 賴耶緣起라고 한다.
③ 아뢰야식의 自相은 凡夫로부터 보살의 제7地까지, 二乘이면 有學의 聖者位에 있는 자가 갖는다고 하며, 이 자리를 我愛執藏現行位라 한다. 보살의 八地이후 또는 二乘의 無學은 我執이 없기 때문에 아뢰야식은 그 自相을 버리는데, 다만 異熟識인 果相이 남는다고 하며, 이 자리를 善惡業果位라고 한다. 佛果에 이르면 異熟識의 果相도 떨어지는데, 有情利益을 행하기 위해 일부러 諸法의 종자 및 五根을 執持하여 버리지 않고 相續케 한다고 하며, 따라서 種子識인 因相만이 남는다. 이 자리를 相續執持位라고 하다. 이상을 賴耶의 三位라 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범부로부터 부처가 되는 轉迷開悟의 道가 되는 것으로서, 如實히 그 相을 알아야 할 것이고, 그 의지해야 할 곳이기 때문에, 아뢰야식을 所知依라고 한다.
④ 특히 아뢰야식을 轉迷開悟의 要道로 論究함에 있어 아뢰야식은 번뇌에 의해 더럽혀진 妄識인가, 自性으로서 淸淨한 眞識인가가 중국불교 敎學에서 문제가 되어, 唯識宗은 妄識의 입장을 취하고, 華嚴宗은 起信論에 의해서 眞妄和合識의 입장을 취했으며, 地論宗은 眞識의 입장을 취했다.
무심정(無心定) : 滅盡定 4名의 하나. (大乘義章 9)
멸진정(滅盡定) : 滅受相定이라고도 하고 滅盡三昧라고도 일컬을 때가 있다. 心不相應行法의 하나. 心과 心所(마음의 작용)를 모두 단절한 定으로서 無想定과 더불어 二無心定의 하나로 불리운다. 無所有處의 번뇌를 떠난 聖者가 그 定의 경지를 無餘涅槃의 고요함에 견주어 無心의 寂靜境을 즐기기 위해 들어가는 定이니, 이 定을 닦음으로서 無色界의 第四天인 有頂天에 태어난다고 한다. 有部에서는 이 定을 그 실체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나 經部나 唯識宗에서는 假的인 것으로 본다. 또 唯識宗에서는 이 定으로는 阿賴耶識은 끊을 수 없다고 說하며, 分別論者도 想과 受는 滅할 수 있지만 細心은 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유식론(成唯識論) : 범어 Vidyamatrasiddhisas=tra. 10권. 당나라의 현장법사 번역. 법상종의 중요한 책. 世親의 유심 사상의 대표작인 唯識三十頌을 문하의 十大論師가 해석한 10개의 학설이 護法을 정통으로 하고, 다른 이들의 말을 비판하여 종합해서 현경 4(659)년에 번역한 것. 八識을 자세히 말하여 인식의 과정을 명백히 하고, 또 실천적 수행의 五階位를 말하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