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一아함경, 雜아함경

증일아함경-915-183

근와(槿瓦) 2018. 5. 30. 00:22

증일아함경-915-18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911 / 1393] 쪽
"저 외도의 여섯 스승이 한자리에 모여 '사문 구담은 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충분히 그를 이길 수 있다'고 논의하는구나." 그 때 수로니(輸盧尼) 비구니[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송·원·명 세 본에는 수로니비구니(輸盧尼比丘尼)가 수로비구니(輸盧比丘尼)로 되어 있다"고 하며, 본 경의 뒷부분에서도 '수로비구니'라 하였다.]는 허공으로 날아 올라 그 여섯 스승들에게 이런 게송을 읊었다.


아무도 우리 스승 짝할 이 없고 가장 높아 그보다 나은 이 없네. 나는 바로 그 분의 제자 그 이름은 수로니(輸盧尼)라네. 만일 너희에게 깨침이 있다면 나와 함께 변론해 보자. 나는 낱낱이 그 물음에 대답하리. 마치 사자가 사슴을 낚아채듯이. 거룩한 우리 스승 제해 놓고는 여래라 일컬을 이 본래 없나니 내 비록 비구니이지만 외도들 항복 받기엔 충분하다네.


비구니가 이렇게 말했을 때 외도들의 여섯 스승은 그 얼굴조차 우러러 보지 못하였다. 하물며 변론할 수 있었겠는가? 그 때 비사리성 사람들은 비구니가 허공에서 여섯 스승과 변론하는데 여섯 스승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 모두들 칭찬하고 한없이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여섯 스승들이 오늘 저 분에게 항복하였다."


                                                                                                                    [912 / 1393] 쪽
그 때 여섯 스승들은 큰 근심에 잠겨 비사리성을 떠났고 다시는 성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비구들은 수로(輸盧) 비구니가 여섯 스승들과 변론해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그 사실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로 비구니는 큰 신통과 큰 위신이 있고 지혜롭고 많이 안다. 나는 '저 외도들의 여섯 스승과 변론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고, 오직 나와 저 비구니뿐이다'고 늘 생각했었다." 세존께서는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 비구니처럼 외도를 항복 받을 수 있는 다른 비구니를 본 적이 있느냐?" 비구들은 아뢰었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나의 성문 중에 외도를 항복 받을 수 있는 데 있어 첫째가는 비구니는 바로 저 수로 비구니이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12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細滑更樂入]이 있다. 여섯이란 이른바, 안입(眼入) · 이입(耳入) · 비입(鼻入) · 설입(舌入) · 신입(身入) · 의입(意入)이니 이것을 6입(入)이라 한다. 범부들은 눈으로 빛깔을 보면 곧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그 빛깔을 보고 나서는 매우 애착하는 마음을 내어 생사에 떠다니면서 벗어날 때가 없다. 6정(情)[여섯 감각기관인 6근(根)의 다른 이름이다. 즉 이 경의 앞뒤에서 말한 6입(入)을 가리킨다.]에 있어서도 그와 같아서 집착하는 생각


                                                                                                                    [913 / 1393] 쪽
을 내어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아 흘러 다니면서 벗어날 때가 없다. 그러나 세존의 현명한 제자들은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집착하지 않고 더러운 마음이 없이 곧 '이 눈은 무상한 것으로서 괴롭고 공이며 나가 아닌 것이다'고 분별한다. 6정(情)에 있어서 이와 같이 더러운 마음을 내지 않고 '이 6정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이고 나가 아니다'고 분별한다. 이렇게 사유할 때에 두 가지 과보를 얻게 되니, 현세에서 아나함이 되거나 아라한이 되느니라. 마치 매우 주린 사람이 보리를 찧고 까불러 깨끗이 해 먹고 굶주림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처럼, 성중도 그와 같이 이 6정(情)을 나쁘고 더러운 것이라 생각하고는 곧 도를 이루어 무여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해 이 6정을 없애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14 / 1393] 쪽
증일아함경 제33권

동진 계빈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39. 등법품(等法品)


[ 1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현세에서 무궁한 즐거움을 누리고 번뇌를 없애려 하면 곧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일곱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법을 알고, 이치를 알며, 때를 알고, 자기를 알며, 만족할 줄을 알고,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을 알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곱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가 법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가 법을 안다는 것은 이른바 계경(契經) · 기야(祇夜) · 게(偈) · 인연(因緣) · 비유(譬喩) · 본말(本末) · 광연(廣演) · 방등(方等) · 미증유(未曾有) · 광보(廣普) · 수결(授決) · 생경(生經) 등을 아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법을 모른다면 그것은 12부 경전을 모르는 것이며,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능히 법을 알기 때문에 법을 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을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는 여래의 의도를 알고 깊은 이치를 이해하여 의심이 없어야 한다. 만일 비구가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능히 깊은 이치를 이해하기 때문에 이


                                                                                                                    [915 / 1393] 쪽
치를 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치를 분별해야 하느니라. 비구가 적당한 때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는 적당한 때를 알아, 관(觀)을 닦아야 할 때에는 곧 관을 닦고, 지(止)를 닦아야 할 때에는 곧 지를 닦으며, 침묵해야 할 때에는 침묵할 줄 알고, 가야 할 때에는 갈 줄 알며, 외워야 할 때에는 외울 줄 알고, 남을 가르쳐야 할 때에는 가르칠 줄 알며, 말해야 할 때에는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이것을 몰라 지를 닦고 관을 닦으며 나아가고 그쳐야 할 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만일 비구로서 그 때를 알아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는다면 이것을 일러 적당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그 적당한 때를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스스로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는 자기를 알아 '나는 지금 이런 소견과 지식과 생각과 앎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혜가 있어 걸음걸이와 나아가고 멈춤을 항상 바른 법대로 한다'고 알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지혜로운 드나듦과 가고 옴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적당한 나아감과 멈춤을 스스로 닦으면 이것을 자신의 행을 스스로 닦는 것이라 한다.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자기를 안다는 것이니라. 비구가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는 스스로 잠자고 깨고 앉고 눕고 경행하고 나아가고 멈춤에 있어 그 적당함을 헤아려 능히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능히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만족할 줄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것을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가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는 대중을 분별하여 '이들은 찰리 종족이고, 이들은 바라문들이며, 이들은 장자들이고, 이들은 사문들이다. 나는 이 법으로 적당하다면 저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 말해야 할 경우와 침묵해야 할 경우를 모두 잘 알아서 하리라'고 알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 모른다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그가 비구로서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 알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 안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 안다는 것이니라. 비구가 사람들의 근성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알라. 두 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增一아함경, 雜아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일아함경-925-185  (0) 2018.06.01
증일아함경-920-184  (0) 2018.05.31
증일아함경-910-182  (0) 2018.05.29
증일아함경-905-181  (0) 2018.05.28
증일아함경-900-180   (0) 2018.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