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전의(六轉依)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法相宗에서 세운 敎義. 열등한 법에 의지하던 바를 버리고 변하여 殊勝한 法에 의지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 轉依를 얻는 지위에 6종이 있음을 말한 것. 成唯識論에서는 여기에 2종 또는 4종이 있음을 말한데 대해 攝大乘論에서는 6종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六轉依의 분류는 후자의 설을 따른 것.
(1) 損力益能轉. 資量位·加行位의 轉依로 이 位에서는 煩惱障과 所知障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또한 眞如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轉依는 아니나, 勝解와 慚愧의 두 가지 힘에 의하여 본래의 識 가운데 染種子의 세력은 덜고 淨種子의 세력을 더하므로 轉依라 함.
(2) 通達轉. 通達位의 轉依이다. 見道無分別智로 分別起의 2障을 끊고, 1分의 진실한 轉依를 증득한 것을 말함.
(3) 修習轉. 修道位의 轉依로 10地의 無分別智를 부지런히 닦고 익혀 俱生起의 2障을 끊고, 점차로 진실한 轉依를 증득하는 것.
(4) 果圓滿轉. 圓滿轉이라고도 함. 究竟位의 轉依로 일체의 번뇌장과 所知障의 종자를 끊고 佛果가 원만한 轉依를 말한다.
(5) 下劣轉. 2乘位의 轉依. 2乘의 自利하는 생각으로 生空眞如만을 통달하고, 번뇌장의 종자를 끊었으나 所知障의 종자에는 미치지 못하고, 生空의 理智를 얻었을 뿐으로 수승한 힘이 없는 것.
(6) 廣大轉. 大乘位의 轉依로 利他를 위해 큰 菩提로 나아가 2空眞如를 갖추어 통달하며, 煩惱障과 所知障의 종자를 모두 끊고 가장 큰 깨침과 涅槃을 頓證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전의(轉依) : 依는 染淨迷悟의 법을 설립시키는 所依가 된다는 뜻. 곧 底劣한 법에의 의지함을 버리고 나아가 殊勝한 법에의 所依를 얻는 것에 의해서 성취되는 果를 말한다. 所依 · 已轉 · 變住라고도 한다. 法相宗에서는 聖道에 의해서 번뇌장 · 소지장을 끊고 열반 · 菩提의 果를 얻으므로 이 二果를 二轉依果 · 二轉依妙果라고도 한다. 成唯識論卷九에는 轉依해석에 二說을 세웠다.
(1) 依란 染淨의 法에 의지할 바(所依)가 되는 依他起性이며, 轉은 依他起 가운데 遍計所執性을 버리고 依他起 가운데 圓成實性을 얻는 것을 말한다.
(2) 依는 生死와 열반의 所依인 唯識 · 眞如라 하고 轉은 如에 의한 生死를 滅하고 如에 의한 열반을 얻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또 同書卷十에는 轉依를 넷으로 나누어 해석한다. (1) 能轉道. 轉依를 깨달은 智. 여기에 번뇌장·소지장의 二障의 종자의 세력을 억눌러서 작용하지 못하게 하는 能伏道와 種子를 아주 끊어 없애는 能斷道가 있다. (2) 所轉依. 轉依할 즈음에 의지하는 바가 되는 것으로 여기에 染淨法의 종자를 지닌 持種依 곧 根本識과 迷悟法이 의지하는 바의 迷悟依인 眞如가 있다. (3) 所轉捨. 轉捨되어야 할 것. 여기에 所斷捨인 二障의 종자와 所棄捨인 餘他의 有漏法 내지 아울러 劣無漏의 종자가 있다. (4) 所轉得. 轉得되는 것으로 여기에 所顯得인 열반과 所生得인 菩提가 있다. 佛地經論卷七에는 이 가운데 所轉得의 의미로부터 轉依를 해석해서 轉依란 法身의 相이라고 했다. 또 攝大乘論卷下에는 轉依를 깨닫는 位에 따라서 6종으로 나누었다. 곧 (1) 資量·加行의 二位에서 染法의 종자의 세력을 억눌르고 淨法의 종자의 세력을 增長하는 것을 損力益能轉. (2) 通達位에서 分別起의 二障을 끊는 것을 通達轉. (3) 修習位에서 몇 번이고 無分別智를 修習해서 俱生起의 二障을 끊는 것을 修習轉. (4) 究竟位에서 일체의 惑障을 길이 끊고 菩提·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果圓滿轉. (5) 二乘이 人無我의 진리만을 깨달아 煩惱障을 끊는 것을 下劣轉. (6) 보살이 人法二無我의 진리를 깨닫고 生死와 열반 둘을 다 싫어하여 그 어느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므로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을 廣大轉이라 하여 이상의 六轉依를 설하고 있다. 三無性論卷下에서는 (1) 一分轉依(二乘). (2) 具分轉依(初地보살). (3) 有動轉依(七地 이전). (4) 有用轉依(十地이전). (5) 究竟轉依(如來知)의 다섯으로 나누었다.
법상종(法相宗) : 唯識宗 · 應理圓實宗 · 普爲乘敎宗 · 唯識中道宗 · 中道宗이라고도 하며, 이 宗의 所依經典은 解深密經 · 成唯識論 · 瑜伽師地論이다. 佛滅 후 1천년경 북인도 사람인 無着과 世親이 세우고, 중국에서는 인도의 戒賢論師에게 법을 배운 玄奘이 窺基에게 전하다. 窺基는 慈恩寺에서 주석하였으므로 慈恩宗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圓測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玄奘에게 瑜伽論과 唯識論을 배우고 唯識疏抄를 저술하였다. 또한 경덕왕 때에는 眞表律師가 金山寺에서 戒法과 占察法을 수행하고 법상종의 宗旨를 寶宗 · 永深 · 信芳 등에게 전하여 法住寺와 桐華寺에서 크게 성하였다. 이 宗은 우주 만유의 本體보다도, 현상을 자세히 분류 설명하였으므로 법상종이라 하고, 유식종이라 함은 일체 萬有는 오직 識이 변해서 이루어 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불교의 唯識論으로서 萬有는 오로지 아뢰야식으로 緣起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 緣起의 本體인 能變의 처음은 제 8識이요, 2能變은 제 7識, 3能變은 通 6識이라 하고, 이것들은 모두 內心으로 外境을 變現하는 것이므로 三界唯一心과 心外無別法이라 말한다.
萬有를 분류하여 五位百法으로 정하며, 만유의 진정한 理 · 事 · 迷 · 悟를 밝히기 위하여 遍計所執性 · 依他起性 · 圓成實性의 3性을 말한다. 識이 外境을 인식하는 과정에 나아가서는 이것을 4分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萬法唯識의 이치를 깨달아 알게 하는 방법으로 5重唯識觀을 세웠다. 중생의 해탈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중생의 성품에는 선천적으로 菩薩定性 · 緣覺定性 · 聲聞定性 · 三乘不定性 · 無性有情의 5性이 각각 다르므로 영구히 해탈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 宗의 三乘敎만이 옳고, 다른 종파의 一乘敎는 假說이라 하므로 이 宗을 權大乘이라 부른다.
교의(敎義) : 종교에 있어서 공인된 진리로 가르치는 信條. 敎法의 義理. 敎와 義란 뜻. 언어문자로써 말한 敎와 그 안에 포함된 義理를 말함.
수승(殊勝) : 가장 뛰어난 일. 세상의 희유한 일을 수승이라 함.
성유식론(成唯識論) : 범어 Vidyamatrasiddhisas=tra. 10권. 당나라의 현장법사 번역. 법상종의 중요한 책. 世親의 유심 사상의 대표작인 唯識三十頌을 문하의 十大論師가 해석한 10개의 학설이 護法을 정통으로 하고, 다른 이들의 말을 비판하여 종합해서 현경 4(659)년에 번역한 것. 八識을 자세히 말하여 인식의 과정을 명백히 하고, 또 실천적 수행의 五階位를 말하다.
섭대승론(攝大乘論) : 무착보살이 저술한 것으로 세 가지 번역이 있음. 佛陀扇多의 번역으로 2권. 眞諦의 번역으로 3권. 玄奘의 번역으로 3권이 있는데, 앞의 둘을 攝大乘論이라고 하고 뒤의 하나는 攝大乘論本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일종의 불교통일론으로 섭론종의 근본 성전이다. 진제 번역인 梁論에 대하여 大意를 보면, 모두 十章으로 나눈다. 제 1應知依止相에서는 萬有의 근본 識인 阿賴耶識을 설명하고, 제 2應知勝相에서는 三性을, 제 3應知入勝相에서는 만법 唯識의 이치를 말하고, 제 4入因果勝相에서는 보살행의 6바라밀을, 제 5入因果修差別勝相에서는 10종의 階位를 설명하고, 제 6에서 제 8까지는 戒·定 ·慧의 三學을, 제 9에서는 涅槃을, 제 10智差別勝相에서는 佛果의 三身을 설명했다. 요컨대 萬有는 필경에 唯心으로 돌아간다는 理論과 이에 의한 종교적 실천을 말하여, 大乘의 교리가 小乘의 교리보다 수승하다고 주장함. 그 가운데 一論의 요점은 아뢰야식과 三性을 말함. 그러나 阿梨耶를 唯識에서는 妄識이라 한 데 대하여, 이 論에서는 眞妄和合識이라 하고, 일면으로는 차별적 迷妄의 세계를 나타내어 그 妄을 일소하는 곳에 진정한 깨달음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자량위(資量位) : 唯識宗에서 세운 敎義로 보살수행의 階位. 五位 가운데 제1위를 말한다. 곧 보살이 佛位에 이르기까지에는 資糧位·加行位·通達位·修習位·究竟位의 五位가 있는 가운데 제1위이다. 10住·10行·10廻向의 30位에서 初住부터 제10회향의 住心까지를 자량위라 하고, 제10회향의 滿心과 煖位·頂位·忍位·世第一位의 4加行을 수행함을 加行位라 한다. 이것은 佛果에 이르는 資糧이 될 6바라밀 가운데, 福行인 앞의 5바라밀과, 智行인 제6바라밀을 닦아 모우는 位. 또 順解脫分이라고도 하니, 有情들을 위하여 해탈하기를 구하는 位이므로 해탈에 순응하는 因道라는 뜻.
가행위(加行位) : 五位의 하나. 또는 加行道 · 方便道. 十廻向의 열 번째인 法界無盡廻向의 마지막에 참된 唯識性에 머물기 위하여, 다시 煖 · 頂 · 忍 · 世第一의 四善根을 닦는 位. 곧 見道에 들어가기 위하여 바로 진리의 方便加行의 分際를 통달하므로 가행위라 한다.
번뇌장(煩惱障) : 번뇌장은 惑障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 곧 聖道를 방해해서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말함.
① 俱舍論 卷十七, 卷二十五에서는 자주 일어나는(數行의 것으로) 無漏의 慧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여, 慧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煩惱를 煩惱障이라고 하고, 煩惱障을 여의어 慧解脫을 얻어도 滅盡定을 얻는 것을 방해하여 俱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解脫障(定障)이라고 한다. 前者는 染汚無知를, 後者는 不染汚無知를 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大毘婆沙論 卷百四十一에서는, 煩惱障은 染汚無知, 所知障은 不染汚無知라고 하는 것처럼 각각 四正斷의 前二 · 後二로 끊어진다고 한다.
② 成唯識論 卷九에서는, 중생의 身心을 교란시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煩惱를 煩惱障, 業을 일으키어 三界(迷의 세계)에 나게 하는 작용이 없지만, 알아야 할 대상을 덮어서 正智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所知障(智障)이라고 한다. 이 二障은 어떤 것이나 薩迦耶見을 비롯해서 百二十八의 근본번뇌 및 二十의 隨煩惱를 體로 한다. 그 가운데서「실체의 사람, 실체의 중생이 있다」고 하며 나를 집착하는 [我執의] 면을 煩惱障이라고 하며,「사물에는 실체가 있다」고 하여 法을 집착하는 [法執의]면을 所知障이라 한 것으로서, 동일한 번뇌의 二面이다. 그러므로 煩惱障은 我執을 근본으로 하고, 所知障은 法執을 근본으로 한다고 한다. 그 작용의 특징에서 말하면 煩惱障은 열반을, 所知障은 菩提를 장애한다. 곧 煩惱障은 열반을 장애하는 正障이며 所知障은 이 正障에 힘을 주어 장애시키는 兼障이기 때문에 所知障만으로는 열반을 장애하는 능력이 없다. 또 煩惱障을 肋緣으로 하여 分段生死를 받고, 所知障을 肋緣으로 하여 變易生死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二乘은 煩惱障만을 끊은 자리(位)를 理想의 果位로 하지만 보살은 二障을 다 같이 끊어서 佛果를 얻는 것을 理想으로 한다. 그것은 보살에 있어서는, 所知障은 三界의 果報를 이끄는 일은 없지만 곧잘 無漏業을 도와서 變易生死를 받게 하기 때문이다.
③ 大乘義章卷五에서는 五住地의 惑에 대해서 前四를 煩惱障, 최후의 無明住地의 惑을 智障이라 한다 등의 세 주장을 들고 있다.
④ 世親의 金剛般若波羅蜜經論卷上에는 見思의 惑을 煩惱障이라 하고, 이를 끊고 얻는 無諍三昧에 집착하는 것을 三昧障이라 했다.
소지장(所知障) : 唯識宗에서 세운 二障의 하나. 智障이라고도 함. 貪 · 瞋 · 痴 등의 번뇌가 객관(所知)의 진상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되므로 所知障이라 한다.
진여(眞如) :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本體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로 眞如라고 이름한 것이다. 如如 · 如實 · 如 등으로 부르며, 대승에서는 萬有의 本體를 일컫는다.
① 阿含에서는 緣起의 理法이 영원불변의 진리임을 진여라고 한듯하다. 異部宗 輪論에 의하면 化地部에서는 九無爲를 설하는 가운데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 · 道支眞如 · 緣起眞如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善 · 惡 · 無記의 三性이나 八聖道나 緣起의 理法이 진실로 영원불변한 일을 진여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이 人法二無我이며 모든 차별적인 相을 초월해서 절대의 하나인 것을 진여라 이름했으며, 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의 自性으로 삼는다. 佛地經論卷七에는 진여란 모든 현상(諸法)의 實性이라고 하고 그 體는 一味이지만 相을 따라서 종종의 구별이 있으며 일체법과 不一不異로서 그 體를 보고자 하면 사고도 언어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지만 모든 거짓이나 그릇된 견해를 여의고 있다는 점에서 억지로 진여라 이름했다. 또 모든 善이 의지하는 바가 되므로 法界, 損減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實有, 增益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空無, 다만 이것만이 진실이므로 實際, 無分別智의 깨달음이므로 勝義라고 거짓 이름했다고 한다.
진여의 異名으로 大般若經卷三百六十에는 眞如 · 法界 · 法性 · 不虛妄性 · 不變異性 · 平等性 · 離生性 · 法定 · 法住 · 實際 · 虛空界 · 不思議界의 十二名이라 함.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에는, 眞如 · 空性 · 無相 · 實際 · 勝義 · 法界의 六名,
法華玄義卷八下에서는, 實相 · 妙有 · 眞善妙色 · 實際 · 畢竟空 · 如如 · 涅槃 · 虛空 · 佛性 · 如來藏 · 中實理心 · 非有非無中道 · 第一義제 · 微妙寂滅의 14종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一如 · 一如法界 · 一法界 · 眞如實相 · 眞如一實 · 眞實際 · 眞勝義諦등으로도 이름하며 그 모습이 절대평등함을 뜻하며 一相이라고도 한다.
解深密經卷三에는 七眞如를 설하고,
(1) 緣起의 理法을 流轉眞如.
(2) 諸法의 實性을 實相眞如.
(3) 萬法唯識의 理法을 了別眞如.
(4)~(7) 고 · 집 · 멸 · 도의 四諦를 차례로 安立眞如 · 邪行眞如 · 淸淨眞如 · 正行眞如라고 하는데 實相眞如이외의 6종을 진여라고 일컫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 각각의 理法이 그 자체 그대로 영원불변 하므로 진여라고 한다는 설과 그 理法자체를 진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實相眞如의 나타난 모습의 種別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③ 法相宗說. 成唯識論卷九에서는 진여란 허망한 분별법을 여읜 人法二無我의 본성으로 三性 가운데 圓性實性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宗에서는 모든 현상은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진여는 현상을 초월한 絶對靜的한 것으로 그 자체는 결코 현상이 될 수 없는 것(眞如凝然不作諸法)이라고 한다. 또 成唯識論卷十에는 보살은 初地에 이르러서 비로소 진여의 진리를 깨닫고 차례로 十地에 이르기까지 그 깨달음의 내용이 깊어지게 되기 때문에 十眞如의 구별을 세운다. ........
승해(勝解) : 범어 adhimukti의 번역. 解脫이라고도 번역한다.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俱舍宗에서는 十大地法의 하나. 唯識宗에서는 五別境의 하나. 印可(인정하여 옳다고 허락함. 印定·忍可)의 뜻으로, 대상에 대해서 분명히「이것은 사실과 같다」라고 이해해서 단정하는 것. 判斷作用의 一部.
참괴(慚愧) : 慚과 愧의 명칭. 慚은 스스로를 반성하여 자신이 지은 罪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 愧는 남에 대해 또는 하늘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식(識) : 毘闍那 · 毘若南이라 音譯하며, 外境을 識別 · 了別 · 인식하는 작용. 곧 마음의 작용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며, 外境에 대해 內識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外境을 識別하고 了別하는 것은 識의 外境으로서 顯現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위치에 있는 識을 表識 · 記識이라 한다.
① 大乘 · 小乘이 한결같이 六識을 주장한다. 六識이란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6根을 따라서 色 · 聲 · 香 · 味 · 觸 · 法의 6境에 대해 見 · 聞 · 嗅 · 味 · 觸 · 知의 了別작용을 하는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의 여섯가지 心識을 말한다. 이것을 六窓一猿의 비유로서 六識의 體는 하나이지만 그 작용하는 出入門이 여섯이라고 했다. 생각컨대 六識說은 원시적인 뜻을 전하고 있다고 보며, 六識중에서 제 6의 意識을 제 六識이라고도 하며, 후세에 와서 여기에 六識 · 意識 · 分別事識 · 四住識 · 攀緣識 · 巡舊識 · 波浪識 · 人我識 · 煩惱障識 · 分段死識 등 10가지 이름을 붙여 이것을 六識十名이라고 했다. (宗鏡錄)
② 法相宗에서는 6識에 末那識과 阿梨(賴)耶識을 더하여 8識을 주장한다. 8識중 眼識에서 身識까지의 5識을 일괄하여 前五識, 제 6識까지는 前六識 · 제 7末那識까지를 前7識이라 한다. 前7識은 阿賴耶識을 所依로 하고 각각 境을 緣으로 하여 轉起되었다는 뜻에서 七轉識 또는 轉識이라 한다. 또 前六識은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이 현저한 識이므로 了別境識, 제 7末那識은 思量識, 제 8阿賴耶識은 異熟識이라 한다. 護法의 唯識說에서는, 8식중 제 6意識과 제 7末那識은 대상을 〈我다〉〈法이다〉라고 허망하게 집착하는 遍計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六 · 七能遍計라고 한다. 前五識과 제 8阿賴耶識은 我 · 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五 · 八無執이라 한다. 인도의 無相唯識派에서는 八식의 體性이 동일하다 하여 八識體一을 주장하지만 有相唯識派와 法相宗에서 體性이 각기 다르다고 하여서 八識體別의 說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二識 내지 八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고 동시에 轉起한다고 한다. 이것을 八識俱轉하여 小乘에서는 2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
종자(種子) : ① 穀類의 싹이 종자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物 · 心의 모든 존재 현상을 나게 하는 因種을 가리키는 말. 또 種이라고도 하며 곡류등의 종자를 外種 또는 밖의 種子(外種子)라고 하는데 대해, 唯識宗에서는 같은 이치로 우리의 마음의 종자가 아뢰야식 가운데 藏識(감추어져 있음)되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內種 또는 內種子라고 한다. 이 內種子는 生果의 功能(결과를 내는 작용)을 가리키며, 이것은 現行의 諸法(현재 나타나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에 의해서, 흡사 향을 담았던 상자에 향내가 배어서 나는 것처럼 아뢰야식 가운데 熏習되어 있는 일종의 慣習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習氣라고도 한다. 이 種子說은 하나의 비유로 阿含經에 보이며, 部派佛敎 당시에는 化地部에서 窮生死蘊의 識 가운데 物心의 種子가 항상 존재한다는 說을 세운바 있으며, 經量部에서는 色法(물질)과 心法(정신)이 상호 種子로서 다른 것(相體)을 熏附(서로 영향하고 相依함)하여 보존한다고 하여 色心互熏說을 세우기도 했다.
② 唯識宗에서는 種子는 아뢰야식 가운데 藏在해 있다고 하며 그 관계를 成唯識論 卷二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뢰야식은 體, 種子는 用, 혹은 아뢰야식은 果, 種子는 因이라고도 하며 또 그 관계는 不一不異라고 하고, 또 種子는 아뢰야식의 相分[四分→相分(주관적인 心에 인식되는 객관의 형상), 見分(相分을 인식하는 주관의 心작용), 自證分(自體分이라고도 하며 見分과 다음의 證自證分과를 證知하는 인식작용), 證自證分(自證分을 다시 證知하는 인식작용)] 가운데 존재한다고 한다.(단, 이상은 有漏種子에 대한 해석임). .....염정(染淨)→染은 더럽히는 것으로 번뇌. 淨은 번뇌를 떠난 청정한 것. 때로는 善惡과 같은 뜻으로 사용함.
통달위(通達位) : 唯識說에서 말하는 修道 5位중에서 제3. 비로소 無漏智를 얻어 眞如의 理를 體得하는 자리. 初地의 자리. 菩薩의 見道. (八宗網要)
견도(見道) : [修道] · [無學道] 修行의 한 階位. 합하여 三道라고 한다. 見道는 見諦道, 見諦라고도 말하고, 비로소 無漏道를 얻어 四諦(佛敎의 眞理)를 現觀하는(明了하게 본다) 位. 따라서 見道에 도달하기 이전은 凡夫(異生)이고, 見道에 들어간 뒤는 聖者이다. 修道는 見道 뒤에 다시 구체적인 事象에 대처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修鍊 · 修習하는 位. 見道와 修道를 합하여 有學道라고 하며, 이에 대해 無學道는 無學位 · 無學果 · 無學地라고도 하고, 궁극적 최고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이미 배울 것이 없는 位를 말한다. 小乘에서는 三賢 · 四善根 등의 준비적 修行(七方便)을 닦은 사람이 비로소 無漏智를 얻어 見道에 들어간다고 하며, 大乘에서는 初地 入見道라 하여 보살의 初地를 見道, 第二地 이상을 修道, 第十地와 佛果를 無學道라 하고, 密敎에서도 淨菩提心이 처음으로 생기는 자리를 見道라고 한다. 無漏智에서 道理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決斷簡擇한다)을 決擇이라 하며 見道는 決擇의 일부분이므로 決擇分이라 하고, 또 열반의 깨달음 혹은 그에 이르기 위한 聖道는 邪가 아니므로 正性이라고 하지만, 특히 見道를 正性이라 한다. 모든 聖道는 번뇌를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하지만, 특히 見道는 異生(곧 凡夫)의 生을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한다. 따라서 見道를 正性離生 · 正性決定(決定이란 반드시 열반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見道에서 끊는 번뇌를 見道所斷(또는 見道斷, 見所斷)의 번뇌, 약하여 見惑이라고 하며, 修道에서 끊는 번뇌를 修道所斷(또는 修道斷, 修所斷)의 번뇌, 약하여 修惑이라 한다.
① 有部에서는, 見道에서 苦 · 集 · 滅 · 道의 四諦를 現觀하는 無漏智로써 틀림없이 見惑을 끊는다고 한다. 또, 無間道의 智(곧 忍)와 끊은 뒤에 四諦의 진리를 깨닫는 解脫道의 智가 있고, 이것을 觀察의 대상에 따라 八忍八智의 十六心이라 한다. .....
무분별지(無分別智) : 主觀·客觀의 대립을 여의고 주객이 통일된 평등의 경지에서 眞如를 體得한 진실의 지혜. 識別·辯別 이전의 지혜. 槪念的 思惟를 넘어 선 眞觀智.
분별기(分別起) : 번뇌가 일어나는데 대하여, 邪師와 邪敎에 의지하거나, 邪思惟에 의지하여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에 이 번뇌를 분별기라 함.
이장(二障) : 惑障을 두 가지로 나누 것. ① 俱舍論에는 번뇌장과 解脫障. ② 唯識論에는 번뇌장과 所知障. ③ 圓覺經에는 理障과 事障. ④ 金剛經論에는 번뇌장과 三昧障. ⑤ 內障과 外障.
증득(證得) : 바른 지혜로써 진리를 깨달아 얻는 것을 말함.
수도위(修道位) : 三道의 하나. 見道位에서 온갖 知的인 迷惑을 벗어나고, 다음에 情 · 意로부터 일어나는 온갖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려는 수양을 쌓는 기간. 소승에서는 四向 四果 중에서 一來向 · 一來果 · 不還向 · 不還果 · 阿羅漢向의 기간. 대승에서는 初地에서 第十地까지의 기간을 말함.
대승보살십지(大乘菩薩十地) : 華嚴 · 仁王經 등 대승경에서 대승보살의 十地를 말한 것.
(1) 歡喜地. 보살이 되어 이미 아승지겁의 행이 원만하고 처음으로 聖性을 얻어 見惑을 파하며 二空의 理의 1分을 증득하여, 성인의 지위에 올라 다시는 물러나지 않고, 自利利他의 행을 이루어서 마음에 기뻐함이 많다는 뜻으로 환희지라 한다.
(2) 離垢地. 戒바라밀을 성취하여 修惑을 끊고 毁犯의 때를 씻어 마음을 청정하게 하므로 이구지라 한다.
(3) 發光地. 인욕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어 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는 지위.
(4) 焰慧地. 정진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어 지혜가 더욱 치성하는 지위.
(5) 極難勝地. 선정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고 眞智와 俗智를 조화하는 지위.
(6) 現前地. 지혜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고 最勝智를 내어 無爲眞如의 모양이 나타나는 지위.
(7) 遠行地. 방편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고 대비심을 일으켜 二乘의 깨달음을 초월하여 광대무변한 진리세계에 이르는 지위.
(8) 不動地. 願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고 이미 全眞如를 얻었으므로, 다시 동요되지 않는 지위.
(9) 善慧地. 力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어 부처님의 十力을 얻고, 機類에 대하여 교화의 可否를 알아 공교하게 설법하는 지위.
(10) 法雲池. 智바라밀을 성취하여 수혹을 끊고 끝없는 공덕을 구비하고서 사람에 대하여 이익되는 일을 행하여 大慈雲이 되는 지위를 말한다.
구생기(俱生起) : 약하여 俱生·分別이라고도 對稱된다. 번뇌가 일어나는 두 가지 형태로서, 그것에 의해 번뇌는 둘로 大別된다. 俱生起란「몸이 生함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선천적 번뇌를 말하며, 分別起란 邪師·邪敎 등에 의한 외부로부터의 세력이나 스스로의 부당한 추리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후천적 번뇌를 말한다. 후자는 성질이 강렬하지만 도리어 끊기가 쉽고, 전자는 미세하지만 매우 끊기가 어려우며, 分別起의 惑은 佛道실천의 第一단계인 見道位에서 끊어지고(따라서 見惑이며), 俱生起의 惑은 第二단계인 修道位에서 점차로 끊어진다(따라서 修惑이다.)고 한다.
구경위(究竟位) : 大乘 五位의 하나.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없애고 진리를 증득하여 최종의 佛果에 도달한 지위. 또는 究竟地·究竟道라고 한다.
불과(佛果) : 修行한 因으로 하여 極果에 이르는 부처님의 지위.
이승위(二乘位) : 성문과 연각. 성문승(聲聞乘)→聲聞 지위에 있는 이가 證果에 이르기 위하여 닦는 교법. 곧 苦·集·滅·道의 四諦法. 뒤에는 변해져서 성문의 機類(根機의 종류란 뜻임. 중생의 根機, 곧 불교의 높은 理想을 실현하여 부처님이나 聖者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여러 가지가 있음을 말한다)도 성문승이라 하다. .....연각승(緣覺乘)→12因緣을 觀하여 眞空의 원리를 깨닫는 緣覺의 法. 또 그런 사람. 乘은 탈 것으로 여기서 敎法이란 뜻. 보살·獨覺과 함께 三乘의 하나. 또 獨覺과 함께 二乘의 하나.
자리(自利) : 自利利他·自益益他·自利利人·自行化他라고 하는 말과 함께 쓴다. 自利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니 노력하고 정진하여 修道의 功을 쌓는 것. 그래서 그로부터 생기는 福樂과 지혜 등의 좋은 果德의 이익을 자기 자신만이 受取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利他는 다른 이를 이익하게 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뿐만 아니라 모든 有情(衆生)의 구제를 위해 닦는 공덕을 말한다. 이 兩者를 합해서 二利라 하며 兩者를 완전히 兩立시켜서 쌍으로 이루는 거룩한 상태가 대승불교에서 목표하는 佛의 세계로서, 이것을 自利利他의 圓滿이라고 한다(이에 대해서 小乘은 自利的인 수행에만 국한한다고 함). 曇鸞의 往生論註卷下에는 利他와 他利란 말을 아주 구별해서 利他는 佛의 경지에서 말하는 경우이고 他利란 衆生의 경지에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생공(生空) : 人空 또는 我空이라고도 함. 常一主宰의 我라고 고집하는 假我에의 집착을 일컫는 말.
대승위(大乘位) : ① 대승에서 불도를 수행하는데 5종의 階位를 세운 것.
(1) 資量位. 불도에 나아갈 양식을 저축하는 자리.
(2) 加行位. 다음 位에 나아가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하는 자리.
(3) 通達位. 空하여 我가 없는 진리를 통달한 자리.
(4) 修習位. 진리를 본 뒤에 다시 닦아서 장애를 없애는 자리.
(5) 究竟位. 번뇌를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佛果에 이른 자리.
② 대승에서 有爲·無爲의 온갖 법을 5종으로 분류한 것.
(1) 心法. 사물을 인식하는 마음.
(2) 心所法. 心法에 따라 일어나는 것.
(3) 色法. 質碍하는 성품이 있는 물질.
(4) 不相應法. 心法과 色法에 따르지 않는, 물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것.
(5) 無爲法. 因果관계를 여의어 常住不變하는 것.
이타(利他) : 다른 이에게 공덕과 이익을 베풀어 주며 중생을 구제하는 것.
보리(菩提) : 범어 bodhi의 음역. 覺 · 智 · 知 · 道라고 번역한다. 佛 · 연각 · 성문이 각각 그 果에 따라 얻는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다. 이 세 가지 보리 가운데 佛陀의 보리가 더할나위 없는 최상최고의 궁극적인 것이므로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부르며, 번역하여 無上正等正覺 · 無上菩提라고 한다.
智度論卷五十三에는 불타의 보리에 대해서,
(1) 보살이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發心하는 것을 그 마음은 菩提의 果에 이르는 因이라는 뜻으로 發心菩提,
(2) 번뇌를 누르고 모든 波羅蜜을 행하는 것을 伏心菩提,
(3) 諸法實相을 깨달은 반야바라밀의 相을 明心菩提,
(4) 반야바라밀에 의한 방편력을 얻었지만 반야바라밀에 잡히지 않고 번뇌를 끊어서 一切智에 이르는 것을 出道菩提,
(5) 佛果의 覺智를 無上菩提라고 한다. 이를 합해 五種菩提라 한다.
또 법화경論卷下에서는 佛의 法 · 報 · 應의 三身에 대해 法佛菩提(法身菩提) · 報佛菩提(報身菩提) · 應佛菩提(應身菩提)의 三種菩提를 주장하고 있다.
大乘義章十八에서는 無上菩提에는 方便菩提와 性淨菩提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천태종에서는 十種菩提의 三法 가운데 하나로 三菩提를 들어,
(1) 實相의 理를 깨달은 것을 眞性菩提(實相菩提 · 無上菩提).
(2) 그 理에 계합한 지혜를 깨닫는 것을 實智菩提(淸淨菩提).
(3) 자유자재로 중생을 교화하는 기능을 깨닫는 것을 方便菩提(究竟菩提)라 하고, 이것은 법신 · 반야 · 해탈의 三德과 별개가 아니며, 三菩提가 곧 三軌라 했다.
淨土論에서는,
(1) 自我에 집착하여 (2) 온갖 중생을 안온하게 해 주려고 하지 않으며, (3) 자기에게만 봉사한다고 하는, 菩提에 위배되는 三種菩提門相違法을 멀리 여의는 것을 三遠離心 · 三種離菩提障, 또,
(1) 자기만을 위한 樂을 구하지 않으며(無染淸淨心)
(2) 중생의 苦를 없애 안온하게 해 주고(安淸淨心)
(3) 중생을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해서 영원한 樂을 준다(樂淸淨心)고 하는, 菩提를 따르는 三種隨順菩提門法의 心을 三淸淨心이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지혜 · 자비 · 방편의 三門에 의해 여의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無上菩提를 구하는 중생을 菩提薩埵, 略해서 보살, 無上菩提를 구하는 마음을 無上菩提心 · 無上道意 혹은 菩提心이라고 한다.
이공(二空) : ① 我空(人空)과 法空의 2空. 我空이란 중생은 5蘊이 화합한 것이므로 我라고 할 實體가 없다는 것이며, 法空이란 5蘊의 自性도 空하다는 것을 뜻함.
② 但空과 不但空의 2空. 天台家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四敎에서는 각각 空理를 說하여 藏通二敎의 空을 但空이라 하고, 別圓二敎의 공을 不但空이라 함.
③ 性空과 相空의 2空. 性空이란 法에 實性이 없는 것이며, 相空이란 法에 이미 實性이 없고 다만 假名字의 相이 있을 뿐이며, 이 相도 또한 實이 아니므로 相空이라 한다.
열반(涅槃) : 滅 · 寂滅 · 滅度 · 寂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또 般涅槃(般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大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迷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①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의 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餘」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常 · 樂 · 我 · 淨의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또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常 · 恒 · 安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의 8味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常 · 恒은 항상, 安 · 快樂은 樂으로, 不老 · 不死는 我에, 淸淨 · 無垢는 淨에 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相에 있어서는 眞如寂滅의 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과 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迷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또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迷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의 二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緣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의 3열반을 세운다.
③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敎에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의 相)을 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④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薪은 佛身 또는 機緣, 火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또 影像을 涅槃像, 그날(2월 15일)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死를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 등이라고 한다.
돈증(頓證) : 많은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 바로 깨닫는 것.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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