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四土)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① 천태종에서 말하는 四土.
(1) 凡聖同居土. 三界 안에 있는 범부·聖者가 함께 섞여 사는 國土로 同居土, 또는 染淨國이라고도 한다. 이 중에 극락세계와 같은 것은 同居淨土, 사바세계와 같은 곳은 同居穢土라고 한다.
(2) 方便有餘土. 方便道인 空觀과 假觀을 닦음으로 見惑과 思惑을 끊은 이가 나는 곳으로 方便土, 또는 有餘土라고도 한다. 이곳은 아직 無明煩惱가 남아 있는 國土이다.
(3) 實報無障礙土. 眞實法인 中道觀으로 無明을 끊고서 얻는 國土로 實報土 또는 果報土라고도 한다. 別敎의 十地이상, 圓敎의 十住와 十行·十廻向·十地·等覺 보살의 國土로 他受用報身을 敎主로 한다.
(4) 常寂光土. 法身如來와 더불어 自受用報身의 國土이다.
② 法性土·自受用土·他受用土·變化土.
③ 法身土·報身土·應身土·化身土.
참고
천태종(天台宗) : 또는 天台法華宗 ∙ 天台法華圓宗 ∙ 台宗 ∙ 台家라고도 함. 중국 隋나라 때 천태산에서 天台 智顗를 開祖로 하여 창립한 대승불교의 한 파.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하며 禪定과 지혜의 調和를 宗義로 함. 智顗는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불교를 통일하고, 적극적으로 諸法實相論을 주창하며 심오한 불교학의 체계를 세워「法華文句」∙「法華玄義」∙「摩訶止觀」등 三大部를 지어서 한 宗을 이룩하였다. 그 뒤에 章安 ∙ 智威 ∙ 慧威 ∙ 玄朗 ∙ 湛然 등이 계승하고, 荊溪 湛然은 三大部의 주석을 지어 그 때에 융성하던 법상종 ∙ 화엄종 ∙ 선종 등에 맞서 천태종의 眞面目을 크게 선양하였다. 그 뒤에 道邃 ∙ 廣修 ∙ 物外 ∙ 元琇 ∙ 淸竦 ∙ 義寂 등이 전해오다가, 五代의 전란에 宗典이 흩어지고, 思潮가 떨치지 못하였다. 義寂은 그 宗典을 고려와 일본에 전하여 다시 宗義의 연구가 성행하였고, 송나라 때에는 山家 ∙ 山外의 두 파로 대립하게 되었다. 山家派는 四明知禮가 으뜸이었는데 그의 학풍은 천태종의 근본 사상인 物 ∙ 心을 같이 취급하는 사상을 굳게 지키고, 또 현재의 자기를 여의지 않고 전체를 해결하는데 치중하였다. 그리고 源淸 ∙ 宗昱 ∙ 智圓 ∙ 從義 ∙ 仁岳 등이 영도한 山外派의 학풍은 緣起論에 반하여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데 있었다. 중국에서는 明나라 때의 智旭이 종풍을 빛낸 것이 끝이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玄光 ∙ 法融, 고구려의 波若, 고려의 諦觀 등이 천태종을 깊이 연구하였다. 또 義天은 송나라에 유학하여 宗旨를 배워 돌아온 후 개성에 국청사를 짓고, 천태종을 설립하였다. 그 門下에는 德麟 ∙ 翼宗 ∙ 景蘭 ∙ 連妙 등이 있었다. 천태종은 법화경 ∙ 대열반경 ∙ 대품반야경 ∙ 화엄경 ∙ 금광명경 ∙ 유마경 ∙ 지도론 ∙ 중론 ∙ 법화론 등을 所依의 경전으로 삼고, 實相論의 극치를 주장하였다.
범성(凡聖) : 범부와 聖者. 성자는 성인이라고도 하고, 見道(비로소 無漏의 지혜가 열려서 四諦의 진리를 보는 지위)이상 곧 소승에서는 預流向이상 대승에서는 初地이상을 말한다. 그 이하의 사람은 범부라고 한다. 범부나 성자도 본래적인 절대의 모습으로는 평등하여, 하등의 차별도 없는 것을 凡聖一如, 凡聖不二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十界중 지옥·餓鬼·畜生·阿修羅·인간·天上의 六界를 六凡이라 하고, 聲聞·緣覺·보살·불의 四界를 四聖이라고 하며 합해서 六凡四聖이라고 한다. 전자는 有爲의 과보, 후자는 無爲의 聖果이기 때문이다.
삼계(三界) : 중생이 생사에 流轉하는 迷의 세계. 곧 有情의 경계를 셋으로 나눈 것. 生死輪廻하는 迷惑의 生存界(즉 有)의 분류이므로 三有生死라고도 하고 단순이 三有라고도 한다. 즉 欲界(欲有) · 色界(色有) · 無色界(無色有)의 셋을 말한다. 그 중에서 색계 · 무색계는 욕계보다 위에 있으므로 上二界 또는 上界라 한다(단 欲界 중의 六欲天까지도 포함한 天上界 전체를 가리켜서 上界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 경우 인간계를 下界라고도 한다). 三界는 끝이 없어 大海와 같은 迷 · 苦의 영역이므로, 苦界 · 苦海라고 한다.
삼계는 다시 여러 세계로 각각 세분되며 그 가운데 욕계는 지옥 · 아귀 · 축생의 3惡趣(아수라를 더한 4惡趣)와 天 · 人의 五(六)趣로 분류된다. 欲界의 하늘은 여섯이 있으므로 六欲天이라 한다. 색계는 初禪天에서 제 3禪天까지는 각각 3天이 있고 제四禪天은 九天(無想天을 제하고 八天이라고도 한다)이므로 色界 18天이라고 한다. 그 제四禪天 가운데 제5淨居天을 하나로 하고, 거기에 4洲의 4, 4惡趣(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의 4, 6欲天의 6, 梵天의 1, 無想天의 1, 四禪天의 4, 四無色天의 4를 합하여 二十五有라 한다. 여기에 淨居天을 5天(無煩 · 無熱 · 善現 · 善見 · 色究竟)으로 나누어 二十九有라고도 한다. 또한 欲界를 합하여 1地, 色界는 初禪天에서 제4禪天까지 4地, 無色界는 空無邊處天에서 非想非非想處天까지 4地로 하여 이것을 三界 九地라 한다.
국토(國土) : 범어 ksetra의 번역. 토지·영역·생물이 거주하는 장소를 말함. 음역하여 刹多羅 혹은 단순히 刹이라고도 하고 나아가서는 漢譯의 「土」와 梵漢重複하여 刹土라고도 한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계시는 안락한 理想世界. .....극락(極樂)→범어 sukhavati. 須訶摩提·須摩提·須訶提·蘇訶嚩帝라 音譯하고, 安養·安樂·安穩·妙樂·一切樂·樂無量·樂有라 번역한다. 극락세계·극락정토·극락국토라고도 부른다. 이 娑婆世界에서 西方으로 十萬億 佛土를 지나간 곳에 있다는 아미타불의 淨土. 아미타불의 前身인 法藏比丘의 理想을 실현한 국토이다. 아미타불께서 지금도 계시어 항상 說法하며, 모든 일이 具足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전혀 없는 自由롭고 安樂한 理想鄕이다.
동거토(同居土) : 四土의 하나. 凡聖同居土의 약칭.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三界 안에 있는 세계를 말한다. 여기에는 同居穢土(사바세계와 같은 국토)와 同居淨土(서방 극락세계와 같은 국토)의 두 종류가 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범어 saha의 음역으로 沙訶 · 娑呵 · 索訶 · 沙桴라고도 쓰며, 忍 · 堪忍(감인) · 能忍이라 번역한다. 자세히는 沙訶樓陀 곧娑婆世界를 말하고 또 忍土 · 忍界 · 堪忍土라고도 한다. 석존이 나신 이 세상. 곧 이 땅의 중생은 여러 가지 번뇌를 참고 나가야 하고 또 聖者들은 여기서 피곤함을 참고 교화를 해야 하므로 이 세상을「堪忍」이라 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閻浮提(염부제)의 뜻으로 썼지만 뒤에는 석가불의 敎化가 삼천대천세계에 미친다고 생각하여 백억의 수미산세계를 총칭해서 娑婆라 하며, 따라서 석존은 娑婆의 本師라 한다. 또 梵天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여 梵天을 娑婆王 · 忍土王이라고도 한다. 또 娑婆를 雜會 · 雜雜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娑婆의 범어가 saha라고 보아 많은 중생이 雜居하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방편도(方便道) : 수단방법이라는 뜻. 지혜(般若)와 방편과는 본체는 하나이지만, 지혜가 금이라면 방편은 그 금으로 만들어진 각종의 금세공과 같은 관계에 있다고 일컬어짐.
권실(權實) : 權敎와 實敎란 뜻. 權은 중생의 근기에 알맞도록 假說한 방편을 말하며, 實은 수단이 아니고 假說이 아닌 究竟 불변하는 진실을 뜻한다. 그러므로 여래성불의 본체는 實智에 있으며, 일대에 걸쳐 중생을 교화한 것은 權智에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의 관계는 서로 상대되는 개념으로 權敎 · 實敎, 權智 · 實智, 權境 · 實境 등이라 한다. 또한 體 · 用 · 理 · 事의 관계와 같아, 사물의 차별상을 인식하는 것을 權智라 하며, 그 실상의 이치에 통달한 것을 實智라 하기도 한다. 그 權 · 實의 판단은 종파에 따라 달라, 聲聞 · 緣覺 · 보살의 三乘과 부처님의 一乘을 각각 權敎와 實敎에, 또는 實敎와 權敎에 해당시키고 있다. 그러나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에 근거하여 三乘은 인간의 이해능력에 따른 방편적 가르침이므로 權敎이며, 一乘이야말로 진실한 대승 즉 實敎라 한다. 그러나 三乘의 權敎와 一乘의 實敎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여 權敎가 實敎라고 하는 것은 權實不二의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공관(空觀) :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리를 觀想하는 수행법. 모든 존재를 空(실체가 없음)으로 觀하는 입장. 모든 사물은 다 空하다고 하는 도리를 깨닫기 위하여 수행하는 觀法. 모든 사물은 因緣所生(원인과 조건에 의해 生起함)이기 때문에 그 실체는 있을 수 없고, 空寂無相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가관(假觀) : 三觀의 하나. 만유의 모든 법은 공한 것이어서 하나도 실재한 것이 없으나, 그 차별한 모양이 분명한 것은 대개 假의 존재라고 觀한다.
견혹(見惑) : 惑은 마음의 迷惑, 곧 번뇌의 별명이며, 또한 見惑이란 것은 見道에 의해 消滅되는 惑이란 뜻이고, 修惑(思惑이라고도 한다)은 修道에 의해 消滅해 없어지는 惑이다. 俱舍宗에서는 四諦의 진리(즉, 佛敎의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眞理를 모르는 惑을 見惑, 現象的인 사물에 집착하고 迷한 迷事의 惑을 修惑이라 했으며, 唯識宗에서는 邪道의 이단자가 邪敎 등의 誘導에 의해, 또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 일으키는 후천적인 번뇌(分別起)를 見惑, 태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생기는 선천적인 번뇌(俱生起)를 修惑이라 한다고 했다. 또한 天台宗에서는 見 · 思의 二惑은 空觀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이므로 塵沙惑 · 無明惑과 구별했으며 합해서 三惑이라 했다. 그 가운데 見 · 思의 惑은 모두 三界안의 사물에 의해 상대적으로 일어나고, 三界의 生死(즉, 迷的 生存)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界內의 惑이라 했고, 三乘이 공통으로 끊지 않으면 안되는 惑이므로 通惑이라 한다.
① 俱舍宗에서는 見惑에 八十八이 있다고 하여 見惑 八十八使(使 : 번뇌의 다른 이름)라 한다. 즉, 見道함으로 없어지는 근본번뇌는, 五利使(身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와 五鈍使(貪 · 瞋 · 癡 · 慢 · 疑)이지만, 이것을 각각 四諦에 맞춰, 三界에 해당시킬 때 欲界에 三十二, 色界 · 無色界에 各 二十八이 되므로 합하여 八十八이 된다. 또한 修惑에 八十一이 있다고 하여, 修惑 八十一品이라 했으니, 곧 修道에 의해 없어질 근본번뇌로, 欲界에서는 貪 · 瞋 · 癡 · 慢, 色界 · 無色界에서는 각각 貪 · 癡 · 慢의 十種이지만 이것들을 각각 일괄하여, 九地에 配對하고, 다시 각각 번뇌의 강약에 따라 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九種으로 나누어 八十一品으로 한 것이다. 見惑의 八十八使와 修惑의 十種을 합하여 九十八隨眠이라 한다.
② 唯識宗에서는 見惑을 百十二, 修惑을 十六으로 나누고 합하여 百二十八의 근본번뇌를 세운다.
사혹(思惑) : 修惑이라고도 하며, 事物의 차별적인 眞相을 알지 못하므로 일어나는 번뇌.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 : 四土의 하나. 方便土 또는 有餘土라고도 한다. 聲聞이나 緣覺으로 果를 얻은 이나, 10地 以前의 보살들이 가서 태어나는 三界 밖의 淨土이다. 이들은 모두 方便으로 空觀을 닦아서 見惑과 思惑을 끊었으나, 아직 中道觀을 닦지 못하였으므로 無明의 번뇌를 끝까지 끊지 못했기 때문에 그 國土를 방편유여토라 함.
무명(無明) : 범어 avidya의 번역.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不如實智見을 말함. 곧 진리에 어두워서 (迷) 사물에 통달치 못하고 사물과 현상이나 도리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不達不解不了) 정신상태로 愚癡를 그 내용으로 하며, 十二緣起의 第一支가 無明支이다. 또 俱舍宗이나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心所(마음의 작용)의 하나로 하는 癡라 한다.
① 十二緣起의 無明支를 해석하는데 阿含經에서는 佛敎의 진리(四諦)에 대한 無智라 하고 渴愛와 表裏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有部에서는 十二緣起를 三世兩重의 因果로 說한 것으로 보고 無明을 과거의 煩惱의 位에 있어서의 五蘊을 가리킨다고 하며, 모든 煩惱중에 이 無明의 작용이 가장 무겁고 돋보임으로 無明이라고 이름하였다. 唯識宗에서는 二世一重의 因果로 해석하고 無明과 行과 識 등의 五果의 種子를 끌어 들이는 能引支로 보고, 그 가운데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癡로서 善惡의 業을 일으키는 것을 無明이라 한다고 했다.
② 有部나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相應無明과 不共無明의 두 無明으로 나눈다. 前者를 貪 등의 根本煩惱와 相應하여 같이 일어나는 것, 또 後者는 相應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不共無明은 홀로 일어남으로 獨頭無明이라고 하는데, 唯識宗에서는 不共無明을 다시 恒行不共無明과 獨行不共無明으로 나눈다. 前者는 第七 末那識과 相應하는 無明으로 貪 등의 根本煩惱와 相應하여 일어나나 모든 凡夫의 마음속에 늘 쉬지 않고 나타나는 作用이란 점에서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無明과 다르기 때문에 不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後者는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無明으로 다른 근본번뇌와 상응하지 않고 홀로 일어남으로 獨行不共이라고 일컫는다. 이 獨行不共無明은 隨煩惱와 함께 일어나지 않고 홀로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다시 主獨行無明과 無主獨行無明으로 나눈다. 또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種子와 現行으로 나누고 늘 衆生을 따라 다니며 第八阿賴耶識 속에 숨어 잠자고 있는 無明의 種子를 隨眠無明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표면에 나타나 現在意識으로 작용하고 있는 無明의 現行을 衆生에 붙어서 衆生을 얽어 生死(迷의 世界)에 묶어 놓는다는 의미에서 纒無明(전무명)이라 한다. 이 纒無明에는 相應하는 것과 不共이 있어서 隨眠·纒·相應·不共의 四種이 있게 되므로 이것을 四種無明(四無明)이라 부른다. 또 根本과 枝末과 共과 不共과 相應과 不相應, 迷理와 迷事, 獨頭와 俱行, 覆業과 發業과 種子子時와 行業果와 惑의 15種의 無明으로 나눌 때도 있다.
③ 勝鬘經에서는 見惑 및 三界의 修惑인 貪 등과 相應하는 相應無明을 四住地(見一處住地·欲愛住地· 色愛住地·有愛住地의 넷으로 처음의 一은 見惑, 뒤의 三은 三界의 修惑을 의미한다)의 惑이라고 부른다. 獨行不共의 無明을 無始無明住地의 惑이라 하고(합하여 五住地의 惑) 이 無明住地는 모두 번뇌가 일어나는 根本이며 오직 如來의 菩提智만이 이것을 끊을 수 있다고 한다.
④ 起信論에서는, 無明을 不覺이라고 하고 이 不覺을 根本無明과 枝末無明의 두 無明으로 나눈다. 根本無明은 根本不覺·無始無明·元品無明·忽然念起無明이라고도 한다. 또 元初一念이라고도 한다. 곧 眞如平等의 眞理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忽然히 차별·대립의 念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그 元初라고 하는 것은 모든 煩惱의 元始이고 迷妄의 시작이므로 다른 煩惱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忽然」이라고 한다. 지극히 微細하므로 心王(마음)과 心所(마음의 作用)를 구별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것은 즉 無始無明住地의 惑이 아닐 수 없다고 보인다. 枝末無明은 枝末不覺이라고도 불리우며 根本無明에 의하여 일어난 末稍的 染汚心으로 三世微麤의 惑業이다.
⑤ 天台宗에서는 空·假·中의 三觀에 의하여 각기 見思·塵沙·無明의 三惑을 끊는다고 한다. 無明과 非有非空의 진리에 迷惑되어 中道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無明을 끊음에 있어서는, 別敎에서는 十廻向位에서 항복하여, 初地이상의 12階位에서 12品의 無明(모두 12품의 무명이 있다고 한다)을 다 끊어 마친다고 한다. 이 경우 十廻向의 最後의 第十廻向에서 처음의 無明을 끊고 初地에 들어가지만 이 처음의 無明을 또 三品으로 나누어 끊으므로 이것을 三品無明이라고도 한다. 圓敎에서는 初地 이상의 42階位에서 42품의 無明(모두 42品의 無明이 있다 한다)을 끊어 마치는데, 이 경우 제51位인 等覺의 最後心에 의해 妙覺智 또는 佛智가 나타나고 이에 의해 끊어지는 最後의 無明을 元品無明·無始無明·最後品無明이라 한다. 다만 이것은 일반적인 說로서 실은 圓敎에서는 三觀에는 순서와 차례를 세우지 않고 一心을 가지고 觀함으로 三惑은 동체로 동시에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도관(中道觀) : 天台三觀의 하나. 中道諦를 觀함으로써 無明惑을 끊는 것. 唯識宗에서는 唯識을, 三論宗은 八不을, 天台는 實相을, 華嚴은 法界를 中道라 하는데 이 中道를 體證하기 위해 닦는 觀行을 中道觀이라 한다.
실보토(實報土) : 천태종에서 말하는 4종 佛土 가운데 제3. 實報無障礙土의 약칭으로 中道의 진리를 증득한 이가 가서 태어나는 淨土를 말함.
별교(別敎) : 天台宗에서 말하는 化法 4敎의 하나. 근기가 둔한 중생들의 所見으로 보는 萬有는 事方面에서는 차별이 있지만, 理 방면으로 보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므로 이 迷見을 벗어나서 평등한 이치를 깨달으라고 가르치신 敎法.
십지(十地) : 地는 범어 bhumi의 번역으로, 住處, 혹은 住持, 生成의 뜻.
그 자리(住)를 사는 집으로 하고, 또 그 자리에 있어서의 法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것에 의해서, 果를 낳게 됨을 말한다.
① 乾慧등의 十地. 大品般若經 권6, 권17 등에 說해 있고 三乘에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三乘共의 十地, 共地라 하고, 천태종에서는 通敎의 十地라고 한다. 대품반야경 권六에는, 乾慧 내지 佛의 十地에 대해, 보살은 方便力에 의해서 六波羅蜜을 행하고, 또 四念處 내지 十八不共法을 차례로 행해서, 前九地를 지나 佛地에 이른다고 하여, 이 十地는 보살이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서, 여기서 말하는 佛地라 함은 佛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보살이 佛과 같이 十八不共法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또 智度論 권75에는, 이 十地를 각기 三乘의 階位에 배당하고 또 智顗의 法華玄義 권四下, 摩訶止觀 권六上에도 이 뜻을 받아서 해석하고 있다.
거기에 의하면,
(1) 乾慧地(過滅淨地 · 寂然雜見現入地 · 超淨觀地 · 見淨地 · 淨觀地). 乾慧라 함은 진리를 觀하려고 하는 지혜는 있더라도 아직 禪定의 물에 윤택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며, 이 자리는 聲聞의 三賢位, 보살의 初發心에서부터 順忍을 얻기 前까지의 位에 해당한다.
(2) 性地(種性地 · 種地). 聲聞의 四善根位, 보살의 順忍을 얻은 位로서, 諸法實相을 愛着하지만 邪見을 일으키지 않고, 지혜와 禪定이 수반하는 경지이다.
(3) 八人地(第八地 · 八地). 人은 忍의 뜻으로 聲聞의 見道十五心(八忍七智)의 須陀洹向, 보살의 無生法忍에 해당한다.
(4) 見地(具見地). 聲聞의 四果중의 初果 須陀洹果. 보살의 阿鞞跋致(不退轉)의 位에 해당함.
(5) 薄地(柔軟地 · 微欲地). 聲聞은 欲界九種의 번뇌가 1分, 끊어진 정도로, 須陀洹果 혹은 斯陀含果, 또 보살이 모든 번뇌를 끊어서 餘氣가 엷어(薄)진 정도로, 阿鞞跋致 이후 아직 成佛 못한 사이의 位이다.
(6) 離欲地(離貪地 · 滅婬怒癡地). 聲聞은 欲界의 번뇌가 없어진 位로서 阿那含果, 보살은 욕심을 여의어서 五神通을 얻은 位이다.
(7) 已作地(所作辨地 · 已辨地). 聲聞은 盡智 · 無生智를 얻은 阿羅漢果. 보살은 佛地를 성취한 位이다.
(8) 辟支佛地. 因緣의 法을 觀하여 成道한 것. 緣覺이라고도 한다.
(9) 菩薩地. 앞에 말한 乾慧地에서 離欲地까지를 가리키고, 혹은 後述하는 歡喜地에서 法雲地까지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며, 初發心에서 金剛三昧까지, 곧 보살로서의 맨 처음에서 成道의 直前까지의 자리를 말하다고도 풀이한다.
(10) 佛地. 一切種智 등의 諸佛의 法이 완전히 구비한 자리. 智度論 권75에는 이 三乘共位의 보살이 無漏智에 의해서 惑을 다 없애고 깨달음을 여는데 대하여, 燈心은 初焰에 타거나 後焰에 타거나 정해지지 않은 것과 같이, 十地의 어디서 斷惑하더라도 固定적으로 정하여지지 않고, 十地가 다 서로 도와서 佛果에 이르게 한다고 說하고, 이 비유를 燋炷의 十地라 한다. .......
원교(圓敎) : 원만하고 완전한 敎의 뜻. 舊譯 華嚴經卷五十五에는 善伏童子에게 圓滿因緣修多羅를 說했다고 했다. 중국에서 모든 경전의 내용을 體系化해서 비판분류하는데(敎相判釋), 究極的인 敎를 가끔 圓敎라고 부른다.
① 北魏의 慧光은 漸 · 頓 · 圓의 三敎로 나누어 華嚴經을 圓敎로 했다.
② 隋의 智顗가 나눈 五時八敎의 敎判에서는, 化法四敎를 三藏敎 · 通敎 · 別敎 · 圓敎로 하고, 圓은 不偏의 뜻이라고 했다. 또 圓敎는 華嚴 · 方等 · 般若의 說法에 있어서도 나타나 있지만 그것은 未開顯의 圓이고 순수한 圓敎가 아니며, 순전히 圓敎만을 說한 法華가 오직 開顯의 圓敎로서 今圓이라고 한데 대해서 그것을 昔圓이라고 했다.
③ 唐의 法藏은, 小乘敎 · 始敎 · 終敎 · 頓敎 · 圓敎의 五敎判을 說하고, 華嚴經을 제5의 圓敎라 했다. 圓敎는 곧 一乘이기 때문에 同敎一乘도 別敎一乘도 함께 圓敎이긴 하지만, 그러나 別敎一乘은 모든 經을 넘어선 無盡의 佛法이기 때문에 특히 別敎一乘만을 圓敎라고 했다.
④ 唐의 元政은 眞言密敎를 가지고 一大圓敎라고 하였다.
타수용신(他受用身) : 四身의 하나. 다른 이를 교화하기 위하여 利他하는 편에서 활동하는 佛身. 自證하여 얻은 法樂을 자기가 수용하는 것을 自受用身이라 함에 대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그 법락을 수용케 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佛身을 타수용신이라 한다. 부처님의 3身중 報身을 자수용신·타수용신으로 나눈 것. 학파에 따라서 조금씩 설명이 다르다. 이 타수용신은 初地 이상의 聖人을 교화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佛身이라 한다.
보살계위(菩薩階位) :
십신위(十信位) : 보살의 修行階位 52位 가운데 처음의 十信位를 말함. 불법의 진리를 믿어 의심이 없는 지위. 信心·念心·精進心·慧心·定心·不退心·護法心·廻向心·戒心·願心.
십주(十住) : 보살의 수행 階位 52位중 제11位에서 제20位까지를 일컬음. 10信位를 지나서 眞諦의 경지, 곧 佛地에 安住할 수 있게 됐다는 뜻으로 十住라 한다.
(1) 發心住. 從假入空觀의 觀法을 완성하여 眞無漏智에 들어가며, 眞方便으로 十住心을 일으키며, 十信의 用을 涉하는 圓成一心의 位를 말한다.
(2) 治地住. 항상 空觀을 닦아서 마음이 밝고 깨끗하기가 마치 유리 속에 순금을 담은 것처럼 잘 보이는 지위, 곧 앞의 位에서 닦은 妙心을 가지고 실천수행하고 다스리는 地位라는 뜻.
(3) 修行住. 前地를 涉知하여 두루 밝아져서 十方의 어느 곳이고 遊離接化하는데 걸림이 없으므로 萬善萬行을 만족하게 닦는 지위.
(4) 生貴住. 佛과 같이 佛의 기운을 받아 彼此가 冥通하므로 如來種에 들어가는 位를 일컫는다.
(5) 具足方便住. 自利利他의 方便을 구족하는 地位로 그 相貌에 결함이 없는 位.
(6) 正心住. 相貌뿐 아니라 마음 씀씀이까지 부처님과 같이 바른 位.
(7) 不退住. 身心이 合成하는 경계에 들어 갔으므로 修行이 날마다 增長하는 地位.
(8) 童眞住. 그릇된 소견을 영원히 斷絶하고 菩提心을 길이 깨뜨리지 않으므로 佛陀의 十身의 靈相을 일시에 갖추는 지위.
(9) 法王子住. 初發心住로부터 제4의 生貴住에 이르기까지를 入聖胎라 하고 제5住로부터 제8住에 이르기까지를 長養聖胎라고 하며 이 제9住位는 相形을 구족하여 出胎하는 것을 일컫는다. 곧 성인의 智解가 생겨 聖位에 나아간다는 뜻.
(10) 灌頂住. 보살이 이미 佛子가 되어 佛事를 감당할만 하므로 佛이 지혜의 물(智水)로 정수리에 붓는 것이 마치 인도의 옛 풍속에 王子가 자라면 국왕이 손수 바닷물을 정수리에 부어 世子位에 오르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灌頂住라 한다. 十地를 十住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십행(十行) : 보살이 수행하는 52階位중 10信·10住 다음의 位인 제21位로부터 제30位까지의 보살위. 곧 10住位의 마지막인 灌頂住에서 진정한 佛子임을 印可받아 확인한 뒤 더 나아가 利他行을 완수하고자 중생교화의 실천을 위해 정진하는 地位. 歡喜行·饒益行·無瞋恨行·無盡行·離癡亂行·善現行·無着行 ·尊重行·善法行·眞實行의 10行을 말함.
십회향(十廻向) :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인 52位중에서, 제31位에서 제40位까지, 10행위(행위)를 마치고, 다시 지금까지 닦은 自利·利他의 여러 가지 행을 일체 중생을 위하여 돌려주는 동시에 이 공덕으로 佛果를 향해 나아가 오경(悟境)에 도달하려는 지위.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不壞廻向·等一切諸佛廻向·至一切處廻向·無盡功德藏廻向·入一切平等善根廻向·等隨順一切衆生廻向·眞如相廻向·無縛無着解脫廻向·入法界無量廻向.
십지(十地) : 地는 범어 bhumi의 번역으로, 住處, 혹은 住持, 生成의 뜻.
그 자리(住)를 사는 집으로 하고, 또 그 자리에 있어서의 法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것에 의해서, 果를 낳게 됨을 말한다.
① 乾慧등의 十地. 大品般若經 권6, 권17 등에 說해 있고 三乘에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三乘共의 十地, 共地라 하고, 천태종에서는 通敎의 十地라고 한다. 대품반야경 권六에는, 乾慧 내지 佛의 十地에 대해, 보살은 方便力에 의해서 六波羅蜜을 행하고, 또 四念處 내지 十八不共法을 차례로 행해서, 前九地를 지나 佛地에 이른다고 하여, 이 十地는 보살이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서, 여기서 말하는 佛地라 함은 佛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보살이 佛과 같이 十八不共法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또 智度論 권75에는, 이 十地를 각기 三乘의 階位에 배당하고 또 智顗의 法華玄義 권四下, 摩訶止觀 권六上에도 이 뜻을 받아서 해석하고 있다. .....➁ 歡喜 등의 十地. 舊譯의 화엄경 권二十三 이하, 新譯의 화엄경 권三十四 이하, 仁王般若經 권上, 合部金光明經 권三 등에 說해 있고, 보살이 수행과정에서 겪지 않으면 안되는 52位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位이다. 보살은 이 位에 오를 적에 비로소 無漏智를 내어 佛性을 보고, 聖者가 되어 佛智를 길러 보존함과 아울러 널리 중생을 지키고 육성하기 때문에 이 位를 地位, 十聖이라 하고, 地位에 있는 보살을 地上의 보살, 初地(初歡喜地)에 오른 보살을 登地의 보살, 그 이전의 보살을 地前의 보살, 十住·十行·十廻向을 地前의 三十心이라고 한다. 더욱 十住毘婆沙論에서는 「地」를 住處의 뜻으로 삼아서, 十地를 十住라고 번역한다. 十地의 명칭을 新譯의 화엄경 권三十四에 의해 열거하면,
(1) 歡喜地(極喜地·喜地·悅豫地)
(2) 離垢地(無垢地·淨地)
(3) 發光地(明地·有光地·興光地)
(4) 焰慧地(焰地·增曜地·暉曜地)
(5) 難勝地(極難勝地)
(6) 現前地(現在地·目見地·目前地)
(7) 遠行地(深行地·深入地·深遠地·玄妙地)
(8) 不動地.
(9) 善慧地(善哉意地·善根地)
(10) 法雲地(法雨地)이고,
瓔珞本業經 권上에는,
(1) 鳩摩羅伽(逆流歡喜地).
(2) 須阿伽一波(道流離垢地).
(3) 須那迦(流照明地).
(4) 須陀洹(觀明炎地).
(5) 斯陀含(度障難勝地).
(6) 阿那含(薄流現前地).
(7) 阿羅漢(過三有遠行地).
(8) 阿尼羅漢(變化生不動地).
(9) 阿那訶(慧光妙善地).
(10) 阿訶羅弗(明行足法雲地)라 하고,
梵文大事에는 또 다른 十地를 說함. 十地의 해석은 한결같지는 않은데 慧遠의 大乘義章 권十四에는,
(1) 歡喜地. 처음으로 聖者가 되어서 크게 기쁜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로, 淨心地·聖地·無我地·證地·見地·堪忍地라고도 한다.
(2) 離垢地. 잘못을 일으켜 戒를 破하고, 번뇌를 더하는 마음을 여읜 자리로, 具戒地·增上戒地라고도 한다.
(3) 明地. 禪定에 의해서 지혜의 빛을 얻어, 聞·思·修의 三慧를 닦아, 진리가 밝혀지는 자리.
(4) 炎地. 前三地의 조처에 의한 見解를 여의고 지혜의 불이 번뇌의 섶(薪)을 태우는 불꽃으로 하여, 지혜의 본체를 깨닫는 位. 곧 그 깨달음에 의해서 일으키는 阿含光이 구슬의 光炎과 같은 位란 뜻.
(5) 難勝地. 확실한 지혜를 얻어서 그 이상을 넘어서 올라가기가 곤란하다는 位. 또 出世間의 지혜를 얻어서 自由自在한 방편을 가지고 구하기 어려운 중생을 구원하는 자리라고도 한다.
(6) 現前地. 般若波羅蜜을 듣고서 大智가 눈앞에 나타나는 자리.
(7) 遠行地. 無相行을 닦아서 마음의 작용이 世間을 뛰어 넘은 자리로, 方便具足地(無相方便地), 有行有開發無相住라고도 한다. 이 자리에서는 위로 구해야 할 菩提도 없고 아래로 구원할 중생도 없다고 보아, 無相寂滅의 理에 잠겨, 수행을 할 수 없게 될 걱정이 있다. 이것을 七地沈空의 難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때 十方의 諸佛이 7종의 法을 가지고 勸勵하기 때문에 다시 수행의 용기를 분발시켜 第八地에 나간다고 하여 이것을 七勸이라고 한다.
(8) 不動地. 無相의 지혜가 간단없이 일어나서 번뇌에 결코 움직이지 않는 位로서, 色自在地·決定地· 無行無開發無相住라고 한다.
(9) 善慧地. 보살이 거리낌 없는 힘으로 설법하여 利他行을 완성하므로 지혜의 작용이 자재한 位로, 心自在地·決定行地·無礙住라고도 한다.
(10) 法雲地. 大法身을 얻어서 自在力을 갖춘 자리로, 究竟地·最上住라고도 한다. 또 菩薩地持經 권九의 12住중, 제3歡喜地 내지 제12最上菩薩住는 十地에 해당하고, 同卷十의 種性 등의 七地說에서는 初地가 第三淨心地, 제2 내지 第七地가 제4行跡地, 제8地가 제5決定地, 제9地가 제6決定行地, 제10地 및 佛地가 제7畢竟地에 해당한다. 또 初地를 見道(通達位), 2地 이상을 修道(修習位), 혹은 7地 및 그 이전을 有功用地, 8地 이상을 無功用地, 혹은 初·2·3地를 信忍, 4·5·6地를 順忍, 7·8·9地를 無生忍, 10地를 寂滅忍, 혹은 前5地를 無相修, 6·7地를 無相修淨, 8·9地를 無相修果, 10地를 無相修果成. 혹은 初地를 願淨, 2地를 戒淨, 3地를 定淨, 4·5·6地를 增上慧, 7地 이상은 上上出生淨이라 하고, 또 地前을 信地라고 하는데 대해서 10地 전체를 證地라고 하는 수도 있다.
삼현위(三賢位) : 修行의 階位.
① 小乘의 三賢. 열반의 證果(해탈)를 가져오는(순응)작용이 있는 有漏의 善根(順解脫分)을 修證하는 단계로서, 外凡의 자리라고도 한다. 즉, 五停心(觀)位·別相念住位(別相念處位)·總相念住位(總相念處位)의 셋이 그것이다. 여기에 四善根位(內凡位)를 더하며 7方便位라 하고 見道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적인 수행의 階位라고도 한다. 五停心(觀)이란 五停心觀에 의해 貪·瞋·癡·我見·散亂心의 5종의 마음을 눌러서 견제하는 位. 別相念住位란 身·受·心·法을 개별적으로 순서있게 不淨·苦·非常·非我라는 自相(獨自인 모습)을 觀하고, 또한 그 어느 것도 非常·苦·空·非我라는 그 共相(共인 모습)을 觀하는 四念住를 닦는 位. 總相念住位란, 四念住의 전체가 그대로 非常·苦·空·非我라고 하는 共相을 觀하는 位이다. 이 중 五停心位는 奢摩地(마음을 가라앉히는 것. 止)를 성취하고 다음의 2位에서는 毘鉢舍那(觀)를 성취한다.
② 大乘의 三賢. 十地이전의 보살의 階位에 3階 30心의 구별이 있는 것. 또한 三十心이라고도 한다. 보통으로 瓔珞本業經 등에 기준하여 十住·十行·十廻向의 三階位를 여기에 해당시켜, 十信을 外凡位라고 하는데 대하여 內凡位라고도 한다.
등각(等覺) : 51位. ① 等正覺(두루하고 바른 보편타당성 있는 覺이란 뜻)을 말함. 불타를 말함. 널리 진리를 깨달아 諸佛의 깨달음의 내용이 동등하다는 뜻. ② 내용적으로는 불타의 깨달음과 동등하고, 실제로는 불타의 한 발 앞에 있는 자. 보살 수행의 階位 五十二位 가운데의 제51位, 六種性의 제5. 等正覺(正覺과 동등한 覺)·有上士(妙覺의 불타를 無上士라고 하는데 대해, 이 等正覺은 아직 上位가 있기 때문)·一生補處(현재의 一生 뒤에는 불타가 될 補處佛)·金剛心(金剛처럼 견고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쳐부순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等覺의 보살이 불타가 되기 전에, 다시 거듭하여 범부의 位에 내려가서 닦는, 진리에 비추어 닦는 수행을 入重玄門이라고 한다. ③ 淨土宗에서는, 他力의 信心을 얻은 이는 반드시 往生해서 불타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 信心을 彌勒보살이 일으키는 等覺의 金剛心(불타가 되기 직전에 최후의 미혹을 소멸하는 굳은 마음)에 견주어 橫超의 金剛心이라고 하며, 이 세상에서 미륵과 동등한(便同彌勒) 等覺의 지위에 들어간다고 한다.
묘각(妙覺) : ① 佛陀의 不可思議絶妙한 無上正覺. 究極의 佛陀의 자리(天台四敎儀).
② 보살52位. 41位의 하나. 곧 보살수행 최후의 자리로 번뇌를 끊고 지혜가 원만하게 갖춰진 자리를 말함. .....41位→보살이 수행하여 佛果에 이르는 동안의 階位. 10住·10行·10廻向·10地·妙覺.
상적광토(常寂光土) : 寂光土라고도 한다. 우주의 진리를 國土로 보며, 여기에 住하는 부처님을 法身佛이라 한다. 이 法身佛도 부처님이 證得한 진리를 佛身이라고 보는 것이어서 體는 다르지 않다. 다만 佛身觀의 견해에 따라 住하는 이와 住할 바 國土를 나누어 法身·寂光土라 한 것이다.
법신여래(法身如來) : 法身은 오고 감이 없으나 여래장에 의해 나타나므로 이같이 말함.
자수용신(自受用身) : 三身·四身의 하나. 修行功德이 원만하여 四智가 圓明하므로 항상 報土에 住하여 스스로 法樂을 亨受하는 것. 福·智를 구족하므로 眞智가 밝아져서 항상 一切智를 觀照하므로 스스로 그 法樂을 亨受하는 佛身을 일컬음.
법성토(法性土) : 5土의 하나. 여래의 맑고 깨끗한 법성법신이 거주하는 국토. 진여법성으로 體를 삼는다. 법성신 · 법성토라고 하나, 그 체는 본래 一眞如로서 다만 증득할 바 법체를 법성신이라 하는 것이므로, 身과 土는 서로 차별이 있는 것 아니니, 모두 色相을 떠나 항상 머물러 변치 아니하면서 허공과 같이 곳곳마다 두루 가득찬 것.
자수용토(自受用土) : 四土의 하나. 부처님의 절대경계인 無漏의 第八識 위에 나타난 無限의 경지로서 佛 자신이 스스로 法樂을 받는 국토이며 부처님 이외의 누구도 헤아려 알 수 없는 不思議佛土.
타수용토(他受用土) : 四土의 하나. 타수용신이 있는 淨土. 初地 이상의 聖者로 하여금 大法樂을 받고, 수승한 행을 닦게 하기 위하여 가지가지로 장엄한 利他의 국토. 흔히 報土라 하며 또한 이것을 化土에 붙여 해석하기도 한다.
변화토(變化土) : 三土의 하나. 變化身이 있는 국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成所作智의 大慈悲力으로 중생의 근기에 맞춰 변화하는 여러 가지 청정한 국토와 더러운 국토.
응신토(應身土) : 또는 應土. 應身佛이 사는 국토. 곧 중생의 根機에 應하여 變現하는 국토.
삼토(三土) : 淨土를 3종으로 구별하여 일컫는 말. 法性土·報土·化土의 3土로 법상종의 三佛土. 唯識說에서는 法性土·受用土·變化土를 말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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