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견법(六堅法)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本業經에 나오는 보살의 6종堅法.
(1) 信堅. 別敎의 보살이 十住位에서 空觀을 닦음으로 일체법이 그대로 眞諦임을 잘 알아 무너지지 않는 것.
(2) 法堅. 別敎의 보살이 十行位에서 假觀을 닦음으로 일체법이 다 俗諦임을 잘 알아 毁壞되지 않는 것.
(3) 修堅. 別敎의 보살이 十廻向位에서 中觀을 닦음으로 일체법이 그대로 다 中諦임을 잘 알아서 毁壞되지 않는 것.
(4) 德堅. 別敎의 보살이 十地位에서 中觀을 닦음으로 1분의 無明을 깨뜨리고 1분의 三德을 드러내어 毁壞되지 않는 것.
(5) 頂堅. 別敎의 等覺보살이 十地의 頂上에서 일체의 惑의 근본을 깨뜨리고 德을 드러내어 毁壞되지 않는 것.
(6) 覺堅. 別敎의 妙覺의 果佛이 일체법이 그대로 다 中道임을 깨달아서 毁壞됨이 없음을 말한다.
참고
견법(堅法) : 3종의 견법이 있다. 곧 身과 命과 財物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無極의 몸과, 무궁의 수명과, 무진장한 재물을 얻으므로 堅法이라 이름한다. 또한 이 세가지는 천지가 불타도 타지 않고, 무량한 겁이 다하여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堅法이라 한다. (維摩經菩薩品)
별교(別敎) : 天台宗에서 말하는 化法 4敎의 하나. 근기가 둔한 중생들의 所見으로 보는 萬有는 事方面에서는 차별이 있지만, 理 방면으로 보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므로 이 迷見을 벗어나서 평등한 이치를 깨달으라고 가르치신 敎法. .....화법사교(化法四敎)→천태종에서 석존일대의 교설을 교화하는 법, 곧 교리의 내용에 의하여 藏敎·通敎·別敎·圓敎 등의 4종으로 분류한 것.
장통별원교(藏通別圓敎) : ① 장교(藏敎) : 天台宗의 敎說인 化法四敎의 하나. 三藏敎의 준말. 小乘敎 四阿含經에 의해서 但空의 도리를 밝히어 析空觀(分析空으로 空을 觀하는 것)에 의해서 無餘涅槃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小乘敎를 가리키는 말.
② 통교(通敎) : 天台宗 化法 4敎의 제2. 성문·연각·보살의 3乘이 함께 받는 법. 얕고 깊은 법을 함께 말한 것이므로, 사람의 근성이 영리하고 둔함에 따라서 얕게도 해석하고, 깊게도 해석할 수 있는 敎. 근기가 둔한 사람이 이 교를 얕게 해석하면 藏敎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되고, 영리한 사람이 이 교를 높게 해석하면 별교와 원교에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것. 이렇게 근기에 따라 앞으로는 장교에, 뒤로는 별교와 원교에 통하는 교이므로 통교. 이 교의 세계관은 좁으나, 그 밝혀 놓은 이치는 깊다. 體가 공한 것이 그 근본 사상이다.
③ 별교(別敎) : 天台宗에서 말하는 化法. 4敎의 하나. 근기가 둔한 중생들의 所見으로 보는 萬有는 事方面에서는 차별이 있지만, 理 방면으로 보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므로 이 迷見을 벗어나서 평등한 이치를 깨달으라고 가르치신 敎法.
④ 원교(圓敎) : 원만하고 완전한 敎의 뜻. 舊譯 華嚴經卷五十五에는 善伏童子에게 圓滿因緣修多羅를 說했다고 했다. 중국에서 모든 경전의 내용을 體系化해서 비판분류하는데(敎相判釋), 究極的인 敎를 가끔 圓敎라고 부른다. ① 北魏의 慧光은 漸·頓·圓의 三敎로 나누어 華嚴經을 圓敎로 했다. ② 隋의 智顗가 나눈 五時八敎의 敎判에서는, 化法四敎를 三藏敎·通敎·別敎·圓敎로 하고, 圓은 不偏의 뜻이라고 했다. 또 圓敎는 華嚴·方等·般若의 說法에 있어서도 나타나 있지만 그것은 未開顯의 圓이고 순수한 圓敎가 아니며, 순전히 圓敎만을 說한 法華가 오직 開顯의 圓敎로서 今圓이라고 한데 대해서 그것을 昔圓이라고 했다. ③ 唐의 法藏은, 小乘敎·始敎·終敎·頓敎·圓敎의 五敎判을 說하고, 華嚴經을 제5의 圓敎라 했다. 圓敎는 곧 一乘이기 때문에 同敎一乘도 別敎一乘도 함께 圓敎이긴 하지만, 그러나 別敎一乘은 모든 經을 넘어선 無盡의 佛法이기 때문에 특히 別敎一乘만을 圓敎라고 했다. ④ 唐의 元政은 眞言密敎를 가지고 一大圓敎라고 하였다.
보살의 52계위(菩薩五十二階位) : ① 십신위(十信位) : 보살의 修行階位 52位 가운데 처음의 十信位를 말함. 불법의 진리를 믿어 의심이 없는 지위. 信心·念心·精進心·慧心·定心·不退心·護法心·廻向心·戒心·願心.
② 십주(十住) : 보살의 수행 階位 52位중 제11位에서 제20位까지를 일컬음. 10信位를 지나서 眞諦의 경지, 곧 佛地에 安住할 수 있게 됐다는 뜻으로 十住라 한다.
(1) 發心住. 從假入空觀의 觀法을 완성하여 眞無漏智에 들어가며, 眞方便으로 十住心을 일으키며, 十信의 用을 涉하는 圓成一心의 位를 말한다.
(2) 治地住. 항상 空觀을 닦아서 마음이 밝고 깨끗하기가 마치 유리 속에 순금을 담은 것처럼 잘 보이는 지위, 곧 앞의 位에서 닦은 妙心을 가지고 실천수행하고 다스리는 地位라는 뜻.
(3) 修行住. 前地를 涉知하여 두루 밝아져서 十方의 어느 곳이고 遊離接化하는데 걸림이 없으므로 萬善萬行을 만족하게 닦는 지위.
(4) 生貴住. 佛과 같이 佛의 기운을 받아 彼此가 冥通하므로 如來種에 들어가는 位를 일컫는다.
(5) 具足方便住. 自利利他의 方便을 구족하는 地位로 그 相貌에 결함이 없는 位.
(6) 正心住. 相貌뿐 아니라 마음 씀씀이까지 부처님과 같이 바른 位.
(7) 不退住. 身心이 合成하는 경계에 들어 갔으므로 修行이 날마다 增長하는 地位.
(8) 童眞住. 그릇된 소견을 영원히 斷絶하고 菩提心을 길이 깨뜨리지 않으므로 佛陀의 十身의 靈相을 일시에 갖추는 지위.
(9) 法王子住. 初發心住로부터 제4의 生貴住에 이르기까지를 入聖胎라 하고 제5住로부터 제8住에 이르기까지를 長養聖胎라고 하며 이 제9住位는 相形을 구족하여 出胎하는 것을 일컫는다. 곧 성인의 智解가 생겨 聖位에 나아간다는 뜻.
(10) 灌頂住. 보살이 이미 佛子가 되어 佛事를 감당할만 하므로 佛이 지혜의 물(智水)로 정수리에 붓는 것이 마치 인도의 옛 풍속에 王子가 자라면 국왕이 손수 바닷물을 정수리에 부어 世子位에 오르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灌頂住라 한다. 十地를 十住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십행(十行) : 보살이 수행하는 52階位중 10信·10住 다음의 位인 제21位로부터 제30位까지의 보살위. 곧 10住位의 마지막인 灌頂住에서 진정한 佛子임을 印可받아 확인한 뒤 더 나아가 利他行을 완수하고자 중생교화의 실천을 위해 정진하는 地位. 歡喜行·饒益行·無瞋恨行·無盡行·離癡亂行·善現行·無着行 ·尊重行·善法行·眞實行의 10行을 말함.
십회향(十廻向) :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인 52位중에서, 제31位에서 제40位까지, 10행위(행위)를 마치고, 다시 지금까지 닦은 自利·利他의 여러 가지 행을 일체 중생을 위하여 돌려주는 동시에 이 공덕으로 佛果를 향해 나아가 오경(悟境)에 도달하려는 지위.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不壞廻向·等一切諸佛廻向·至一切處廻向·無盡功德藏廻向·入一切平等善根廻向·等隨順一切衆生廻向·眞如相廻向·無縛無着解脫廻向·入法界無量廻向.
십지(十地) : 地는 범어 bhumi의 번역으로, 住處, 혹은 住持, 生成의 뜻.
그 자리(住)를 사는 집으로 하고, 또 그 자리에 있어서의 法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것에 의해서, 果를 낳게 됨을 말한다.
① 乾慧등의 十地. 大品般若經 권6, 권17 등에 說해 있고 三乘에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三乘共의 十地, 共地라 하고, 천태종에서는 通敎의 十地라고 한다. 대품반야경 권六에는, 乾慧 내지 佛의 十地에 대해, 보살은 方便力에 의해서 六波羅蜜을 행하고, 또 四念處 내지 十八不共法을 차례로 행해서, 前九地를 지나 佛地에 이른다고 하여, 이 十地는 보살이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서, 여기서 말하는 佛地라 함은 佛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보살이 佛과 같이 十八不共法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또 智度論 권75에는, 이 十地를 각기 三乘의 階位에 배당하고 또 智顗의 法華玄義 권四下, 摩訶止觀 권六上에도 이 뜻을 받아서 해석하고 있다. .....➁ 歡喜 등의 十地. 舊譯의 화엄경 권二十三 이하, 新譯의 화엄경 권三十四 이하, 仁王般若經 권上, 合部金光明經 권三 등에 說해 있고, 보살이 수행과정에서 겪지 않으면 안되는 52位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位이다. 보살은 이 位에 오를 적에 비로소 無漏智를 내어 佛性을 보고, 聖者가 되어 佛智를 길러 보존함과 아울러 널리 중생을 지키고 육성하기 때문에 이 位를 地位, 十聖이라 하고, 地位에 있는 보살을 地上의 보살, 初地(初歡喜地)에 오른 보살을 登地의 보살, 그 이전의 보살을 地前의 보살, 十住·十行·十廻向을 地前의 三十心이라고 한다. 더욱 十住毘婆沙論에서는 「地」를 住處의 뜻으로 삼아서, 十地를 十住라고 번역한다. 十地의 명칭을 新譯의 화엄경 권三十四에 의해 열거하면,
(1) 歡喜地(極喜地·喜地·悅豫地)
(2) 離垢地(無垢地·淨地)
(3) 發光地(明地·有光地·興光地)
(4) 焰慧地(焰地·增曜地·暉曜地)
(5) 難勝地(極難勝地)
(6) 現前地(現在地·目見地·目前地)
(7) 遠行地(深行地·深入地·深遠地·玄妙地)
(8) 不動地.
(9) 善慧地(善哉意地·善根地)
(10) 法雲地(法雨地)이고,
瓔珞本業經 권上에는,
(1) 鳩摩羅伽(逆流歡喜地).
(2) 須阿伽一波(道流離垢地).
(3) 須那迦(流照明地).
(4) 須陀洹(觀明炎地).
(5) 斯陀含(度障難勝地).
(6) 阿那含(薄流現前地).
(7) 阿羅漢(過三有遠行地).
(8) 阿尼羅漢(變化生不動地).
(9) 阿那訶(慧光妙善地).
(10) 阿訶羅弗(明行足法雲地)라 하고,
梵文大事에는 또 다른 十地를 說함. 十地의 해석은 한결같지는 않은데 慧遠의 大乘義章 권十四에는,
(1) 歡喜地. 처음으로 聖者가 되어서 크게 기쁜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로, 淨心地·聖地·無我地·證地·見地·堪忍地라고도 한다.
(2) 離垢地. 잘못을 일으켜 戒를 破하고, 번뇌를 더하는 마음을 여읜 자리로, 具戒地·增上戒地라고도 한다.
(3) 明地. 禪定에 의해서 지혜의 빛을 얻어, 聞·思·修의 三慧를 닦아, 진리가 밝혀지는 자리.
(4) 炎地. 前三地의 조처에 의한 見解를 여의고 지혜의 불이 번뇌의 섶(薪)을 태우는 불꽃으로 하여, 지혜의 본체를 깨닫는 位. 곧 그 깨달음에 의해서 일으키는 阿含光이 구슬의 光炎과 같은 位란 뜻.
(5) 難勝地. 확실한 지혜를 얻어서 그 이상을 넘어서 올라가기가 곤란하다는 位. 또 出世間의 지혜를 얻어서 自由自在한 방편을 가지고 구하기 어려운 중생을 구원하는 자리라고도 한다.
(6) 現前地. 般若波羅蜜을 듣고서 大智가 눈앞에 나타나는 자리.
(7) 遠行地. 無相行을 닦아서 마음의 작용이 世間을 뛰어 넘은 자리로, 方便具足地(無相方便地), 有行有開發無相住라고도 한다. 이 자리에서는 위로 구해야 할 菩提도 없고 아래로 구원할 중생도 없다고 보아, 無相寂滅의 理에 잠겨, 수행을 할 수 없게 될 걱정이 있다. 이것을 七地沈空의 難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때 十方의 諸佛이 7종의 法을 가지고 勸勵하기 때문에 다시 수행의 용기를 분발시켜 第八地에 나간다고 하여 이것을 七勸이라고 한다.
(8) 不動地. 無相의 지혜가 간단없이 일어나서 번뇌에 결코 움직이지 않는 位로서, 色自在地·決定地· 無行無開發無相住라고 한다.
(9) 善慧地. 보살이 거리낌 없는 힘으로 설법하여 利他行을 완성하므로 지혜의 작용이 자재한 位로, 心自在地·決定行地·無礙住라고도 한다.
(10) 法雲地. 大法身을 얻어서 自在力을 갖춘 자리로, 究竟地·最上住라고도 한다. 또 菩薩地持經 권九의 12住중, 제3歡喜地 내지 제12最上菩薩住는 十地에 해당하고, 同卷十의 種性 등의 七地說에서는 初地가 第三淨心地, 제2 내지 第七地가 제4行跡地, 제8地가 제5決定地, 제9地가 제6決定行地, 제10地 및 佛地가 제7畢竟地에 해당한다. 또 初地를 見道(通達位), 2地 이상을 修道(修習位), 혹은 7地 및 그 이전을 有功用地, 8地 이상을 無功用地, 혹은 初·2·3地를 信忍, 4·5·6地를 順忍, 7·8·9地를 無生忍, 10地를 寂滅忍, 혹은 前5地를 無相修, 6·7地를 無相修淨, 8·9地를 無相修果, 10地를 無相修果成. 혹은 初地를 願淨, 2地를 戒淨, 3地를 定淨, 4·5·6地를 增上慧, 7地 이상은 上上出生淨이라 하고, 또 地前을 信地라고 하는데 대해서 10地 전체를 證地라고 하는 수도 있다.
삼현위(三賢位) : 修行의 階位.
① 小乘의 三賢. 열반의 證果(해탈)를 가져오는(순응)작용이 있는 有漏의 善根(順解脫分)을 修證하는 단계로서, 外凡의 자리라고도 한다. 즉, 五停心(觀)位·別相念住位(別相念處位)·總相念住位(總相念處位)의 셋이 그것이다. 여기에 四善根位(內凡位)를 더하며 7方便位라 하고 見道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적인 수행의 階位라고도 한다. 五停心(觀)이란 五停心觀에 의해 貪·瞋·癡·我見·散亂心의 5종의 마음을 눌러서 견제하는 位. 別相念住位란 身·受·心·法을 개별적으로 순서있게 不淨·苦·非常·非我라는 自相(獨自인 모습)을 觀하고, 또한 그 어느 것도 非常·苦·空·非我라는 그 共相(共인 모습)을 觀하는 四念住를 닦는 位. 總相念住位란, 四念住의 전체가 그대로 非常·苦·空·非我라고 하는 共相을 觀하는 位이다. 이 중 五停心位는 奢摩地(마음을 가라앉히는 것. 止)를 성취하고 다음의 2位에서는 毘鉢舍那(觀)를 성취한다.
② 大乘의 三賢. 十地이전의 보살의 階位에 3階 30心의 구별이 있는 것. 또한 三十心이라고도 한다. 보통으로 瓔珞本業經 등에 기준하여 十住·十行·十廻向의 三階位를 여기에 해당시켜, 十信을 外凡位라고 하는데 대하여 內凡位라고도 한다.
등각(等覺) : 51位. ① 等正覺(두루하고 바른 보편타당성 있는 覺이란 뜻)을 말함. 불타를 말함. 널리 진리를 깨달아 諸佛의 깨달음의 내용이 동등하다는 뜻. ② 내용적으로는 불타의 깨달음과 동등하고, 실제로는 불타의 한 발 앞에 있는 자. 보살 수행의 階位 五十二位 가운데의 제51位, 六種性의 제5. 等正覺(正覺과 동등한 覺)·有上士(妙覺의 불타를 無上士라고 하는데 대해, 이 等正覺은 아직 上位가 있기 때문)·一生補處(현재의 一生 뒤에는 불타가 될 補處佛)·金剛心(金剛처럼 견고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쳐부순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等覺의 보살이 불타가 되기 전에, 다시 거듭하여 범부의 位에 내려가서 닦는, 진리에 비추어 닦는 수행을 入重玄門이라고 한다. ③ 淨土宗에서는, 他力의 信心을 얻은 이는 반드시 往生해서 불타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 信心을 彌勒보살이 일으키는 等覺의 金剛心(불타가 되기 직전에 최후의 미혹을 소멸하는 굳은 마음)에 견주어 橫超의 金剛心이라고 하며, 이 세상에서 미륵과 동등한(便同彌勒) 等覺의 지위에 들어간다고 한다.
묘각(妙覺) : ① 佛陀의 不可思議絶妙한 無上正覺. 究極의 佛陀의 자리(天台四敎儀). ② 보살52位. 41位의 하나. 곧 보살수행 최후의 자리로 번뇌를 끊고 지혜가 원만하게 갖춰진 자리를 말함. ..........41位→보살이 수행하여 佛果에 이르는 동안의 階位. 10住·10行·10廻向·10地·妙覺.
공관(空觀) :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리를 觀想하는 수행법. 모든 존재를 空(실체가 없음)으로 觀하는 입장. 모든 사물은 다 空하다고 하는 도리를 깨닫기 위하여 수행하는 觀法. 모든 사물은 因緣所生(원인과 조건에 의해 生起함)이기 때문에 그 실체는 있을 수 없고, 空寂無相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가관(假觀) : 三觀의 하나. 만유의 모든 법은 공한 것이어서 하나도 실재한 것이 없으나, 그 차별한 모양이 분명한 것은 대개 假의 존재라고 觀한다.
중관(中觀) : 三觀의 하나. 中諦의 진리를 觀하는 것. 諸宗이 한결같이 이 中觀으로써 觀道의 極致를 삼는다. 法相宗에서는 遍計所集은 有에 있지 않고 依他圓成은 空에 있지 않다고 觀하는 것을 中觀이라고 하며, 三論宗은 諸法이 不生不滅하고 내지 不來不去라고 觀하는 것을 中觀이라고 하며, 천태종에서는 三千의 諸法이 낱낱이 절대하다고 觀하는 것을 中觀이라 하고 여기에 別敎의 所說을 隔歷의 中이라 하고 圓敎의 所說을 圓融이라 하여 前者를 但中, 後者를 不但中이라 했으니 곧 不但中을 究竟의 中觀으로 한 것이다.
중도(中道) : 二邊. 곧 양극단이 따로 떨어지므로 얻을 수 있다. 치우치지 않는 中正인 道의 뜻. 中路 혹은 단순히 中이라고도 함. 中道는 佛敎의 근본적 입장을 말하고 있어 대승·소승에 걸쳐서 중요시되고 있다. 따라서 그 뜻하는 바에도 深淺이 있지만 각 종파에서 이 語句를 가지고 교리의 핵심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중도의 意義를 中道義, 중도의 眞理를 중도의 理, 중도의 敎說을 中道敎(三時敎의 하나), 중도를 종지로 하는 종단을 中道宗(법상종에선 唯識中道를 주장하므로 자신이 中道宗이라 한다), 중도를 觀하는 것을 中道觀(자세히 말하면 中道第一義諦觀이라 하여 三觀의 하나)이라고 한다. 또 중도는 우주만유의 진실상을 나타내므로 중도는 곧 實相이라는 뜻에서 中道實相이라 한다.
① 阿含의 八聖道의 실천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로 치우친 생활태도를 버리고 중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열반의 證得으로 가는 도이므로 팔성도를 中道라 한다(中阿含經卷五十六). 또 十二緣起의 진리를 옳게 이해하는 것은 常見(중생의 생명의 주체인 我는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과 斷見(死後엔 아주 滅無로 돌아간다는 생각). 또 有見(자연적입장, 世間의 상식)과 無見(허무주의)등과 같은 치우친 견해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십이연기를 옳게 觀하는 것이 중도의 正見에 住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잡아함경 권십이등). 초전법륜에서 석존이 설한 것인데 前者는 실천상의 중도이며 後者는 思想上의 중도이다.
② 部派불교의 중도. 大毘婆沙論卷四十九나 成實論卷十一등에서 아함의 교설을 받아 들여 중도는 斷· 常의 二見을 떠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③ 대승의 中觀派에서는 般若波羅密을 근본적인 조건이라 하고 모든 집착이나 분별의 경지를 떠난 無所得의 상태에 있는 것을 중도라 한다. 中論 卷一 觀因緣品에, 緣起의 理法은 生·滅·斷·常·一·異·去·來의 여덟 가지의 잘못된 견해(八邪·八迷·八過·八計·八謬·八事·八迷의 戱論)를 타파하여 空의 진리를 밝힌 것이다. 萬有는 그 緣起의 道理에 순응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원래 八邪를 여의었으며 실체가 없어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이와 같이 八邪가 떨어져 無得正觀(無所得의 바른 견해)에 住하는 것을 중도라 하고 이것을 八不中道·八不正觀·無得中道·八不中觀이라 한다. 여기에 八不이란 생멸등의 八邪를 否定하는 不生·不滅·不斷·不常·不一·不異·不去·不來를 가리킨다. 이에 의하여 모든 邪執이 파멸되어 諸法이 그대로 實相인 도리가 나타난다. 八不중에서도 不生·不滅이 그 근본이다. 특히 팔불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不生이 팔불 속에 들어갈 수 있다 한다.
吉藏의 中論疏卷二에 의하면 不生은 嬰兒闡提, 不滅은 邪見闡提, 不斷은 斷見의 聲聞, 不常은 常見의 聲聞, 不一·不異는 外道, 不來와 不去는 獨覺 및 初發心 보살들의 각각의 邪執을 파괴시킨다고 한다. 삼론종은 八不中道의 설에 입각하여 세 가지 중도를 주장한다. 즉 中論疏 卷一에는 八不中道를 二諦에 關係시켜 설명한다.
(1) 因緣에 의해 거짓 존재하는 現象面으로 말하면, 모든 사물은 실체가 아니고 空이면서 거기다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므로 無生滅의 生滅이니 生이나 不生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俗諦中道·世諦中道라고 일컫는다.
(2) 사물의 진실한 실재의 측면 곧 본체면으로부터 말하면 모든 사물은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면서 또 그 本體는 空이기 때문에 生滅의 無生滅로서 不生이라고도 非不生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하여 이것을 眞諦中道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二諦各論中道라고 한다.
(3) 그렇지만 無生滅의 生滅, 生滅의 無生滅이란 실은 生滅도 아니고 無生滅도 아닌 言語와 思慮를 여읜 究極的인 空이라고 하여 이것을 二諦合明中道·非俗非眞中道라 일컫는다. 또 三論玄義卷下에 중도에 一中 내지 四中의 구별이 있다고 했다. 곧 중도가 유일의 청정한 도인 것을 一中, 중도를 二諦에 대해 논하여 「世諦의 中」과「眞諦의 中」으로 분류하는 것을 二中, 그「二諦의 中」에「非眞非俗의 中」을 더하여 三中이라 한다. 四中이란 다음 네 가지이다. (1) 對偏中. 斷·常의 偏見에 대해서 설한 中. (2) 盡偏中. 그들 偏見이 滅盡되어 중도의 意義가 나타난 것. (3) 絶對中. 거기 나타난 中은 언어와 사려를 초월한 不偏不中인데,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中이라 한 것. (4) 成假中. 非有非無인 絶對中에 의해 현상으로서의 거짓 존재(有無)를 성립시켜 중생을 교화하는 수단(方便)을 말한다.
④ 천태종에서는 空·假·中의 三諦의 설을 주장하여 모든 존재를 一面으로만 생각하는 空·假를 초월한 절대적인 본체는 언어와 사려의 대상이 아님을 中諦라고 한다. 이 중제는 化法의 四敎중 別·圓의 二敎로 설명된다. 그러나 別敎에선 三諦를 각각 독립된 진리라고 생각하고(隔歷三諦), 空·假의 二諦는 현상면, 中諦는 본체면으로부터 말한 것이라 하여 但中, 圓敎의 三諦는 서로가 개별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一諦중에 三諦를 갖추고 있어 셋이 별개가 아니고 융합되어 있다고 보며(圓融三諦), 卽空·卽假 ·卽中으로서의 中諦이므로 이것을 不但中이라고 한다. 또 通敎에선 三諦의 설은 없지만 거기서 주장하고 있는 空理 가운데 중도가 들어 있다고 설명되고 있으므로 통교를 含中敎라고도 한다. 그리고 천태종에서는 중도의 理는 우주의 진실한 모습인 만큼 이 진리를 깨달으면 佛 내지 地獄의 十界를 敎化시키는 대상자에게 맞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應化의 本源이 중도에 있다는 뜻에서 中道應本이라고 한다. 藏敎와 通敎의 보살은 이것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前者는 本惑을 끊지 못하고 남겨 두어 三界에 남아 있고 後者는 誓願을 세워 煩惱의 習氣를 붙들어 三界에 태어나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⑤ 유식종에선 有·空·中의 三時敎의 敎判을 세워서 解深密經 등의 설처럼 有·空의 二邊(兩極端)을 여의고 非有非空의 중도의 진리를 완전하게 나타낸 敎를 中道了義敎라 하고, 有·空에 치우친 敎를 不了義敎라고 한다. 그 중도란 소위 唯識中道로서 곧 (1) 범부가 실재한다고 본 바의, 有情의 실체적 생명으로서의 我나 萬有의 구성요소로서의 法은 迷情의 집착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情有理無의 非有이다. (2) 萬有는 인연의 假有的 화합에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의 變現이므로 즉 識은 理有情無의 非無이다. (3) 또 만유는 고정된 본성(自性)이 없고 空이므로 자유자재로 현상될 수 있는 것으로 곧 공은 眞空妙有의 非無라고 한다. 이와 같이 宇宙의 眞相은 非有非無(非有非空)의 중도로 파악되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中道了義敎라고 한다. 三性說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我와 法은 遍計所執性에 해당하고 識은 依他起性, 空은 圓成實性에 해당한다(成唯識論 卷七). 우리 나라의 원효는 그의 梵網經菩薩戒本私記卷上에서, 「非有非無는 가(邊)를 여읜 중도의 戒를 나타낸 말이니, 그러므로 戒의 體를 말하면 因緣을 따라 생긴 것이지만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戒의 自性을 얻을 수 없으므로 非有며, 戒가 비록 非有라고 하지만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므로 토끼 뿔이 없는 것처럼 아주 없는 것은 아니므로 非無라 한 것이다.」라고 하여 戒를 非有非無의 중도의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효는 이어서 「만일 戒의 業을 말하면 막는다는데 戒의 뜻이 있는 것이니 그 막아야 할 대상은 곧 罪다. 그러므로 계는 결국 인연을 따라서 생기지만 그러나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하여 들어가 따지고 보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얻어질 실재의 客觀은 없다.」고 하고 한 걸음 나아가 계를 중도에 契合시키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전개했다. 「마음자리를 두고 논하면 뿌리의 자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므로 죄될 요소가 따라 붙을 수 없다. 따라서 그릇됨을 막는다고 하지만 실은 그 절대적인 객관화된 본질적 표준(罪性)이 있음도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罪性은 마음의 근본바탕에는 없다. 그렇지만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여기에 戒가 중도에 들어 맞는 도리가 있는 바이다.」원효가 一切法에 無碍自在한 一大理論으로 千經萬論을 막힘이 없이 꿰뚫은 것도 다 철두철미하게 一貫 中道에 통달했기 대문이다. 또 華嚴經序에 「원래 無障無碍한 法界의 法門은 法이란 것도 없고 법아닌 것도 없으며 門이 아니고 門 아님도 없도다. 그것은 大도 小도 아니요 促도 奢도 아니며 動도 靜도 아니며 一도 多도 아니다.」라고 했고, 金剛三昧經論序에 「破할 것도 없고 破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세울 것도 없고 세우지 않을 것도 없으니 이른바 아무 이치가 없는 것 같지만 지극한 이치이고 그렇지 않으면서 크게 그러하다」고 했다. 이러한 圓融無碍한 절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性·相·空·有 ·一·異의 일체의 相對性을 會通시킴으로 立·破·開·合에 조금도 걸림이 없는 중도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고려의 義天도 「대저 法에는 말이나 형상이 없으며 말이나 형상을 여읜 것도 아니니 말이나 형상을 여의면 뒤집힌 迷惑이요, 말과 형상을 집착하면 참으로 迷한 것이다」라고 했고, 「敎學者는 안을 버리고 밖으로 구하며 習禪人은 因緣法을 모르고 안으로만 밝혀서 偏執하므로 二邊을 다 읽는다」고 하여 역시 중도가 究竟임을 누누히 밝혀 주고 있어서, 원효의 중도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삼덕(三德) : ① 大涅槃에 갖추어 있는 세 가지 德. 곧 法身 · 般若 · 解脫의 셋을 말함. 南本涅槃經 卷二에는 이 三德은 伊字의 3點 摩醯首羅(大自在天)의 3目과 같은 모양을 한 3으로서 낱낱이 3이라고 하며, 大乘義章卷十八에는, 法身은 모든 것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眞如 또는 功德法으로 그 진리의 몸을 완성한 것을 말하고, 解脫이란 번뇌의 속박을 여읜 것을 말한다. 般若는 깨달음의 지혜를 일컫는다고 했다. 또 이 3德을 因位에 있어서는 三佛性이라 부르며, 正因佛性의 果가 法身의 德을, 了因佛性의 果가 般若의 德을, 因緣佛性의 果가 解脫의 德을 완성하는 것을 順三德이라고, 苦를 변하여 法身의 德을, 惑을 변하여 般若의 德을, 業을 변하여 解脫의 德을 완성하는 것을 逆三德이라 한다.
천태종의 三德說은 法華經 이전의 諸經에도 있지만, 法華의 圓敎의 三德이 非縱非橫非三非一인 것과 다르다고 하고, 또 이 3德을 三菩提 · 三佛性 · 三寶 등에도 배대했다.
② 佛果에 갖춘 3德으로, 智德 · 斷德 · 恩德의 셋을 말하고 佛性論 卷二 등에 보임.
(1) 智德은 佛陀가 모든 입장에서 본 지혜를 두루 갖추고 온갖 것을 투철하게 보는 德.
(2) 斷德은 모든 번뇌와 惑業을 없애버리는 德.
(3) 恩德은 중생을 구원하고자 원하는 힘에 의해서 혜택을 주는 것을 말하며, 智 · 斷 · 恩의 3德을 法 · 報 ·應의 3身에 배대하고,또 智 · 斷의 2德을 自利 · 自行 · 自覺에 배대하며, 恩德을 利他 · 化他 · 覺他에 배대한다. 또 俱舍論 권27에는, 불타의 德에 因圓德 · 果圓德 · 恩圓德의 셋이 있고, 果圓德을 나누어 智圓德 · 斷圓德 · 威勢圓德 · 色身圓德의 넷으로 한다고 說示하고 있다.
③ 모든 것이 타고난 성질로서의 3가지 德으로, 薩埵(sattva) · 刺闍(rajas) · 答摩(tamas)를 말한다. 異敎인 數論學派의 說로 金七十論 卷上에 보인다. 이들 셋은 순차로 喜 · 憂 · 闇 · 勇 · 塵 · 闇, 貪 · 瞋 · 癡, 樂 · 苦 ·捨 · 黃 · 赤 · 黑, 染 · 麤 · 黑 등으로 번역되고, 25諦의 제1인 自性冥諦에 갖추어 있는 德으로, 이것에 의해서 가지가지의 善 · 惡 · 好 · 醜를 낸다고 하고, 神我諦 이외의 나머지 23諦에도 이 3德이 갖추어져 있다고 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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