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견성(雪峰見性)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화두. 雪峰義存(821~908)에게 어떤 客僧이 물었다. 「聲聞人의 견성은 밤에 달을 보는 것 같고, 菩薩人의 견성은 낮에 해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和尙의 見性은 어떠하십니까?」이에 雪峰이 세 번 때렸다고 하며, 그 客僧이 다시 巖頭에게 물으니 그도 또한 세 번 때렸다고 한다.
참고
견성(見性) : 悟道 · 見性成佛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다시 自覺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본래 가지고 있는 자기의 본성을 깨달아 보는 것, 참자기를 알게 되는 것, 깨달음이 열리는 것이란 뜻이다. 즉 내가 무엇인가를 알아낸다는 말이다. 「대체 너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쉽사리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다. 사실 自 · 他라고 하는 「나」「너」의 대립적 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 나를 정말 깨쳤다면 조그마한 자기 개인이 아니고 전 우주체의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禪宗 宗旨의 전체이다. 그래서 禪에서는 見性의 一大事라고 하여 수행 第一義로 한다. 견성이란 말은 東土 중국에 온 달마대사의 말이라고 한다. 즉 달마대사의 書라고 하는 血脈論에 특히 견성이란 문자를 처음 썼고, 견성에 대해 친절하게 설해 있다.
「만약 佛을 구하려거든 모름지기 見性하라. 性은 즉 佛이다. 만약 견성을 못하면 念佛 · 誦經 · 持戒 ·持齋 등 모두가 이익이 없다. 염불은 인과를 얻고, 송경은 총명을 얻고, 持戒는 生天을 얻고, 보시는 복을 얻을 뿐 佛을 구함에는 아직 따르지 못한다. 만약 자기를 밝게 요달하지 못했으면 모름지기 계 · 정 ·혜 三學을 겸비한 선지식을 찾아서 생사의 근본을 궁구하라. 견성을 못하면 가령 十二部經을 通達할지라도 생사 윤회를 면치 못한다. 三界에 苦를 받아서 벗어날 기약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선 부처가 되려면 견성해야 한다. 견성을 못한 사람은 다른 善의 행위가 있어도 선의 과보를 얻을 수 있지만 三界를 벗어나는 因은 얻지 못했으므로 진정한 佛道는 아니다. 참다운 불도는 진정한 自性을 보는데 있다. 自心是佛 佛是自心 心外無佛이라고 달마대사는 말했다. 佛을 구하려면 곧 견성하라. 佛은 자재한 사람, 無事無作의 성인이니, 만약 견성을 못하면 밖을 향하여 치달릴 뿐 佛을 구해도 얻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은 선의 종지를 철저히 표현한 말이다. 특히 六祖 혜능 대사에 이르러 이 견성이 근본사상이 되어 견성 제일로, 견성을 못한 사람은 論不及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래서 이 견성을 禪에서는 가장 중요시한다. 불교의 형성이 견성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깨달음〉이 없는 불교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見性이란 글자 그대로 성품을 본다는 말이다. 선종에서는 항상 「本心· 本性을 봐 오라」「너의 본래의 面目을 봐 오라」「너의 본래의 면목을 나타내라」고 하는데, 어떤 性이란 것이 우리들 몸 속에 고정적으로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 신체 내에 고정된 性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그러면 견성이란 실제의 의미는 무엇인가? 有心 즉 의식적 생각을 모두 根絶하는 것이다. 달마대사는 悟性論에서 心卽空이라고 앎을 이름하여 見佛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正解正見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체 正見을 얻은 이는 마음이 空하여 없는 줄 알아서, 迷 · 悟를 초월한다.」즉 깨달음도 없고, 깨닫지 못함도 없는 데를 正解正見이라 했다. 그래서 眞見이란 보지 못하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이 보는 見을 말한다. 곧 十方에 충만하되 보지 않는 見이다. 見은 見이 아니므로 범부의 소견은 모두 망상이라 했고 寂滅하여 見이 없어야 비로소 眞見이라 했다. 마음의 경계가 대립하면 그 가운데서 見이 생기는 것인데, 만약 안으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밖으로 경계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心 · 境의 둘이 깨끗함을 이름하여 眞見이라 하고, 이의 解를 지을 때를 즉 正見이라 했다. 우리가 본다든가 보인다든가 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과 마음의 상대인 모든 사물에 대한 상대적 생각으로 그것은 범부의 분별이고 망상인 것이다. 그래서 이 대립적 의식을 버리고 초월적 세계를 개척하는 것이 즉 見性이다. 다시 말하면 心이라든가 境이라든가 迷라든가 悟라고 하는 그 일체의 能所와 主客 곧 분별적 對境이 있을 때는 見性에 이르지 못한 때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모든 대립적 의식을 다 때려 부수어서 是非 · 善惡 · 迷悟 · 凡聖 · 天堂 · 地獄 · 煩惱 · 보리 · 생사 · 열반이란 분별적 견해를 일소하여 本來無一物의 경지에 이른것을 말한다. 대립적 의식에서 분별하고 추측하고 思議하는 정신상태에서는 결국에는 설명도 안되고 생각할 여지도 없이, 대립적 의식을 내던진 궁지에 빠져 아무 것도 없다는 心境에까지 이르도록 정진하여야 한다. 이것을 絶對智, 無分別智, 根本智, 實智, 空智라고 한다.
설봉(雪峰) : ① 속성은 會, 이름은 義存, 당나라 선종 스님. 821년 천주 남안에서 태어나 12세 때 아버지를 따라 포전 옥윤사 慶玄스님의 侍童이 되고 17세에 승려가 되다. 부용산 恒照를 스승으로 섬기며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禪匠을 만나다. 함통 11(870)년 行實의 청으로 상골산에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겨울이 되면 이 산에 가장 먼저 눈이 내린다고 하여 雪峰이라 이름하다. 희종 황제에게 眞覺禪師란 호와 紫袈裟를 받고, 閩(민)에 가서는 閩王의 후의를 입었으며, 개평 2(908)년 87세를 일기로 入寂하다. ② 조선시대 승려. 懷淨의 법호.
성문(聲聞) : 소리를 듣는 사람이란 뜻으로 제자라고도 번역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는 佛在世時의 제자를 말하지만 緣覺 · 菩薩에 대해 二乘 · 三乘의 하나로 열거할 때는 부처님의 敎說에 따라 수행을 하지만 자기 혼자만 해탈하는 것을 목적하는 出家의 聖者를 뜻한다. 佛敎徒 가운데 성질 · 능력이 얕은 下根機 또 四諦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쌓아 四妙門果를 깨닫고 마침내는 心身을 다 滅盡하여 灰身滅智의 無餘涅槃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는 사람들의 뜻이다. 성문을 위한 敎를 聲聞乘, 그 교를 설한 經典을 聲聞藏이라 한다. 聲聞乘은 緣覺乘과 같이 소승에 속한다. 법화경 卷二에는 성문이 마음을 바꾸어서 대승으로 轉向하는 경우, 이를 聲聞이라 칭하는 것은「다른 사람을 제도하고자 가르침을 다른 사람에게 설하여 들려주는 사람이란 뜻이다」라고 하며 이것을 大乘聲聞(佛道聲聞)이라 부른다.
世親의 法華論 卷下에는, 성문을 넷으로 분류했다.
(1) 소승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를 같이하는 決定성문,
(2) 人無我에 집착함으로 성문에 만족하여 慢心을 일으키는 增上慢성문,
(3) 대승에 뜻을 두었으나 바꾸어 성문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대승으로 향하는 退菩提心성문,
(4) 불 ·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거짓으로 성문이 되어 나타난 應化성문이다. 法華玄論 卷四에는 여기에 다시 佛道성문을 넣어서 五種성문이라 한다.
보살(菩薩) : 菩提薩埵 · 菩提索多 · 冒地薩怛縛 · 扶薩이라고도 하며, 道衆生, 覺有情, 道心衆生 등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無上菩提를 구하여, 衆生을 이익케 하고, 모든 波羅蜜의 行을 닦아서 미래에 불타의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 三乘의 하나. 十界의 하나. 보살에게는,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有情(心識을 가진 자. 衆生)이라고 하는 뜻이나, 혹은 菩提(구하는 목적인 깨달음)와 薩埵(敎化의 대상으로서의 중생)를 대상으로 하여 자기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것, 菩提를 얻을려고 하는 용맹한 큰 마음 등의 뜻이 있어, 聲聞이나 緣覺도 각기 菩提(覺智)를 구하는 점에서는 보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특히 無上菩提를 구하는 大乘의 수행자를 摩訶薩埵(摩訶는 크다는 뜻) · 摩訶薩 또는 菩薩摩訶薩 · 菩提薩埵摩訶薩埵 · 摩訶菩提質帝薩埵 등이라고 하여, 二乘으로부터 구별하여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 .......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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