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70권. 元魏의 瞿曇 般若流支 번역. 7단으로 나누어 선악의 업에 의하여 받는 과보에 차별 있음을 말하고, 各處의 형편을 자세히 말하였음.
참고
구담(瞿曇) : 범어 Gautami. 또는 俱譚·具譚·喬答摩·地最勝이라 번역함. 석가종족의 姓. 특히 석존을 가리킴.
반야류지(般若流支) : 智布라 번역한다. 중인도 바라내국 사람으로서 바라문 종족에 속하며 姓은 瞿曇이다.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워 경의 뜻을 통달하여 神理가 標異, 方言을 잘 알았다. 516년(북위 희평 1년)에 중국 낙양에 와서 538년(원상 1년)부터 543년(무정 1년)까지는 업도의 금화사·창정사와, 尙書令儀同高公의 집에서 經·論 14부 85권(18부 92권)을 번역하였다.
선(善) : 不善과 無記(善도 不善도 아닌 것)를 더하여 三性이라고 한다. 현재 ․ 미래에 걸쳐서 自他에 이익을 주는 白淨의 法을 善이라 하고, 이에 反하는 것을 不善(惡)이라고 한다.
앞에 것을 白, 뒤에 것을 黑이라고도 한다.
① 二善. (1) 有漏善과 無漏善을 일컬음. 有漏善이라 함은 번뇌의 더러움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世間의 善으로, 이로 인하여 미래에 즐거운 果報를 받지만, 有漏善은 法性의 이치에 꼭 들어맞지는 않으며 차별적인 相을 취해서 닦는 有相善이기 때문에, 그 의미로 相善이라고도 한다. 無漏善이라 함은 번뇌의 더러움과는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出世間의 善으로, 이것에 의하여 미래의 과보를 받게 되는 수는 없다. 더욱 無漏善은 涅槃(이것도 마찬가지로 無漏善이다)의 깨달음을 얻는 데에 필수의 善이다. (2) 止善(소극적으로 不善을 물리쳐 制止하는 것)과 行善(적극적으로 善을 행하는 것)을 말함. (3) 定善(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고 산란한 妄念을 그쳐서, 곧 定心에 의해서 닦는 善과 散善(산란한 마음, 곧 평상시의 마음가짐으로 惡을 그치고 善을 닦는 것)의 일컬음.
② 世福 · 戒福 · 行福의 三福을 각기 世善(世俗善) · 戒善 · 行善이라고도 한다.
③ 三善. 初善 · 中善 · 後善을 일컬음.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법화경의 序分 · 正宗分 · 流通分의 三分(三段)을 善이라고도 한다.
④ 四種善. 勝義善(涅槃을 말함)과 自性善(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善인 것. 곧 無貪 · 無瞋 · 無癡의 三善根과 慚 · 愧의 2)과 相應善(自性善과 相應하는 것에 의해서 善이 되는 心 · 心所)과 等起善(自性善과 상응하는 善으로부터 引起)되어 善이 되는 身 · 語의 二業 및 得 · 四相 · 二無心定)을 일컬음.
⑤ 四種不善. 四種善의 반대. 勝義不善 · 自性不善 · 相應不善 · 等起不善을 일컬음.
⑥ 七種善. 生得善(先天的으로 가지고 있는 善)과 聞善과 思善과 修善(이상의 3은 聞法과 思惟와 禪定의 노력의 결과로서 얻어진 이른바 加行得善)과 學善(有學位에서 일으키는 善)과 無學善(無學位에서 일으키는 善)과 勝義善(涅槃)의 일컬음. 이 가운데 前四는 見道(비로소 無漏智가 생기는 자리)에서 앞의 凡)夫 때 일으키는 善으로 有漏善이며, 後三은 見道 이후의 聖者가 일으키는 善으로 無漏善이다(俱舍論光記卷二).
⑦ 七善. 頓敎가 가진 7종의 善. 時善(時節善이라고도 한다. 前出의 三善과 같은 것으로 序分 · 正宗分 · 流通分이 善인 것) · 義善(의미가 深遠) · 語善(言語가 巧妙) · 獨一善(純一無雜의 敎) · 圓滿善(완전 圓滿의 敎) · 調柔善(極端으로 편벽된 더러움이 없음) · 無緣慈善(淸淨한 無緣의 자비의 相이 있음)<法華文句 卷七>.
⑧ 十一善. 唯識宗에서 세우는 11종 善의 心所. 信 · 慚 · 愧 · 無貪 · 無瞋 · 無癡 · 勤 · 輕安 · 不放逸 · 行捨 · 不害의 일컬음.
⑨ 기타 雜善(他力念佛에 대한 自力의 諸善), 雜毒의 善(三毒 곧 貪 · 瞋 · 癡의 번뇌를 섞인 凡夫의 善), 世善(世俗善이라고도 한다. 有爲의 善, 有漏善, 世福을 말함) 등이 있다.
악(惡) : 不善의 뜻. 道理에 배반하여 自他를 손해하고, 현재 및 장래에 괴로움을 초래하는 因이 되는 성질. 善 · 惡 · 無記(非善非惡)의 三性으로 나누는 경우의 하나. 이런 때는 자세히는 惡性이라고도 하는데, 또 造惡을 좋아하는 성질까지도 惡性이라고 한다.
① 살생(殺生) · 투도(偸盜) · 사음(邪婬) · 妄語(兩舌 · 惡口 · 綺語를 포함) · 飮酒를 五惡이라 한다(無量壽經 卷下).
② 惡時 · 惡世界 · 惡衆生 · 惡見 · 惡煩惱 · 惡邪無信盛時를 六惡이라 하고, 十惡 · 五逆 · 四重罪 · 破戒 · 破見 · 謗法 · 一闡提를 七惡이라고 한다.(愚禿鈔 卷下).
업(業) : 범어 karman의 번역. 羯磨라 音譯한다. 造作의 뜻. 行爲 · 所作 · 意志에 의한 身心의 활동. 意志에 의한 身心의 생활을 의미한다.
➀ 일반으로 業을 身 · 語 · 意의 三業으로 나눈다. 有部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이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 뜻이 意業이고, 그 의지를 신체적 행동과 言語的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 身業과 語業(口業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또 業을 意志의 활동인 思業과 思業이 끝나고서 행하는 思已業의 二業으로 나누는데 이 경우, 思業은 意業이고, 思已業은 身 · 語 二業이다. 三業으로서의 작용의 本體(業體 · 業性)에 대해서, 有部등에서는 意業은 思(意志), 身 · 語業은 色法(物質的인 것)이라고 하고, 經量部나 大乘에서는 모두 思(意志)라고 한다. 불교 본래의 입장은 후자라고 생각된다.
➁ 有部등에서는 物質的인 것을 本體로 하는 業(色業) 곧 身業과 語業으로, 表(作 · 敎)와 無表(無作 · 無敎)가 있다고 한다. 表業은 밖으로 표현되어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것, 無表業은 無表色이라 이름 지어지는 일종의 色法(보통의 물질과 같이 粗雜하지 않다)을 本體로 하고, 강한 善惡의 業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그 業은 身表業과 語表業과 및 定등이다. 이 無表業에 3종이 있다. 受戒와 定(어느 것이나 다 善)에 의해서 일어난 律儀와, 습관적이고 특히 강한 결단을 가지고 한 惡業에 의해서 일어난 바의 不律儀와, 그 이외의, 때에 따라 선악의 업에 의해서 일어난 非律儀非不律儀(處中의 無表)의 3종이 그것이다. 律儀無表는 戒를 버리고 定에서 나오기까지 계속되고, 그 밖에 無表는 특별한 障害가 없는 한 일생동안 계속된다. 이들 無表 중에서 善한 無表에는 惡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고, 惡한 無表에는 善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어서, 각기 그 사람의 後天的 성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또 身 · 語의 각기 無表 및 無表業에 意業을 더하여 五業이라고 한다.
➂ 선악의 업을 지으면, 그것에 의해서 그에 상응한 고락의 갚음(果報 · 異熟)이 생긴다. 이것을 業因에 의해서 業果가 생긴다고 한다. 非善非惡의 無記業은 果를 끄는 힘이 없다. 이 業因과 業果의 관계를, 有部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業 그것은 三世에 實在하는 것으로서, 업이 현재에 있을 때 이것이 因이 되어서 어떠한 未來의 果를 끌것인가가 결정되고(이것을 取果라고 한다), 업이 지나가 버림으로부터 果에 힘을 주어서 果를 현재에 이끌어 낸다(이것을 與果라고 함). 또한 經量部에서는, 業은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데, 그 業은 果를 생하는 종자를 識위에 심어 주어, 그 종자가 果를 끌어 일으킨다고 한다. 이 종자의 思想은 有部의 無表業說과 같은 것이다.
④ 業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總體로서의 일생의 果報(갚음)를 이끄는 業. 곧 人間界라든가 畜生界에 태어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는 業을 引業(牽引業 · 總報業 · 引因)이라 하고, 人間界등에 태어난 자에 대해서 개개의 구별을 주어서 개체를 완성시키는 業을 滿業(圓滿業 · 別報業)이라고 한다. 引業의 갚음을 總報, 滿業의 갚음을 別報라고 하여, 이 二業을 總別二業이라고 한다. 더욱 有部에서는 하나의 引業에 의해서 一回의 生을 받아 다시 그 위에 많은 滿業에 의해서 이 生이 완성된다고 說하고, 多業이 일생을 이끌거나, 一業이 多生을 끌거나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또 業에는, 山河大地(器世間)와 같은, 많은 生物에 공통하는 果報를 끌어 일으키는 共業과, 개개의 生物의 신체와 같은, 개개의 생물에 固有한 果報를 引起하는 不共業이 있다.
⑤ 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善業(安穩法)과, 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不善業(惡業 ․ 不安穩法)과, 善惡 어떤 것도 아닌 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無記業의 셋을 三性業이라고 한다. 惡業은 罰하지 않으면 안되는 業이기 때문에 罰業 · 罰이라 하고, 身 · 口 · 意의 三罰業 또는 三罰이 있다. 中阿含經 권三十二에는 身 · 口 · 意의 三業중에서 意業이 가장 重하다고 說하여, 불교가 動機論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자이나敎에서는 身 · 口 · 意의 三罰중 身罰을 가장 重하다고 하여, 結果論에 빠져 있다. 또 熟慮한 뒤에 決斷하여 일부러 한 故思業(故作業)과 그렇지 않고 뜻밖에(無意識的) 잘못한 不故思業은 그것만으로는 갚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故思業중에 적극적으로 한 강하고 중대한 業을 增長業이라고 하고, 소극적으로 한 약하고 가벼운 故思業은 不增長業이라고 한다. 점점 강하게 되는 業은 增上業 혹은 增長業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造作業이라고 한다. 欲界의 惡業과 같이, 眼 · 耳 · 鼻 · 舌 · 身의 五識으로 받는 苦만을 受의 果報로 가져오는 業을 身受業, 色界 · 無色界(初禪天을 除함)의 善業과 같이 제六意識으로 받는 樂만을 受果報로 가져오는 業을 心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二受業이라 한다. 또 苦受와 樂受와 捨受(不苦不樂受)의 果報는 각기 欲界의 惡業과 欲界에서 色界 第三禪까지의 善業과, 色界 第四禪 이상의 善業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 이 세 業을 각기 順苦受業 · 順樂受業 · 順不苦不樂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三受業이라고 한다. 또 欲界의 善業은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福樂, 欲界의 惡業은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에 非福業, 色界 · 無色界의 善業은 그 禪定의 힘에 의해서 갚음(報)이 정해져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不動業이라 하고, 합하여 福등의 三業(또는 三行)이라고 한다. 또 惡業은 黑業, 善業은 白業이라고도 하고, 여기에 異熟의 좋아함직(白)한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黑)에 배당하면, 欲界의 不善業은 성질이 不善하여 異熟도 좋아하지 않는 黑黑異熟業, 色界 · 無色界의 善業은 성질은 善하고 異熟도 좋아하기 때문에 白白異熟業, 欲界의 善業은 성질도 異熟도 黑白相雜하여 있기 때문에 黑白黑白異熟業, 번뇌와의 관계가 斷切된 無漏業은 상대적인 黑白을 초월하여 異熟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非黑非白無異熟業이라 하고, 이것 둘을 합하여 四業이라 한다. 四業중에 앞의 3은 有漏業으로, 이것들은 최후의 無漏業에서 斷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內心을 남 모르게 감추고 아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業을 曲業이라고 하고, 또한 성냄에 의해서 일어나는 業을 穢業이라 한다. 탐냄으로 의해서 일어나는 業을 濁業이라고 하고, 이것들을 합하여 曲穢濁의 三業이라고 한다. 八聖道의 第四支는 正業으로, 그 반대는 邪業이다.
⑥ 業에 의해서 그 갚음을 받는 시기에 다름(異)이 있기 때문에, 順現業(順現法受業) · 順生業(順次生受業) · 順後業(順後次受業)의 三時業을 나누어, 각각 이 세상에서 지은 業에 응해서, 그 갚음을 이 세상에서 받는 것. 다음 태어난 세상에서 받는 것, 제3生 이후에 받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 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不定業(順不定受業)이라 하고, 거기에 三時業을 더하여 四業이라고 한다. 또 不定業을 갚음의 내용(異熟)의 定 · 不定에 의해서 時不定異熟定業과 時不定異熟不定業의 둘로 나누고, 여기에 三時業을 더하여 五業으로 하며 또 三時業을 각기 時定異熟定과 時定異熟不定으로 나누어 6으로 하고 둘의 不定業을 더하여 八業이라고도 한다.
⑦ 業이 작용할 또는 의지할 곳이 되는 것. 혹은 有情을 苦樂의 果報(갚음)에 인도하는 通路가 되는 것을, 業道(根本業道)라 하는데, 여기에 十善業道와 十惡業道가 있다. 有部에서는, 十善 · 十惡에는 業인 것과 業이 아닌 것(無貪 · 無瞋 · 正見, 貪 · 瞋 · 邪見)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意志(思)가 거기에 작용하는 바의 의지할 곳이 되기 때문에 業道라 한다고 했다. 經量部나 大乘에서는, 十善 · 十惡은 모두 業이어서 意志(思)를 體로 하는데, 처음의 七業道에 있어서는 身 · 口를 發動하는 意志(思)가, 思惟하여 결정하는 意志(思)의 작용하는 바가 되기 때문에 業道라 하고, 또 그 發動의 생각에 의해서 생긴 생각의 종자도 業道라 한다. 뒤의 셋 곧 貪 · 瞋 · 癡 등은 順次로, 또 交互로 생기기 때문에, 앞의 것은 뒤의 것 때문에 業의 道가 되고, 또 有情을 지옥등의 惡趣등에 인도되는 道가 되기 때문에 業道라고 說함. 또 業에는 준비적 행위(加行)와 목적을 수행하는 그 순간의 행위(根本)와 完遂한 뒤의 종속적인 행위(後起)가 있는데, 이 가운데 근본만을 業道라고 한다.
⑧ 煩惱道 · 業道 · 苦道(→三道).
⑨ 業은 갚음(果報, 異熟)을 내는 因이 되기 때문에 業因 · 因業이라 하고, 業에 의한 갚음을 業果, 業報라 한다. 또 業因에는 業을 일으키는 원인(번뇌등)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고, 因業에는 因과 業(主因과 助緣)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業果를 끌어 당기는 힘을 業力, 業에 의한 괴로운 갚음, 또는 業과 그 苦인 갚음을 業苦라고 한다. 惡業과 번뇌를 아울러서 業結 · 業惱라고 한다. 惡業 때문에 생긴 가리움, 障害를 業障 · 業累라고 한다. 業에 의해서 갚음을 받는 것은 業感, 過去世(前生 · 前世)에 지은 業은 宿業 또는 前業, 宿業에 의해서 받은 壽命은 業壽 · 業受. 宿業에 의한 벗을 수 없는 중한 病은 業病, 宿業에 의해 재앙은 業厄이라고 한다. 業이 갚음을 生하는 도리는 天道와 같이 必然이기 때문에 業天, 業은 그림자와 같이 몸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業影, 업은 중생을 迷界에 묶어 놓기 때문에 業繫(繫業이라고 하여도 거의 같다) · 業羂 · 業縛 · 業繩이라 한다. 業은 그물과 같이 사람을 붙잡아서 迷界에 머물게 하므로 業網, 惡業은 때나 먼지와 같이 몸을 더럽히기 때문에 業垢 · 業塵이라고 한다. 또 惡業의 작용을 火 · 魔 · 賊에 비유해서 業火 · 業魔(十魔의 1) · 業賊등이라 하고, 지옥에는 중생의 선악의 業을 비추어 내고 재고 기록하는 業鏡 · 業秤 · 業簿 등이 있다고 한다. 惡業의 힘을 바람에 비유해서 業風이라고 하는데, 또 惡業에 의해서 招來된 猛風(지옥등의)도 業風이라고 한다. 宿業에 의한 神通力으로서 業通(報通)이 있다.
⑩ 無間地獄의 갚음을 부르는 것을 無間業, 有情을 欲界등의 三界에 매어두는 業을 三界繫業이라고 한다. 번뇌는 業을 일으켜서 有情을 가지가지의 세계에 태어나게 한다. 곧 生을 윤택하게 하고, 이 미래의 生을 부르는 業을 潤業 · 潤生業이라고 한다. 또 자기의 지은 業의 갚음을 자기가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自業自得이라고 한다.
⑪ 十二緣起의 第十支인 有를 해석하는데, 후대에 와서는(阿毘達磨에서는) 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것을 業有라고 한다.
⑫ 觀無量壽經에는 施 · 戒 · 行의 三福은 淨土에 往生하기 위한 正因으로, 淨業(淸淨業)이라고 說해져 있다. 일반으로 염불해서 彌陀의 淨土에 往生하고자 원하는 것을 淨業이라 한다.
과보(果報) : 異熟이라고도 한다. 因으로서의 業 곧 業因으로 말미암아 얻는 보답의 결과. 여기에 二報가 있다.
(1) 總報는 引業(總報業)에 의하여 引出되는 總體로서의 果報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일단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그 인간으로서의 공통된 생존을 누리게 됨을 말한다.
(2) 別報는 滿業(別報業)에 의하여 引出되는 차별의 果報로서 滿果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男 · 女 · 貧 · 富의 차가 있게 되는 등이 그것이다. 또 三時業에 대한 각각의 果報를 합하여 三報라 한다. 곧
(1) 順現報는 現報라고도 하며, 금생에 業을 지어 금생에 받는 果報를,
(2) 順生報는 生報라고도 하며 금생에 業을 지어 다음生에 받는 果報를,
(3) 順後報는 금생에 業을 지어 次生을 넘어 未來世 이후에 받는 果報를 받는다. 六趣 가운데 人趣와 天趣의 果報는 五戒 十善의 因에 의하여 받는 훌륭한 報이므로 人天勝妙의 善果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凡夫의 迷惑의 경계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顚倒의 善果라 부른다.
차별(差別) : ① 現象界에 있어서 個個의 事象은 이것과 저것이 서로 別異한 특성을 가지는 관계에 있음을 차별이라 하며, 萬象의 보편절대한 本體(眞如)는 차별이 없는 것을 平等이라 한다. 다만 차별과 평등을 아주 隔離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差別卽平等으로 보는 것이 大乘佛敎이다.
② 또 다른 것과 구별되는 어떤 사물의 특수성을 殊勝하다는 의미로 차별이란 말을 쓰기도 하다.
③ 因明(論理學)에서는 命題(즉 宗)의 主辭를 自性이라고 하는데 대해 그 賓辭를 차별이라고 한다.
만상(萬象) : 모든 물건의 드러난 형상.(국어사전)
처(處) : 계(界)→범어 dhatu의 번역. 駄都라 음역한다. 層 · 根基 · 要素 · 기초 등의 뜻이 있으며 種族의 뜻이 있다. ① 여러 가지 분류의 범주가 되는 호칭. 예를 들면, 眼 · 耳 · 鼻 · 舌 · 身 · 意 · 色 · 聲 · 香 · 味 · 觸 · 法 ·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의 十八界와 地 · 水 · 火 · 風 · 空 · 識의 世界 등과 같은 것. 또, 欲界 · 色界 · 無色界의 三界를 말할 경우, 世界 · 境界란 의미에 가깝다. 唯識宗에 일체법의 種子를 界라고 한 것은 요소, 因의 뜻이다. ② 범어 동사의 語根을 말하며 字界라고도 한다.
계취(界趣) : 일체 중생이 윤회하면서 태어나는 욕계·색계·무색계 등 三界와, 중생이 지은 業力에 따라 태어나게 되는 천상·인간·수라·지옥·아귀·축생의 六趣를 말함.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ㅈ(지읒)~ㅊㅋㅌㅍᄒ(히읗)'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공(眞空) (0) | 2018.04.23 |
---|---|
파상종(破相宗) (0) | 2018.04.22 |
천안(天眼) (0) | 2018.04.21 |
집착(執着) (0) | 2018.04.21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0) | 2018.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