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 앓으니 보살도 앓는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문수보살은 유마힐을 문병하기 위해 여러 대중과 함께 베살리로 갔다. 그때 유마힐은 문수보살 일행이 오고 있는 것을 알고 가구를 치우고 시중드는 사람들을 내어보내 홀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문수보살이 들어서자 유마힐이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문수보살님. 올 것이 없는데 오셨고 볼 것이 없는데 보십니다.」
문수보살이 유마힐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거사님. 왔다 해도 온 것이 아니며 간다 해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와도 온 곳이 없고 가도 간 곳이 없으며, 본다는 것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병환은 좀 어떠십니까? 부처님께서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병은 어째서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됐으며,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겠습니까?」
유마힐은 대답했다.
「내 병은 무명(無明)으로부터 애착이 일어 생겼고, 모든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에 들고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게 마련입니다. 중생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병은 대비심(大悲心)에서 생깁니다.」
「거사님의 병명은 무엇입니까?」
「내 병에는 증세가 없으므로 볼 수 없습니다.」
「그 병은 몸의 병입니까, 마음의 병입니까?」
「몸과는 관계 없으니 몸의 병은 아니며, 마음은 꼭두각시 같으므로 마음의 병도 아닙니다.」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 네 가지 요소 중 어디에 걸린 병입니까?」
「이 병은 地의 요소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地의 요소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水 · 火 · 風의 요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병이 네 가지 요소로부터 생겨 앓고 있기 때문에 나도 병든 것입니다.」
「병든 보살은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리고 극복해야 합니까?」
『병든 보살은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 병은 모두가 전생의 망상과 그릇된 생각과 여러 가지 번뇌 때문에 생긴 것이지 결코 병에 걸려야 할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몸이라고 가칭(假稱)하였을 뿐 네 가지 요소에는 실체로서의 주체는 없으며, 몸에도 역시 내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이 병이 생긴 것은 모두가 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병의 근본을 알면 곧 나에 대한 생각도 중생에 대한 생각도 없어지고 존재에 대한 생각이 일어날 것이니 그때는 또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몸은 여러 가지 물질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생길 때는 물질만이 생기고 멸해도 물질만이 멸한다. 또 이 물질은 서로 알지 못해 생길 때 내가 생긴다고 말하지 않으며 멸할 때 내가 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병든 보살이 물질에 대한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이 생각도 또한 뒤바뀐 생각이다. 뒤바뀐 생각이란 커다란 병이다.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떠난다고 하는 것은 나와 내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적인 것을 떠난다 함은 주관과 객관을 떠나 평등한 행을 하는 것입니다.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나와 열반이 평등한 것이며 나와 열반은 모두 공(空)한 것입니다. 공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이름에 지나지 않으며 그와 같은 상대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 평등함을 얻으면 다른 병은 없고 오직 공에 대한 집착만이 남지만 이 집착 또한 공인 것입니다.
이 병든 보살은 이제 괴로움과 즐거움을 감수(感受)하는 일이 없지만 중생을 위해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을 감수합니다. 또 불법(佛法)이 중생계에서 충분히 성취되기 전에는 그 감수하는 일을 버리고 깨달음의 경지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자기의 몸이 괴로우면 악의 과보를 받는 중생을 생각하여 「나는 이미 괴로움을 극복하였으므로 모든 중생의 괴로움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비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병의 근본을 끊기 위해 가르쳐 이끌어야 합니다.
병의 근본은 반연(攀緣)입니다. 마음이 대상에 대하여 작용할 때 그것은 병의 근본이 됩니다.
마음이 작용하는 대상은 삼계(三界)입니다. 이 마음의 작용을 끊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마음이 대상에 대해 작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생각을 떠나는 것이며, 상대적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며, 이것을 떠나는 것이 곧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보살님, 병든 보살이 그 마음을 극복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보살은 마음을 극복하는 일에 집착하지 않으며, 극복하지 않는 일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참고
반연(攀緣) : 心이 대상(三界)에 의지해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 번뇌 妄想의 始元이며 근본이라고 한다.(불교학대사전), .....대상(對象)→1. 어떤 일의 상대 또는 목표나 표적이 되는 것. 2. 의식, 감각, 행동 등의 작용이 향하는 객관의 사물.(다음,한국어)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성전(維摩經 問疾品)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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