ᄇ(비읍)

불상기원(佛像起源)

근와(槿瓦) 2018. 4. 15. 02:04

불상기원(佛像起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增一阿含經 28이나 止觀輔行 1 등의 경전상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 재세시에 코삼비국(憍賞彌國)의 우전왕(優塡王)과 코살라국의 파사닉왕(波斯匿王)이 각기 旃檀木紫磨金을 사용하여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는 불멸후 500여 년간은 불상이 조성되지 않았고 예배대상은 탑 · 보리수 · 金剛寶座 등의 상징적인 대용물이었다고 한다. 불상출현 이전의 이 시기를 無佛像時代라 한다. 불상의 발상지는 간다라 지방이라는 설과 머투라 지방설의 논쟁이 있으나 최근에는 간다라와 머투라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거의 동시에 발생하여 점차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참고

불상(佛像) : 부처의 形像을 말함. 널리 보살·羅漢·明王·諸天 등의 도 포함해서 말하는 수도 있다. 彫塑像·畵像(繪像)의 두 가지가 있는데, 前者만을 국한해서 佛像이라고 하고, 後者圖像이라고 일컫는 수가 있다. 인도에서는 옛날에는 불타의 모습을 彫畵하는 것은 神聖을 모독하는 것이라 하여, Sanchi등의 古彫刻에는 法輪·菩提樹·佛足跡 등을 가지고 불타를 상징하는데 그쳤는데, 大乘佛敎가 일어남과 동시에 佛像彫畵가 행하여지게 되어, 모든 大乘經典에는 造像의 인연이나 功德 등을 말하고 있다.

彫塑像에는 鑄像(金佛鎚鍱像(押出像·金屬板으로 母型에 떠서 만든다木像(木佛石像·塑像(泥像夾紵像(乾漆像. 麻布를 굳게 한다紙泥像·磚像·蠟像 등이 있다. 圓像에는 絹本·紙本에 그리는 것 외에, 壁畵·刺繡(繡佛像織成 등이 있다. 鑄像에는 材料에 의해서 金像·銀像·金銅像·鍮石像·鐵像 등의 종류가 있고 木像에는 만드는 법에 의해서 一木造寄木造가 있고, 用材(御衣木이라 한다)栴檀(香木의 일종)하며, 더욱이 鍍金하고, 혹은 金箔을 누루고 혹은 金泥·彩色을 칠하는 수가 있다.

佛像은 그 威儀에 따라 立像·坐像·倚像·臥像·飛行像 등으로 구별되고, 身長에 따라 丈六像(불타의 身長은 보통사람의 배로 一丈六尺이라고 하는 데에 근거한다半丈六像(丈六半分. 八尺大佛像(丈六 이상의 大像等身像(願主와 동등인 身長胎內等身像(丈六像 등의 胎內安置하는 一磔手半 一尺二三寸)이라 한다.

如來像은 대개 出家男形으로 袈裟를 입고 寶冠瓔珞 등을 머리에 얹지 않지만, 誕生佛(불타가 降誕할 때, 바른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킨 형용의 불상)과 같이 裸形像인 것도 있고, 보살상은 숭고한 장부 또는 온화한 여자모양으로 寶冠瓔珞 등을 몸에 걸친 在家居士形을 본뜨고 羅漢像出家形으로 비구 수련의 을 나타냈으며 明王像忿怒形, 諸天像武裝形·女形·神形·鬼形·天人形·童子形 등을 하고 있다. ·菩薩像 등의 印契·持物·身色·衣色 등은 각기 다르고, 西藏에서는 불·보살 등의 얼굴의 치수의 비율을 정하여 佛滿月面·菩薩雞子面(새의 알과 같아 慈愛이 있는 얼굴佛母芝蔴面·明王四方面 등의 형으로 한다.

牡形으로 金屬板으로 본을 만들어서 佛像板佛하고, 圓板의 중앙에 半肉彫佛像을 부착시켜 매어 달은 것을 懸佛, 屋外에 있는 露佛濡佛, 불타가 미소짓는 상을 한 것을 笑佛 등이라 한다.

斗帳으로 감추어서 모습을 볼 수 없게 한 것을 秘佛, 같은 모양의 小佛像을 무수히 만들어서 安置한 것을 千體佛, 佛像胎內에 수용한 小佛像胎內佛이라고 한다.

佛像安置하는 牀座臺座라고 하며, 師子座(부처를 人中師子라고 하기 때문에 부처의 坐所師子座라 하는 수도 있다蓮華座·荷葉座(잎의 臺座須彌座(須彌山形臺座) 등이 있다.

 

지관보행(止觀輔行) : 止觀輔行傳弘決의 약칭.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본래는 10권이었는데 40권으로 늘여서 만듬. 줄여서 止觀輔行·輔行·弘決이라고도 함. 摩訶止觀을 주석한 책.

 

우전왕(優塡王) : 범어 Udayana. 구역에는 于闐 · 優塡이라 하고, 신역에는 優陀廷 · 鄔陀衍那 · ()陀演那伐蹉라 함. 拘睒彌國의 왕의 이름이다. 出愛라 번역한다. B.C. 6세기경의 인도 반사국의 왕 푸라판타왕의 왕자로서 母后가 만삭 때에 매가 채어가 히말라야의 나무 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우데나(Udena) 또는 우다야나(Udayna)왕을 이르며, 신앙심이 깊은 국왕으로서 원시 불교성전을 비롯하여 후대의 각종 경전에도 그의 전설이 전해지고, 왕의 이름을 붙인 優塡王經도 있다. 그의 생애와 모험은 많이 미화되어 카타사리트사가라와 그밖의 많은 인도 문학작품 속에 文藝說話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부처가 33에서 생모를 위하여 설법을 하였을 때, 그는 부처를 배알하지 못한 괴로움으로 해서 병이 생기자 많은 신하들이 그의 쾌차를 빌며 牛頭山의 향목 牛頭栴檀으로 佛像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인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한다.

 

우전왕경(優塡王經) : 佛說優塡王經 1. 西晋 法矩 번역. 이 경과 佛說大乘日子王所問經은 모두 大寶積經 97優陀延王會의 다른 번역이다. 우전왕의 제1 부인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須陀洹果를 얻었는데, 왕은 無比부인의 참소를 믿어 그 正后를 죽이고자 세 개의 화살을 쏘았으나 돌아와 왕의 이마 위인 공중에 머무르니, 왕은 크게 놀래어 후회하고 무비부인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가 참회하였다. 이 때 부처님이 부인을 위하여 설한 것.

 

바사닉(波斯匿) : 범어 Prasenajit. 파리어 Pasen=adi. 사위국의 왕이름. 和悅 또는 月光이라 번역. 玄奘勝軍, 義淨勝光이라 번역. 梵授王의 아들로 부처님과 같은 날 태어났다. 有部毘奈耶雜事憍薩羅國 勝光(바사닉)왕의 제2부인은 末利라고 한다(말리는 勝鬘이라 번역. 勝鬘經勝鬘夫人은 이 왕 부인의 딸이다. 母女가 이름이 같다). 본래 가비라성의 婢女로 부처님께 귀의한 福力으로 이 맞이하여 부인을 삼았다. 아들을 두니 惡生(Virudhaka.유리왕)이라 이름한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자립할 마음을 두니 長行大臣이 말렸다. 뒤에 왕이 長行大臣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가서 법문을 들으며 오래도록 나오지 않자, 長行의 뜻이 변하여 가만히 마차를 끌고 성으로 돌아아서 惡生太子策立하여 왕으로 삼고 대왕의 두 부인 行雨·勝鬘을 내쫓았다. 두 부인이 왕이 있는 곳으로 가던 중 왕을 만나 사건을 알리니, 왕은 승만부인에게 명하여 성으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는 行雨부인과 함께 왕사성을 향해 갔다. 성 밖에 있는 한 園林에 머물면서 부인으로 하여금 未生怨王(아사세왕)에게 자신의 방문을 알리니 未生怨王은 크게 기뻐하여 친히 나가서 마중을 하려 했다. 그러나 바사닉왕은 오랫 동안 먹지 못하여 배가 고파서 園主에게 무우(蘿菔) 다섯 개를 얻어 먹고 물가에 가서 물을 지나치게 먹은 후 霍亂이 나서 죽으니, 아사세왕이 뒤에 와서 하게 장사를 지냈다라고 한다. 傳說로서 波斯匿王造金像(經律異相 22에 나옴), 波斯匿王造牛頭旃檀像(經律異相 23에 나옴), 波斯匿王見十夢請佛解之(增一阿含經 41·經律異相 28에 나옴), 波斯匿王女金剛醜女念佛改形(賢愚經 2 波斯匿王金剛品·經律異相 34·雜寶經 百緣經에 나옴), 波斯匿王女善光嫁乞人(雜寶藏經 2에 나옴), 波斯匿王女婆陀死王求贖命(經律異相 28에 나옴), 波斯匿王太后崩王求贖命(波斯匿王太后崩塵土坌身經에 나옴), 波斯匿王塗藥鼓(野守鏡下). 그리고 故事로는 波斯匿王遊獵得末利夫人(四分律 13·經律異相 28에 나옴), 波斯匿女發心 등이 있다.

 

() : 범어 stupa. 팔리어 thupa. 바르게는 塔婆라 음역. 또는 兜婆 · 窣都婆 · 藪斗婆 · 私倫簸 · 蘇倫婆라고도 음역. 方墳 · 圓塚 · 歸宗 · 高顯 · 聚相이라 번역. 본래는 부처님 사리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높이 쌓은 무덤. 또는 를 말하는 것. 유골을 묻지 않고 다만 특별한 靈地임을 표시하기 위하거나, 또는 그 덕을 앙모하여 은혜를 갚고 공양하는 뜻으로 세워진 것은 制底 · 支提 · 質底라 하여 탑파와는 판연히 구별하였으나, 후세에는 두 가지를 혼동하게 되다. 탑을 만드는 것은 옛적부터 행하여졌으니 석존이 가섭불의 사리를 위하여 흙을 쌓아 탑을 만들었다 하며, 또 석존의 사리는 여덟 곳에 나누어 탑을 쌓았고, 2~3세기 무렵에는 아육왕이 84천의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 때의 탑은 半球형으로 쌓았고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서 지평면에 이르게 하고 그 밑바닥에 사리 등의 유물을 장치하고 주위에 예배하는 길을 만들고 바깥에는 돌로 난간을 둘렀다. 후세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여 伏鉢塔 · 屋塔 · 露塔 · 柱塔 · 相輪塔 · 無縫塔 · 雁塔 · 三重塔 · 七重塔 · 五輪塔 · 龕塔 등의 구조로 발달하다. 만드는 재료에도 돌 · 벽돌 · 금속 · 나무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벽돌로 만든 塼塔, 우리 나라에서는 石造塔, 일본에서는 木造塔이 특수하게 발달하였다.

 

보리수(菩提樹) : 覺樹 · 思惟樹 · 道場樹 · 道樹라고도 한다. 석존이 그 나무 밑에서 成道(깨달음을 얻는 것)聖樹라는 뜻이며, 또 일반적으로 같은 종류의 나무이름. 이 나무는 원래 鉢多(범어 asvattha)라 일컫고 阿說他 · 阿輸他 · 阿濕波他 · 貝多라고 음역하며, 吉祥樹 · 元吉樹 · 無罪樹라고 번역한다. 그 열매를 畢鉢羅라 일컬은데서 畢鉢羅樹라는 이름을 얻었다. 無花果와 흡사한 뽕나무과 상록수로 힌두교도도 예부터 이 나무를 신성시하고 있다 한다. 불타가 성도한 곳에 있는 이 보리수는 守護神이 깃들어 있다 해서 보리수신이라고도 한다. 또 석존이외의 과거 · 미래 등의 諸佛에도 각각 다른 보리수가 있다고 한다. 미륵불의 그것은 龍華樹라고 하고 또 열매로 念珠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阿說他樹는 이와는 다른 나무이다.

 

금강좌(金剛座) : 범어 vajrasana의 번역. 金剛齊라고도 한다. 중인도 마갈타국 불타가야의 菩提樹 아래에서 釋尊께서 성도할 때 앉았던 견고한 자리. 위는 금강으로 되어 땅 위에 드러나고 아래는 金輪에 의지하였다고 한다. 지금 菩提樹 아래 있는 금강좌는 후세에 만든 것이고 당초에 있던 금강좌는 大塔 속에 있다고 한다.

 

간다라(健駄羅) : 범어 Gandhara. 인더스강 중류에 있는 폐샤워르(Peshawar)주변의 옛 이름. 인더스강 지류인 카불강 하류 지대에 있는 평원. 현재의 파키스탄 폐샤워르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이 산맥을 가로질러 고대 중앙 아시아와 서부 아시아 사이에 문화와 통상면에서 교류를 계속하여 왔다. 또한 다른 민족들이 인도로 진출하는 관문이 되었다. BC 1500년경 아리아인들이 이곳을 경유하여 인도에 들어갔으며,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관문일 뿐만 아니라 불교를 비롯한 인도문화를 외부 세계로 전파시킨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동서문화를 융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발달시킨 것이 소위 간다라 미술이다.

 

간다라문화(健駄羅文化) : 기원 전후부터 수세기에 걸쳐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번영한 불교 문화. 카니시카왕 시대에 가장 성했으며 헬레니즘 문화와 융합한, 소위 간다라 양식의 불교 미술이 번영하여 중앙 아시아, 우리 나라, 일본 등지에 영향을 주었다.

 

간다라불교미술(健駄羅佛敎美術) : 파키스탄 북서부 지방에서 기원 전후 무렵부터 5세기경까지의 사이에 만들어진 불교미술의 총칭이다. 불교미술은 인도에서 B.C. 3세기 이후부터 있어 왔는데 간다라에 있어서의 중요한 사항은 여기서 처음으로 佛像이 조성되었다는데 있다. 부처님은 그 때까지 보리수··법륜·寶座 등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 후 이것이 인간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인데, 이것을 일반적으로 간다라 불상이라고 부른다. 간다라 불상의 표현은 그리스의 자연주의와 현실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지방에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이래 B.C. 2세기부터 A.D. 1세기에 걸쳐서 그리스·샤카족·파르타아족·大月氏族이 잇달아 진출하여 그리스 계통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간다라 조각의 주제로서 중요한 것은 佛傳圖佛陀像이다. 보살중에서도 觀音彌勒 뿐이라는 것도 특이한 사실이다. 조각의 대부분은 浮刻이고, 대개는 탑 基壇의 벽면을 장식한 것이다. 재료는 청흑색의 角閃()片岩을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간다라 조각은 2세기 중엽 카니시카왕 때에 가장 활발하였다. 간다라 불상의 형식은 서역을 거쳐 중앙아시아, 우리 나라, 일본 등지에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카니시카: 범어 Kaniska. 월지국으로 쿠산왕조 제3. 간다라(Gandhara)왕이라고도 한다. 그의 즉위 연대는 정치사적으로나 불교사적·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정확한 연대에 관해서는 異說이 많다. 그는 아쇼카왕 다음가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푸루샤푸라(Puruspura, 지금의 Peshawar)에 도읍했다. 쿠샤나제국은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인도·이란에 뻗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중국·로마·그리스 등의 문화조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왕의 관용한 정책에 힘입어 동서문화가 융합되었다. 간다라 예술이 떨친 것도 이 시대이다. 당시의 화폐에 페르샤의 諸神이 많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 그는 조로아스터교(Zoroaster)를 신봉했었던 것 같으나 후에 불교에 귀의하여 그 보호자가 된듯하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여 자이나교도 마투라 부근에서 융성하였다. 학술도 흥성하여 차라카(Caraka) 같은 名醫도 나와서 外科·內科 등의 구별도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그는 많은 불교학자를 모아 三藏을 결집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보통으로는 이 때에는 카슈미르 有部系의 대비바사론의 편찬이 행하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 시대 전후에는 大乘 흥기의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대승경전 제작의 기운이 촉진되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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