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경록(宗鏡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0권. 北宋의 延壽 지음. 대승교의 경론 60부와 중국 · 인도의 성현 3백인의 저서를 비롯하여 禪僧의 어록 · 계율서 · 俗書 등을 널리 인용하고 傍證하여 禪家에서 말하는,「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온갖 것이 모두 법이다.(心外無佛 觸目皆法)」하는 뜻을 말한 책. 원나라 때에 대장경에 편입함. 고려장경과 신수대장경에도 실려 있음.
참고
대승교(大乘敎) : 대승의 가르침. 화엄경·법화경·열반경 등의 大乘經典의 가르침을 말한다.
연수(延壽) : (904~975) 중국 북송시대의 禪僧. 속성은 王씨. 임안부 여항 사람. 28세에 翠巖參에게 승려가 되고, 천태 德韶국사에게서 선지를 깨닫고, 法眼宗 제3조가 되다. 송 건융 1(960)년 오월왕 충의가 영은사에 주지하게 하고 이듬해에 영명사에 옯기고 평생 염불을 불러 정토왕생을 원하다. 밤에는 귀신에게 먹을 것을 주고, 낮에는 방생하며 염불하다가 개보 8년에 입적. 시호는 지각선사. 저서는 宗鏡錄 100권, 萬善同歸集 6권, 唯心訣 1권, 永明心賦註 4권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선승(禪僧) : 禪家의 승려. 좌선하는 승려.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해서는 안된다는 뜻.
촉목(觸目) : 눈에 닿는 모든 것이란 뜻.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 고려시대에 불경과 章疏를 모아 집대성해서 印刊한 불경. 이 거대한 役事는 불교를 興旺시키는 목적도 있었지만 문화국으로서의 위력을 이웃 나라에 선양하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國難을 타개해서 호국하려는 큰 발원에서 이룩된 것이다. 특히 고려는 文臣을 존중하고 武臣을 천대하여 온 까닭으로 여러 차례 외국의 침입을 받게 되니 佛力으로 나라의 안전을 꾀하려 하였다. 이것이 방대한 대장경의 간행사업으로 나타났다.
(1) 제1차 대장경 간행.
제일 처음 雕造된 것은 初雕大藏經 또는 初板古本大藏經이라고 하며, 현종 2(1011)년 契丹의 침입을 계기로 해서 시작되어 宣宗 4(1087)년까지 77년이란 장구한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이 初藏經은 대구 符仁寺에 都監을 두고 宋의 開寶板 · 契丹本과 종래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國內本 등을 底本으로 해서 <대반야경> 600권, <화엄경> <금광명경> <묘법연화경> 등 6,000여권을 만들었다. 이 초판고본 대장경은 고종 19(1232)년 몽고의 침입을 받아 소실되었고, 현재 약간 남아 있는 것은 일본이 京都의 南禮寺에 1,715권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또 續大藏經은 초판고본에 계속하여 간행한 것으로 文宗의 제4 왕자인 대각국사 義天이 송나라에서 각종 章疏 3천여 권을 모아 가지고 돌아와 文宗 27(1073)년부터 宣宗 7(1090)년까지 이 敎藏과 佛書를 모은 것을 엮어 이를 <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 하고 이 목록에 의하여 차례대로 印刊한 것을 <續藏經>이라고 한다.
이는 모두 1,010부 4,740여권으로 몽고의 병화로 초판고본 대장경과 함께 符仁寺가 소실되었다. 현재 약간 남은 것으로, 순천 송광사에 大般涅槃經疏 중 제9권과 제10권이 있고, 고려대 도서관에 天台四敎儀, 일본 奈良의 東丈寺에 <화엄경 隨疏演義鈔> 40권, 名古屋의 眞福寺에 <釋摩訶衍論通玄鈔> 4권 등 47권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2) 제2차 대장경 간행.
이는 八萬大藏經의 雕造를 말하는 것인데,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강화도로 옮긴 고려는, 符仁寺의 호국을 위한 대장경이 소실되자, 이 외침을 물리치기 위하여 다시 대장경을 조조해서 佛力의 가호를 빌기로 하였다. 대장경을 새로 조조하기 위해 大藏都監을 설치하고, 고종 23(1236)년부터 고종 38(1251)년까지 16년만에 완성한 것이, 곧 고려판 대장경으로서 1,511부, 6,802권, 81,258판이 되고, 이것이 안팎으로 새겨져서 16만여 面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世稱 8만대장경이라 한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 8치, 가로 : 2자 3치, 두께 : 1치 2~3푼, 두 끝을 뒤틀리지 않게 角木을 붙이고 네 귀에 구리로 장식하고 전면에 칠을 발랐다. 板面은 위 아래에 줄을 치고, 1면 23항, 1항 14자로 양면에 새겼으며, 판의 한 끝에 經名, 권 수, 장수를 千字文으로 凾號를 새겼다. 이 대장경은 처음 강화에 板堂을 짓고 봉장하였다가 얼마 아니되어 강화의 禪源寺로 옮겼다. 조선 태조 7(1398)년 서울 支天寺에 임시로 옮겼다가 다시 해인사에 봉장하였다. 초조대장경을 그대로 다시 雕造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底本으로 하였으나, 송 · 거란본과도 對校해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고쳤고, 빠진 것은 그것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宋朝新譯經>과도 對校 · 考勘하였고, <開元錄> <續貞元錄> 등의 佛書目도 참고하였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대장경 보다도 본문이 충실하며 誤脫字가 없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대장경의 雕造는 고려가 가장 어려웠던 국난의 시기에 초조판부터 헤아려 실로 240년이라는 장구한 시일을 통하여 이룩한 거국적 대사업으로, 대장경의 간행을 둘러싸고 송 · 거란에 대한 문화국으로서의 위신을 높였을 뿐 아니라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 기술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 : 大正新修大藏經의 약칭. 大正이란 일본의 大正年間(1912~1925)에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학계가 총동원되어 13년간의 노력으로 고려대장경을 母本으로 하여 세계 최대의 대장경을 완성하였다. 신수대장경의 量은 고려대장경의 2배쯤 되며, 그 내용은 우리 나라의 고려대장경을 비롯하여 인도의 梵語, 巴利語 원전 등과 중국의 漢譯 경전을 비교 검토, 이를 총망라하여 재편집한 것이 특색이다. 대승과 소승의 經 · 律 · 論 3장을 각각 구분하여 편찬했다. 또한 이 대장경은 한문 문장에 토를 달았으며, 인도와 중국의 여러 경들의 서로 다른 점을 註解해 놓았음.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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