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4種 涅槃의 하나. 生死의 괴로움을 여읜 眞如를 말함. 煩惱障을 끊고 얻는 것. 異熟의 苦果인 현재의 몸까지 滅해 없어진 곳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이같이 이름함.
참고
사종열반(四種涅槃) : 唯識宗에서는, (1) 本來自性淸淨涅槃(本來淸淨涅槃 또는 性淨涅槃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相에 있어서는 眞如寂滅의 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眞如를 가리켜서 이와 같이 말한다), (2) 有餘依涅槃, (3) 無餘依涅槃, (4) 無住處涅槃(지혜에 의해서 煩惱障과 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生死(迷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또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迷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진여(眞如) :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本體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로 眞如라고 이름한 것이다. 如如 · 如實 · 如 등으로 부르며, 대승에서는 萬有의 本體를 일컫는다.
① 阿含에서는 緣起의 理法이 영원불변의 진리임을 진여라고 한듯하다. 異部宗 輪論에 의하면 化地部에서는 九無爲를 설하는 가운데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 · 道支眞如 · 緣起眞如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善 · 惡 · 無記의 三性이나 八聖道나 緣起의 理法이 진실로 영원불변한 일을 진여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이 人法二無我이며 모든 차별적인 相을 초월해서 절대의 하나인 것을 진여라 이름했으며, 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의 自性으로 삼는다. 佛地經論卷七에는 진여란 모든 현상(諸法)의 實性이라고 하고 그 體는 一味이지만 相을 따라서 종종의 구별이 있으며 일체법과 不一不異로서 그 體를 보고자 하면 사고도 언어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지만 모든 거짓이나 그릇된 견해를 여의고 있다는 점에서 억지로 진여라 이름했다. 또 모든 善이 의지하는 바가 되므로 法界, 損減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實有, 增益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空無, 다만 이것만이 진실이므로 實際, 無分別智의 깨달음이므로 勝義라고 거짓 이름했다고 한다.
진여의 異名으로 大般若經卷三百六十에는 眞如 · 法界 · 法性 · 不虛妄性 · 不變異性 · 平等性 · 離生性 · 法定 · 法住 · 實際 · 虛空界 · 不思議界의 十二名이라 함.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에는, 眞如 · 空性 · 無相 · 實際 · 勝義 · 法界의 六名,
法華玄義卷八下에서는, 實相 · 妙有 · 眞善妙色 · 實際 · 畢竟空 · 如如 · 涅槃 · 虛空 · 佛性 · 如來藏 · 中實理心 · 非有非無中道 · 第一義諦 · 微妙寂滅의 14종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一如 · 一如法界 · 一法界 · 眞如實相 · 眞如一實 · 眞實際 · 眞勝義諦등으로도 이름하며 그 모습이 절대평등함을 뜻하며 一相이라고도 한다.
解深密經卷三에는 七眞如를 설하고,
(1) 緣起의 理法을 流轉眞如.
(2) 諸法의 實性을 實相眞如.
(3) 萬法唯識의 理法을 了別眞如.
(4)~(7) 고 · 집 · 멸 · 도의 四諦를 차례로 安立眞如 · 邪行眞如 · 淸淨眞如 · 正行眞如라고 하는데 實相眞如이외의 6종을 진여라고 일컫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 각각의 理法이 그 자체 그대로 영원불변 하므로 진여라고 한다는 설과 그 理法자체를 진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實相眞如의 나타난 모습의 種別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③ 法相宗說. 成唯識論卷九에서는 진여란 허망한 분별법을 여읜 人法二無我의 본성으로 三性 가운데 圓性實性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宗에서는 모든 현상은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진여는 현상을 초월한 絶對靜的한 것으로 그 자체는 결코 현상이 될 수 없는 것(眞如凝然不作諸法)이라고 한다. 또 成唯識論卷十에는 보살은 初地에 이르러서 비로소 진여의 진리를 깨닫고 차례로 十地에 이르기까지 그 깨달음의 내용이 깊어지게 되기 때문에 十眞如의 구별을 세운다. 곧,
(1) 遍行眞如. 널리 萬有에 미치는 二空의 이치.
(2) 最勝眞如. 戒를 몸에 완전히 익힘으로 해서 깨달은 진여로 거짓이 없는 德을 구족하게 갖추고 있으므로 최승이라고 한다.
(3) 勝流眞如. 진여로부터 流出한 敎는 그렇지 않은 다른 교보다 수승하다는 뜻이며 그 교의 근본이 되는 진여란 뜻.
(4) 無攝受眞如.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
(5) 類無別眞如. 생사와 열반 등의 구별이 없는 迷悟一如의 뜻.
(6) 無染淨眞如. 진여는 본래 染淨을 초월했다는 뜻.
(7) 法無別眞如. 진여는 생멸의 相을 여의었으므로 諸種의 敎에 갖가지로 說示되어 있지만 그 體는 하나란 뜻.
(8) 不增減眞如. 번뇌의 더럽힘을 끊었지만 줄지 않고 청정한 법을 닦지만 더하지 않는, 집착을 여의었다는 뜻. 대번에 이 진여를 깨달으면 자유자재로 종종의 모습이나 국토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相土自在所依眞如라고도 한다.
(9) 智自在所依眞如. 四無碍智에 의해 자재를 얻는다는 뜻.
(10) 業自在等所依眞如. 모든 神通 · 總持 · 禪定 등에 있어서 身 · 口 · 意의 활동의 자재를 얻는다는 뜻.
이상의 10은 차례로 初地로부터 十地까지 十波羅蜜을 행하여 十重障을 끊고 깨닫는다고 한다. 또 人無我의 진리를 人空眞如, 法無我의 진리를 法空眞如, 이 둘을 합해서 二空眞如라고 하며 二乘은 人空眞如만을 깨닫지만 보살은 二空眞如를 깨닫는다고 한다.
④ 地論宗에서는 제八阿賴耶識, 攝論宗에서는 제九阿摩羅識은 그 자체가 청정한 自性淸淨心 곧 진여라고 하고, 그 識이 무명의 熏習을 받아서 染淨의 諸現象을 나타낸다고 한다.
⑤ 기신론에서는 진여를 중생심의 본체라고 하고 그것은 언어나 사유를 초월해서 여의었으므로 離言眞如, 그것을 억지로 언어로 표현한 것을 依言眞如, 둘을 합하여 二眞如라고 하며, 依言眞如에 있어서 그 본체가 迷惑된 마음을 여의고 空한 점을 如實空(空眞如)이라고 한다. 또 중생심 곧 진여에는 절대부동의 心眞如門과 그것이 무명의 緣에 의해서 染淨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心生滅門이 있어서 不動인 진여를 不變眞如, 그것이 緣을 따라 나타나는 染淨의 현상을 隨緣眞如라 하며 합해서 二眞如라라 한다. 일반으로 萬有가 生起하는 방법을 진여의 不變 · 隨緣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을 眞如緣起(如來藏緣起)라고 한다. 또 이 二眞如라고 하는 같은 의미의 말에 淸淨眞如 · 染淨眞如, 혹은 非安立眞如 · 安立眞如(安立이란 만유를 내고 그 각각의 존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가 있다.
⑥ 화엄종에서는 본체 즉 현상을 性起說에 입각해서 진여 그대로가 萬法, 萬法 그대로가 진여라고 했다. 또 진여를 一乘眞如와 三乘眞如로 나누고 前者에 別敎眞如 · 同敎眞如, 後者에 頓敎眞如 · 漸敎眞如가 있다고 하며, 이것은 진여의 이해의 방법이 諸敎說에 따라서 같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⑦ 천태종에서는 性具說을 세워서 진여에도 본래부터 染淨善惡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⑧ 諸佛의 自性인 진여를 無垢眞如 혹은 出纏眞如라고 하고 중생의 體性인 진여는 번뇌에 더럽혀 있으므로 有垢眞如 혹은 在纏眞如라 하며 둘을 합하여 兩垢眞如라 한다.
⑨ 釋摩訶衍論卷三에는 始覺 · 本覺의 二智를 깨달음의 理로 하여 性眞如와 虛空의 理에 입각하여 淸淨虛空의 理라는 뜻으로 無障碍義 · 周徧義 · 平等義 · 廣大義 · 無相義 · 淸淨義 · 不動義 · 有空義 · 空空義 · 無得義의 十義가 있다고 하고 이것을 性虛空十義라고 한다.
번뇌장(煩惱障) : 번뇌장은 惑障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 곧 聖道를 방해해서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말함.
① 俱舍論 卷十七, 卷二十五에서는 자주 일어나는(數行의 것으로) 無漏의 慧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여, 慧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煩惱를 煩惱障이라고 하고, 煩惱障을 여의어 慧解脫을 얻어도 滅盡定을 얻는 것을 방해하여 俱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解脫障(定障)이라고 한다. 前者는 染汚無知를, 後者는 不染汚無知를 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大毘婆沙論 卷百四十一에서는, 煩惱障은 染汚無知, 所知障은 不染汚無知라고 하는 것처럼 각각 四正斷의 前二 · 後二로 끊어진다고 한다.
② 成唯識論 卷九에서는, 중생의 身心을 교란시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煩惱를 煩惱障, 業을 일으키어 三界(迷의 세계)에 나게 하는 작용이 없지만, 알아야 할 대상을 덮어서 正智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所知障(智障)이라고 한다. 이 二障은 어떤 것이나 薩迦耶見을 비롯해서 百二十八의 근본번뇌 및 二十의 隨煩惱를 體로 한다. 그 가운데서「실체의 사람, 실체의 중생이 있다」고 하며 나를 집착하는 [我執의] 면을 煩惱障이라고 하며,「사물에는 실체가 있다」고 하여 法을 집착하는 [法執의]면을 所知障이라 한 것으로서, 동일한 번뇌의 二面이다. 그러므로 煩惱障은 我執을 근본으로 하고, 所知障은 法執을 근본으로 한다고 한다. 그 작용의 특징에서 말하면 煩惱障은 열반을, 所知障은 菩提를 장애한다. 곧 煩惱障은 열반을 장애하는 正障이며 所知障은 이 正障에 힘을 주어 장애시키는 兼障이기 때문에 所知障만으로는 열반을 장애하는 능력이 없다. 또 煩惱障을 肋緣으로 하여 分段生死를 받고, 所知障을 肋緣으로 하여 變易生死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二乘은 煩惱障만을 끊은 자리(位)를 理想의 果位로 하지만 보살은 二障을 다 같이 끊어서 佛果를 얻는 것을 理想으로 한다. 그것은 보살에 있어서는, 所知障은 三界의 果報를 이끄는 일은 없지만 곧잘 無漏業을 도와서 變易生死를 받게 하기 때문이다.
③ 大乘義章卷五에서는 五住地의 惑에 대해서 前四를 煩惱障, 최후의 無明住地의 惑을 智障이라 한다 등의 세 주장을 들고 있다.
④ 世親의 金剛般若波羅蜜經論卷上에는 見思의 惑을 煩惱障이라 하고, 이를 끊고 얻는 無諍三昧에 집착하는 것을 三昧障이라 했다.
이숙과(異熟果) : 범어 vipaka-phala의 번역으로 五果의 하나. 六因 가운데 異熟因으로부터 받는 二報를 말한다. 예컨대 苦는 惡業으로부터 나오는 결과인데 그러나 苦를 지은 사람의 육체는 善도 惡도 아니므로 이렇게 이름함.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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