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自力)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을 自力이라 하고, 자기 이외의 불 · 보살 등의 힘을 빌리는 것을 他力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자력에 의해서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敎를 自力敎라 하고 自力宗 · 自力門이라고도 하며,
이에 대해 他에 의해 구원을 받아서 성불하고자 하는 敎를 他力敎 · 他力宗 · 他力門이라고 한다.
① 일반적으로 發心修行을 하는데 자력에 의해서 하는 것과 타력에 의해서 하는 2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자력은 가지고 있는 힘이 殊勝한 根機의 수행인이, 타력은 가지고 있는 힘이 劣等한 사람들을 敎化하기 위한 수행방법이다. 또 자력으로 깨달음을 이룩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타력에 의지해서 하는 그것은 쉽다고 한다. 그래서 전자를 難行道라 하고 후자를 易行道라 한다.
② 淨土敎에서는 타력을 他力本願(아미타불의 本願에 따라 念佛하면 정토에 往生한다)의 뜻으로 보고, 그 본원에 의거하지 않는 것을 자력이라 했다. 또 道綽의 安樂集卷上에서는 정토에 왕생할 것을 원해서 이 세상에서 닦는 동안의 수행을 自力이라고 하고, 臨終에 아미타불을 향해서 왕생하게 되는 것을 他力이라고 했다.
참고
타력(他力) : 佛道의 2力으로 자기가 닦은 善根은 自力이고, 부처님의 本願力과 加被力은 他力이 된다. 이 타력에 의하여 구제되고 성불함을 말하는 교를 타력교 또는 타력종, 특히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함으로써 극락정토에 날 수 있다는 淨土敎를 타력교라 한다.
난행(難行) : 종교상의 실천하기 어려운 행위를 難行, 하기 쉬운 행위를 易行이라고 한다. 龍樹의 十住毘婆沙論 권5 易行品에는 「보살이 不退位에 이르는 방법에 難行道와 易行道가 있다. 前者는 육로로 걸어가는 것 같은 괴로움이 있고, 後者는 바다 위를 배를 타고 건너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淨土敎에서는 이 說에 근거하여 佛敎를 難易二道로 나누고 難行道로 自力 聖道門을, 易行道로 他力 淨土門을 들고 있다.
난행도(難行道) : 聖道門인 자기 힘에 의하여 수행의 공을 쌓아서 佛道를 증득하는 것을 난행도라 함.
이행(易行) : 수행하기 쉬운 행동을 말함.
이행도(易行道) : 他力에 의해 수행하기 쉽고, 깨닫는 경계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法門. 龍樹가 저술한 十住毘婆沙論 易行品에 불·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易行의 道”라 한 데서 비롯한 것. 그 뒤에 淨土敎에서 아미타불의 他力本願에 의지하는 것으로써 易行道라 함.
정토교(淨土敎) : 自力的인 수행을 하는 것을 聖道敎라 하는데 대해 아미타불의 本願力을 믿고 그 힘에 의해 극락정토에 往生할 것을 發願하는 것을 일컬으며, 일단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불과 성인들의 교화를 받아 佛法을 성취하고는 다시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구제할 것을 發願하는 종파. 어느 경우나 極樂淨土를 전제로 하는 敎이므로 淨土敎라 한다.
타력염불(他力念佛) : 아미타불의 本願에만 의지하여 자기가 스스로 힘써 닦는 공을 함께 하지 않고, 염불만을 하는 것을 말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범어 Amitabha Buddha, Amitayus Buddha.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님의 한분. 阿彌陀婆(無量光, amitabha)·阿彌陀庾斯(amitayus, 無量壽)라 음역한다. 이 중에서 婆(abha)는 光明의 뜻이며, 庾斯(ayus)는 壽의 뜻이다. 또는 無量淸淨佛·無量·阿密㗚多(Amrta, 甘露)·盡十方無碍光如來라고도 한다. 阿彌多·阿弭跢·阿弭嚲라고도 쓰며 서방극락세계의 敎主의 이름이다. 이 부처님과 그곳의 극락정토를 주로하여 無量壽經·觀經·阿彌陀經에 說하며, 화엄·법화·열반 등의 대승경전 이외에도 2백 수 십부의 경전에 설해지고 있다.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世自在王佛의 감화를 받은 法藏이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를 기원. 또 48원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장구한 수행을 지나 성불하였으니 이가 바로 아미타불이다. 오랜 옛적에 성불한 아미타불(本佛)에 대하여, 이 부처님을 10겁 전에 성불한 아미타불(迹佛)이라 한다.
본원(本願) : 불과 보살이 因位에서 생기는 誓願을 말한다. 本弘誓願을 약하여 本誓·宿願이라고도 한다. 그 원하는 바가 크다는 뜻에서 弘誓라고도 한다. 또 諸佛과 보살이 가지고 있는 固有한 願을 別願이라 일컫는다. 이에 대해서 四弘誓願은 함께 가지는 總願이다. 예를 들면 아미타불(法藏보살)의 四十八願(梵本에서는 四十六願, 異譯의 經典에서는 三十六願, 또 二十四願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藥師佛의 十二大願, 釋迦佛의 五百大願 등은 別願이다. 그 밖에 보현보살의 十大願이나 舊譯 화엄경에서 說하고 있는 初地의 보살이 일으키는 十大願 등이 있다. 淨土敎에서는 아미타불의 四十八大願 특히 第十八大願을 本願(王本願)이라 한다. 四十八大願은 無量壽經에 說하고 있는데, 이것을 六八弘誓·六八願이라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