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종(佛種)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① 佛陀의 種性. 佛陀의 系統.
② 부처가 될 수 있는 種子. 佛性. 佛果를 얻기 위한 因. 여기에 대략 네 가지를 들 수가 있다.
(1)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佛性. 곧 緣起의 이치와 中道無性의 이치 등.
(2) 煩惱. 維摩經卷中에서는 번뇌밖에 따로 깨달음(菩提)이 있지 않기 때문에 온갖 잘못된 견해나 번뇌가 그대로 佛種이라고 한다.
(3) 菩提心. 보리심의 因이 없으면 佛陀의 果는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4) 稱名 · 念佛 혹은 聞名. 이런 등의 因에 의해서 마침내 佛陀가 되기 때문이다.
참고
불타(佛陀) : 범어 Buddha. 浮圖 · 浮屠 · 部陀 · 浮頭 · 勃䭾 · 母䭾 · 沒䭾라고도 음역. 意譯하면 깨달은 사람(覺者)이라 하고 줄여서 佛이라고 함.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라고 하여 왔다. 특히 불교인들의 완전한 용어로는「부처님」이다.
즉 불타는 B.C. 6세기경에 인도 카필라국에서 출생하여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일체의 번뇌를 끊고 우주의 참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위해 설법하였던 석가세존을 존경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타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불타 즉 부처는 석존 한 분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불타는 一切法,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大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대성자가 석존이기 때문에 불타라고 한다. 이러한 부처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경전에 따라서는 60가지, 108가지, 또는 270가지나 있다. 그러나 佛陀觀은 시대와 종파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다.
초기 석존의 시대에는 불타라 하면 석존을 가리켰고, 그 제자들에게 있어서 불타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었다. 그러다가 후에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불타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德相 즉 신체적 특징인 32相 80種好를 갖추고 정신적인 특수성으로서의 덕성인 十力 · 四無畏 · 三念住 · 十八不共法을 성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타는 生身 · 法身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처의 肉身을 生身佛이라 하고, 그 부처가 얻은 그리고 그 부처의 본성인 진리(法)를 法身佛이라 하여, 2,500여 년 전에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역사적 불타인 석존은 생신(肉身)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불타라고 할 때에는 보통 법신불을 말하는데, 이 법신불은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상주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佛身觀에 의하여 三身說(法身 · 報身 · 化身)이 나타났다. 실제에 있어서 불타로서 인류 역사상에 나타나기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지만, 많은 불교성전에는 석존의 이전에 이미 毘婆尸佛 · 燃燈佛 등 과거의 부처와 미륵불 등 미래의 부처와 그리고 阿閦佛 · 阿彌陀佛 등 현재의 부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와 같이 많은 부처들은 모두 역사상의 불타인 석존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즉 과거의 여러 부처들은 석존이 因位에 있어서 수행을 쌓을 때 받들어 공양하고 또는 授記를 얻는 데에 관련이 되고, 또 장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비롯한 미래의 많은 부처들은 석존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그 실제의 몸은 오히려 온 세계에 나타나서 교화를 쉬지 않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출현하지만 이는 모두 하나의 큰 법신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종성(種性) : 범어 gotra의 번역으로 種姓이라고도 쓴다. 聲聞·緣覺·菩薩 등의 三乘이 각각의 깨달음을 開得하는 種이 되는 본래적 素性·素質을 말한다. 여기에는 선천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경우와 후천적인 修行에 의해서 얻는 2종의 種性이 있다. 전자를 本性住種性(약하여 性種性)이라 하고 후자를 習所性種性(약하여 習種性)이라 한다. 有部 등의 部派에서는 중생이 선천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있는 이른바 性得의 佛性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후천적으로 이른바 修得의 佛性만을 인정한다. 또 대승의 法相宗에서는 五性이 선천적으로 구별되어 있다고 하여 性種說을 설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또 별도의 習種性을 설하는데, 이것은 護法의 學流에 속한다. 곧 種性이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인 것인가에 대해서 唯識宗 그 가운데도 異說이 보이고 있으니, 成唯識論卷二에 의하면, 種子에 대한 견해의 相違로부터, 護月은 本有性種性(선천적)만을, 難陀는 新熏習種性(후천적)만을, 護法은 兩方을 다 인정하는데, 法相宗에서는 이 護法說을 따른다. 이에 반해서 천태종·화엄종 등에서는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佛性을 갖추고 있다고 설한다. 또 三乘의 種性을 가지고 마침내 三乘의 果에 이르게 되는 有種性(有性)과 아무리해도 迷惑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無種性(無性)의 二種性으로 나누고도 있어서 五性의 구별을 하는 唯識宗에서는 이것을 인정하고 無性有情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다. 또 種性의 의미를 轉用하여 보살의 階位를 보이기도 한다. 곧 仁王般若經卷上에는 習種性·性種性·道種性의 三種性을 세워서 차례로 보살의 十信心·十住心·十堅心에 배당했으며, 瓔珞本業經卷上에는 習種性·性種性·道種性·聖種性·等覺性·妙覺性의 六種性을 세워서 순차로 보살의 十信·十住·十行·十廻向·十地·等覺·妙各의 階位에 배당했는데, 이 가운데 妙覺性을 제외하고 五種性이라 한다. 또 大集經卷八 등에는 凡夫性·信行性(善知識의 가르침을 듣고 믿어서 그대로 수행하는 三賢位)·法行性(선지식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佛陀의 설하신 법에 따라 修行하는 것, 四善根位)·八忍性(八忍七智를 갖춘 것, 見道位)·須陀洹性·斯陀含性·阿那含性·阿羅漢性·辟支佛性·佛種性의 十種性을 說하고 있다.
불성(佛性) : 범어 buddha-dhatu. 또는 gotra의 번역으로 如來性, 覺性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本性이란 뜻. 佛陀가 될 가능성 ․ 因性·종자, 혹은 迷·悟에 의하여 변하는 일이 없이 본래 갖추어진 性品. 如來藏의 다른 명칭이라고도 한다.
北本 涅槃經 卷九에는 이마의 구슬(額珠)에 비유(力士가 씨름을 하다가 眉間에 있던 구슬이 피부속에 들어 박힌 것을 잃어버린 줄로 잘못 알고 있다가 나중에 의사가 이 사실을 알려 줌으로 구슬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비유. 또는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 귀중한 보배구슬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는 비유)를 써서 중생들이 본래부터 佛性이 있지만(一切衆生悉有佛性) 범부들은 번뇌에 뒤덮여서 알지 못하고 번뇌를 끊어야 불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① 阿含이나 小乘에서는, 불·보살 이외의 成佛을 말하지 않으므로 佛性은 거의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世親의 佛性論卷一에 의하면 有部 등에서는 중생에게는 先天的인 性得佛性은 없지만, 後天的으로 修行을 해서 얻는 修得佛性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決定無佛性·有無不定·決定有佛性의 세 종류로 중생을 나누며, 이에 대해서 分別部에서는 空을 佛性으로 하고, 모든 중생은 空을 바탕으로 하여 空에서 생긴 것이므로 다 그 本性으로서 佛性이 모두 있다고 전한다.
② 佛性論卷一에는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말씀한 것은 불타가 중생으로 하여금 나 자신은 용렬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는 등의 다섯 가지 과실을 없애고 부지런히 佛道에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등 다섯 가지의 功德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同書卷二에는 佛性을 自性住佛性(凡夫의 位에서는 오직 理로서 있는 것)·引出佛性(初發心으로부터 成佛직전의 金剛心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修行해서 나타나는 것)·至得果佛性(佛果에 이르러서 원만하게 나타나는 것)의 三位로 나누고 있다.
③ 중국·한국·일본의 諸宗에서는 각기 여러 가지 說이 있어, 서로 論雜했다.
(1) 天台宗에서는 正因佛性(모든 것에 본래 갖추어 있는 三諦 三千의 理)·了因佛性(이치에 비추어 나타나는 지혜)·因緣佛性(지혜를 일으키는 緣이 되는 모든 善行)의 正了緣의 三因佛性의 說을 세워 이 중 前一은 性(선천적), 後二는 修(후천적)이긴 하지만, 性修不二이므로 그대로 융합되어서, 三佛性은 非縱非橫(前後하여 繼起하는 것도 아니고 並列同時的인 것도 아니다)이라고 한다. 또 이 三因佛性에 果性(菩提의 智慧)·果性(涅槃의 斷德)을 더하여 五佛性이라고 한다. 因果不離이므로 因位·果位가 서로 갖추어 합쳐진다고 한다.
(2) 華嚴宗에서는 중생의 佛性은 因果性相의 모든 것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고 또 有情이 갖추고 있는 成佛의 가능성을 佛性·覺性이라고 하고, 非情이 가지고 있는 眞如의 理를 法性이라고 구별하여 成佛을 有情에 국한한다고 하기도 한다.
(3) 眞言宗에서는 삼라만상이 그대로 大日如來의 法身이라고 하여, 그런 의미에서 悉有佛性을 말한다.
(4) 三論宗에서는 佛性에 관한 여러 가지 論이 있어서 因果를 따로 說하는 것을 迷執이라고 하여 廢하고, 非因非果의 無所得 中道를 佛性이라 했다.
(5) 法相宗에서는 理佛性(모든 것의 本體인 眞如의 理)·行佛性(사람마다 阿賴耶識 가운데 숨겨져 있는 成佛의 因이 되는 無漏種子)의 二佛性說을 說하고, 理佛性은 있어도 行佛性이 없으면 成佛할 수 없다고 하여, 菩薩定姓과 不定姓이라야만 行佛性이 있다고 했다.
(6) 禪宗에서는 중생 본래의 면목을 깨닫는 것으로, 佛性의 有無 등의 문제에 구애되는 것을 否定하는, 狗子佛性 등의 公案이 있다.
(7) 淨土敎에서는, 理佛性을 인정하는 주장과 否定하는 주장이 있는 등 종종의 說이 있는데, 往生은 彌陀의 本願力에 의한다고 하여 淨土宗에서는 이런 의미로 如來가 중생에게 준 信心을 佛性으로 하고 있다.(信心佛性)
④ 諸經典에서는 佛種·佛種性 등의 말이 있고, 成佛의 因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내용은 說하는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佛性을 말하는 때도 있고 번뇌·보리심·보살의 수행·稱名 등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연기(緣起) : ① 모든 존재(有爲法)는, 여러가지 조건 곧 인연에 의해서 잠정적으로 그와같은 모습으로 성립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조건 여하에 따라 여러가지로 변화하므로(無常), 독립적 존재성을 가질 수 없고(空 · 無我), 서로 의존한다. 이와 같이 인연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는 존재를 緣生, 緣生法, 또는 緣已生, 緣已生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의 因과 조건인 緣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된다는 것으로 獨立 · 自存적인 것은 없으며 제 조건 · 원인이 없으며 결과(果)도 없다는 說이다. 나아가 일체 현상의 生起消滅의 법칙을 연기라 한다. 그 간단한 형태는 중아함경 권47에「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멸하면 그것도 멸한다(因此有彼 · 無此無彼 · 此生彼生 · 此滅彼滅)」는 등으로 표현된다.
이와같이 중생이 생사 · 유전의 고통을 받는 경우의 연기는 流轉연기, 수행하여 해탈로 향하는 연기를 還滅연기라고 한다. 원시불교 이래의 四諦說(4종의 근본진리)도 일종의 연기설로서 苦 · 集 2諦는 유전연기, 滅 · 道는 환멸연기를 나타낸다. 연기설의 일반적 형태는 無明 · 行 · 識 · 名色 · 六入 · 觸 · 受 · 愛 · 取 · 有 · 生 · 老死의 12항목(十二緣起)이 순차적으로 발생 · 소멸하는 것을 나타내는 12연기이다.
아함경에「緣起를 보는 자는 法을 보고, 法을 보는 자는 緣起를 보고, 緣起를 보는 자는 佛을 본다」고 說하는 것과 같이 연기는 법과 동일한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따라서 연기에 대하여 원시불교 이래 대승 · 소승 불교에서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되었다. 이렇게 볼 때 緣起의 思想은 불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阿含經典의 十二緣起說(十二因緣)을 처음으로 하여, 唯識宗의 賴耶緣起說, 楞伽經등의 如來藏緣起說, 華嚴宗의 法界緣起說, 眞言宗의 六大緣起說 등 불교의 역사를 통해 일관하고 있는 사상이다. 大衆部나 化地部에서는 이 緣起의 도리(緣起法)를 九無爲의 하나로 했다. 部派불교에서는 業說이 부가되어 12연기의 12支를 우리의 과거 · 현재 · 미래의 三世에 걸쳐 있는 것으로 하는 三世兩重因果로 설명하였다. 이는 시간적인 生起를 중심으로 연기설을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타파한 것이 대승불교 운동으로서 특히 그 최초에 등장한 般若經류는 一切皆空을 주장하였다. 이는 용수에 의해 연기와 밀접히 관련지워져 연기 → 無自性 → 空의 해석이 확립되었다. 즉 일체는 다른 것에 연하여 현상계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상호의존하고 있는 相因相待에 관계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각각은 자성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空이라는 것이다.
중기 대승불교의 하나에 일체의 현상을 마음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唯識說이 있으며 瑜伽師地論 · 成唯識論 등에서는 외계의 일체현상은 末那識의 활동과 이 말나식을 내포하고 있는 아뢰야식에 내장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중기 대승불교의 또 하나에 중생 속에 깨달음의 가능성 즉 여래의 인자가 있다고 하는 여래장사상이 있다. 여기에서는 본래 自性淸淨心을 둘러싼 외계의 번뇌(客塵煩惱)에 의해 생사에 유전하는 연기를 설명하고 있다. 여래장사상은 대승기신론 등의 진여연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화엄경의 법계연기는 모든 연기를 이상세계로서의 법계의 전개라고 하며 일체의 사물은 一卽多 多卽一의 重重無盡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를 緣起無礙門이라고도 한다.
② 尼陀那라고 音譯하고, 인연이라고도 번역함. 이 말은 ①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와, 十二部經(곧 원시불교경전의 기본적인 型)의 하나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뒤의 것은 經 · 律등이 說해진 그 由來 · 緣由 · 理由를 밝히는 說話의 뜻.
③ 또 세속에 吉凶의 조짐을 연기라 하고, 延喜 · 緣喜라고도 쓴다.
④ 화엄종에서는 우주의 모든 현상이 나타나 일어나는 것을, 부처가 되는 因의 입장에서는, 緣起 곧 인연에 의해서 生起한다고 하고, 佛果의 입장에서는 性起 곧 깨달음 그 자체의 本性(法性)에서 現起한다고 說한다. 또 중생의 機緣에 응해서 敎를 說하는 것을 緣起라고 하고, 性海果分에 대한 緣起因分이라고 한다.
⑤ 機緣說起의 뜻. 중생의 지혜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법하는 것.
⑥ 寺院 등을 건설하기까지에 이른 유래와 부처 · 고승들의 염험을 말한다.
보리심(菩提心) : 상세히 말하면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고 하며 無上正眞道意라 번역한다. 無上菩提心 · 無上道心 · 無上道意를 약하여 道心 · 道意 · 道念 · 覺意라고 한다. 佛果에 이르러 깨달음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말함. 이 마음을 일으켜 많은 수행을 쌓아 불과를 이루게 되는 것이므로 菩薩(菩提薩埵)은 반드시 처음부터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菩提心을 나타내는 것을 發菩提心 · 發心 · 發意라 하고 처음으로 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初發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菩提心의 本體는 중생이 다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淸淨心性이라고도 하며 여러 가지 緣에 따라 나타난다고 한다. 크게 나누어 구체적인 사상에 따라 나타나는 경우(隨事發心)와 이치에 따라 나타나는 경우(順理發心)가 있다. 또 菩提心의 내용을 四弘誓願이라고 한다.
大乘義章卷九에는 發心을 세 가지로 구별하여,
(1) 생사와 열반과의 相으로 보고 生死를 꺼려 열반을 구하는 것을 相發心,
(2) 생사의 本性은 열반과 같다는 것을 알고 차별적인 相을 떠나 평등한 마음이 나타나는 것을 息相發心, (3) 菩提의 本性은 곧 자기 마음이므로 菩提는 바로 心이며 心은 바로 菩提임을 알아서 자기의 本心으로 돌아가는 것을 眞發心이라 한다.
摩訶止觀卷一에는, 藏敎내지 圓敎의 보살들이 각각 生滅 · 無生 · 無量 · 無作의 四제의 진리를 헤아려서 발심하는 것을 推理發心이라 했다.
起信論에서는 信成就發心 · 解行發心 · 證發心의 三種發心을 들고 있으며 또 信成就發心에 直心 · 深心 · 大悲心의 三心을 일으키는 것도 三種發心이라 했다.
淨土宗은 발심을 阿字五轉의 하나로 하고 또 菩提心論의 行願 · 勝義 · 三摩地의 三種菩提心의 說에 입각하여 四種發心을 든다. 곧,
(1) 信心. 無上菩提를 구하여서 疑惑心이 없는 것. 이는 萬行의 기본임으로 自淨信心이라 한다.
(2) 大悲心. 自淨信心을 일으킨 四弘誓願을 맹서하는 것. 行願心 · 行願菩提心이라고도 한다.
(3) 勝義心. 諸敎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진실을 가려내는 것. 深般若心 · 勝義菩提心이라고도 한다.
(4) 大菩提心. 열등한 것을 버리고 殊勝한 것을 선택 · 결정할 때 十方의 諸佛이 眼前에 나타나 증명해 주고 諸魔들이 이를 보고 무서워 몸을 떠는 것. 이를 三摩地菩提心이라고도 한다.
이 四心은 일단 구별은 되지만 원래가 하나이다. 佛果를 얻을 때까지 한때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것은 自行化他 · 世間 出世間을 위하여 諸尊의 三密을 닦아서 얻는 것으로 有相菩提心이라 부른다. 이것은 그대로 有相 곧 無相이므로 허공처럼 모든 相을 여읜 無相菩提心에 해당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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