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과(證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修行함으로 얻는 道果. 여기에 小乘 아라한의 四向四果가 있고 大乘보살의 十信位로부터 최종의 證果인 佛果까지의 52位의 道果가 있다.
참고
도과(道果) : 불법을 깨달아 불도의 果를 얻는 것. 곧 열반을 말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 : 四向四得 · 四雙八輩 · 八補特伽羅 · 八賢聖 · 八聖이라고도 한다. 곧 預流向 · 預流果 · 一來向 · 一來果 · 不還向 · 不還果 · 阿羅漢向 · 阿羅漢果의 총칭. 小乘佛敎에서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들어가는 品階. 이는 婆沙論이나 俱舍論 · 賢聖品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① 預流는 범어 srota-apanna의 번역으로 須陀洹이라고 音譯 표기한다.
預流果를 初果라고 하며 見道에서 三界의 見惑을 끊어버림으로 無漏의 聖道(혹은 聖者)의 흐름에 들어간 자리이다. 이 果를 향하여 見惑을 끊고 있는 見道十五心의 사이가 預流向이다.
一來는 범어 sakrdagamin의 번역. 斯陀含이라고 音譯한다. 一來果란 欲界의 修惑에 九品(곧 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 九品)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앞의 六品까지의 번뇌를 끊어버린 聖者의 位를 말한다. 이 位에 있는 자가 아직 끊을 수 없는 三品의 修惑을 끊기 위해서는 한 번 天界에 태어났다가 다시 人界에 와서 般涅般의 깨달음을 얻어야 하므로 一來라고 한다. 이 6품의 修惑을 끊고 있는 자리를 一來向이라 한다.
不還은 범어 anagamin의 번역으로 阿那含이라 音譯하며 略하여 那含이라고도 한다. 不還果는 欲界의 修惑 9품중의 나머지 3품을 끊어 버려서 다시 欲界에 돌아오지 않는 자리이다. 不還向은 그 修惑을 닦아 끊고 있는 자리를 말한다.
阿羅漢은 범어 arhat의 音譯으로 應供 · 應이라고 번역한다. 阿羅漢果는 極果 · 無學果라고 하여 一切의 見惑 · 修惑을 끊고 영원히 열반에 들어 다시 生死(迷의 세계)에 流轉하지 않는 자리이다. 阿羅漢向(無學向)은 不還의 聖者가 阿羅漢果에 이르기까지의 자리를 말한다.
옛날에는 四果만 설명하고 四向은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四果는 또 四沙門果라고도 한다.
雜阿含經 권29에 보면,
預流果는 三結 곧 有身見과 戒禁取見과 疑를 끊는 자리이고
一來果는 三結을 끊어 貪 · 瞋 · 癡가 적은 位에 나아갔음을 말한다.
不還果는 五下分結 곧 三結과 欲貪 · 瞋恚를 끊는 자리를 말한다.
阿羅漢果는 一切의 번뇌를 끊은 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원시적인 해석이다.
② 預流向. 곧 見道에 들어가서 비로소 四聖諦(佛敎의 근본진리)를 명료하게 보는(現觀한다) 無漏淸淨한 지혜의 눈을 얻는다. 이를 淸淨法眼이라고도 하고 淨法眼 또는 法眼淨이라고도 한다. 預流果에 이르면 다시 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預流果를 無退墮法이라고도 한다.
預流果의 聖者는 四果중 가장 긴 迷의 生을 거듭하는 者로서 人界와 天界를 7회 왕복하여 곧 14生을 얻는 가운데 반드시 阿羅漢果를 깨닫는 것으로서 결코 제8의 生 곧 第八有에 이르는 일은 없다. 이를 極七返有 혹은 極七返生이라 한다.
③ 一來向의 聖者중에서 欲界의 修惑의 前三品 혹은 前四品을 끊는 者를 家家의 聖者 또는 家家라고 한다. 家家란 家에서 나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곧 人界에서 天界에 태어나 다시 天界에서 人界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欲界九品의 修惑은 그 전체에 따라 欲界에 七大生 곧 人 · 天에 각각 七生을 얻게 된다.
이미 前三品(上上 · 上中 · 上下)의 修惑을 끊은 자는 나머지의 六品의 修惑에 의하여 三大生(人 · 天 각각 三生)을 얻으므로 이를 三生家家라 한다.
이미 四品(上上 · 上中 · 上下 · 中上)의 修惑을 끊은 자는 나머지 五品의 修惑에 따라 二大生(人 · 天 각각 2生)을 받으므로 이를 二生家家라 한다. 三生家家중 天三人三 혹은 人三天三 · 二生家家중 天二人二 혹은 人二天二의 生을 받는 자를 等生家家라 한다. 三生家家 중에서 天三人二 혹은 人三天二 · 二生家家 중에서 天二人一 혹은 人二天一의 生을 얻는 자를 不等生家家라고 한다.
이 중에서 天界 혹은 人界에 있어서 預流果의 깨달음을 얻어 家家의 聖者가 되고 人界에서 阿羅漢果에 이른 자를 人家家라고 부른다.
④ 不還向중에 欲界9品의 修惑 중에 7品 혹은 8品을 끊었지만 아직 1品 혹은 2品이 남아 있으므로 다시 欲界의 人 또는 天에서 1生을 받아야 하는 것을 一間(一生 또는 一品의 惑이 막히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뜻) 또는 一種子 혹은 단순히 一種이라고도 한다. 不還果는 다시 세분된다.
五種不還(果)은 五種阿那含 혹은 五種般이라고도 한다.
(1) 中般. 不還果의 聖者가 欲界에서 죽어 色界에 태어날 경우 거기에 이르는 中有의 자리에서 般涅般하는 것.
(2) 生般. 色界에 태어나서 얼마 안되어 般涅般하는 것.
(3) 有行般. 色界에 태어나 거기서 오랫동안 수행을 쌓고 般涅般하는 것.
(4) 無行般. 色界에 태어나 거기서 수행도 못하고 오랜 시간 뒤에 般涅般하는 것.
(5) 上流般. 色界에 태어나 다시 차례로 위 하늘에 올라가서 드디어 色界의 最高天인 色究竟天 또는 無色界의 最高天인 有頂天에 태어나 거기서 般涅般하는 것. 그리고 色究竟天일 경우, 이를 樂慧라 하며 有頂天이면 樂定이라 한다.
色界는 지혜가 뛰어나고 無色界에는 定이 뛰어나기 때문이다(樂慧에도 樂定에도 다음의 세가지가 있다.
1. 全超. 色界最下의 梵衆天에 태어나 중간 14天을 전부 넘어서 色界 · 無色界의 最上天에 나오는 자.
2. 半超. 같은 중간의 1天 내지 13天을 넘은 자.
3. 徧沒. 1天도 초월함이 없이 이미 生을 얻은 자). 5種不還에 다음의 두가지를 더하여 7種不還이라고도 한다. 곧
(6) 現般. 欲界에 있는 그대로 般涅般하는 것.
(7) 無色般. 곧 行無色. 欲界에서 죽어서 無色界에 태어나 거기서 般涅般하는 것.
9種不還은
(1) 速般 · (2) 非速般 · (3) 經久(이상 세가지는 中般을 다시 세가지로 나눈 것으로 각기 中有에서 차례로 빨리 또는 좀 늦게 혹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 般涅般하는 것) ·
(4) 生般 · (5) 有行般 · (6) 無行般 · (7) 全超 · (8) 半超 · (9) 徧沒의 아홉 가지를 말하고, 이 중에서 제7 이하를 함께 묶어서 하나로 합쳐 七善士趣라고도 한다.
滅盡定에 들어가 涅槃과 흡사한 寂靜의 樂을 몸으로 깨달아 얻은 不還果의 聖者를 身證 또는 身證不還이라고 한다.
欲界九品의 修惑을 끊고 不還果를 얻은 聖者가 다시 欲界에서 번뇌를 일으켜 不還果에서 退墮하는 것을 離欲退라고 한다.
⑤ 大乘莊嚴經論 卷十二에는, 이 小乘의 四果를 본따서 같은 명칭을 가지고 大乘의 四果(菩薩의 四果)를 說한다. 곧 十地 중의 初地 · 第八地 · 第十地와 佛地도 이에 해당한다.
보살계위(菩薩階位) : 보살이 처음에 菩提心을 일으켜서부터, 수행의 공을 쌓아, 佛果에 이르기까지의 階位. 모든 經論에서 보는 바는 한결같지 않고, 또 예컨대 發心 등 十住의 說은 옛적에는 단독으로 그것만으로 보살의 모든 階位를 나타내 보인 것 같지만 후세에 와서는 地前三賢의 初位에 해당하는 것처럼 階位說에 역사적인 발전이 있었음이 보인다.
고래로 瓔珞本業經의 五十二位說이 그 名義도 정비되고, 그 位次에도 결함이 없다고 하여 널리 인용되고 있다.
① 唯識宗에서는 四十一位說을 취하여, 十信은 初住에, 等覺은 第十地의 滿心(最終時)에 포함시킨다. 또 第十廻向의 後心에 四善根의 位를 열어서, 地前三十心(十住·十行·十廻向) 중 第三十心(第十廻向)의 少分까지를 大乘順解脫分(三賢), 第三十心의 少分을 大乘順決擇分(四善根)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高僧 圓測은 十信에 관해서 다른 說을 세워, 位地의 十信(初住에 들어가기까지의 十順名字의 보살이 행하는 十心)과 行解의 十信(初住이상의 보살이 다 닦는 十心)이 있다고 한다.
② 화엄종의 說. 大乘 始敎의 廻心敎(愚法二乘을 대승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敎)에서는 小乘의 位次를 準用하고 또 三乘, 공히 十地(乾慧地一佛地)에 의거한다. 이와 같이 直進敎(곧바로 大乘으로 나가게 하는 敎)에서는 十信을 階位에 포함시켜 五十一位를 세우고, 十廻向이상을 不退位로 한다(소질능력의 차이에 따라 上根은 第七住, 中根은 十廻向, 下根은 初地에서 不退位로 들어간다고 한다).
終敎에서는 十信은 아직 不退位를 얻지 못하는 까닭에 단지 行이라고 하여 位로서 인정하지 않고, 四十一位를 세워, 初住를 不退位로 한다.
頓敎는 一念不生이 곧 佛이기 때문에 位次를 세우지 않는다.
圓敎에서는 同敎一乘에는 특별한 位次를 세우지 않고, 前四敎의 階位를 含攝하고,
別敎一乘에서는 行布門은 階位의 차례를 세우지만, 圓融門에서는 한 位에 一切位를 갖추었다고 하며, 특히 十信의 滿位가 되면 成佛한다(信滿成佛)고 說한다.
③ 천태종에서는 三乘 공히 十地를 通敎의 位次로 하고, 五十二位를 別敎의 位次로 한다.
곧 別敎의 五十二位에는 十信을 外凡(三惑 중 界內의 見思를 항복시키는데 그친다),
十住·十行·十廻向을 內凡(界外의 無明을 항복시키는 데까지 이른다),
初地이후를 聖位로 한다.
圓敎에서는 모든 존재가 본래적으로 三千의 모든 법(온갖 事物)을 부족함이 없이 갖추고 있다고 하기 때문에, 그 本體로 말하면 佛陀도 중생도 동등하다고 간주되지만, 그러나 現象으로서는 迷悟의 차이가 엄연히 있기 때문에 수행의 階位가 있게 된다고 하여 六即의 位次를 정하여, 수행자로 하여금 卑下와 上慢心을 함께 떠나게 한다. 더구나 別敎의 五十二位의 이름을 빌려서 圓敎의 位次를 說하는 수도 있어, 이런 경우는 十信位(六根淸淨位) 앞에 五品弟子位를 두며, 또 圓敎의 十住位는 別敎의 十地位에 상당한다고 한다.
또 圓敎의 보살의 階位를 鐵輪(十信)·銅輪(十住)·銀輪(十行)·金輪(十廻向)·瑠璃輪(十地)·摩尼輪(等覺)의 六輪(轉輪聖王의 輪寶가 모든 것을 쳐부수는 것처럼 모든 位에서 번뇌를 끊는 것을 말한다)에 배속시키는 수도 있다.
④ 十信位의 보살이라고 하더라도 이름뿐이기 때문에 이것을 名字의 보살 住前信相의 보살이라고 하는 수가 있고 또 初地이후는 信根을 성취하여 退失하지 않기 때문에 地前三十心(十住·十行·十廻向)을 信相應地라고 하기도 한다. 모든 중생을 자식처럼 귀여워하는 보살의 지위를 一子地라 하고 이것을 乾慧 등의 十地의 第二性地 혹은 歡喜등 十地의 第八不動地 이상 또는 初歡喜地에 해당시킨다.
淨土宗에서는 一子地를 初歡喜地에 대하여 信心의 現益(이 세상에의 이익)이면서 겸하여 當益(未來世에서의 이익)이기도 하다고 한다.
또 世親의 淨土論에 敎化地란 말이 있는데 이것을 보살이 교화하는 장소의 뜻으로도 보살의 階位로도 풀이하고 階位로 볼 때에는 第八地 이상에 해당시킨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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