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큰스님 말씀

보시(布施)하는 마음이 불심(佛心)

근와(槿瓦) 2014. 12. 12. 00:04

보시(布施)하는 마음이 불심(佛心)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오늘의 한국불교는 흔히 육바라밀(六波羅密) 가운데 보시의 공덕을 속세인들에게 사찰을 향해 줄 뿐, 정작 수도승들의 속세를 향한 보시 정신은 희박하다고들 합니다.

또한 신도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하여 열심히 불전의 불공은 올리면서 자기외에 현실적인 보시정신이 희박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좋은 질문이다. 보시하는 마음은 곧 불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빈 · 부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 시대에도 정치 지도자가 국민이 다 잘 사는 북지국가를 건설하기에 노심초사하겠지만 역시 현실적으로 굶주리고 헐벗은 자는 있다.

우리 인간은 자연에 의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 마음으로부터 공존공생하여야 한다고 본다. 부처님께서도 일체 중생의 평등한 성품 가운데는 피차가 없다(平等性中無彼此)고 말씀하셨거든.

그런데 하물며 어떤 믿음을 가진 종교인들의 할 일을 새삼 논하여 무얼 하겠느냐. 종교인들이 보시 정신 선양에 앞장 서야 한다.

 

대저 불공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질을 베푸는 것으로 굶주리고 헐벗으며 병든 자의 고통과 슬픔을 구하는 것이다.

부처님께 바칠 헌금이라도 절을 찾아가는 도중 불우한 사람을 만났을 때 외면하지 말고 정성껏 그를 도와줘라. 만약 그를 외면하고 부처님께 나아간다면 진정 만인의 고통을 구제하시는 대자대비의 부처님이 결코 기뻐하실리 없다. 법당의 부처님의 공양도 중요하지만 항상 먼저 국토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 참 불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는, 타인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버스안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등의 타인을 위한 환희심의 육체적 봉사의 불공이다. 수도승은 사찰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바세계의 쓰레기를 쓸어내는 봉사의 빗자루를 남모르게 항상 들고 행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것은 법공양(法供養)이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법을 설하여 삶에 있어서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불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허무주의와 은둔주의를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속세의 제행무상한 이치를 깨닫고 더욱 올바른 마음으로 청정한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고, 일체를 부처님 섬기듯 하며 그 가운데 지상 청정극락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건설하는데 수도승이 앞장 서야 한다.

 

모든 법은 인연따라 일어나고(諸法從緣生), 모든 법은 인연따라 멸한다(諸法從緣滅)는 이치를 깨닫고, 인연에 의하여 각기 이 세상에 존재할 때까지 불교인들은 너 나 할 것없이 보살의 원력으로 사바 세계의 광명으로 빛나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일찌기 자비보시(慈悲布施)는 법왕자 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는가. 보시하는 마음이 곧 불심이라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이냐?

 

 

출전 : 큰빛 큰지혜

 

 

-나무 관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하지만 보시 욕심은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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