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정진의 동기와 발가리의 열반 108

근와(槿瓦) 2014. 12. 11. 00:03

정진의 동기와 발가리의 열반 108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이윽고 왕사성으로 돌아가 성 밖 죽림정사에 머무르시며 제자들을 교화하셨다.

“제자들이여, 숲속에 머무는 제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두려운 생각이 일어나는 일이 있으리라. ‘나는 지금 혼자서 숲속에 머물고 있다. 혼자이기 때문에 뱀이나 전갈에게 물려 죽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식중독을 일으키든가 감기나 폐 따위를 앓는다든가 하여 쓰러질지도 모른다. 혹은 사자나 범이나 표범이나 곰 등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또 이렇듯 혼자서 숲속에 있을 때에 젊은이들이 찾아와 나의 한 일, 하지 않은 일의 어느 것인가로 화를 내고 죽일는지도 모른다. 혹은 숲속에 사는 야차나 귀신 때문에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 다섯 가지는 어느 것이나 내 앞에 가로놓여 있는 장애이다’고.

 

 

제자들이여, 숲속에 머무는 제자가 만일 이 다섯 가지의 두려운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나는 이들 장애가 오기 전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면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자들이여,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음 다섯 가지의 두려운 생각이 일어날 때에도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 위해 열심히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 혈기 왕성한 때이다. 그러나 이 몸은 마침내 늙음의 엄습을 받아 부처의 가르침을 생각하든가 쓸쓸한 숲속에서 수행하든가 혹은 법의 맛을 즐길 수도 없게 되리라. 나는 그 늙음의 엄습을 받기도 전에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도록 힘써야 한다. 법을 깨달으면 늙더라도 마음 편안히 나날을 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지금 병 같은 것은 없고 극히 건강하지만 이윽고 병에 침범되어 부처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못하고 쓸쓸한 숲속에서 수행하더라도 법의 맛을 즐길 수도 없게 되리라. 나는 병에 걸리기 전에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도록 힘써야겠다. 법을 갖추고 있으면 병석에 눕더라도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곡식도 잘 여물고 탁발해도 먹을 것을 얻기 쉽고 이삭을 주워 몸을 기르기도 쉽지만, 흉년이 들어 양식을 얻기 어려운 때도 오리라.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양식을 구하기 쉬운 곳에 옮겨 살고, 우리들은 그곳에 떼지어 모여서 나날을 살아야만 하게 된다. 그러나 복잡한 곳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생각하든가 조용히 독거(獨居)하기도 어렵고 법의 맛을 즐길 수도 없게 된다. 자신은 지금 그것을 앞질러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 위해 힘써야겠다. 법을 깨달으면 흉년이 들더라도 마음 편안하게 나날을 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 대중들과 의좋게 화목하니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지만, 숲속의 도둑에게 습격되거나 지진이 있거나 하여 사람들이 모두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일도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우리들도 그곳에서 떼지어 모여 나날을 보내야만 되니, 복잡한 곳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생각하든가 고요히 혼자 있기도 어렵고 법미(法味)를 즐기는 일도 없게 되고 말리라. 나는 지금 그것에 앞질러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 위해 힘쓰겠다. 법을 깨달으면 두려움이 일어날 때라도 마음 편히 나날을 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 내가 속하고 있는 교단은 평화롭고 화목하니, 화합하고 한 가르침으로 편안히 살고 있지만, 이 교단이 불화하여 갈라지는 때도 있으리라. 불화한 교단에 있고 보면 부처의 가르침을 생각하든가 조용히 독거하는 일도 어렵고 또 법을 즐길 수도 없으리라. 나는 지금 그것에 앞질러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 위해 힘쓰자. 법을 깨달으면 화합이 깨어진 교단일지라도 마음 편히 나날을 보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여, 이 다섯 가지 경우가 떠올랐을 때에 이와 같이 마음을 가지고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도록 열심히 힘써야 한다.”

 

 

어느 날, 한 불제자가 자기의 스승에게 가서 말하였다.

“대덕(大德)이시여, 저의 몸은 오늘 술에 곯아 떨어진 것처럼 쇠약하고 마음도 흐려서, 사물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법도 보이지 않고 마음도 울적하여 청정한 행을 닦기가 싫고 법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겼습니다.”

스승은 제자인 그를 데리고 세존께 나아가 이 사실을 아뢰었다. 세존은 말씀하시기를,

“당연하다. 오관(五官)의 문을 지키지 않고 먹는 일에 양을 모르고 잠을 탐하고 좋은 법을 구하지 않고 주야로 부처의 도에 드는 행을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반드시 그대와 같이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관의 문을 지키자. 잠을 제한하고 좋은 법을 구하여 주야로 부처의 도에 드는 수행에 힘쓰자’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제자는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혼자 숲속에 들어가 열심히 수행하여 이윽고 깨달음을 얻은 후, 제자는 스승에게 돌아와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오늘 저의 몸은 취기에서 완전히 깬 것과 같습니다. 마음도 또렷해져 법도 잘 나타나며, 게으름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도 없고 청정한 수행도 싫지 않고 법에 대한 의심도 없어졌습니다.”

스승은 또다시 제자인 그를 데리고 세존께 가서 이 일을 아뢰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그대로이다. 먼저 설한 나의 가르침을 잘 좇으면 반드시 선보가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쉴 새 없이 그렇듯 생각해야 한다.”

 

세존은 또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셨다.

“제자들이여, 남자이든 여자이든 집에서 머무는 자이든 뜬세상을 버린 자이든 항상 살펴야 할 다섯 가지 일이 있다. ‘나는 늙어가는 몸으로써 늙음을 초월할 수가 없다. 나는 병든 몸으로써 병을 초월할 수가 없다. 나는 죽어가는 몸으로써 죽음을 초월할 수가 없다. 나의 사랑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모두 전변(轉變)되고 덧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업의 상속을 받아야 한다’라고 살펴야 한다.

 

제자들이여, 사람은 누구나 젊었을 때에는 청춘의 교만이 있어, 이 교만에 빠져 신(身), 구(口), 의(意)로 악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늙음을 초월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살필 때 비로소 이 교만을 멸하거나 또는 적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누구라도 살았을 때에는 언제까지나 죽지 않는 걸로 생각하고서 생존의 교만을 갖고, 이 교만에 빠져 신, 구, 의로 악을 짓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만일 죽어가는 몸이라고 살피면 비로소 이 교만을 멸하거나 또는 적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하는 자, 좋아하는 자에게는 탐욕이 일어나고 탐욕에 빠져 신, 구, 의로 악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덧없고 변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살필 때 비로소 이 탐욕을 멸하거나 적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누구라도 신, 구, 의의 세 가지의 악이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자기가 그 악업의 상속자라는 것을 돌아볼 때 비로소 그 악업을 없애든가 또는 적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중생들이 생사(生死)가 있는 한, 모든 중생은 늙음과 병과 죽음을 초월할 수가 없고 모든 중생이 좋아하는 것의 변천을 면할 수 없다. 또한 모든 중생은 그 업의 상속자이다. 이 이치를 자주 살피고 생각한다면 그것에 의해 도가 나타나고 도를 닦아 익히고 되풀이하여 행하면 계박을 풀고 번뇌를 없앨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무렵 세존이 성 밖 영취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불제자인 발가리(跋伽梨)는 도공(陶工)의 집에서 중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간병을 불러 말했다.

“벗이여, 부디 세존께 나아가 내 이름으로 세존의 족하에 배례하고 말씀을 올려 주시오. ‘세존이시여, 발가리는 지금 중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만, 세존의 족하에 배례하고자 청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가엾게 생각하시고 발가리의 문병을 해 주십시오’라고.”

간병하던 벗은 승낙하고 세존 앞에 나아가 세존을 배례하고 옆에 앉아서 발가리의 소원을 말씀드렸다. 세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허락하시고 옷을 걸치고 바리때를 손에 들고 발가리에게로 가셨다. 그는 세존이 오셨음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존은 이것을 보시고,

“발가리여, 자리에서 일어날 것은 없다. 여기에 좌석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나는 이곳에 앉겠다.”

고 말씀하시며 자리에 앉아 곧 말씀하셨다.

 

“병은 어떠냐, 견딜만 하냐. 식사는 잘 들고 있느냐. 급양은 부족함이 없느냐. 괴로움이 덜어지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느냐. 병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음식도 잘 들지 못합니다. 또 괴로움도 더하고 병도 깊어질 뿐입니다.”

“발가리여, 그대에게 무엇인가 뉘우치는 일, 아쉬운 일은 없느냐?”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확실히 적잖은 뉘우침과 미련이 있습니다.”

“계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책하고 있느냐?”

“세존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뉘우치고 무엇을 미련으로 생각하고 있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을 뵙기 위해 세존께 나아가고자 오랫 동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몸에는 그만한 힘이 없으므로 세존이 계신 곳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발가리여, 이 썩은 몸을 보아서 무엇하겠느냐. 법을 보는 자야말로 나를 보는 자이다. 나를 보는 자는, 즉 법을 보는 자이다. 왜냐하면 법을 봄으로써 나를 보고 또 나를 봄으로써 법을 보기 때문이다. 발가리여, 그대는 이 몸이 상주(常住)하는 것으로 생각하느냐, 무상(無常)한 것으로 생각하느냐?”

 

“세존이시여, 몸은 무상한 것이옵니다.”

 

“발가리여, 마음은 상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이옵니다.”

 

“발가리여, 무상한 것은 고뇌이다. 고뇌란 것은 무아(無我)이다. 무상한 것은 곧 나의 것, 이것은 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듯 여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발가리여, 이렇듯 보아오는 이 가르침의 제자는 몸과 마음을 염오하고 염오한 끝에 욕심을 여의어 괴로움을 벗어나 해탈되었다는 지혜, 즉 생은 끝났다, 수행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했다, 이로써 다른 생이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세존은 이렇듯 발가리를 깨우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영취산으로 돌아 가셨다.

 

발가리는 세존이 떠나시자 간병에게 말했다.

“벗이여, 나를 침상에 앉혀 이사기리(伊師耆利)산의 옆 흑요암(黑曜岩)에 데려다 주게. 나 같은 자가 어찌 집안에서 죽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랴.”

간병하던 벗은 승낙하고 말한 대로 그를 이사기리 산의 옆, 흑요암에 데려다 주었다.

 

세존은 그날 오후와 그날 밤을 영취산에서 지내셨다. 그날 밤 세존은 발가리의 일을 생각하시고 그가 잘 해탈되리라고 생각하셨지만 이튿날 아침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발가리에게 가서 ‘발가리여, 세존은 어젯밤 그대의 일을 염려하시고 그대가 능히 해탈되리라 생각하시면서, 발가리여, 두려워 말라, 그대의 죽음은 나쁘지가 않다. 그대의 죽음은 불행일 수 없다는 분부를 했다’고 전하라.”

 

제자들은 분부를 받아 즉시 발가리에게 가서,

“벗이여, 발가리여, 세존의 말씀을 들어라.”

고 했다. 발가리는 이 말을 듣고서 간병에게 말하기를,

“벗이여, 나를 침상에서 내려 주게. 어찌 나 같은 자가 높은 곳에 앉아 세존의 가르침을 듣겠다고 생각하랴.”

간병이 그의 말대로 해 주자 제자들은 세존의 분부를 그에게 전했다.

 

발가리는 말하기를,

“벗이여, 나의 말로써 세존의 발에 정례(頂禮)한 다음 말씀해 주시오. ‘세존이시여, 발가리는 중병으로 고뇌하고 있습니다. 세존의 발에 정례하고 이와 같이 아룁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몸도 마음도 무상한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무상한 것은 고뇌라는데 미혹됨이 없습니다. 무상하며 고뇌인 것이며 전변하는 법에 욕심을 일으키고 탐욕을 일으켜 사랑을 느끼지 않는다는 일에는 미혹됨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을 알아 듣고 세존께 돌아갔다. 그는 제자들이 떠나자 곧 칼을 집어 들어 스스로 죽었다.

그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가자! 지금 발가리는 칼을 집어 들었다.”

이리하여 세존은 제자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시는 도중에 멀리서 발가리가 널 위에서 몸과 어깨를 움직이며 뒹구는 것을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발가리의 식신(識神)이 어디로 갈 것인가고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는 지금 분명히 열반에 들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