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삼매(無願三昧)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三三昧의 하나. 또는 無作三昧. 모든 法을 觀하고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觀慧와 함께 일어나는 定心.
참고
삼매(三昧) : 범어 samadhi의 음역. 三摩地 · 三摩提 · 三摩帝라고도 音譯하고, 等持 · 定 · 正定 · 定意 · 調直定 · 正心行處라 번역한다. 마음을 한 곳에 둔다는 뜻. 等持라는 譯語는 等은 마음이 들뜨고(掉擧) 가라앉음(惛沈)을 여읨으로 평등하여 편안한 것이며, 持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머무르게 한다는 뜻이다. 곧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산란하지 않은 상태(이것을 心一境性이라 한다)를 가리킨다. 俱舍宗에서는 十大地法, 唯識宗에서는 五別境[心所의 하나. 각기 대상에 따라 일어나는 심리작용. 곧 欲 · 勝解 · 念 · 定 · 慧]의 하나로 하여, 心所(마음의 작용)의 하나로 삼는데, 經部나 成實宗에서는 心所라 하여 따로 體가 있다고는 하지 않는다. 또 일반적으로 수행에 의해, 마음이 흩어지고 어지러운 것을 멈추게 하므로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로 되는 것을 三昧라고 하고, 마음이 이 상태에 이르면 바른 지혜가 생기므로 진리를 깨닫는다고 한다. 이 三昧를 수행으로 얻어, 佛陀 등의 聖境을 눈앞에 感見하는 것을 三昧發得이라고도, 發定이라고도 한다. 舊譯에서는 가끔 三摩地(범어 samadhi 三昧, 等持)와 三摩鉢底(범어 samapatti 等至 · 正受 · 正定 · 現前)와 三摩呬多(범어 samahita 等引 · 勝定)를 혼동해서, 어느 것이나 三昧라 번역하는 수가 있는데, 三昧는 三摩地에 配對하여야 한다. 有部의 說에는, 모든 心과 더불어 움직이는 정신작용(곧 大地法)으로, 定 · 散 및 善 · 惡 · 無記의 三性에 통하여, 다만 일체의 有心位에만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하나의 대상에 멈추게 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三摩地라고 하는데 대해서, 三摩鉢底나 三摩呬多는 有心無心에 통하고, 다만 定(有心定 · 無心定을 포함)에만 한한다(따라서 散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삼삼매(三三昧) : 이것은 舊稱이다. 新稱은 三三摩地라 하며, 三定·三等持라 번역함. 능히 수행하는 사람에 따라 이름한 것. 仁王經에서는 三空이라 하고, 十地論에서는 三治라 함. 이 삼매에 有漏와 無漏 2종이 있다. 有漏定을 三三昧라 하고, 無漏定을 3해탈문이라 한다. 해탈은 곧 열반이니 無漏는 능히 열반의 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有漏를 八背捨라 하며 無漏를 八解脫이라 한다. 三三昧의 뜻은, ① (1) 空三昧. 온갖 것은 모두 인연에 따라 생기는 것이므로 我라든가 我所라든가도 역시 그 실체와 자성이 없는 것이라고 관찰하는 삼매. (2) 無相三昧. 열반은 相이 없는 것이라고 관하는 行과 함께 일어나는 定心. (3) 無願三昧. 또는 無作三昧라고도 함. 모든 법을 관하고서 바랄 것이 없다는 觀慧와 함께 일어나는 定心. 또는 無起三昧라 함. 이는 苦諦의 苦와 무상의 二行相과, 集諦의 因·集·生·緣의 四行相이 상응하는 삼매다. ② (1) 有覺有觀三昧. 색계의 初禪天에 들면 覺觀이 함께 묘하여짐을 말한다. (2) 無覺有觀三昧. (3) 無覺無觀三昧. ③ (1) 分修三昧. 定·慧 중의 어느 하나만을 수행함. (2) 共修三昧. 定·慧를 함께 닦는 것. (3) 聖正三昧. 성문 4果 중의 預流果 이후에 닦는 삼매. 곧 정혜가 일시에 갖추어 해탈하는 것.
법(法) : 범어 dharma의 번역. 達磨 · 䭾摩 · 曇摩 · 曇無 · 曇은 그 음역이다. 任持(또는 能持)自性 · 軌生物解의 두 뜻을 갖는다고 한다. 곧 그 자체의 自性(獨自의 本性)을 간직하여 改變하지 않고 軌範이 되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일정한 事物의 이해를 낳게 하는 근거로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法은 任持自性의 의미로 본다면 自性으로 존재하고 있는 일체의「存在」를 가리키고, 軌生物解의 의미에서 말하면 認識의 표준이 되는 규범 · 法 · 方則 · 道理 · 敎理 · 敎說 · 眞理 · 善(行)을 가리키는 것으로 된다.
① 色法 · 心法 · 一切諸法 · 萬法 등이라고 하는 法은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또 諸法을 有爲 · 無爲, 色 · 心, 染 · 淨 등의 二法으로 나누고, 혹은 三法 · 四法 등으로 나누는 경우의 法語도 존재를 의미한다.
② 佛의 가르침을 佛法 · 敎法 · 正法이라고 하고, 外道의 가르침을 邪法이라 일컫는 것처럼 法語는 행위의 규범, 교설의 의미이다. 무릇 진리라고 하는 것은 불변하는 보편의 道理이므로 法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데, 그 眞理를 說하는 것이 佛의 敎說이기 때문이다. 또 佛法을 들으므로서 얻어지는 기쁨을 法喜 · 法悅, 佛法의 진리의 맛에 접하는 것을 法味, 法味를 좋아하고 사랑하여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法樂(佛神앞에, 大乘의 經論을 읽고 講하고 또 法會 끝에 伎樂을 연주하여 本尊을 공양하는 것을 法樂이라고 한다), 佛法을 총괄해서 모은 것을 法聚 · 法蘊, 佛法의 義理를 法義, 佛法의 계통이 같은 것을(세상의 親類眷屬에 비유해서) 法類 · 法眷이라 한다.
佛法을 說한 經論 등의 문구를 法文, 佛法의 위력, 正法의 힘을 法力이라 한다. 佛法은 涅槃에의 門戶이기 때문에 法門, 번뇌의 魔軍을 調伏시키므로 法劒이라 한다. 佛이 남긴 가르침을 遺法, 佛法을 闇夜(암야)의 燈火에 비유하여 法燈 · 法光 · 法炬,
모든 생물에게 혜택을 주는 慈雨에 비유해서 法雨라고 한다.
기타 法海 · 法聲 · 法道 · 法筵 · 法衣 · 法師 등 여러 종류의 숙어가 있다. 이와 같은 法의 의미에서 변하여, 佛陀의 가르침을 說하여 보인 구체적인 경전까지도 法이라고 하고 또 도덕적 軌範의 의미로서 善行도 法이라고 칭한다.
③ 성질 · 속성의 의미. 因明(論理學)에 있어서는 宗(論證해야 할 주장)의 賓辭를 法이라고 하고 主辭를 有法이라 한다. 賓辭에 의해서 主辭를 표시한 물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표시되기 때문이다.
관(觀) : 범어 vipasyana의 번역. 毘鉢舍那, 毘婆舍那, 毘波奢那로 음역하며, 觀察이라고도 한다. 또, 智慧로 객관의 對境을 照見한다는 뜻인데, 觀念과 同義로 쓰일 때도 있다.
① 九想觀이나 日想觀처럼 종종의 想을 마음에 떠올려서 觀하는 初步的인 觀을 觀想이라 한다. 天台宗에서 말하는 觀은 一念三千 一心三觀처럼 자기의 心의 本性을 觀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觀心이라고 한다. 觀은 悟境에 통하는 道이므로 法相宗·華嚴宗에서는 이것을 觀道라고 한다. 觀의 對境을 觀境, 觀하는 智慧를 觀智, 觀하는 방법을 觀門·觀法이라 한다. 또 觀은 止(범어 samatha. 奢摩他 心을 하나의 對境에 집중시켜 생각을 쉬게 하는 것)에 상대되는 말이다. 그러나 中道觀 등의 觀은 止와 觀이 잘 조화된 상태(止觀均行)를 나타내는 捨(범어 upeksa)의 의미와 附合한다. 또 觀에는 禪定(범어 dhyana)의 의미도 있으므로 禪定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出觀·出定이라고 한다.
② 觀의 내용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諸法을 分析하여 空한 것으로 觀하는 小乘 및 成實宗의 觀法을 析空觀(析色入空觀·生滅觀)이라 하며, 이에 대해 大乘의 觀法은 因緣을 따라 일어난 諸法의 當體에 卽一해서 現象界 그대로 空한 것으로 體達하는 觀이므로 이것을 體空觀(體色入空觀)이라고 한다. 요컨대 觀은 心을 하나로 專心하여 智慧로써 佛과 法의 일정한 대상을 觀察하고 念思하여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眞言宗에서는 悉曇五十字母의 첫째 字인 阿자에는 本初의 뜻과 不生의 뜻이 있다고 하며, 이 阿字 위에 우주·인생을 該攝總括시켜 그 本不生의 理를 觀하는 것을 阿字觀이라고 했다. 往生要集에는 佛의 相好光明을 총괄적으로 觀하는 것을 總相觀이라 하고 華座를 비롯해서 白毫 등 佛身의 하나하나의 相好를 별개적으로 觀하는 것을 別相觀이라 했다. 三論宗에서는 八不中道의 觀은 空에도 有에도 집착하지 않는 無所得中道의 正觀이란 뜻으로 無得正觀이라 한다. 眞如의 理를 觀함에 있어 名字의 相, 心念의 相, 곧 名相을 여의어 眞如의 경계에 冥合하는 觀法을 理觀 또는 無相離念이라 하며, 이와 반대로 佛이나 淨土를 觀함에 있어 差別的이고 具體的인 相을 세워서 여기에 마음을 두고 觀想하는 것을 事觀·立相住心이라 한다. 占察經에서는 唯識觀과 實相觀을 二종의 觀法으로 든다. 十二因緣의 理를 觀하는데 淺深의 구별이 있으니, 聲聞의 觀은 가장 低劣한 觀이므로 下智觀, 緣覺의 그것은 中智觀, 菩薩의 그것은 上智觀, 佛의 觀은 가장 殊勝하므로 上上智觀이라 일컬었으며 이것을 四乘의 觀智라고 했다. 懺悔滅罪의 방법으로서 (1) 生死(迷惑의 世界)에 流轉하는 것은 자신의 罪障의 因緣 때문이라고 觀하고 (2) 그 인연에 따라서 生死에 流轉하는 자신의 不淨한 果報를 觀하며, (3) 佛性을 開顯해야 할 자신임을 觀하며, (4) 如來의 몸에 具足하고 있는 利他哀愍의 德을 觀하는 것을 四種觀行이라고 한다. (觀佛, → 止觀, → 五停心觀, → 四尋思觀(四如實智觀), → 五重唯識, → 四法界, → 三聖圓融觀, → 三觀, → 析空觀(體空觀), → 眞心觀(妄心觀), → 阿字觀, → 五相成身觀, → 五字嚴身觀, → 字輪觀, → 種三尊觀, → 十六觀)
관혜(觀慧) : 진리를 관하는 지혜.
정심(定心) : ① 산란한 마음을 여읜 禪定을 修習하는 정신작용 또는 禪定을 이룬 정신상태. ② 보살 52階位의 하나. 곧 十信의 제5心을 일컬음.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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