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복무주(罪福無主)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죄와 복은 마음에서 생겨 마음에 붙는 것이므로, 마음이 텅 비면 그 주장이 없어, 죄도 복도 생기지도 붙지도 않는다는 말.
참고
죄(罪) : 道理를 거슬려서 禁斷의 윤리적 실천규범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苦의 報를 부르는 나쁜 행위로서 허물 · 죄악을 일컫는다. 번뇌도 죄라고 일컫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그 중심은 신체 · 언어 · 의지(身 · 口 · 意)의 세가지 행위(業)이므로 罪業이라고도 한다. 그 행위가 惡이므로 罪惡이라 하고, 聖道를 행하는 것을 또 樂報를 부르는 것을 방해하므로 罪障이라고 하며, 더러운 행위이므로 罪垢라 한다. 그 행위에 의해서 받게 되는 苦의 果報가 罪報이며, 그 행위는 그 행위가 罪報를 부르는 根本이므로 이것을 罪根이라고도 한다. 罪에는 五逆罪 · 十惡罪 등을 말하게 되는 이것을 大別해서 二罪로 할 때는 본질적으로 죄악의 행위인 性罪와 본질적으로는 죄악이 아니지만 계율에 의해 금지된 사항을 위반하게 되는 죄, 또는 그 행위가 마침내 性罪를 불러오게 되는 요인을 안고 있기 때문에 계율로 금하고 있는 사항을 범한 遮罪의 罪를 든다.
복(福) : 범어 punya의 번역으로 복덕이라고도 번역한다. 세간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業)를 가리키는데 세간 출세간에 통털어 널리 말할 때도 있다. 阿含經에는, 착한 행위를 출세간적인 無漏의 梵行(淸淨行)과 世間的 有漏의 福德으로 나누어 복덕이라 함은 布施 등의 행위라고 했으며, 生天의 원인이 되는 在家의 행으로 삼았다. 部派불교에서는 중생을 三界(世間)에 매어두는 業을 福 · 非福 · 不動의 三業으로 나누고 福業은 欲界의 善果를 부르는 因으로 삼았다. 이상은 福을 世間에 限定시키는 예이다. 大乘에서는 六度의 행을 福智二業으로 나누어 지혜를 體로 하는 행위 밖의 모든 것을 福業이라고 하여 成佛의 因으로 했으나 이것은 福은 出世間에 통하는 예이다. 觀無量壽經에는, 淨土에 태어나는 因이 되는 행을 定善(마음을 한 일에 집중하여 散亂시키지 않고 닦는 善)과 散善(일상적인 마음으로 닦는 善)과의 둘로 나누고 散善을 또 三福으로 나누어 이것을 十六觀 중 최후의 三觀으로 說하고 九品의 往生과 관련시켜서 二善三福, 三福九品으로 말했다. 三福이라 함은 (1) 세간적 도덕(世福) (2) 불타가 정해 놓은 계율을 지키는 것(戒福) (3) 대승의 自行化他의 善根(行福)을 말한다. 慧遠 등은 十六觀을 모두 觀(智業, 定善)이라고 하고 三福을 福業으로 보고 福智二業을 닦아서 왕생을 얻는다고 한데 대해, 善導는 三福을 正因, 九品을 正行으로 보고 三福도 九品도 다같이 散善에 넣어서 三福은 觀을 닦지 못하는 劣機(능력 소질이 低劣한 자)가 왕생하기 위해 닦는 行이라 했으며, 源空도 三福과 九品은 분류하는 방법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한다. 源空의 門人들은 三福과 九品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풀이 했다. 福業을 닦아서 行福을 얻는 것을 福因福果라고 하며 布施를 해야 할 대상인 僧伽를 가리켜서 福德을 生長하는 밭이란 뜻으로 福田, 또는 여행자나 빈궁한 자가 사용토록 제공하는 宿舍라는 뜻으로 福舍라고 한다.
무주(無主) : 임자가 없음. (국어사전)
죄복부(罪福簿) : 저승에서 사람의 福과 罪, 善과 惡을 기록한 장부를 말함.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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