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650-33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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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의 계율을 배우지 않고 함께 성문승과 같은 법을 연설하기 좋아하지 않으며 다른 이에게 성문승을 행하도록 권하지도 않나니, 연각승(緣覺乘)에 대하여도 그러하니라. 오직 부처님 법을 위하여 중생에게 최상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도록 권하고 돕는 것이니, 이것을 두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만일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불승(佛乘)에 나아가기를 권하면 이 보살은 곧 열 가지 공덕을 섭취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이냐 하면, 하나는 깨끗한 세계를 얻어서 성문과 벽지불이 없게 되는 것이다. 둘은 순일하고 깨끗한 모든 보살 대중을 얻게 되는 것이며, 셋은 모든 부처님 세존이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넷은 항상 모든 부처님이 이름을 부르고 찬탄하면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은 일으키는 마음이 모두 다 넓고 크게 되는 것이니라.
여섯은 만일 천상에 태어나면 항상 제석천왕이나 범천왕이 되는 것이요, 일곱은 만일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전륜왕이 되는 것이며, 여덟은 언제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되는 것이요, 아홉은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는 것이며, 열은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공덕을 섭취(攝取)하게 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사리불아, 어떤 이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모두 아라한의 과위를 얻게 하고 혹은 또 연각의 지위에 오르게 할 때에, 다시 어떤 이가 한 중생을 부처님의 보리에 있게 한다면 이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아주 더 많기 때문이니라. 왜냐 하면 사리불아, 성문과 연각이 출현한다 하여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세간에 부처님이 없으면 성문과 벽지불도 없으리니, 사리불아, 부처님이 출현함으로써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되며 또 성문과 연각도 출생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아, 보살이 다른 이로 하여금 불승 안에 머무르게 하면 이와 같은 등 열 가지 공덕을 얻고 깨끗한 세계를 이루게 되느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 세계의 공덕과 장엄을 섭수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존중하고 좋아하여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요, 둘은 염착(染著)함이 없이 법 보시를 행하는 것이며, 셋은 견고하게 깨끗한 계율의(戒律儀)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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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보살이 견고하게 계율에 머무르면 열 가지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얻게 되느니라.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마을에 들어갈 때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대중 가운데서 설법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음식을 먹을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마을을 나올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절에 들어갈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여섯째는 대중 가운데서 식사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며, 일곱은 가르쳐 줄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요, 여덟은 화상(和上)과 아사리(阿闍梨)를 친근히 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며, 아홉은 자기 권속을 인자한 마음으로 가르쳐 줄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요. 열은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을 수용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 계율에 머무르는 이의 모든 말[言說]을 다른 이들로 하여금 믿어 받게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보살이 설법하면서 마음에 집착함이 없으면 곧 열 가지 공덕을 섭수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나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요, 둘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셋은 명문(名聞)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넷은 단월(檀越)의 집에 대하여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며, 다섯은 다른 이의 집을 독차지하지 않는 것이요, 여섯은 극히 하열한 네 가지 일[四事]의 공양에 대하여도 기뻐하면서 만족하게 여기는 것이며, 일곱은 설법을 다른 이로 하여금 믿어 받게 하는 것이요, 여덟은 선신(善神)이 수호하는 것이며, 아홉은 삿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요, 열은 염불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열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이 존중하고 좋아하면서 아란야에 머무르면 열 가지 공덕과 이익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세속의 언론(言論)을 멀리 여의게 되는 것이요, 둘은 오로지 고요함만을 익히게 되는 것이며, 셋은 마음이 선정의 경계를 반연하게 되는 것이요, 넷은 모든 경영하던 일을 버리게 되는 것이며, 다섯은 모든 부처님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요, 여섯은 항상 선정의 희락(喜樂)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일곱은 범행을 닦을 적에 장애가 없게 되는 것이요, 여덟은 적은 공력을 들여도 삼매(三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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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얻게 되는 것이며, 아홉은 받은 바의 교법을 잊지 않게 되는 것이요, 열은 들었던 법의 이치를 모두 다 환히 알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열 가지라 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를 장엄하고 깨끗하게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이냐 하면, 하나는 말씀한 대로 잘 수행하고 수행한 대로 잘 말하는 것이요, 둘은 항상 스스로 겸손하고 하심[謙下]하는 것이며, 셋은 인색함과 질투를 멀리 여의는 것이요, 넷도 남의 이익을 보면 마음에 기쁨을 내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보살이 행한 대로 잘 말하면 네 가지의 이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입 속에 항상 푸른 연꽃 향기가 나는 것이요, 둘은 말로 지은 업[語業]이 깨끗하여 말에 착오가 없는 것이며, 셋은 모든 세간에서 다 같이 믿어 받는 것이요, 넷은 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음성을 섭수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이 겸손하고 낮추면 네 가지의 이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나쁜 세계의 축생 등의 몸을 멀리 여의게 되는 것이요, 둘은 미묘한 쾌락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셋은 몰래 모략하는 이와 포악한 도둑이 모두 해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요, 넷은 인간과 천상의 공경과 예배를 받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이 인색함과 질투를 멀리 여의면 네 가지의 이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보시할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요, 둘은 흉년으로 곡식이 부족할 적에는 큰 시주(施主)가 되는 것이며, 셋은 계율 지닌 이가 오는 것을 보면 받들어 맞아들이는 것이요, 넷은 다른 이의 보시를 받거나 다른 이에게 보시하거나 한 사람도 질투를 하는 이가 없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이 다른 이의 이익을 보고 기쁜 마음을 내면 네 가지의 이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항상 '내가 중생을 거두어 주어 이익과 즐거움을 주어야 할텐데 그가 이미 스스로 얻었구나'라는 마음이 생기게 되므로 기쁨이 나게 되는 것이요, 둘은 소유한 재물은 국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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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수재·화재·도둑에 의해서나 원수 또는 친한 이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며, 셋은 태어난 곳마다 재보와 아들들이 모두 다 구족하게 되나니, 왕조차도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이겠느냐? 넷은 쌓거나 수용하는 재물에 모두가 다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 보살은 이러한 네 가지의 법을 성취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를 장엄하고 깨끗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하면, 하나는 그 보살이 설법하는 이에게 나아가서 묻기를 '어떠한 행을 닦으면 부처님의 세계가 깨끗하고 장엄하게 됩니까?'라고 하여, 만일 듣게 되면 말을 해준 대로 수행하는 것이니라.
둘은 보살이 깨끗하게 지닌 계율과 원력 때문에 불국토에 났을 때에 그 국토에 난 뒤에는 그 국토의 갖가지 장엄과 살림 도구와 모든 성문과 보살 대중의 몸의 미묘함을 관찰하고 여래께 공경하고 존중하며 관찰하고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떠한 행을 닦으면 넓고 큰 부처님의 세계가 깨끗하고 장엄하게 되나이까?'라고 하여, 여래께서 이 보살의 뜻으로 좋아함이 훌륭함을 알고 곧 그를 위하여 이와 같은 공덕과 성취하는 부처님세계를 널리 말씀하여 주면 그는 그 말씀을 듣고 나서 법대로 수행하는 것이니라.
셋은 보살이 지혜가 있고 행이 있으면 그 지혜를 깨끗하게 하여야 하고 그 행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 어떻게 지혜를 깨끗하게 하는가 하면, 능히 반연하는 이[能緣]와 반연할 대상[所緣]의 법에 있어서 성문과 연각의 지혜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요, 어떻게 행에 나아가야 하는가 하면, 들은 대로 반드시 수행하고 행해서는 안 될 일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넷은 보살이 인(因)이 있음을 잘 알고 벗어나는 말을 아는 것이니, 인이 있다 함은 바르지 않은 생각인 이 네 가지 뒤바뀜[四顚倒]에 의지하게 되는 나고 죽는 인이기 때문이요, 벗어난다 함은 바르게 수행하여 모든 법에 대하여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다섯은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체성(體性)과 국토의 성품은 다 같이 이름이 있을 뿐이고 그 이름도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분명히 아는 것이니,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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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분명히 알면 안다는 생각조차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얻고 또한 모든 세계의 가장 으뜸가는 부처님의 세계를 하나는 이 보살이 큰 시주(施主)가 되어서 모든 값진 것과 사랑할 만한 물건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되 인색함이 없고, 또 생각하기를 '나는 큰 보시를 행하여 대승(大乘)을 원만하게 하리라.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에 모든 것을 다 버리되 마음에 집착함이 없이 보리의 양식을 구족히 성취하는 것이니, 자기의 몸과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도 오히려 후회하지 않거늘 하물며 재산과 처자이겠는가'라고 하느니라.
사리불아, 무엇 때문에 여래를 일체지(一切智)라 하는가 하면, 보살행을 할 때에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다 버렸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보리를 얻고 나면 일체지라 하느니라.
둘은 보살이면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율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요, 이렇게 계율을 지키며 모든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지닌 계율을 스스로 깨닫고 기뻐하면서 범행을 즐거이 닦아 밤낮으로 안락하며 더욱 더 법을 구하여 바른 수행에 머무르고 삼계(三界)를 싫어하며 벗어나기를 구하며, 비록 벗어난다 하더라도 중생을 돌보아 주면서 자신이 받는 고통과 같이 그들에게도 모두 그렇게 여기며 '나는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중생을 섭취하여 열반의 안락한 곳에 옮겨 놓으리라'고 하나니, 이와 같은 계율을 지키며 스스로 깨닫고 기뻐할 때에 대비(大悲)의 마음을 획득하여 아직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기 전까지는 정진을 버리지 않기를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는 것이니라.
셋은 보살이 인욕의 갑옷을 입고 뽐내는 일을 여의며 큰 인욕 힘을 얻어 만일 욕설을 당하거나 매를 맞을 때에는 인욕의 마음이 성취되어 성을 내지 않으며, 가령 수미산만큼 큰 몽둥이로 어떤 사람이 붙잡고 억 겁 동안을 항상 때리고 꾸짖는다 해도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 왜냐 하면 그 모든 중생들이 아직 불법을 따라 배우지 못하고 있어도 나만은 불법을 따라 닦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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