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 95

근와(槿瓦) 2014. 10. 5. 01:17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 95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어느 날 기원 정사의 앞 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어버이를 존경하는 자녀가 있는 집은 신불(神佛)이 머무는 집이다. 제자들이여, 신불이란 어버이를 이름한다. 어버이는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신이며, 또 이 세상의 선악을 그 자녀에게 가르쳐 보이는 부처이다.

 

제자들이여, 반월의 매 8일마다 신들의 사자가 이 세계를 유력(遊歷)하여, 인간 세계의 사람들이 얼마만큼이나 부모와 출가자를 받들며 장자를 좇고 포살(布薩=齊戒精進)의 날에 사람의 도인 팔계(八戒)를 지키며, 그 전후 양일을 삼가고 덕을 쌓고 있는가를 뒤돌아 보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또 반월의 매 14일에는 신의 아들들이 이 세계를 역시 그와 같이 유력하고 또 반월의 매 15일에는 신들이 역시 그와 같이 이 세계를 유력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그와 같이 하여 인간 세계를 둘러보고 만일 덕을 쌓는 사람이 적을 때에는 신들이 선법(善法)의 강당에 모여 ‘인계에서는 부모나 출가자를 섬기고 장자를 공경하고 포살 일에 팔계를 지키며 그 전후 양일을 삼가고 덕을 쌓는 자가 적다. 아, 신의 무리는 줄고 악마의 무리는 는다’고 하여 슬퍼하며, 만일 인간 가운데에서 덕을 쌓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아, 신의 군집은 늘고 악마의 무리는 준다’고 하여 기뻐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먼 옛날의 일이지만 신들의 왕인 제석천은 도리천의 신들을 모아 다음과 같이 노래한 일이 있다.

 

나와 같이 되고자 한다면 반월의 매 8일, 14일, 15일 및 앞뒤의 양일에 팔계를 지킬지어다.

 

제자들이여, 제석천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직도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탐욕, 진에, 우치를 여의지 못하고,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슬픔, 고, 뇌, 민(悶)에서 해탈하지 못하고서, 나와 같이 되고자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여, 번뇌를 없애고 청정한 행을 닦아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바르게 해탈한 성자가 되어야 비로소 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자야말로 탐욕과 진에와 우치를 여의고 태어남, 늙음, 죽음, 근심, 슬픔, 괴로움, 고뇌, 번민으로부터 해탈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여, 신앙 있는 자에게 세 가지의 것이 갖추어지면 많은 덕을 낳는다. 그것은 첫째로 신심이 있을 것. 둘째는 베푸는 것이 있을 것. 셋째로는 베풀만한 사람이 있는 일이다.

 

 

제자들이여, 재가자가 믿음이 있다고 일컬어지면 다음의 네 가지 일로써 알 수가 있다. 첫째로는 지계가 바른 사람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것. 둘째로는 정법을 듣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것. 셋째로는 탐욕의 더러움을 여의고 청정한 손으로써 널리 베풀고, 비는 자에게 늘 둘러싸여 베푸는 것을 즐기는 일이다. 이 세 가지의 일이 있고서 넷째로 믿음이 있는 사람임을 안다.”

 

 

또 어느 날 밤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세간에서 말하는 어버이를 모르고 자식을 모른다는 경우가 세 가지 있다.

하나는 큰 불이 일어났을 때다. 맹렬한 불길로 어머니는 자식을 돌볼 수가 없고 자식은 어머니를 구할 수가 없다.

둘째는 큰 폭풍우가 불어 대홍수가 날 때이다. 수세에 떠내려가고 감도는 곳에서 어머니는 자식을 구할 수가 없고 자식은 어머니를 구할 수가 없다.

셋째는 큰 숲속에 사는 강도의 무리가 약탈을 시작할 때다. 마을 사람들은 달아나 버려 어머니는 자식을 돌볼 수가 없고 자식은 어머니를 구할 수가 없다. 제자들이여, 그러나 이들 세 가지 경우에 있어서는 때로 모자가 서로 돕는 기회가 있기도 하지만, 이 밖에 참으로 모자가 이산되어 어버이를 모르고 자식을 모르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그것은 늙음의 공포와 병의 공포와 죽음의 공포가 닥쳐 왔을 때이다.

 

자식이 늙어가는 것을 어머니는 ‘내가 늙되 자식은 나이를 먹지 않도록’할 수가 없다. 어머니가 늙어 가는 것을 자식이 ‘내가 늙되 어머니가 나이를 먹지 않도록 ’할 수는 없다. 또 자식의 병을 보고서 어머니가 ‘내가 대신 병들고 자식의 병이 없도록’할 수도 없다. 어머니의 병을 자식이 ‘내게 병이 나되 어머니의 병이 완쾌하도록’할 수도 없다. 또 자식의 죽음을 어머니가 ‘내가 죽고 자식이 살도록’하고 돌이킬 수도 없다. 어머니의 죽음을 자식이 ‘내가 대신하여 어머니의 생명을 구하도록’하여 살릴 수도 없다. 이것은 참으로 어버이가 알지 못하고 자식이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앞의 세 가지 경우와 뒤의 세 가지 경우인 이 여섯 가지의 두려움을 뛰어넘어 여의는 도가 있다. 그것이 곧 팔정도(八正道)이다.

 

 

제자들이여, 여하한 두려움도 어리석음에서 일어난다. 여하한 곤란도 어리석음에서 일어난다. 여하한 불행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일어난다. 비유컨대 띳집이나 초가집의 안팎을 백회로 잘 발라 바람을 막고 문도 창도 꼭 닫은 누마루도, 집이란 집은 모두 타버리듯이, 어떠한 두려움도 곤란도 불행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이런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갖는 바로서 현명한 자가 가질 바는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일컫는 세 가지의 법을 던져 버리고 현명한 자라고 일컫는 세 가지의 법을 얻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자들이여,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이란 행동의 나타남에 의해 아는 바이다. 지혜는 행동에 의해 빛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세 가지 법이란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악업을 말한다.

현명한 사람의 세 가지 법이란 몸과 입과 뜻의 선업을 말한다. 이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악업은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고, 세 가지의 선업은 현명한 사람의 모습이다.

 

제자들이여, 또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과의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의 세 가지 법이란 죄를 죄로서 모르는 일, 죄를 죄로서 알더라도 법대로 고치지 않는 일, 남으로부터 죄 있음이 지적되더라도 법과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다.

현명한 사람의 세 가지 법이란 죄를 죄로서 알고 법과 같이 그것을 고치고 남에게서 죄 있음이 지적되면 법과 같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제자들이여, 어리석은 악인은 그 세 가지의 법을 갖추어 자기의 덕을 뿌리채 뽑아 버리고 식(識)있는 사람한테 비난을 받거나 비웃음을 받으며 스스로 많은 부덕(不德)을 쌓는 것이다. 또 지혜 있는 선인은 그 세 가지의 법을 갖추어 자기의 덕을 뿌리채 뽑은 일이 없고 식 있는 사람에게서 비난을 받지 않고 조소당하는 일도 없이 스스로 많은 덕을 쌓는 것이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