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510-302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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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자야, 어떤 이가 모든 기억이 지극히 잘 머무르고 성품이 하열하지 않으며 마음이 착하고 정직하여 삿되지 않으며, 나고 죽는 모든 허물을 잘 관찰하면서 큰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어 줄 때에 만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항상 바르게 기억하고 지니면 거룩한 도를 잊지 않게 되기 때문에 곧 이 법을 바른 기억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바른 삼마지(三摩地)라 하느냐 하면, 사리자야, 삼마지라 함은 만일 바른 성품[正性]이 평등하다면 온갖 법에서도 평등하나니, 모든 보살들이 이러한 삼마지에 편히 머무른 뒤에는 모든 중생들을 해탈하게 하기 위하여 바른 성품에 나아가 들어가느니라. 이와 같이 바른 선정은 곧 그지없는 도[無盡道]이므로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현관(現觀)을 증득하게 하기 위하여 널리 연설하여 열어 보이시나니, 이것을 보살의 바른 선정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8성도분(聖道分)이라 하나니,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 8성도분의 선교를 부지런히 닦아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도의 선교[道善巧]를 닦나니, 도의 선교에는 또 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이니, 이것을 두 가지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사마타의 도라 하느냐 하면, 사리자야, 모든 보살의 마음이 고요하고 깊고도 지극히 고요하고 가장 뛰어나게 고요하며, 산란함이 없고 모든 감관이 담박하여 들뜸이 없으며, 모든 조급함과 혼침을 여의고 편안하고 고요하여 은밀하게 보호하고 모든 아첨을 여의며, 조복하고 따르면서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저 시끄러움을 여의고 멀리 여의는 행[遠離行]을 좋아하며, 몸은 티끌에 물듦이 없고 마음은 미혹되어 요란함이 없으며, 고요한 문[寂靜門]에서 생각하고 뜻을 지으며, 모든 나쁜 욕심을 여의고 희망하는 것이 없고 모든 큰 욕심[大欲]을 멀리하며 기뻐하고 만족할 줄 아느니라.
그리고 바른 생활[正命]이 깨끗하고 바른 행이 원만하며 위의(威儀)를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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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히 보호하여 때를 알고 분수를 알며, 기르기 쉽고 만족하기 쉽도록 그의 분량을 잘 알며 항상 즐거이 생각하여 간택하고 뽐냄도 없고 기죽음도 없으며, 비루한 말이나 추악한 말을 해도 참고 견디며 상응하는 문[相應門]에서 마음을 내어 편히 머무르고 조용한 방에 있기를 좋아하며, 정려(靜慮) 갈래에 대하여 뜻을 품고 생각을 반연하며 큰사랑[大慈]을 일으키고 대비(大悲)를 끌어내며, 대희(大喜)에 편히 머무르고 대사(大捨)를 닦아 익히며, 첫째 정려[初靜慮]로부터 여덟 가지 선정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증득하여 들어가는 것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것을 성취하면 이와 같은 것을 사마타의 도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또 한량없는 모든 사마타의 자량(資糧)이 되는 바른 행이 있는데 모든 보살들이 이런 자량의 방편에 나아가 들어가는 이와 같은 것을 사마타의 도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비발사나(毘鉢舍那)의 도라 하느냐 하면, 모든 보살이 묘한 지혜의 갈림에서 거룩한 도를 닦아 익히고 모든 법 가운데 이와 같은 작용이 없음[無作]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또 나도 없고 유정도 없고 목숨도 없고 보특가라도 없음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모든 온(蘊) 가운데 법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모든 계(界) 가운데 법계(法界)임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모든 처(處)에서는 공의 마을[空聚落]임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니라.
또 모든 눈[眼]에서는 환히 비춤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연기(緣起)에서는 서로 어기지 않음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모든 견해의 갈림[見趣]에서는 멀리 여읨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모든 인과(因果)에서는 업보(業報)를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얻어야 할 과보에서는 증득함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들어가야 할 바른 성품에서는 나아가 들어감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비발사나라 함은 모든 법 가운데서 이치에 맞는 견해[如理見]를 일으키고 모든 법 가운데서 진실한 소견을 일으키며, 모든 법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일으키고 모든 법 가운데서 공하다는 견해를 일으키며, 모든 법 가운데서 모양이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고 모든 법 가운데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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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비발사나라 함은 인(因)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요 인이 없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며, 나고 없어지고 머무는 인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요 얻을 인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보살은 이것에 대하여 전혀 관찰할 것이 없는데도 또 관찰하며 보지 않으면서도 보고 보면서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이렇게 관찰하면 사실대로의 관찰이라 하고 진실한 견해라 하며 또한 비발사나를 증득하는 선교방편이라고도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관찰 가운데서 비록 이러한 관찰과 견해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저는 하는 일이 없는 데에 떨어지지도 않고 또한 선근의 가행(加行)을 멀리 여의지도 않나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것을 성취하면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비발사나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써 사마타와 비발사나의 도법선교(道法善巧)를 닦고 익히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도(道)의 모양은 이렇지만, 내가 만일 보살의 도를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오직 하나[一]로 나아가는 도의 선교가 있을 뿐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이 그것이냐 하면, 유독 한 무리[一衆]의 모습일 뿐이어서 같이 하는 이도 없고 돕는 벗도 빌리지 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하여 스스로 섭수하고 정진하는 세력으로 깨끗하게 이해하려 하면서 견고한 갑옷을 입는 것이니, 왜냐 하면 이 보살은 다른 이로 말미암아 깨치지도 않고 다른 것을 반연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건립하고 자기의 힘으로 이와 같은 견고한 갑옷을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갑옷을 모든 중생들은 입지 못했지만 나만 유독 이와 같은 갑옷을 입게 되었다. 모든 성현으로서 새로 뜻을 일으켜 아직 바른 지위에 머무르지 못한 모든 보살들은 아직도 입지 못했지만 나만 이제 홀로 입게 되었다'고 하느니라.
그 때에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렇게 갖추고 있거늘 어찌 보시가 자재(自在)하여 나를 건지겠느냐? 내가 마땅히 자재하여 저 보시를 건져주리라. 이와 같아서 지계·인욕·정진·선정 및 반야 등이 어찌 자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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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지겠느냐? 내가 마땅히 자재하여 먼저 그들을 건져주리라'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어찌 바라밀다(波羅蜜多)가 나를 일으키게 하겠느냐? 내가 마땅히 바라밀다를 일으키리라. (이렇게 널리 말하면서) 모든 선근이 모두 나로 인하여 일어나게 할 것이요 선근이 나를 일으키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법에서 돕는 벗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건립하며 '나 하나일 뿐, 같이할 이가 없다'고 하면, 장차 견고하고 뛰어난 금강자리[金剛座]에 앉아 스스로의 힘으로써 악마 군사를 꺾어 누를 것이요 한 찰나와 상응하는 묘한 지혜로써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하게 되리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등의 알려고 하는 방편을 일으켜 반드시 관찰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하나[一]에 나아가는 도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고자 하여 이와 같은 하나에 나아가는 도의 선교를 닦고 익히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이와 같은 등이 도의 선교의 모양이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도법의 선교를 닦고 익히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연기의 선교[緣起善巧]냐 하면, 사리자야, 모든 보살들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연기를 수행하며 은밀하고 고요한 방에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세간은 순전히 큰 고통 덩어리인데 어디서부터 쌓여 일어나는 것일까?'라고 한 뒤에 곧 '이와 같은 고통 덩어리는 이치대로 뜻을 짓지 않는 것[不如理作意]이 쌓이기 때문에 무명(無明)이 쌓여 일어나고 무명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지어감[行]이 쌓여 일어나며, 모든 지어감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의식[識]이 쌓여 일어나고, 모든 의식이 쌓이기 때문에 이름과 물질[名色]이 쌓여 일어난다.
이름과 물질이 쌓이기 때문에 여섯 감관[六處]이 쌓여 일어나고, 여섯 감관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접촉[觸]이 쌓여 일어나며, 모든 접촉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느낌[受]이 쌓여 일어나고, 모든 느낌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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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이 쌓여 일어나며, 모든 욕망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취함[取]이 쌓여 일어나고, 모든 취함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有]가 쌓여 일어나며, 모든 존재가 쌓이기 때문에 생겨남[生]이 쌓여 일어나고, 생겨남이 쌓여 일어나기 때문에 늙어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함 등 모든 것이 다 쌓여 일어난다'고 함을 스스로 분명하게 아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또 생각하기를 '마치 저 모든 법이 비록 또 쌓여 일어난다 하더라도 조작이 없고 작용이 없고 주재(主宰)가 없는 것처럼 이러한 모든 법은 모두가 선(善)이 인(因)이 되고 움직이지 않음[不動]이 인이 되고 열반이 인이 되므로 저 모든 법은 연(緣)으로부터 생기며 주재가 없는 것도 그와 같다. 또 모든 중생들은 하근(下根)이 인(因)이 되고 중근(中根)이 인이 되고 상근(上根)이 인이 되고 모든 업(業)이 인이 되어 인과(因果)로 유전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모든 취할 것이 있는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쌓여 일어나나니, 보살이 온갖 것을 모두 이렇게 분명히 알면 그것을 연기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무엇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 모든 법이 소멸하는 것일까?'라고 한 뒤에 곧 '이치대로 뜻을 짓지 않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무명이 소멸하고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모든 지어감이 소멸하며 모든 지어감이 소멸하기 때문에 나아가서 순수하게 큰 고통 덩어리가 소멸하게 된다' 함을 스스로 분명하게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법의 지혜를 분명히 알면 이것을 곧 연기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인(因)은 바른 법을 의지하고 모든 연(緣)을 의지하고 화합을 의지하며 모든 선(善)을 닦게 된다. 이 법에서 만일 모든 인(因)이 모든 연(緣)과 화합하고 의지한다면 곧 이 법들은 나를 의지하지도 않고 유정을 의지하지도 않고 목숨을 의지하지도 않고 보특가라를 의지하지도 않을 것이니, 이야말로 저 법은 헤아릴 수가 없구나'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보살들이 만일 이와 같이 이치대로 관찰한다면 이것을 곧...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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