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십일법유비구(牧牛十一法喩比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 色을 알아서 四大와 四大가 지은 빛을 아는데 비유.
(2) 相을 알아서 善行과 惡行의 相을 아는데 비유.
(3) 摩刷를 알아서 惡念을 여의는데 비유.
(4) 護瘡을 알아서 五根을 護持하는데 비유.
(5) 起烟을 알아서 說法을 많이 들음에 비유.
(6) 良田에 풀이 무성함을 알아서 八正道에 비유.
(7) 사랑할 것을 알아서 法寶를 아낌에 비유.
(8) 道行을 가릴 줄 알아서 十二部經을 行하는데 비유.
(9) 제도할 곳을 알아서 四意止에 비유.
(10) 止足함을알아서 食을 貪하지 않음에 비유.
(11) 時宜를 알아서 공손히 長老比丘를 받듬에 비유한 것을 말한다.
참고
사대(四大) : ① 地 · 水 · 火 · 風을 말함. 大(범어 maha-bhuta)는 元素란 뜻. 네 가지 元素. 萬有의 물질을 구성하는 4대원소.
(1) 견고한 것을 본질로 하고 그 본질을 보존하여 유지하는 작용을 가진 地大.
(2) 濕性을 본질로 하는 작용을 가진 水大.
(3) 열을 본질로 하고 태우는 작용을 하는 火大.
(4) 움직이는 성질이 있고 만물의 성장 작용을 하는 風大를 말한다.
이상의 4가지 요소가 모여서 물질이 생긴다고 생각하였으므로 能造의 色이라 한다. 이 元素說은 인도의 다른 사상체계에서도 유사한 說이 있다.
② 몸을 말함. 몸을 구성하는 근본요소가 地· 水 · 火 · 風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오근(五根) : 다섯의 뿌리. 根이라 함은 훌륭한 작용이 있다(이것을 增上이라고 한다)는 뜻.
① 眼 · 耳 · 鼻 · 舌 · 身의 五根. 視覺 · 聽覺 · 嗅覺 · 味覺 · 觸覺의 다섯을 감각하는 五官, 또는 그 기능. 여기에 意根(心)을 더하여 六根이라고 한다. 五根은 外界의 대상을 취하고, 또 心內에 五識의 認識作用을 불러 일으킴에 있어서 뛰어난 작용이 있기 때문에 根이라고 한다. 또 이들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五色根이라 한다. 數論派에서는 五知根이라 하는데, 이 때는 身根을 皮根이라고 한다. 이들 五根을 扶塵根과 勝義根으로 나눈다. 扶塵根이라 함은 眼球 · 耳穴 · 鼻柱 등과 같이 血肉으로 되어 있는 단순한 물질적인 根이란 뜻이다. 대상을 취하는 뛰어난 힘은 없지만, 勝義根을 도와서 識을일으키게 하며 흔히 말하는 五官이 그것이다. 勝義根이라 함은 육체의 내부에 있어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對境을 취하는 주체적 작용을 하는 根이란 뜻이니, 맑고 아주 훌륭한 四大種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有部에서는 勝義根만이 五根이라고 한다. 五根중 眼根 · 耳根은 멀리 있는 대상(不至境)에 대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離中知라 하고, 鼻根 · 舌根 · 身根(皮膚)은 대상과 根이 직접으로 접촉하는 것(至境)에 한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合中知라 한다. 또 五根중, 鼻 · 舌 · 身의 三根은 等量의 境(根과 같은 量의 對境)으 취하는데, 眼 · 耳의 二根은 때로는 小, 때로는 等, 때로는 大의 境을 취한다. 더욱 意根은 無色法으로 形이 없기 때문에, 量에 대해서는 論하지 않는다.
② 信 · 精進(勤) · 念 · 定 · 慧의 五無漏根. 三十七道品중의 一類. 이들은 번뇌를 누르고 올바른 깨달음의 道에 나가게 하는데 대해서 뛰어난 작용이 있기(增上) 때문에 根이라고 한다.
팔정도(八正道) : 八聖道支 · 八正道分 · 八賢聖道 · 八正聖路 · 八正法 · 八直道 · 八品道라고도 한다. 불교의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종목을 8종으로 나눈 것. 즉 팔정도는 욕락과 고행 등의 극단을 떠난 中道이며 올바른 깨침에 인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올바른 방법으로 되어 있다. 이 팔정도는 中正 · 中道의 완전한 수행법이므로 正道, 성인의 道이므로 聖道, 또 8종으로 나누었으므로 支, 또는 分이라 한다.
(1) 正見. 바른 견해이며, 불교의 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으로서의 인연과 四諦에 관한 지혜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지혜를 확립하지 않은 자에게는 바른 신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어떤 사업을 하는 경우의 전체적인 계획이나 전망이 正見에 해당된다.
(2) 正思惟란 身語에 의한 행위를 하기 전에 바른 의사 또는 결의를 가리킨다. 출가자라면 출가자다운 柔和와 자비와 충정의 마음으로 思念思惟하는 일이다. 일반 사회에 있어서도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사업가 등 자기의 입장을 언제나 바르게 생각하고 意思하는 것이 正思惟이다.
(3) 正語란 正思惟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 행위이다. 妄語 · 惡口 · 兩舌 · 綺語를 하지 않고 진실하고 남을 사랑하며 융화시키는 유익한 말을 하는 일이다.
(4) 正業이란 正思惟 뒤에 생기는 바른 신체적 행위이다. 살생·투도·사음을 떠나서 생명의 愛護 · 施與慈善 ·성도덕을 지키는 등의 선행을 하는 일이다.
(5) 正命이란 바른 생활이다. 이것은 바른 직업에 의해 바르게 생활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면 · 식사 · 업무 · 운동 · 휴식 등에 있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이 증진되고 일의 능률도 행상되며, 경제생활과 가정생활이 건전하게 수행되는 것이다.
(6) 正精進이란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다. 정진이란 이상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은 종교적 · 윤리적 · 정치적 · 경제적 · 육체 건강상의 모든 면에서 이상으로서의 善을 낳고 증대시키되, 이에 어긋나는 악을 줄이고 제가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7) 正念이란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언제나 잊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멍청하지 않는 일이다. 사소한 부주의가 얼마나 중대한 참사를 일으키는가를 일반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불교적인 正念이란 무상 · 고 · 무아 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일이다.
(8) 正定이란 정신통일을 말하며 四禪定을 가리킨다. 사선정과 같은 깊은 선정은 일반인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바른 지혜를 얻거나 지혜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필요하다. 明鏡止水와 같은 흐림이 없는 마음과 무념무상과 같은 마음의 상태는 正定이 진전된 것이다. 여기서 正見은 나머지 일곱이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고 팔정도는 여덟 가지 항목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聖道를 이루는 각 부문이며 여덟 가지는 일체로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한 팔정도를 戒 · 定 · 慧 三學과 관계지어 보면 正見 · 正思惟는 慧이며, 正語 · 正業 · 正命은 戒이며, 正精進은 三學에 공통이며 正念 · 正定은 定과 관계지을 수 있다. 곧 부처님이 최초의 법문 가운데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며, 4諦 · 12緣起와 함께 불교의 원시적 근본 敎義가 되는 것이다.
이 팔정도는 중생을 미혹세계인 이곳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彼岸으로 건네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 船이나 筏로 비유하여 八道의 船八筏이라고 하고, 또 車輪의 輻과 轂 · 輞이 하나가 되어 차가 움직이는 것을 비유하여 八輪이라고도 한다. 이에 반하여 邪見 · 邪思 · 邪語 · 邪業 · 邪命 · 邪精進 · 邪念 · 邪定의 8을 8邪(支) · 8邪行이라 한다.
법보(法寶) : 3寶의 하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법은 소중하기가 세간의 값비싼 보배와 같으므로 법보라 한다. 곧 佛法의 經典을 통틀어 일컫는 말. →삼보(三寶. 불교도가 존경하고 공양할 佛寶와 法寶와 僧寶의 셋을 말한다. 佛은 우주와 진리와 인생의 참다운 모습을 깨닫고 이에 의해서 다른 이를 가리켜 인도하는 覺者로 불교의 敎主, 法은 그 불타가 스스로의 깨달음에 바탕하여 중생을 가르치기 위해 설한 敎, 僧은 그 法을 따라 修學하는 불타의 제자의 집단이다. 이 셋은 거룩하고 최상의 威德이 있어 변하지 않으므로 세속의 보배와 같기 때문에 寶라고 한다. 삼보에 대해서는 보통, 3종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
① 別相三寶. 階梯삼보라고도 하고, 불보와 법보와 승보가 각각 다른 존재인 측면에서 말한 것.
② 一切三寶. 同體삼보 · 同相삼보라고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불보 · 법보 · 승보의 셋으로 구별하지만, 그 본질은 다름이 없는 一體인 것을 말한다. 예컨대, 佛은 깨달은 사람이란 뜻으로 불보라 했고 불타의 덕은 깨달음의 軌範으로 할만하기 때문에 법보라고 이름하며, 僧은 다툼이 완전히 없는 화합의 상태에 있는 생활이므로 승보라고 하는데, 하나의 불보 안에 삼보가 구비하여 있고, 하나의 법보·승보 안에 삼보가 있음을 일체삼보라고 한다.
③ 住持三寶. 후세에 불교가 머물 수 있도록 전하여 가는 삼보란 뜻이니, 佛像과 經卷과 出家의 比丘 등을 말한다. 대승에서는 八相成道를 住持의 佛로 해석하고, 세상을 제도하는 온갖 敎를 住持의 법으로 삼으며, 法에 의해 敎化되어서 성립된 三乘의 대중을 住持의 僧으로 한다. 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근원이 됨으로 삼보에 歸依하는 것을 三歸 또는 三歸依라고 하여 入信 곧 최초의 入門의 요건으로 삼는다.)
십이부경(十二部經) : 十二分敎 · 十二分聖敎 · 十二分經이라고도 한다. 경전의 형태를 형식 · 내용에 따라 12종으로 구분한 것. 곧 修多羅(經) · 祇夜(重頌) · 和伽羅那(授記) · 伽陀(孤起頌) · 優陀那(無問自說) · 尼陀那(因緣) · 阿波陀那(臂喩) · 伊帝曰多伽(如是語·本事) · 闍陀迦(本生) · 毘佛略(方等·方廣) · 阿浮陀達磨(未曾有) · 優波提舍(論議)의 總稱. 이 가운데 尼陀那 · 阿波陀那 · 優波提舍의 3, 혹은 優陀那 · 阿波陀那 · 優波提舍의 3, 혹은 優陀那 · 和伽羅那 · 毘佛略의 3을 빼고 九部經 · 九分敎 · 九部法이라 부른다. 최초의 것은 北本涅槃經 권三에 說하는 것으로 이것을 大乘의 九部라 하고, 최후의 것은 법화경 권一에 說한 것으로 이것을 小乘의 9部라고 부르는데, 근거가 박약하다. 9部와 十二部의 2종의 분류즁에서는 九部쪽이 오래 되었다고 하는 說이 有力하다.
사의지(四意止) : 四念處를 말함. 사념처→新譯은 四念住라고 한다. 소승의 수행자가 3賢位에서 5停心觀 다음에 닦는 觀. 身念處 · 受念處 · 心念處 · 法念處의 네 가지를 말한다.
(1) 身念處.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하다고 관하는 것.
(2) 受念處. 우리의 마음에 즐거움이라고 하는 음행 · 자녀 · 재물 등을 보고, 樂이라 하는 것은 진정한 樂이 아니고, 모두 고통이라고 觀하는 것.
(3) 心念處.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라고 觀하는 것.
(4) 法念處. 위의 셋을 제외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自我인 實體가 없으며, 또 나에게 속한 모든 물건을 나의 소유물이라고 하는데 대해서도, 모두 일정한 소유자가 없다고, 無我觀을 하는 것이 四念處觀을 身 ·受 · 心 · 法의 순서로 각각 觀하는 것을 別相念處觀, 總合하여 觀하는 것을 總相念處觀이라 한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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