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一아함경, 雜아함경

잡아함경-1315-263

근와(槿瓦) 2017. 4. 2. 00:10

잡아함경-1315-26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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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내면 도로 남의 죄를 들추어낸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성을 내어 목으로 멍에를 부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두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내면 바르게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일을 횡설수설 지껄이면서 성을 내고 거만하게 굴거나 숨기고 덮으며 앙심을 품고 차마 못하는 짓이 없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바른 길을 가지 않고 수레를 뒤엎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세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내어 그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건만, 그는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버티고 항복하지 않는다.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뒷걸음치면서 물러가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네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낼 때, 그 사람을 업신여겨 두려워하지 않고, 또 대중들을 돌아보지도 않으며 옷과 발우를 가지고 마음 내키는 곳으로 떠나가 버린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채찍으로 때리면 이리저리 치달리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다섯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낼 때, 높은 자리로 가서 윗자리 스님들과 옳고 그름을 따진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두 발로 사람처럼 일어서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여섯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낼 때, 잠자코 대답하지 않아 대중들을 괴롭힌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채찍으로 때려도 꼿꼿이 있으면서 꼼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일곱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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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낼 때, 곧 계를 버리고 스스로 환속하려는 마음을 내고는, 절 문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그저 묵묵히 유쾌하고 기쁘게 안주해라. 나는 계를 버리고 환속하련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네 다리를 한데 모으고 땅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여덟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것을 비구로서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가 짓는 여덟 가지 허물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5. 팔종덕경(八種德經)[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9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또 이역본으로는 지요(支曜)가 한역한 『불설마유인태비인경(佛說馬有人態譬人經)』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로서 여덟 가지 덕을 성취한 놈은 사람의 욕구를 따라 어느 정도의 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좋은 말이 생산되는 고장에 태어난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첫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성질이 부드럽고 어질어 사람을 두렵게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두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음식을 가리지 않나니, 이것을 좋은 말의 세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깨끗하지 못한 것을 싫어해서 자리를 가려 눕나니, 이것을 좋은 말의 네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말 길들이는 사람에게 그 나쁜 버릇을 빨리 나타내어 말을 다루는 사람이 그를 길들여 빨리 그 버릇을 버리게 하나니, 이것을 좋은 말의 다섯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그 말을 타는 사람에게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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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다른 말을 돌아보지 않게 하고 그 무겁고 가벼움을 따라 힘을 다하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여섯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항상 바른 길을 따라 달리고 나쁜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일곱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병들었거나 늙었어도 힘을 다해 가마를 태우고 싫어하는 내색을 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여덟 번째 덕이라고 하느니라.


장부도 바른 법과 율에 있으면서 이와 같이 여덟 가지 덕을 성취하면 그를 어진 선비라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이른바 어진 선비는 바른 계와 바라제목차율의(波羅提木叉律儀)에 머물러서 위의(威儀)를 행하는 곳에서, 조그만 죄를 보고도 두려워할 줄 알고, 배워야 할 계를 받아 지니면,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첫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성질이 어질고 착하며 잘 길들고 잘 머물러서, 범행(梵行)을 닦는 자들을 괴롭히지도 않고 두렵게 하지도 않으면, 이것을 장부의 두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차례로 걸식하여, 그 얻는 대로 따라서 거칠거나 맛있거나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서, 싫어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 이것을 장부의 세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몸으로 짓는 나쁜 업과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업과,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과 모든 번뇌와, 거듭 받게 되는 모든 유정(有情)들의 치성한 고통의 과보를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내고, 미래 세상의 태어남 · 늙음 · 병듦 · 죽음과 근심 ·슬픔 · 번민 · 괴로움에 대해 더욱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내게 되면, 이것을 장부의 네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만일 어떤 사문이 허물이 있고 아첨하고 왜곡되며 진실하지 않으면, 속히 큰 스승이나 선지식(善知識)에게 알리고 큰 스승이 설법하여 곧 끊게 하면, 이것을 장부의 다섯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배우려는 마음을 완전하게 갖추어 '남들이 배우건 배우지 않건 나는 다 배우고 말리라'라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을 장부의 여섯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을 가고 그른 길을 가지 않는다면, 이것을 장부의 일곱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장부로서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방편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싫증을 내거나 게을리 하지 않으면, 이것을 장부의 여덟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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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장부가 이 여덟 가지 덕을 성취하면 그 행하는 지위를 따라 빨리 향상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6. 선타가전연경(詵陀迦旃延經)[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0번째 소경의 내용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那梨)라는 마을에 있는 심곡정사(深谷精舍)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선타가전연(詵陀迦旃延)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진실한 선정을 닦고 거친 선정을 닦지 말라. 비유하면 마치 거친 말을 마구간에 매어 두었을 때에는 그 말은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곡식이나 풀만 생각하는 것처럼, 장부도 이와 같아서 탐욕의 번뇌를 많이 닦고 익혔기 때문에 그는 탐욕의 마음으로만 사유하면서 벗어나는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마음이 항상 내달려 탐욕의 번뇌를 따르면서 정수(正受)를 구한다. 진에(瞋恚) · 수면(睡眠) · 도회(掉悔) · 의(疑)를 많이 닦아 익혔기 때문에 벗어나는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의개(疑蓋)의 마음으로만 사유하면서 정수를 구한다.선타(詵陀)여, 만일 진실한 종자의 말이라면 마구간에 매어 두더라도 물이나 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다만 사람을 태우고 다닐 일만 생각할 것이다. 어떤 장부도 이와 같아서 탐욕(貪欲)의 번뇌[纏]를 생각하지 않고 생사를 벗어나는 일에 머물러야 함을 사실 그대로 알아, 탐욕의 번뇌로써 정수를 구하지 않는다. 또한 진에(瞋恚) · 수면(睡眠) · 도회(掉悔) · 의(疑)의 번뇌를 생각하지 않고 생사를 벗어나는 일[出離]에 많이 머물러, 진에 · 수면 · 도회 · 의의  번뇌를 사실 그대로 알아 의(疑) 등의 번뇌로써 정수를 구하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선타여, 비구가 이렇게 선정을 닦는 사람은 흙[地]을 의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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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을 닦지 않고, 물 · 불 · 바람 · 허공 · 의식 · 무소유처(無所有處)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을 의지해서 선정을 닦지도 않는다. 이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고 다른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으며, 해나 달도 의지하지 않고, 보고[見] · 듣고[聞] · 깨닫고[覺] · 인식하는 것[識]에도 의지하지 않고 얻음[得]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구함[求]에도 의지하지 않고 거친 생각[覺]을 따르지도 않고 미세한 생각[觀]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선정을 닦는다. 선타여, 비구로서 이와 같이 선정을 닦는 사람이라면, 천주(天主) · 이습바라(伊濕波羅)[다른 이름으로는 자재(自在)라고 하며, 인도에서 숭배하는 신(神)이다.] · 파사파제(波闍波提)[다른 이름으로는 생주(生主)라고 하며, 인도에서 숭배하는 신(神)이다.]도 그를 공경하여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게송으로 말할 것이다.


위대한 대장부께 귀의합니다. 가장 높은 선비께 귀의합니다. 저는 도저히 모르겠나이다. 무엇을 의지해 선정을 닦습니까? 그 때 존자 발가리(跋迦利)는 부처님의 뒤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채를 잡고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발가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구는 어떻게 선정에 들어야 흙 · 물 · 불 · 바람과……(내지)……이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고 다른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으며, 해나 달도 의지하지 않고, 보고[見] · 듣고[聞] · 깨닫고[覺] · 인식하는 것[識]에도 의지하지 않고 얻음[得]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구함[求]에도 의지하지 않고 거친 생각[覺]을 따르지도 않고 미세한 생각[觀]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선정을 닦는다. 선타여, 비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을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을 수 있습니까? 또 비구가 어떻게 선정을 닦아야 저 천주 · 이습바라 · 파사파제가 합장하고 공경히 머리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하겠습니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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