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165-23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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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리어 그들이 나아가 들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동자야, 보살마하살이 대비를 행할 때에 중생의 성품을 관찰하여 이러한 열 가지 대비의 한량없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또 동자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또 다른 열 가지 대비가 굴러가는 모양[大悲轉相]이 있느니라. 이른바 이와 같은 대비는 아첨하지 않는 데서부터 생기게 되나니,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아서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생기게 되나니 보다 뛰어나게 상승하는 뜻[增上意]을 좇으면서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거짓과 허망으로 말미암지 않는 데서 일어나게 되나니, 여실(如實)한 도의 질박하고 정직한 그 마음을 좇으면서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왜곡되지 않은 데서부터 생기게 되나니, 왜곡됨이 없는 마음에 잘 머무르면서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저 뽐내거나 얕잡아 보지 않는 데서부터 생기게 되나니, 온갖 유정은 뽐냄에서 물러나야 잘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그를 보호하려 하는 데서부터 생기게 되나니, 자기 마음의 청정함을 좇음에서부터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견고한 지혜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나니, 온갖 동요하거나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영원히 여의고 그 마음에 묘하게 머물러서 잘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자기의 쾌락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나니, 남에게 쾌락을 주면서 잘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모든 중생을 짊어지려 하면서 생기게 되나니, 견고하게 정진하여야 잘 벗어나기 때문이니라.
또 동자야, 보살마하살이 지닌 대비의 한량없음에는 다시 이와 같은 열 가지 굴러가는 모양이 있느니라. 이른바 온갖 대승(大乘)으로 벗어남은 모두가 대비로 인하여 벗어나게 되는 것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대비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온갖 보시·지계·인욕·정진·정려·지혜를 건립시키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대비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4념처(念處)·4정단(正斷)·5신족(神足)을 건립시키며, 이와 같은 대비는 5근(根)·5력(力)·7각지(覺支)와 4수념법(隨念法)·18불공법[不共佛法]의 각지를 건립시키며, 그리고 도지(道支)와 본업을 기뻐함[歡喜本業]과 모든 선정의 차례[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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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次第]와 열 가지 착한 업의 길[十善業道]과 나아가 모든 형상[諸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인연 때문에 대비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여래의 자연의 지혜[自然智慧]를 건립시키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대비라고 하느니라.
동자야, 알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대비는 스스로 지어야 할 것을 짓고, 지어야 할 것을 잘 지으면서 다른 것을 짓지 않나니,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지어야 할 것을 짓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비는 온갖 중생들이 뜻대로 원만하게 하느니라. 동자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지닌 대비의 한량없는 바라밀이니라. 이 대비의 바라밀을 성취하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모든 중생을 관찰하여 이러한 지위에 처하게 하며, 또 그들에게 거듭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또 정진행 동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지닌 대희(大喜)의 한량없는 바라밀이라 하는가? 동자야,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에 대희를 수행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대희에는 한량없는 모양이 있느니라.
동자야,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의 대희란 모든 착한 법을 이름하는 것이니, 청정하고 묘한 기쁨을 기억해서 즐거워하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착한 법에 대하여 낮추거나 근심하는 성품이 없고 퇴굴(退屈)하는 성품이 없으며, 고달파하는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이 대희를 온갖 세간을 즐거워하는 성품을 멀리 여읨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온갖 법락(法樂)을 즐거워하는 성품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니라. 이 대희는 내부에서 기뻐하고 좋아하게 함으로써 몸의 힘이 용맹하고 날렵하게 하나니, 왜냐하면 지혜로운 생각이 온화하게 퍼져서 마음과 뜻이 뛰놀기 때문이니라.
이 대희는 여래의 몸을 좋아하나니, 왜냐하면 즐거이 상호(相好)를 구하고 장엄을 좋아하기 때문이니라. 이 대희는 법을 듣고 게으름이 없나니, 왜냐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법에 의지해서 행을 바로잡기 때문이니라. 이런 대희로 말미암아 법에 대하여 기뻐하고 용맹스러우며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손해를 끼치겠다는 마음이 없으며 보리(菩提)를 좋아하고 광대한 법을 모두 믿고 이해하며 조그마한 법[乘]은 멀리 여의리라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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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는 인색함을 억누르는 기쁨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구하는 모든 이에게 반드시 보시를 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대희로 말미암아 계를 범한 모든 이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두어 주고 계를 지닌 모든 이에 대해서는 마음이 항상 청정하며 또 자신의 시라(尸羅)를 청정하게 하느니라. 이 대희는 온갖 나쁜 세계의 두려움을 초월하여 안온하게 하는 기쁨이라 하고, 이 대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모든 나쁜 말과 비루한 말을 참고 받아내는 길의 기쁨이라 하느니라.
이 대희는 앙갚음이 없는 기쁨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설령 눈을 후벼파고 손을 자르고 발을 끊고 팔·다리를 벤다 해도, 그 때마다 견뎌 참고 받기 때문이니라. 이 대희는 공경하고 존중하는 기쁨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모든 어른들에게 갖추어 위의를 닦은 뒤에 몸을 굽혀 공경하고 무릎 꿇고 존엄을 표시하기 때문이니라. 이 대희는 항상 얼굴을 펴는 기쁨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마음에서 뜻함이 태평하여져서 찡그림을 여의고 먼저 말하면서 문안하기 때문이니라.
이 대희는 온갖 거짓으로 드러낸 위의와 아첨과 속임수와 억지의 요구를 멀리 여읨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이 대희는 견실한 바른 법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니라.
이 대희 때문에 모든 보살에 대하여 깊이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큰 스승[大師]과 같이 하고, 바른 법에 대하여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자기 몸과 같이 하며, 여래께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자기의 목숨과 같이 하고, 존경하는 스승에 대하여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은 마치 부모와 같이 하느니라.
또 모든 중생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외아들처럼 보고, 아차리야(阿遮利耶)와 수교사(受敎師)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안목(眼目)처럼 공경하며, 모든 바른 행위에 대하여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몸의 머리와 같이 하고, 바라밀에 대하여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손발과 같이 하며, 설법하는 법사를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귀중한 보배와 같이 하고, 구하는 바른 법에 대하여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마치 좋은 약과 같이 하며, 죄를 들추어내고 기억하게 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킴은 마치 좋은 의사와 같이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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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동자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지닌 대희의 한량없는 바라밀이니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대희의 바라밀에 머무르기 때문에 보살행을 행하면서 언제나 기쁜 생각을 품으며 부지런히 바른 법을 구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느니라.
또 정진행 동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지닌 대사(大捨)의 한량없는 바라밀이라 하는가? 동자야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고 나면 마땅히 대사를 행해야 하나니, 이 대사에는 세 가지가 있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무엇이 세 가지인가? 번뇌를 버리는 대사[捨煩惱捨]요, 자기와 남을 보호하는 대사[護自他捨]며, 때와 때 아닐 적의 대사[時非時捨]이니라.
어떤 것을 번뇌를 버리는 대사라 하는가? 동자야,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공경히 섬길 데에는 제 마음속에 높은 체하지 않고, 공경히 섬기지 않을 데에도 얕잡아 보지 않으며, 설령 이익을 얻었다 해도 마음으로 뽐내지 않고, 이익을 얻지 못했다 해도 마음이 우울하지 않느니라. 저 계율을 지닌 이와 계율을 범한 이에게도 평등한 생각을 일으키고 훌륭한 명예를 얻었다 해도 쾌락을 바라지 않으며, 여러 가지 훼방을 당했다 해도 근심함이 없느니라.
단 꾸지람을 들어도 마음속에 물러남이 없고, 칭찬을 받아도 법 성품[法性]에 잘 머무르며, 여러 가지 괴로운 일에 대해서는 간택하는 지혜의 힘이 있고, 모든 즐거운 일에 대해서는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는 관해(觀解)의 힘이 있으며, 애욕을 버리고 성내는 일들을 끊으며 원수와 친한 이에 대해서도 그 마음이 평등하니라.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대해서도 그 마음은 둘이 없고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뜻에 살핌이 없으며,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에 대해서도 집착을 내지 않고, 좋은 말과 나쁜 말에 대해서도 좋아하거나 성내는 마음이 없느니라. 또 5욕의 맛과 허물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헤아리고, 나 자신과 다른 중생에 대해서도 평등한 믿음과 하려 하는 뜻을 일으키며, 몸과 목숨에 대해서도 그리는 뜻이 없고 하·중·상의 모든 중생에 대해서도 평등한 생각으로 비추어 보며, 숨거나 드러난 법에 대해서도 평등한 성품을 일으키고, 진리와 진리 아닌 것에 대해서도 그 자체(自體)가 청정한 것이니, 이와 같이 동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저절로 뛰어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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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對治)를 일으킬 수 있으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번뇌를 버리는 대사라 하느니라.
또 동자야, 어떤 것을 자기와 남을 보호하는 대사[護自他捨]라 하는가? 동자야,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설령 다른 사람에게 팔·다리가 갈가리 찢기고 가죽과 살을 베인다 해도 항상 스스로 마음을 관(觀)하면서 대사에 머무르고, 비록 또 팔다리가 찢어지고 몸의 살을 벤다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서는 오직 대사에만 머무르고 바라는 것과 추구함이 없으며, 또 몸과 말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모두를 견디고 참는 것이니, 이것을 자기와 남을 보호하는 대사라 하느니라.
그 때 보살은 또 두 가지를 관하면서 해치겠다는 마음이 없나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눈의 모양[眼相]과 빛깔의 모양[色相]으로 말미암아 해치겠다는 마음을 내지 않고, 나아가 뜻의 모양[意相]과 법의 모양[法相]으로 말미암아 해치겠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대사에 머무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손상도 없고 피해도 없어야 비로소 자기와 남을 보호하는 대사라 하기 때문이니라.
또 어떤 것을 자기와 남을 보호하는 대사라 하는가? 남에게 손해를 입는다 해도 보복하지 않는 까닭에 자기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서 다 같이 참고 받는 것이므로 이것을 대사라 하며, 모든 은혜가 있는 이와 은혜가 없는 이에게도 평등한 방편을 쓰는 것이므로 이것을 대사라 하느니라. 이 대사는 다툼이 없는 지극한 평등이요, 자기 마음을 소멸시키는 평등이요, 그 자체를 관찰하는 평등이요, 남을 해치지 않는 평등이라 하느니라.
모든 일정한 일에 대하여 보살은 평등할 수 있으나, 부처님 세존은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모든 보살들은 오직 대사를 닦을 뿐이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오히려 모든 행의 작용을 닦아 익히는 데서도 밤낮으로 항상 정진을 일으켜 모든 착한 법을 구해야 하고 때와 때 아닐 적에도 마땅히 대사를 닦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또 동자야, 어떤 것을 때와 때 아닐 적의 대사[時非時捨]라 하는가? 동자야,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큰 지혜를 갖추어서 때와 때 아닐 적에도 다 닦고 익히는 것이니, 이를테면 법 그릇[法器]이 아닌 중생들에게도 으레 대사를 일으켜야 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에게도 으레 대사를 일으켜야 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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