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이백이공덕(千二百耳功德)

천이백이공덕(千二百耳功德)

근와(槿瓦) 2017. 1. 25. 01:54

천이백이공덕(千二百耳功德)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耳根이 청정한 공덕의 수를 말함.

 

참고

이근(耳根) : 범어 srotrendriya의 번역으로, 소리를 듣고 소리에 대한 판별 곧 耳識작용을 하는 청각기관인 귀를 가리킴.

 

청정(淸淨) : 범어 suddha. 나쁜 짓으로 지은 허물이나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깨끗함. 戒行이 아주 조졸함. 自性淸淨離垢淸淨2종이 있음. 自性淸淨(二種淸淨의 하나. 중생이 갖추고 있는 眞如心體性은 본래 청정하여 물들거나 거리낌이 없는 것.), 離垢淸淨(중생의 自性淸淨心體는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깨끗이 여의었으므로 離垢淸淨이라 한다.).

 

공덕(功德) : 훌륭한 결과를 초래하는 功能(能力)善行을 통한 으로서 구비되어 있음을 말한다. 功德力하여 功力이라고 하며, 또한 善行을 하는데 종교적으로 순수한 것과 세속적인 것이 있어서, 前者眞實功德이라고 찬양하고, 後者不實功德이라고 한다.

 

이처(耳處) : 범어 srotra. 十二處의 하나.

 

십이처(十二處) : 十二入·二入處라고도 한다. 는 범어 ayatana의 번역으로 길러 生長시킨다는 뜻. ·心所(마음의 작용)가 일어나기 위한 의지할 곳(所依·所緣)이 되어서 이것을 양육하는 것. 여기에 ·····六根·····六境이 있다. 六根主觀에 속하는 感覺器官 또는 그 기능이기 때문에 六內處라고 하고, 六境覺知되는 대상으로서 客觀에 속하기 때문에 六外處라고 한다. 12에 의해서 一切法을 다 한다. 五蘊에 배대하면 등의 5등의 5法處의 일부는 色蘊···行蘊法處, 識蘊意處에 해당한다. 十八界意處意界(意根)로 하고 六識界로 나눈 것이다.

 

이식(耳識) : 범어 srotravijnana의 번역으로 六識·八識의 하나. 聽覺작용을 가리키며, 耳根(·聽神經)으로 물체의 진동을 感受하여 喜悲 苦樂感別하는 心識활동.

 

육식(六識) : 六境知覺하는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의 총칭. 八識에 대해 말할 경우에는 이것을 前六識이라 하고 그 에 대해서 俱舍·唯識論에서는 體別이라 하고 成實論에서는 體一이라 한다. 欲界前六識이 있지만 色界初禪에는 ···의 넷, 2으로부터 有頂天까지는 意識만 있다 한다. 6意識.

 

六境 五官 또는 그 기능을 五根이라고 하고, 五根意根(마음, 十二處에서는 意處라고 한다)을 더하여 六根이라 하며, 六根對境六境이라고 한다.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對境, 色境·聲境·香境·味境·觸境·法境6이다. 六境六塵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티끌과 같이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俱舍論 卷一에 의하면,

色境에는 ···········十二顯色 , ·······不正八形色 이 있다.

聲境에는 生物의 몸에서 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어, 그 각각에 事物를 표시하는 의미가 있는 言語拍手·哭聲·管絃·雷鳴 등의 言語가 아닌 소리가 있다. 이들의 각기에 한 소리와 불쾌한 소리를 나누어서 8종으로 한다.

香境에는, 沈香과 같은 好香(()와 같은 惡香이 있어, 그 각각에 알맞는 좋은 향기와, 지나치게 강렬한 등의 4종으로 나눈다.

味境에는 ··(··6종이 있고,

觸境에는 ···四大·(····을 더하여 11종이 된다.

法境은 널리 이야기하면 일체법을 포함하고, 좁게 말하면 五境을 제한 남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意根·意識六境의 전체에 향해 작용하는데, 특히 意根·意識만이 향하여 작용하는 대상을 法境이라 하고, 十二處중에서는 이것을 法處라고 한다. 有部에서는 無表色·心所·不相應行·無爲를 포함한다고 한다.

 

팔식(八識) : 唯識說에서 주장하는 여덟 가지 .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5과 제6意識과 제7末那識과 제8阿賴耶識.

 

유식(唯識) : 本體轉變을 떠나서, 어떠한 實在도 없다고 하는 . 곧 우리들이 자기의 心外에 있다고 하는 物心의 모든 現象, 우리들의 第八識 그 자체가 主觀(見分)客觀(相分)으로 하여 나타나서, 인식의 대상과 같은 모습을 心外影像으로써 비쳐 떠올려 實在인 것처럼 인정하는데 불과하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건자체(本質)阿賴耶識중에 攝持하는 種子로부터 하여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외에는 實在는 없다고 한다. 이것을 唯識無境이라 하고, 萬有에서 했다고 하는 의미로 唯識所變이라고 한다. 이 이론을, 成唯識論 卷二에는

(1) 因能變(因變 生變이라고도 하고, 온갖 것은 阿賴耶識중에 거두어 보존돼 있는 종자에서 變生한다), (2) 果能變(果變·緣變이라고도 하고, 그 결과 八識위에 主觀客觀의 구별이 있어서 對象하는 작용을 한다)으로 나누며 觀心覺夢鈔 卷下에는 (1) 熏習道理(種子는 스스로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에 심어진 것이라는 것), (2) 轉變道理(見相二分으로 하는 것)로 나누어 한다. 法相宗의 근본적 敎義, 同宗에서는 唯識하는데, 五位百法이 모두 을 여의지 않는다고 보이는 것을 總門唯識, 不離門唯識이라고 하고, 五位心王自相, 心所心王에 응해서 작용하는 相應, 色法所變, 不相應法은 이상의 三位에 잠정적으로 세운 것.

 

말나식(末那識) : 法相宗에서 우리의 心識8종으로 나눈 가운데 제八識을 제외한 제七末那識·六意識·前五識을 가리킴. 七 末那識만을 가리킬 때도 있다.

 

末那識 末那라 번역하고, 思量의 뜻을 말한다. 末那識八識의 하나로, 七識이라고 하며 思量을 본질로 하는 이다. 六意識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도 범어를 음역해서 末那識이라 한 하나의 이유가 된다. 我癡·我見·我慢·我愛4煩惱相應하여, 八阿賴耶識見分을 항상 審思하여 ·我所라 하고 집착하는 恒心思量을 성격으로 하고, 我執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染汚意라고 하며, 思量識· 思量能變識이라고도 하는데 舊譯에서는 執著識이란 뜻으로 阿陀那識이라고도 한다.

無始이래로 미세하게 相續하여, 힘들이지 않고 자연히 일어나며 그 성질은 有覆無記라고 했다. 法相宗에서는 修行의 단계에 해서 末那識에 다음과 같은 3를 세워 이것을 末那三位라고 한다.

(1) 補特伽羅(또는 )我見相應位. 末那識阿賴耶識으로 하여 人我을 일으키는 단계이고, 凡夫·二乘有學·七地이전의 보살과 같은 有漏心의 단계를 말한다. (2) 法我見相應位. 末那識이 제八異熟識法我을 일으키는 단계(곧 어느 정도 청정하여지기는 했지만 아직 法執我執을 버리지 못한 地位), 凡夫·二乘 法空智果를 얻지 못한 보살의 단계를 가리킨다. (3) 平等性智相應位. 無漏平等性智를 일으켜 얻는 지위, 菩薩法空觀을 가지고 見道에 들어가는 경우와 修道位에서 法空智果를 일으켜 얻는 경우, 또는 佛果의 경우를 말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 阿賴耶는 범어 alaya音譯. 阿梨耶識이라고도 쓰고, 약하여 賴耶·賴耶識이라고도 한다. 八識(···舌···末那·阿賴耶의 각 )의 하나. 九識(八識阿摩羅識을 더함)의 하나. 無沒識·藏識이라 번역하고, 8·本識·宅識 등 가지가지의 명칭이 있다. 無沒識이라 함은 諸法執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藏識이라 함은 諸法展開의 의지할 바탕이 되는 근본 마음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八識의 최후에 두기 때문에 제8, 諸法의 근본이기 때문에 本識이라고도 하고 따라서 諸識 중 특히 識主라고도 한다.

成唯識論 卷二에 의하면, 藏識能藏·所藏·執藏三義가 있다. 이것을 賴耶三藏이라고도 藏三義라고도 한다. 能藏이라 함은 이 諸法展開生起하는 種子(能力·原因)攝持하고 감춘다는 의미이며, 所藏이라 함은 이 諸法生起하는 種子諸法으로 훈습하여 감춘다()는 의미이며, 執藏이라 함은 이 末那 思量의 뜻을 가지고 스스로를 愛著한다는 의미이다. 增一阿含經에 의거해서, 阿賴耶···四義가 있다고 하는(이것을 四阿賴耶라고 한다)것도, 여기서 말하는 執藏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다

 

아리야식(阿梨耶識) : 의 신역 유식설이 제 8식을 阿賴耶識이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의 구역 유식설에서는 阿梨耶識이라고 한다. 攝論·地論·華嚴宗 등에서 사용된다. 신구 양 유식설의 학설상의 차이 때문에, 阿賴耶識과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阿賴耶識眞如와 다른 有爲生滅임에 대하여, 阿梨耶識眞如와 화합한 生滅, 眞如의 현상면을 가리킨다.

 

심식(心識) : 小乘俱舍에서는 同體異名이라고 보지만, 大乘唯識宗에서는 그것을 別體로 보았다. 唯識에서는 제8, 5과 제6意識이라 한다.

 

차토이근리(此土耳根利) : 이 사바세계의 사람들은 6중에서 귀가 가장 예리하다는 것. 지금 이 사바세계는 귀가 가장 예리하므로 부처님께서 聲塵을 일으키어 설법한다. 이것을 音聲佛事를 짓는다고 함. 다른 불국토의 중생은 눈이 예리하여 부처님께서 色塵을 일으켜 그들을 이익되게 하고, 혹은 코가 예리하여 부처님께서 香塵을 일으켜 이롭게 하는 것 등으로 6설법이 이것이다.

 

관음(觀音)이 이치에 들어간 문을 보임 : “진리에 들어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으나 그대에게 하나의 문을 가르쳐 주어 그대로 하여금 근원에 돌아가게 하리라. 그대는 까마귀의 우는 소리나 까치의 울음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어보라. 거기에도 여러 가지 소리가 있는가? ‘거기에 들어가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소기특하다. 이것이 관음보살이 이치에 들어간 문이다. 나는 다시 그대에게 물으리라. 그대는 그 속에 들어가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미 얻을 수 없다면 그런 때에는 그것은 허공이 아닌가? ‘원래 공한 것이 아니라, 밝고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것의 본체인가? ‘모양이 없으므로 말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모든 부처와 조사의 명맥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이미 모양이 없는데 또 크고 작음이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또 한계가 있겠는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안팎이 없고, 안팎이 없기 때문에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멀고 가까움이 없기 때문에 저것과 이것이 없다. 저것과 이것이 없으므로 가고 옴이 없으며, 가고 옴이 없으므로 나고 죽음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므로 과거와 현재가 없으며, 과거와 현재가 없으므로 미혹과 깨침이 없고, 미혹과 깨침이 없으므로 범부와 성인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으므로 더럽고 깨끗함이 없고, 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므로 옳고 그름이 없으며,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모든 이름과 말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없어지되, 모든 감관과 대상과 일체의 망념과, 나아가서는 갖가지 모양과 갖가지 이름과 말이 다 있을 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본래부터 비고 고요하며,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신령스러이 앎이 어둡지 않아, 무정(無情)물과는 달리 성품 스스로가 신령스러이 아나니, 이것이 바로 그대의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러이 아는(空寂靈知) 청정한 마음의 본체이니라.”

이 청정하고 비고 고요한 마음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의 대단히 청정하고 밝음 마음이며 중생들의 근원인 깨닫는 성품이니, 이것을 깨치어 지키는 이는, 진여는 앉아 움직이지 않고 해탈할 것이요, 이것을 모르고 등지는 이는 여섯 길(六趣)로 나아가 오랜 생을 헤맬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한 마음을 미혹해서 육취로 나아가는 것은 흔들림이며 자신을 떠남이다. 그러나 법계를 깨달아서 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고요함이며 자신을 찾아 돌아옴이다한 것이다. 미혹과 깨달음은 다르나 그 근원은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법이란 것은 중생의 마음이라한 것이다. 이 비고 고요한 마음이 성인이라 해서 더 많은 것이 아니요, 범부라 하여 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성인의 지혜에서는 빛나지 않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서도 어둡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성인이라 하여 많지 않고 범부라 하여 적지 않다면 부처와 조사가 보통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다른 까닭은 스스로 그 마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출전 : 선문촬요(수심결)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