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미-3

근와(槿瓦) 2016. 11. 22. 01:04

다선일미-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지난봄 볼일이 생겨 오랜만에 서울에 갔었다. 서울이란 도시가 원래 그런 곳이긴 하지만 마음이 영 붙질 않았다. 노상 엉거주춤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차를 마시지 않았더니 속이 컬컬하고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마침 한 스님한테서 차를 조금 얻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마땅한 다구(茶具)가 없어 차를 마실 수 없었다. 커피 포트 같은 데 물을 끓인다 할지라도 알루미늄 주전자나 커피잔 같은 데다 차를 우리고 따라 먹을 수는 없다.


이것은 결코 사치스런 생각에서가 아니다. 차의 은은한 향취와 맑은 빛깔과 그 미묘한 맛을 알려면 다구가 갖추어져야 한다. 최소한 도자기로 된 차관(茶罐)과 잔만은 갖추어야 차를 제대로 우려서 마실 수가 있다. 사무실 스님의 배려로 인사동에 들러 요즘 이천 주변에서 구워낸 차관과 찻잔을 한 벌 구하긴 했지만, 정이 가지 않는 그릇들이라 끝내 차맛을 낼 수가 없었다. 다구는 길이 들어야 한다.


다인(茶人)들이 다구를 중히 여기는 것은 멋을 부리거나 도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차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값이 비싸다고 해서 좋은 그릇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값이 헐하더라도 다실(茶室)의 격에 어울리면 차맛을 낼 수 있다. 찻잔은 될수록 흰 것이 좋다. 빛깔을 함께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끓인 물을 부어 차를 우리는 차관은 차를 따를 때 물이 똑똑 끊어져야 하는데, 그 처리가 잘 안되어 차를 바닥에 흘리게 되면 차맛은 반감되고 만다.


다음으로는 질이 좋은 물이 문제다. 수돗물은 소독약(표백제) 냄새 때문에 차맛을 제대로 내기가 어렵다. 더구나 요즘처럼 오염된 대도시의 수돗물로는 차가 지니고 있는 그 섬세한 향기와 맛을 알기 어렵다. 산중의 샘물이 그중 좋은 줄은 알지만, 도시에서는 구할 수 없으니 수돗물을 가정에서 여과하여 쓸 수밖에 없다. 다실의 분위기와 다구와 물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정성들여 달이는(혹은 우리는)법을 모르면 또한 차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 차를 너무 우리면 그 맛이 쓰고 덜 우리면 싱겁다. 알맞게 우리어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갖춰 내어야 온전한 차맛이 난다.


초의선사는 다시 말한다.

물과 찻감이 완전할지라도 그 중정(中正)의 도()를 얻지 못하면 안된다. 중정의 도란 차의 신기로운 기운과 물의 성질이 어울려서 가장 원만하게 배합된 상태를 말한다.


차를 우리는 법은 실지로 해보고 스스로 터득해야지 말만으로는 그 요체(要諦)를 이해하기 어렵다. 새로 길어온 물을 펄펄 끓여 차관과 찻잔을 먼저 가셔낸다. 끓은 물을 70도쯤으로 식힌 다음, 차를 알맞게 차관에 넣어 물을 붓고 뚜껑을 닫아 다시 1분쯤 우려 찻잔에 따라서 마신다. 설명은 차례대로 했지만 그 요령은 눈이나 손으로만 익히는 게 아니고 마음으로 느끼고 증험(證驗)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선()이나 도()의 경지와 같은 것. 그래서 다선일미(茶禪一味)니 다도(茶道)니 하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차의 맛을 보면 곧 차를 만든 사람의 심정까지도 맛볼 수 있다.


좋은 차는 색() · () · ()가 갖추어져야 한다. 차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이라면 빛과 향기와 맛도 온전히 갖추어진 것이다. 녹황색(綠黃色)이 돌고 맑고 은은한 향기와 담백하고 청초한 맛이 나는 것이 좋은 차다.


차는 식물(植物)중에서도 가장 맑은 식물이다. 차의 그토록 오묘한 빛과 향기와 맛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밤의 별빛과 맑은 바람과 이슬, 그리고 안개 구름 햇볕 눈 비……이런 자연의 맑디맑은 정기가 한데 엉겨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처럼 미묘한 빛과 향기와 맛이 나는 것이다.


임어당의 말을 더 들어보자.

차는 고결한 은자(隱者)와 결합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므로 차는 청순(淸純)의 상징이다. 차를 따서 불에 쪼여 만들고, 보관하고, 마지막으로 차를 달여 마시기까지 청결이 가장 까다롭게 요구된다. 기름기있는 손이나 찻잔이 조금이라도 차잎에 닿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노고는 순식간에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만다. 따라서 차를 즐기려면 모든 허식이나 사치스러운 유혹이 눈과 마음에서 말끔히 사라져버린 분위기라야만 한다.



출전 : 서 있는 사람들(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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