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미(茶禪一味)-1

근와(槿瓦) 2016. 11. 12. 00:12

다선일미(茶禪一味)-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몇해 전 덕수궁에서 한 개인이 수집한 것으로 「한국미술 특별전」이 열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이 그린 <오수도(午睡圖)>에 반해 세 차례나 전시장을 찾아갔었다. 그림은 한 그루 늙은 소나무 아래 초당(草堂)이 있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초당 안에서는 한 노옹(老翁)이 비스듬히 서책(書冊)에 기댄 채 낮잠을 즐기고 있다. 초당 곁 벼랑 아래서 동자가 다로(茶爐)에 부채질을 하다 말고 노송 아래서 졸고 있는 한 쌍의 학을 돌아보고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때 그 그림의 분위기가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토록 뻔질나게 덕수궁을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처인 강 건너 다래헌(茶來軒)으로 돌아와서는, 샘물을 길어다 그 <오수도>의 분위기를 연상하면서 혼자서 차를 달여 마시곤 했었다. 그후 그 그림이 우표로 발행되자 나는 한꺼번에 백 장이나 사두고 쓰기도 했었다.


전통적인 우리 동양의 산수화를 보면 두서너 노인들이 바위와 나무와 물과 폭포가 있는 산천경개를 한가히 즐기고 있고, 한 곁에는 으레 차 시중을 드는 동자가 있게 마련. 이것은 예전부터 풍류와 더불어 차가 우리네 생활의 한 부분임을 가리키고 있는 증거다. 근래에 와서 차(茶)라고 하면 곧 커피를 연상할 만큼 우리네 기호도 양코배기들 쪽으로 근대화해버렸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네 고유의 엽차(葉茶) 혹은 녹차(綠茶)를 가리킨다.


선승(禪僧)들 사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 차를 항시 마시고 있어 결코 자랑거리가 될 것도 없지만, 최근 일반이 차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기특한 일이다. 먼저 밝혀 둘 것은 차 마시는 일이 결코 사치나 귀족 취미에서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라는 것이다.


사람이 일반 동물과 다른 것 가운데 하나는 음식을 먹는 일이 빈 밥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미각을 통해 정신적으로 기쁨을 느끼고 위로를 삼으려는 취향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육신의 건강에는 분명히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즐겨 마시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활 가운데서 만약 이런 기호품이 없었다면 예측할 수 없도록 우리들의 안뜰은 삭막하고 어두워졌을 것이다.


술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취하게 하는데, 차는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한다. 차의 고전(古典)인 육우(陸羽, ?~804)의 <다경(茶經)>에 「울분을 삭이는 데는 술을 마시고, 혼미(昏迷)를 씻는 데는 차를 마신다」고 지적했듯이, 술이 시끄러운 집합을 위해 발명된 것이라면, 차는 한적한 모임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술은 아무데서나 아무하고도 마실 수 있지만 차는 그럴 수 없다. 무엇보다도 마시는 그 분위기와 이웃을 가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출전 : 서 있는 사람들(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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