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一아함경, 雜아함경

잡아함경-475-95

근와(槿瓦) 2016. 8. 23. 03:06

잡아함경-475-9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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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6촉신(觸身)이라고 하는가? 안촉(眼觸)·이촉(耳觸)·비촉(鼻觸)·설촉(舌觸)·신촉(身觸)·의촉(意觸)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것을 6수신(受身)이라고 하는가? 안촉으로 생기는 느낌·이촉으로 생기는 느낌·비촉으로 생기는 느낌·설촉으로 생기는 느낌·신촉으로 생기는 느낌·의촉으로 생기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6애신(愛身)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안촉으로 생기는 애욕·이촉으로 생기는 애욕·비촉으로 생기는 애욕·설촉으로 생기는 애욕·신촉으로 생기는 애욕·의촉으로 생기는 애욕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눈이 곧 나[我]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눈은 나이고 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눈이 곧 나라고 한다면 나는 응당 태어남과 죽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눈은 곧 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이 빛깔[色]이나 혹은 안식(眼識)·안촉(眼觸)·안촉으로 생긴 느낌에 대해 만일 '이것이 나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안촉으로 생긴 느낌은 곧 나이고 멸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만일 안촉으로 생기는 느낌이 곧 나라고 하면 나는 응당 태어남과 죽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촉으로 생긴 느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안촉으로 생긴 느낌은 나라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의 접촉으로 생긴 느낌은 나라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의촉(意觸)으로 생긴 느낌은 나고 멸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곧 나라면 나는 다시 응당 태어남과 죽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촉으로 생긴 느낌을 나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의촉으로 생긴 느낌은 나라고 할 것이 못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 반드시 눈이 하는 일·지혜가 하는 일·적멸(寂滅)이 하는 일을 사실 그대로 알아 신통(神通)을 나타내고 바르게 열반으로 향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눈이 하는 일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인가? ……(내지)…… 바르게 열반으로 향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비구들아, 눈은 나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빛깔이나 안식·안촉·안촉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안의 감각, 그것도 또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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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귀·코·혀·몸·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눈이 하는 일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내지)…… 바르게 열반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을 육육법경(六六法經)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05. 육입처경(六入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拘留搜)의 조우(調牛)라는 마을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그것은 처음·중간·마지막까지 다 좋으며, 좋은 뜻과 좋은 맛이 있고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원만하고 깨끗하여 범행이 맑고 깨끗한 것이다. 이른바 육분별육입처경(六分別六入處經)이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육분별육입처경(六分別六入處經)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안입처(眼入處)를 사실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면 빛깔과 안식·안촉·안촉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도 사실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한다. 사실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물들어 집착하며, 혹은 빛깔과 안식·안촉·안촉을 인연하여 생긴 안의 느낌,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에 대해 서도 모두 물들어 집착한다. 이와 같이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뜻이나 혹은 법·신식(身識)·의촉·의촉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며, 사실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물들어 집착하느니라. 이와 같이 물들어 집착하는 것과 서로 호응하면, 미련하고 어두우며 돌아보고 생각함이 그 마음을 결박하여 5수음(受陰)을 길러 자라나게 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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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존재에 대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이 모두 더 늘어나고 자라게 되느니라. 그래서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나빠지며,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불타며, 몸과 마음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몸과 마음이 미치고 어지러워지며, 몸에 괴롭다는 감각이 생기느니라. 그 몸에 괴롭다는 감각이 생기기 때문에 미래 세상에서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모두 더욱 늘어나고 자라나게 되나니, 이것을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의 발생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만일 눈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만일 빛깔과 안식·안촉·안촉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면, 그것을 본 뒤에는 눈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으며, 혹은 빛깔과 안식·안촉·안촉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뜻과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고, 혹은 법과 신식·의촉·의촉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면, 사실 그대로 알고 보았기 때문에 뜻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혹은 법과 신식·의촉·의촉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에 물들지 않게 되느니라. 물들어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섞이지 않고, 미련하고 어둡지 않으며, 돌아보며 생각하지 않고, 얽매이고 묶이지 않아서 5수음이 덜어지고 줄어들며, 미래의 존재에 대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 등 이런저런 물듦과 집착이 모두 사라져 소멸한다. 그래서 몸도 피로하지 않고 마음도 피로하지 않으며, 몸도 타지 않고 마음도 타지 않으며, 몸도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고 마음도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아서, 몸이 즐거움을 깨닫고 마음도 즐거움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즐거움을 깨닫기 때문에 미래 세상에서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모두 사라져 소멸하나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되느니라.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것을 바른 소견[正見]을 닦고 익혀 만족하는 것이라고 하며, 바른 뜻[正志]·바른 방편[正方便]·바른 생각[正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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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선정[正定]과 앞에서 말한 바른 말[正語]·바른 업[正業]·바른 생활[正命]을 청정하게 닦고 익혀 만족하면, 이것을 8성도(聖道)를 닦고 익혀 청정하고 만족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8성도를 닦고 익혀 만족한 뒤에는 4념처(念處)를 닦고 익혀 만족해야 하고, 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根)·5력(力)·7각분(覺分)을 닦고 익혀 만족해야 하느니라. 만일 법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깨쳐야 할 것이면 그것을 다 알고 다 깨치며, 만일 법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면 그것을 다 알고 다 끊으며, 만일 법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증득해야 할 것이면 그것을 다 증득하며, 만일 법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닦아야 할 것이면 그것을 다 이미 닦고 익혔느니라.

 

어떤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깨달아야 할 법을 다 알고 다 깨쳤다고 하는가? 명색(名色)을 이르는 말이니라. 어떤 법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끊어야 하는가? 무명(無明)과 존재에 대한 사랑[有愛]을 이르는 말이니라. 어떤 법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증득해야 하는가? 밝음[明]과 해탈(解脫)을 이르는 말이니라. 어떤 법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닦아야 하는가? 바른 관찰[正觀]을 일컫는 말이니라. 만일 비구가 이 법에 대해서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깨쳐야 할 것이라면 그것을 다 알고 다 깨쳐야 하며, 혹은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끊어야 할 법이면 그것을 다 알고 다 끊어야 하며, 혹은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증득해야 할 법이면 그것을 다 알고 다 증득해야 하며, 혹은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닦아야 할 법이면 그것을 다 알고 다 닦아야 하나니, 이것을 비구가 애욕의 결박을 끊고 바르고 빈틈없이 한결같은 것으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모든 비구들아, 이것을 육분별육입처경(六分別六入處經)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06. 인경(人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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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思惟)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사유한 뒤에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다가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눈[眼]과 빛깔[色], 이것이 그 두 가지이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그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과 함께 하여 느낌[受]·생각[想]·의도[思]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무색음(無色陰)과 눈과 빛깔 등, 이러한 법을 사람[人]이라고 하며, 이러한 법에 대해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어 중생(衆生)·나라(那羅)·마누사(摩闍)·마나바(摩那婆)·사기[士其 : 본 경의 뒤 문장을 고려할 때 사기는 사부(士夫)라야 옳다.] ·복가라(福伽羅)·기바(耆婆)·선두[禪頭 : 나라(那羅)는 팔리어로 ara이고 사람이라는 뜻이다. 마누사(摩闍)는 팔리어로 manussaloka이고 인간 혹은 인간세계라는 뜻이다. 마나바(摩那婆)는 팔리어로 ma avaka이고 소년 또는 어린아이라는 뜻이다. 사부(士夫)는 팔리어 puggala의 번역어이고 사람이라는 뜻이다. 복가라(福伽羅)는 팔리어로 puggala이고 보특가라(補 特伽羅)라고도 한다. 기바(耆婆)는 팔리어로 j vaka-komarabhacca이고 수명(壽命)으로도 한역하며 유정(有情)의 대명사로 쓰인다. 선두(禪頭)는 팔리어로 jantu이고 사람 혹은 유정을 가리킨다.] 라고 하느니라. 또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나는 귀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코로 냄새를 맡...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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