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 가운데 도가 발한다

얻어먹고 사시게

근와(槿瓦) 2016. 7. 13. 11:25

얻어먹고 사시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서라벌로 돌아온 원효스님은 이때부터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깨달음의 안목으로 경전을 보아, 부처님의 정법을 세상에 널리 바로 전하기 위해 밤낮으로 저술활동에 매진하였다. 이때 원효스님은 화엄경소, 화엄경종요를 비롯해서 열반경소, 법화경종요, 능가경종요, 해심밀경소, 유마경소, 반야심경소 등 무려 100여부, 240여권의 책을 남기셨는데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전해진 저술만 해도 23권이나 되고 있으니, 당시로서는 단연 신라 제일의 학승이요, 제일의 대학자였다.


부처님의 경을 알기쉽게 풀어놓은 원효스님의 저술은 이때 벌써 중국과 일본에서도 필사본으로 들여갔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찰에서 젊은 승려들이 불교를 배우는 교과서로 사용할 정도였다. 그러나 왕실불교, 귀족불교의 달콤한 꿈에 빠져있던 당시 신라 불교의 지도층에게는 외면을 당해야 했다.


하루는 원효스님 밑에 있던 승려가 급히 뛰어왔다.

“스님, 스님, 스님 계시옵니까요?”

“그래,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인고?”

“소승, 하두 분한 말을 들었사옵기로 그래서 찾아뵈었습니다.”

“분한 말이라니?”


“예, 듣자하니 우리 황룡사에서 백고좌법회를 연다고 하옵니다요.”

“백고좌법회를 연다고 하면 그거야 반가운 일이지.”

“그런데 그게 아니옵니다요.”

“그게 아니라니?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겐가?”

“대왕마마께서 백고좌법회를 열도록 어명을 내리셨는데요….”

“그래서?”


“백 분의 고승대덕을 모셔다 법회를 열라고 해서 마땅히 스님의 이름도 그 백 분의 고승대덕 명단 안에 써올렸다고 하옵니다요.”

“내 이름을 백 명의 명단 안에 넣었더란 말이신가?”

“예, 그랬는데 글쎄…몇몇 벼슬 높은 스님들이 원효는 안된다 하고 백 분의 명단 속에서 빼버렸다고 하옵니다요.”

“내 이름을 빼버렸다?”

“예, 그러니 글쎄 세상에 이런 분통터질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요?”


그러자 원효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원 이 사람 참, 자네는 분통터질 일이 그렇게도 없으시던가, 그런 일을 가지고 분통이 터지게?”

“예에? 아니 하오시면 스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아니하십니까요?”

“백고좌법회에서 내 이름을 빼주었다면 그거야 고마운 일이지, 어찌 분한 일이겠는가?”

“예에? 아니 고마운 일이라니요, 스님? 백고좌 법회에서….”


원효스님은 승려의 말을 가로막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 사람아, 그 번거로운 백고좌법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으니, 그 사이에 경이나 더 보고, 그 사이에 글을 더 쓰게 되었으니 나를 빼준 것은 나를 도와준 것이야.”


그러나 달려온 승려는 정말 속이 상하고 억울해서 못견디겠는지 얼굴까지 붉히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옵니다요, 스님. 몇몇 벼슬 높은 스님네들이 스님의 명성을 시기한 나머지 그래서 빼버린 것이라구요, 스님.”

“어쨌거나 그것은 결국 나를 도와준 것이니 고마운 일이야.”

“글쎄 그게 아니래두요, 스님.”


“허허 이 사람! 자네는 어찌 그리 말귀를 못알아 먹는가? 나는 아직 도가 얕으니 천고좌법회라면 모르려니와 백고좌법회에는 나갈 그릇이 못되는 사람일세.”

“아니옵니다요, 스님. 저희들이 사발통문을 돌려서라도 저들의 그릇됨을 바로 잡을 것이옵니다요.”


그러자 원효스님은 손으로 탁상을 치면서 크게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이 사람 참으로 귀가 막혔구만! 나는 경이나 보고 글이나 쓸 것이니 다시는 백고좌법회 얘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말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원효스님은 백고좌법회에 끼지 못하는 것을 억울해 하지도 아니했고, 아쉬어하지도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원효스님은 주지 자리나 벼슬 자리도 원하지 않았고 왕족이나 귀족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오직 경을 바로 읽고, 그 경의 가르침을 바로 전하는 글을 쓰는 데에만 전념을 하였다. 당시 신라불교의 젊은 승려들 사이에서는 원효스님의 저술이 길잡이였고, 원효스님의 덕망이 으뜸이었다. 그래서 당시 원효스님이 머물고 계시던 황룡사에는 뜻있는 젊은 승려들이 원효스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오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웬 노인이 걸인차림으로 원효스님을 찾아왔다.

“어인 일로 노인께서 소승을 찾아오셨는지요?”

“고마운 말씀을 드리려고 찾아뵈었소이다.”

“고마운…말씀이라니요?”


“스님께서 지으신 열반경소를 보았는데 평생토록 못알아먹은 구절을 스님의 글로 보구서야 알게 되었으니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일이 또 어디 있겠소이까?”

“하오시면 어르신께서는 대체 어느 댁 어른이시온지요?”

“보다시피 나는 늙은 걸인이오. 얻어먹고 사는 거지란 말이지.”

“예에?”


걸인 차림의 노인이 스스로 찾아와서 원효스님이 지은 열반경소를 보았다고 하니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원효스님은 노인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다시 물었다.

“하오시면 대체 소승이 지은 열반경소를 어디서 어떻게 보셨다는 말씀이시온지요?”

“아, 그러니까 늙은 걸인 주제에 감히 어찌 그 어려운 열반경을 보았다고 거짓말을 하느냐 그말이시오?”

“아, 아니옵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오라….”

“내 비록 지금은 늙어서 걸인이 되었소마는 나도 왕년에는 글 깨나 쓰던 수행자였소.”

“예에? 아니 그러시면 지금은 어쩐 일로 이렇게….”

“하하하…중이면 중답게 삭발을 하고 다닐 것이지 어찌 이리 봉두난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얻어먹고 사느냐?”

“그, 그렇사옵니다.”


“절에 앉아서 받아먹는 더운 밥보다는 돌아다니면서 얻어먹는 식은 밥덩어리가 더 맛이 있어서지.”

“얻어먹는 식은 밥덩어리가 더 맛이 있으시다구요?”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이르셨지. 얻어먹고 살라고 말씀이야.”

“예, 그건 그렇습니다. 탁발로써 살아가라 그러셨지요.”


“하하하, 그렇게 백 번 이르셨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까? 따르고 지키는 중이 하나도 없으니 말씀이야.”

“이것 보십시오, 스님.”

“허허, 이거 무슨 소리! 나는 스님이 아니고 거지란 말씀이야!”

“제발 그러지 마시고 소승에게 털어놓아 주십시오. 소승을 찾아 오셨을 적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으신 것 아니시겠습니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그러지 아니했소.”

“그뿐만은 아니실 것이옵니다. 분명 그렇지요?”


“이것 보시오, 원효스님.”

“예, 말씀하시지요.”

“집을 한 채 지을 적에는 서까래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야 그렇겠습지요.”


“백 개의 서까래를 뽑는 데 끼지 못했다고 해서 마음 상하지 마시오.”

“예에? 대체 무슨 말씀이시온지요?”

“백 개의 서까래를 뽑는 데는 비록 끼지 못했더라도 훗날 한 개의 대들보가 될지 그 누가 알겠소이까, 음? 하하하….”

“대체 스님은 뉘시옵니까?”


“난 이제 이름도 없소이다. 사람들이 그저 나를 대안이라 부른다오.”

“대안이시라구요?”

“큰 대(大)자, 편안할 안(安)자, 크게 편안한 사람이라 그런 말이지. 음, 하하하….”

“예, 하오시면 대사님께서 바로 그 대안대사란 말씀이시옵니까?”

“대사는 무슨 얼어죽을 대사! 미친 놈, 늙은 거지, 대안, 대안이지. 응… 하하하….”

“대사님, 몰라 뵈어서 죄송하옵니다. 무례했던 점 용서하십시오.”


“허허, 이거 어째 이러시나? 행여라도 백 개의 서까래에 끼지 못했음을 한탄하면서 붓을 던져버릴까봐 그것이 걱정이 되어 찾아온 것이니, 이 늙은 거지, 더 좋은 글 더 보고 죽도록 애써 주시오.”

“…참으로 고맙습니다, 스님. 헌데 스님을 찾아뵈오려면 어디로 가면 되겠사옵니까?”

“원 거 무슨 당치않은 말씀! 나같은 늙은 거지를 찾아뵙다니? 인연이 있으면 오다가다 또 만나게 될 것이요. 자, 그러면….”


대안대사가 떠나려 하자, 원효스님은 얼른 대안대사의 옷자락을 잡으며 사정하였다.

“거처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천촌만락을 헤매고 다니거늘 정해진 거처가 어디 있겠소이까? 응…하하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르시기를 탁발로써 살아가라고 단단히 당부하셨건만 아무도 따르고 지키는 자가 없다는, 늙은 걸인 대안대사의 한마디는 원효스님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원효스님은 걸망을 챙겨 그날로 황룡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원효스님이 길을 나서자, 원효스님을 모시던 승려가 깜짝 놀라서 뛰어왔다.

“아니, 스님 대체 어디를 가시려고 걸망을 메고 나서시는지요?”

“어, 그래. 내 좀 어디 한적한 곳에 가 있어야겠으니 그리 아시게.”

“한적한 곳이라면 어디 말씀이시온지요?”

“하상주에나 가 있을까 하니 그리 아시게.”

“하오시면 소승이 따라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네. 경을 보고 글을 쓰자면 나 혼자 가는 편이 좋을 것이야.”

“그래두 그렇지요, 스님. 독살림을 해가시면서 어찌 글을 지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요?”

“내 걱정은 마시고 수행이나 열심히 하시게.”


“하오시면 대체 언제쯤 다시 황룡사로 돌아오실 작정이시온지요?”

“인연이 닿으면 또 돌아오겠지. 잘 있으시게.”

“스님!”

“왜 그러시는가?”


“소승을 위해서 가르침 한 말씀 남겨 주십시오.”

“가르침을 남겨 달라?”

“예, 스님.”

“일체유심조라, 모든 것은 마음의 장난이니 그걸 아시게.”


말을 마친 원효스님은 하상주를 향해 길을 떠났다.


참고

대안대사(大安大師) : (571~644)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의 스승.(불교학대사전)



출전 : 고승열전(원효스님편,BBS)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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