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 가운데 도가 발한다

구도자의 인격과 겉모습

근와(槿瓦) 2016. 6. 28. 00:13

구도자의 인격과 겉모습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6·25사변이 일어나 피난길에 올랐던 저는 진주 은석사(銀石寺)로 가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은석사에 도착하자 주지스님이 쌀밥 한 사발과 반찬으로 간장 한 종지를 주었습니다. 저는 간장 한 종지를 모두 밥에 부어 싹싹 비벼서 정신없이 사흘 굶은 사람처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밥그릇을 비우자마자 주지스님이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게는 주민증도 병적계도 없었기 때문에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여차하면 붙잡혀서 총알받이 노릇을 하거나 빨갱이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라고 해도 떠나지 않자 주지스님의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공양주(供養主)소임을 맡아라.”

.”

 

저는 열심히 밥을 짓고, 설거지도 아주 깨끗이 했습니다. 주지스님은 만족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공양주 노릇 아주 잘 하는구먼.”

 

며칠이 지나자 불공이 아주 많이 들어왔습니다. 주지스님은 저에게 불공 올리는 일을 거들 것을 명하였고, 불공을 남 못지 않게 하였던 저는 목탁을 치면서 유창하게 염불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지스님은 공양주를 그만두고 부전(불공드리는 직책)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동안 부전을 보다가, ‘옴마니반메훔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일으켰습니다.

 

삼칠일(21)을 기한으로 정하고 옴마니반메훔 기도를 하되 잠을 자지 말자.’

 

저는 부지런히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앉아서 하다가 졸음이 오기 시작하자 서서 옴마니반메훔을 외었습니다. 그러나 졸음은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깜빡깜빡 조는 사이에 목탁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 발등을 찧었습니다. 몇 번 발등을 찧고는서서 하는 것도 안되겠다싶어 마당을 돌아다니며 염불을 했습니다.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끊임없이 옴마니반메훔을 찾고 비몽사몽간에 옴마니반메훔을 찾다가 7일째 되는 날, 은행나무 밑의 평상에 잠깐 앉았는데 그 즉시 머리를 은행나무에 기댄 채 잠들어 버렸습니다.

 

순간, 허공 전체가 제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황금대왕이 자기가 들고 있는 병 속으로 무엇이든 들어오너라하면 쫙 빨려들어가듯이, 허공이 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에서 깨어나자 그토록 기도를 방해하던 졸음도 저절로 사라져서 삼칠일 기도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찾아온 마을 이장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주민증이 없는 것을 알고 만들어다 주었으며, 기도를 잘 마친 저는 더욱 도심을 발하여 정진하였습니다.

 

이처럼 전쟁으로 인해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저의 수행에는 더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구도자의 본분은 수행입니다. 수행은 잘 먹고 잘 입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 먹고 잘 입으려 하면 타락의 길로 빠져듭니다. 먹는 것 · 입는 것에 탐착하지 않는 수행자야말로 중노릇 잘하는 참된 부처님 제자입니다.

 

결코 우리들의 풍족한 겉모습이 우리들의 인격과 수행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출전 :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일타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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