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 강설-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오안을 깨끗이 하여 오력을 얻음은 증득해야만 알 뿐 헤아리긴 어렵다-
淨五眼得五力은 唯證乃知難可測이라
오안(五眼), 다섯 눈이란 첫째는 육안(肉眼)이니 우리들 중생의 육신이 가지고 있는 눈을 말하며, 둘째는 천안(天眼)이니 색계(色界)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육안으로 멀고 가까움과 안과 밖,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눈을 말하며, 셋째는 혜안(慧眼)이니 이승(二乘)의 사람들이 가진 눈으로서 연기의 실상(實相)을 보는 지혜의 눈을 말하며, 넷째는 법안(法眼)이니 보살이 가지고 있는 눈으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체의 법문을 비춰보는 지혜의 눈을 말하며, 다섯째는 불안(佛眼)이니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눈으로서 일체를 알며 일체를 비춰보는 눈이니 앞의 네 가지 눈을 모두 구비한 눈을 말합니다.
중생이 깨치지 못하였을 때는 육안은 육안대로 천안은 천안대로 각각 다르지만 확철히 깨치고 보면 다섯 가지 눈이 서로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앞에서 그것을 ‘여섯 가지 신통묘용’이 한 진여본성의 묘용으로서 그 비치는 문만 다를 뿐 그 근본 자체는 똑같다고 말한 바와 같이, 오안을 비록 각각 다르게 말하였지만 그 근본 자체에 있어서는 육안이 곧 불안이고 불안이 곧 육안인 것입니다.
육안이란 중생의 육안 이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성을 깨치면 육안 이대로가 불안이며 불안 이대로가 육안일 뿐, 육안 내놓고 따로 불안이 없으며 불안 내놓고 따로 육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안 이대로 혜안이며 법안 이대로 불안이어서 오안 전체가 서로서로 융통자재합니다. 그러므로 이 오안을 차별적으로 보아서 육안을 버리고 천안을 얻고 그렇게 하여 단계적으로 올라가서 마침내 불안을 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경각을 증하게 되면 단박에 오안을 모두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바로 이 오안을 깨끗이 하면 오력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오력(五力)이란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의 하나로서 첫째는 신력(信力)이니 신근(信根)을 증장케 하여 모든 삿된 믿음을 깨뜨리는 것이며, 둘째는 정진력(精進力)이니 정진근(精進根)을 증장케 하여 신체의 게으름을 물리치는 것이며, 셋째는 염력(念力)이니 염근(念根)을 증장케 하여 모든 사념(邪念)을 깨뜨리는 것이며, 넷째는 정력(定力)이니 정근(定根)을 증장케 하여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끊어 버리는 것이며, 다섯째는 혜력(慧力)이니 혜근(慧根)을 증장케 하여 삼계의 모든 미혹을 끊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가지 힘(五力)이라는 것도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하는 힘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한 힘을 자세하게 분석하여 다섯 가지 힘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안이든 오력이든 전체가 다 진여대용인 것이니 실제에 있어서는 오직 여래장 속에 있는 마니주의 작용일 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쓰임으로 보아서 다섯 가지로 나눈 것이니 여럿으로 나누어 볼 때는 천차만별의 작용으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래장 속의 마니주, ‘한 덩이 둥근 빛’이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것이지 다른 물건이 각각 따로 있어서 천차만별로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눈이 다섯 개의 눈이고 다섯 개의 눈이 하나의 눈이며, 하나의 힘이 다섯 개의 힘이며 다섯 개의 힘이 하나의 힘으로 원융무애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원융무애한 진여대용을 우리가 얻을 수 있는가?
‘깨쳐야만 알 뿐 헤아리긴 어렵다’고 하였듯이 우리가 진여대용을 알려면 반드시 증해야 하고 구경각을 성취하여 체득해야지 해오(解悟)나 신해(信解)로써는 절대로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선가에서든지 교가에서든지 증(證)자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봐서는 구경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여대용인 오안과 오력을 얻으려면 오직 증(證)해서 중도를 정등각해야만 알지 그렇게 되기 전에는 누구도 절대로 이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가스님의 이 말씀들은 자성을 깨친 대광명 가운데서 말씀한 것인데 눈 감은 봉사가 어찌 이 대광명을 볼 수 있겠습니까? 눈을 감고 앉아서 아무리 진여가 어떻고 오안·오력이 어떻고 해보았자, 봉사는 봉사이기 때문에 그 근본 대광명을 보지 못하니, 오안을 쓸 수도 없으며 오력을 쓸 수도 없으니 오직 눈을 떠야만 합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을 완전히 끊어야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이 구경각을 성취하기 전에는 실제로 눈 뜬 사람이 아닙니다.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無記無心)의 마계(魔界)를 완전히 벗어나서 참으로 죽음 가운데서 삶을 얻고, 크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만 눈 뜬 사람입니다.
진여본성을 확철히 깨쳐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해야만 부처와 조사가 전한 오안을 얻고 오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참으로 증(證)하지 않고는 어떤 공부를 한다 하여도 절대로 공부라고 취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되풀이되겠지만 선종에서는 언제든지 깨치는 증오(證悟)만 말하지 이해하여 아는 해오(解悟)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누구든지 선종을 헤오적(解悟的)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선에 있어서 외도적인 해석이며, 선종의 정통이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출전 : 신심명 · 증도가 강설(성철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