僧(스님)

의천(義天)

근와(槿瓦) 2016. 6. 11. 03:30

의천(義天)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55~1101) 고려의 승려로 천태종 중흥의 시조. 자는 의천. 이름은 . 시호는 大覺國師, 문종의 넷째 아들. 어머니는 仁睿太后. 문종 19(1065) 王師 爛圓에 의하여 승려가 되어 靈通寺에 있었고, 13세에 祐世(廣知開宗弘眞祐世)의 호를 받고 僧統이 되었다. 선종 1(1084) 송나라의 淨源법사의 초청을 받고 왕에게 송나라에 가서 求法할 것을 청했으나 왕이 누누이 말리므로 남루한 옷차림으로 몰래 제자 壽介만 데리고 1085년 송나라로 떠나매 왕은 크게 놀라 관리와 제자 樂眞 · 慧宣 · 道隣 등을 수행케 했다. 송나라 哲宗帝가 영접하여 啓聖寺에 있게 하고, 화엄법사 有誠으로 하여금 상종케 하여, 賢首 · 천태 양교의 判敎同異 · 幽妙의 뜻을 문답하였다. 相國寺圓炤선사와 興國寺 西天三藏 天吉詳을 찾아보고 主客員外郞 楊傑을 대동하고 송나라 서울을 출발, 金山佛印선사 了元에게 들려, 杭州源公법사를 찾아 慧因에게 華嚴疏鈔의 의심되던 것을 물었다.


그때 선종의 귀국을 청하매 慈辯대사에게 천태종의 경론을 듣고, 천태산 智者대사의 부도에 예배, 발원문을 지어 천태종을 본국에 중흥할 것을 맹세했다. 靈芒大智대사에게 戒法을 받는 등 고승 50여 명을 만나 法要를 문답하였다. 1086(선종 3) 왕과 왕후의 영접을 받고 환국하여 釋典과 경서 1천 권을 바쳤으며, 흥왕사에 있으면서 그 곳에 敎藏都監을 두게 하고 요나라 · 송나라 · 일본에서 경서를 구입, 고서를 수집하여 속장경 4,740여 권을 간행하였다.


1094(선종 11) 洪圓寺에 주지로 있었고, 그후 해인사 · 흥왕사에 있다가 국청사가 새로 세워지자 주지를 겸하고 처음으로 천태교를 강하였다. 숙종 때 鑄錢論을 주장하여 사회 경제면에도 많이 공헌한 바 있고, 1098(숙종 3) 왕자 澄儼이 승려가 되자 그 스승이 되었다. 숙종 6(1101) 國師로서 總持寺에서 입적하다. 五冠山 영통사 동쪽에서 장례를 지내다. 金富軾銘文으로 된 비가 세워지고, 또 남숭산 선봉사에도 林存의 명문으로 해통천태시조대각국사비가 세워졌다. 西湖의 승려 혜소는 국사의 고제로서 후에 行錄 10권을 선집하였다. 태백산인 용응은 국사의 適嗣法海龍門이라 호하였다. 저서로는 圓宗文類, 釋苑詞林, 海東有本見行錄, 成唯識論單科, 天台四敎儀註, 義天目錄 등이 있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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