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본업경-20-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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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성학관품(賢聖學觀品)
이 때 경수보살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어떤 것이 보살이 이름[名字]의 이치와 모습[義相]을 배우고 관하는 것입니까? 마음으로 행하는 법[心所行法]은 또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그대가 묻는 바는 시방의 불국토 가운데 일체 부처님이 다 도량에 앉으셨을 때 질문한 것과 같구나. 모두 다 이름을 경수(敬首)라고 하며 묻는 바가 다름이 없나니, 주의해서 듣고 똑똑히 들어라. 바르게 관하고 사념하여 법답게 수행하라. 불자여, 일체 제불이 다 육명염[六明焰 : 육종성(六種性)을 말한다.]과 삼삼매문[三三昧門 : 공삼매(空三昧), 무상삼매(無相三昧), 무작삼매(無作三昧)를 말한다.]을 설하시듯 나도 또 이와 같이 설하느니라. 육종성(六種性)은 모든 보살의 공덕 영락으로써 보살의 두 가지 법신(法身)을 장엄하고 호지하느니라. 보살이 집착하는 바는 백만 아승기의 공덕행을 영락으로 삼느니라. 만약 일체 보살의 영락공덕문에 들어가지 않고 정위(正位)에 드는 것을 얻는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불자여, 성품은 이른바 습종성(習種性)ㆍ성종성(性種性)ㆍ도종성(道種性)ㆍ성종성(聖種性)ㆍ등각성(等覺性)ㆍ묘각성(妙覺性)이니라. 또는 육견(六堅)이라고도 하나니, 견신(堅信)ㆍ견법(堅法)ㆍ견수(堅修)ㆍ견덕(堅德)ㆍ견정(堅頂)ㆍ견각(堅覺)이니라. 다시 육인(六忍)이라고 이름 하나니, 신인(信忍)ㆍ법인(法忍)ㆍ수인(修忍)ㆍ정인(正忍)ㆍ무구인(無垢忍)ㆍ일체지인(一切智忍)이니라. 다시 육혜(六慧)라고도 이름 하나니,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ㆍ무상혜(無相慧)ㆍ조적혜(照寂慧)ㆍ적조혜(寂照慧)이니라. 다시 육정(六定)이라고도 이름 하나니, 습상정(習相定)ㆍ성정(性定)ㆍ도혜정(道慧定)ㆍ도종혜정(道種慧定)ㆍ대혜정(大慧定)ㆍ정관정(正觀定)이니라. 다시 육관(六觀)이라고도 이름 하나니, 주관(住觀)ㆍ행관(行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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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향관(向觀)ㆍ지관(地觀)ㆍ무상관(無相觀)ㆍ일체종지관(一切種智觀)이니라. 불자여, 모든 보살과 부처로서 이 여섯 가지 명관(明觀)과 결정요의실상(決定了義實相)의 법문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느니라.
불자여, 그대가 앞에서 말한 명자(名字)란, 이른바 동보영락(銅寶瓔珞)보살의 이름이니라. 이른바 습종성(習種性) 가운데 열 사람이 있나니, 그 이름은 발심주(發心住)보살ㆍ치지(治地)보살ㆍ수행(修行)보살ㆍ생귀(生貴)보살ㆍ방편구족(方便具足)보살ㆍ정심(正心)보살ㆍ불퇴(不退)보살ㆍ동진(童眞)보살ㆍ법왕자(法王子)보살ㆍ관정(灌頂)보살이니라.
불자여, 은보영락(銀寶瓔珞)보살의 이름에는 성종성(性種性) 가운데 열 사람이 있나니, 그 이름은 환희(歡喜)보살ㆍ요익(饒益)보살ㆍ무진한(無瞋恨)보살ㆍ무진(無盡)보살ㆍ이치란(離癡亂)보살ㆍ선현(善現)보살ㆍ무착(無箚)보살ㆍ존중(尊重)보살ㆍ선법(善法)보살ㆍ진실(眞實)보살이니라.
불자여, 금보영락(金寶瓔珞)보살의 이름에는 도종성(道種性) 가운데 열 사람이 있나니, 그 이름은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보살ㆍ불괴(不壞)보살ㆍ등일체불(等一切佛)보살ㆍ지일체처(至一切處)보살ㆍ무진공덕장(無盡功德藏)보살ㆍ평등선근(平等善根)보살ㆍ순관중생(順觀衆生)보살ㆍ여상(如相)보살ㆍ무박해탈(無縛解脫)보살ㆍ법계무량(法界無量)보살이니라.
불자여, 유리보영락(琉璃寶瓔珞)보살의 이름에는 성종성(聖種性) 가운데 열 사람이 있나니, 그 이름은 환희(歡喜)보살ㆍ이구(離垢)보살ㆍ명혜(明慧)보살ㆍ염광(焰光)보살ㆍ난승(難勝)보살ㆍ현전(現前)보살ㆍ원행(遠行)보살ㆍ부동(不動)보살ㆍ혜광(慧光)보살ㆍ법운(法雲)보살이니라.
불자여, 이와 같은 백만 아승기의 공덕영락은 보살의 두 가지 법신(法身)을 장엄하고 호지하느니라. 이 마흔 명을 이름 하여 학행(學行)이라고 하며, 법의 흐름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흘러가느니라.
불자여, 마니보영락(摩尼寶瓔珞)보살의 이름에는 등각성(等覺性) 가운데 한 사람이 있나니, 그 이름은 금강혜당(金剛慧幢)보살이니라. 정적정(頂寂定)에 머물러 대원력으로써 목숨이 백 겁을 머무는 동안 천(千) 삼매를 다 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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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고 금강삼매에 들어가 일체 법성이 이제일제(二諦一諦)의 일합상(一合相)에 계합하느니라. 또 목숨이 천 겁을 머무는 동안 부처님의 위의를 배우고 상왕(象王)과 같이 바라보고 사자와 같이 걸으며, 다시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신통으로 교화하는 법[神通化導法]을 수행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일체 불법이 다 현재에 드러나고 부처님의 행처(行處)에 들어가며, 부처님의 도량에 앉아서 삼마[三魔 : 번뇌장(煩惱障), 업장(業障), 보장(報障)을 말한다.]를 뛰어 건너느니라. 다시 목숨이 만 겁을 머무는 동안 성불(成佛)을 화현하고 대적정(大寂定)에 들어가 한가지로 제불의 이제(二諦)의 경계 밖에 비유비무(非有非無)와 무심무색(無心無色)과 인과이습(因果二習)을 깨달아 남음이 없으나, 예전의 부처님과 동등한 것을 나타내어 다만 응신(應身)의 이름이 있느니라. 모든 색심(色心)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옛 모든 부처님이 한가지로 하는 것을 나타내어 항상 중도를 행하며, 크게 무위(無爲)를 즐기면서 또한 생멸하는 것과는 다르니라. 또한 실로 부처가 아니면서도 부처의 신통을 나타내어 항상 본래의 경지에 머무느니라.
불자여, 수정영락(水精瓔珞)은 안팎이 철저하고 밝아 미묘한 깨달음이 상주하며 맑고 깊기 때문에 일체지지(一切智地)라고 이름 하느니라. 항상 중도에 처하여 일체법 위에 사마(四魔)를 뛰어넘으며, 유(有)가 아니고 무가 아니며 일체 상(相)이 끊어져 돈연(頓然)히 대각(大覺)을 요해하여 교화를 다하고 신통을 체증하여 이신(二身)이 항상 머무르므로 인연 있는 이들을 교화하느니라.
그러므로 불자여, 내 이제 간략히 현성의 이름을 설하리니, 너희들이 수지하고 현행하여 사람을 잘 교화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어떤 것이 마음으로 행해야할 법입니까?’라고 한 것은, 이른바 십심(十心)이니라. 첫째는 발심주(發心住), 둘째는 치지심주(治地心住), 셋째는 수행심주(修行心住), 넷째는 생귀심주(生貴心住), 다섯째는 방편심주(方便心住), 여섯째는 정심주(正心住), 일곱째는 불퇴심주(不退心住), 여덟째는 동진심주(童眞心住), 아홉째는 법왕자심주(法王子心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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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째는 관정심주(灌頂心住)이니라.
다시 다음에 곧 십관심(十觀心)에서 관해야 할 법이란, 첫째는 두텁게 일체 선근을 모으는 것이니, 이른바 사홍서원(四弘誓願)이니라. 아직 고제(苦諦)를 건너지 못한 자는 고제를 건너게 하고, 아직 집제(集諦)를 이해하지 못한 자는 집제를 이해하게 하고, 아직 도제(道諦)에 안심하지 못한 자에게는 도제에 편안케 하고,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한 자에게는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불자여, 둘째는 무량한 선행(善行)을 수습하는 것이니, 이른바 사념처관(四念處觀)으로서 신념처(身念處)ㆍ수념처(受念處)ㆍ심념처(心念處)ㆍ법념처(法念處)이니라. 만약 네 가지가 다 공이면 사도[四倒 : 무상(無常)을 상(常)이라 하고, 고(苦)를 낙(樂)이라 하고, 부정(不淨)을 정(淨)이라 하고, 비아(非我)를 아(我)라고 하는 뒤바뀐 견해를 말한다.]가 곧 파괴되지 않음이 없느니라. 임시[假]로 일체법이라고 이름 짓기 때문에 다 환화(幻化)와 같은 것이니라. 오음(五陰)의 색(色)ㆍ식(識)ㆍ수(受)ㆍ상(想)ㆍ행(行)과 육대(六大)의 식(識)과 공(空), 사대(四大)와 일체법은 모두 자상(自相)도 없고 타상(他相)도 없나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셋째는 불도(佛道)의 법을 잘 익힌다는 것이니, 이른바 십일체입(十一切入)을 관하는 것이니라. 사대(四大)와 사색(四色)과 공처(空處)와 식처(識處)는 다 보배의 모습[寶相]과 같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넷째는 모든 부처님 앞에서 법을 받아 또한 행하는 것이니, 이른바 팔승처(八勝處)이니라. 내실(內實)인 오음 가운데 세밀한 모습[廣相]과 간략한 모습[略相]의 두 가지 승처와 외가(外假)인 중생법 가운데의 세밀한 모습과 간략한 모습의 두 가지 승처와 사대법(四大法)의 세밀함과 간략함과 네 가지 승처이니, 이와 같이 일체법은 공(空)이고 무상(無相)이라고 관하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다섯째는 모든 청백(淸白)의 법을 수행하는 것이니, 이른바 팔대인각(八大人覺)이니라. 소욕(少欲)ㆍ지족(知足)ㆍ적정(寂靜)ㆍ정진(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ㆍ정혜(正慧)ㆍ부쟁론(不諍論)이니, 일체법에 수순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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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여, 여섯째는 모든 부처님을 위하여 보호하는 것이니, 이른바 팔해탈관(八解脫觀)이다. 문혜(聞慧)는 내가(內假)와 외가(外假)의 이 두 가지 모습이 불가득이기 때문에 첫 번째의 해탈이니라. 사혜(思慧)는 내오법(內五法)과 외일체법(外一切法)이 불가득이기 때문에 두 번째 해탈이니라. 수혜(修慧)는 육관(六觀)이 구족하고 색계의 오음이 공한 것은 세 번째 해탈이니라. 사공(四空)의 오음 및 멸정관(滅定觀)이 다 불가득인 것은 다섯 번째 해탈이니, 상(相)이 같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일곱째는 정법(正法)을 넓히는 것이니, 이른바 육화경[六和敬 : 1. 신화경(身和敬), 2. 구화경(口和敬), 3. 의화경(意和敬), 4. 계화경(戒和敬), 5. 견화경(見和敬), 6. 이화경(利和敬)을 말한다.]이니라. 삼업(三業)과 동등한 계율과 동등한 견해와 동등한 수행으로써 동등하게 이 법에 들어가 화합하나니, 필경공(畢竟空)인 까닭이며, 불퇴위(不退位)에 머무는 까닭이니라.
불자여, 여덟째는 대법(大法)을 믿고 기뻐하는 것이니, 이른바 삼공(三空)이니라. 일체의 인(因)이 공이므로 무작(無作)이며, 일체의 과(果)가 공이므로 무상(無相)이며, 인공(因空)과 과공(果空)도 또한 공이므로 공공(空空)이니, 이와 같은 법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아홉째는 마음이 사등법(四等法)에 머무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을 교화하여 사제법(四諦法)을 가르치되, 삼계는 즐거움이 아님을 고(苦)라고 하느니라. 무명의 습인(習因)으로 생을 받는 것이 끝이 없으나, 삼공의 도품(道品)은 무위적멸(無爲寂滅)이니라. 사제(四諦)는 두 가지가 없으니, 일합상(一合相)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열째는 기꺼이 부처님의 공덕을 구하는 것이니, 이른바 육념(六念)이니라. 불ㆍ법ㆍ승(僧)ㆍ계(戒)ㆍ사(捨)ㆍ천(天)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얻어서 생각 생각마다 불환삼매(不幻三昧)에 드나니 항상 익혀 온 바가 현전(現前)함을 닦았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나는 먼저 도리천에서 십관(十觀)의 이름을 설하였는데, 처음 십주(十住)는 범부의 행이니라. 만약 일체 보살로서 이 문으로부터 들어와 살...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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