ᄉ~ㅇ(시옷~이응)

아육왕(阿育王)

근와(槿瓦) 2016. 5. 11. 00:11

아육왕(阿育王)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범어 Asoka. 인도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B.C. 268~B.C. 232년간 재위한 것으로 추정). 구역은 阿恕伽라 하며, 신역은 阿輸伽라 한다. 無憂라 번역. B.C. 2세기에 전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를 보호한 왕. 남전과 북전에 그 기록이 꼭 같지 않으나, 왕은 B.C. 321년경에 인도에 공작 왕조를 개창한 찬드라 굽타 대왕의 손자며, 빈두사라왕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 성품이 거칠고 사나워서 부왕의 사랑이 없었다. 영토인 덕차시라국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정복하여 귀순케 하다. 부왕이 죽은 후 배다른 형인 수사마를 죽이고 즉위하다. 광폭함을 그치지 아니하여 신하와 여자들을 마구 죽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떤 沙門의 설법을 받았다고도 하며, 돌에 새긴 글에 의하면 즉위 8년에 칼링가를 정복하여 포로 15만, 살육 10만의 무수한 죽음의 대참사를 목격하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는 무력에 의한 정복을 중지하였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倫理인 Dharma(法)에 의한 정치를 理想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는데 진력하였다. 부모 · 어른에게 순종, 살생을 삼가는 등의 윤리를 백성들에게 장려하고, 지방관이나 신설된 관리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이 윤리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또 도로 · 灌漑 등의 공공 사업을 전개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당시 인도에는 그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없었고, 북서 국경의 그리이스 세력도 그들 내분 때문에 다른 지방을 침략할 힘이 없었다. 이와 같은 정세에서 모든 생활 양식이 다른 광대한 영토를 현실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가 취한 정책은 매우 현명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이면에는 원시불교의 영향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정치 이념은 인도 제국이나 모든 민족에게까지 전파되어 그의 사절이 이집트 · 마케도니아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왕은 8만 4천의 절과, 8만 4천의 보탑을 건축하고 正法의 선포를 위하여 바위와 石柱 등에 글을 새기어 스스로 부처님의 유적을 순례하였다. 그의 영토는 북쪽은 설산, 남쪽은 마이소루, 동쪽은 벵갈만, 서쪽은 아라비아해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였다. 또, 즉위 17년에 화씨성에서 제3차의 결집을 하고, 희랍 5국에 전도승을 파견하고, 26년 동안에 26회의 特赦를 내리는 등, 정법을 융성케 하였다. 이와 같은 왕의 정책은 36년 간의 통치 후에는 쇠퇴해 갔으나, 그의 치세 중에는 불교를 비롯한 갠지스강 유역의 고도의 문화가 다른 지방에 급속히 퍼져 문화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퇴위한 후에는 매우 불우하였다고 전한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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