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의심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불교의 근본은 자기개발에 있습니다. 초월적인 것은 부정합니다. 부처도 믿지 말고 조사도 믿지 말며, 석가도 필요없고 조사도 필요없다는 말은 불교의 근본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곧 자기 자신이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자기개발을 완전히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그 문자만 많이 독송하면 무심삼매(無心三昧)를 얻을 수 있는가? 아닙니다. "널리 배워서 아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점점 어두워진다(廣學多知 神識轉暗)"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옛사람들도 말하기를 "도의 길은 날로 덜어가고 학문의 길은 날로 더해간다(爲道日損 學爲日益)"고 했습니다.
참으로 깨치는 길은 한 생각 덜어서 자꾸자꾸 덜어 나아가야 하고 학문을 하려면 자꾸자꾸 배워 나아가야 됩니다. 도(道)와 학(學)은 정반대의 처지에 있습니다. 듣고 보고 하는 것은 무심삼매를 성취하는 데에서는 설비상(雪砒霜)과 같은 극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근본 목표인 대도(大道)를 성취하여 성불하는 데에서 이론과 문자는 장애물이 되지 이로움을 주지 못합니다. "모든 지식과 언설을 다 버리고 오직 마음을 한 곳에 모으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으로써 성불하였지 이론과 문자를 배워서 성불하였다는 소리는 없습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면 중도(中道)를 깨달으셨습니다. 그 깨달음을 얻으려면 선정(禪定)을 닦아서, 곧 참선을 해서 무심삼매를 성취해야 됩니다. 무심삼매를 거쳐 진여삼매에 들어가야 하는데, 하물며 망상이 죽 끓듯하는 데에서 어떻게 진여삼매를 성취하여 중도를 증득한 부처님의 경계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교(敎)라는 팔만대장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방문입니다. 약처방이란 말입니다. 그것에 의지해서 그대로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습니다. 밥 이야기를 천날이고 만날이고 해봐야 배부르지 않듯이, 약처방만을 천날 만날 외어봐야 병은 낫지 않습니다. 약을 직접 먹는 것이 실천하는 것이므로 선정을 닦는 좌선을 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친 것이 이 좌선입니다. 지금도 저렇게 좌선하시며 앉아 있지 않습니까.
출전 : 영원한 자유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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