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큰스님 말씀

간월도(看月島)에는 달이 없다

근와(槿瓦) 2014. 3. 13. 00:43

간월도(看月島)에는 달이 없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1941년 여름, 산청군의 삼장면 지서 주임 다니자키 겐이치로가 피살되었다. 전국에 걸쳐 지서가 피습당하여 순사가 목숨을 잃는 일은 가끔 있었으나 다니자키의 죽음은 지금까지 보아 온 저항세력에 의한 지서 피습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사건이었다.

 

다니자키는 죽었다기보다는 증발되어 버렸다. 그는 지리산에 파묻혀 있는 암자 몇 개를 돌아보는 도중에 어디선가 사라져 버렸다. 다니자키의 순시계획 속에 들어 있던 암자들은 비로암, 대원암, 문수암 그리고 성주암 등 네 개였다. 그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비로암에 들렀다가 대원암에서 늦은 점심을 얻어먹고 문수암으로 떠났으나 여기서부터 종적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지서주임 다니자키가 왜 혼자서 깊은 골짜기에 묻힌 암자들을 순시하러 나섰는지는 의문이었다. 아마도 네 명뿐인 순사들이 일상의 업무에 모두 바빠 데리고 다닐 일손이 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는 혼자서 정복차림으로 큰 칼을 찬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속세를 멀리 떠난 산중 암자의 순시에 나선 것이었는데, 대원암에 그의 모습이 나타난 시간은 점심공양이 끝난 지 오래인 오후 한 시경이었다.

 

해월은 주지방으로 손님을 맞아들이고 점심상을 내오게 했다. 상 위에는 보리쌀에 콩깻묵을 섞은 시꺼먼 밥에다 시퍼런 열무김치가 전부였다.

"소찬이 워낙 변변치 못하여 입에 넣을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나는 원래 채식주의자요. 게다가 불도이기도 하지요. 이만하면 과분합니다."

헛말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니자키는 조악한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다. 밥을 먹은 후 차 대신 계곡에서 길어 온 맹물을 마시면서 다니자키가 말하였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오. 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황국군대의 무운을 빌기 위하여 각 사암들이 각별히 정성을 쏟아 줄 것을 누누히 지시해 왔는데 그게 제대로 안되고 있는 사암들이 있다는 소식이오. 아, 물론 대원사를 지칭하여 하는 얘기는 아니외다. 아까 법당에 가보니 천황폐하의 만수무강과 황군의 전승을 축원하는 기원문이 다 제대로 걸려 있는 것을 보았어요. 기도와 축원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아요. 다만 한 가지,"

 

다니자키는 무릎 옆에 끌러 놓은 일본도를 당겨 만지면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지리산 일대에 불손한 세력들이 은거하여 도적처럼 드나들며 치안을 어지럽히는 자들의 수효가 늘어나고 있고, 그들이 대개는 산중 깊숙히 자리잡은 사암을 근거로 은신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어요. 그중에는 발칙스럽게도 내지에 유학하여 고등교육까지 받아 황은을 크게 입은 자들까지 섞여 있다는 소문이오. 대원사에는 지금 객사에 어떤 사람들이 머물고 있소? 또 지난 수년간 스님 이외에 잠시 머물다가 떠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소?"

 

"워낙 깊은 산골이라 속인으로 이 절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간혹 병약하여 약탕관을 둘러메고 찾아와 몇 달간 휴양을 하고 떠난 사람들은 일 년에 몇 명씩 있어 왔습니다."

"그 사람들 이름을 말해 보시오. 그리고 주소와 나이, 직업, 성향까지도 알고 있는 것은 뭐든지 다 말해 보시오."

 

해월은 생각을 짜 내는 시늉을 하며 몹시 힘들게 몇 사람의 이름을 주워섬겼다. 대부분 산 아래 마을에 사는 농부나 그 자식들의 이름이었다.

"부산에서 왔던 청년이 있었지요?"

"아, 예. 한 사람 있었습니다. 학생이었어요. 젊은 사람이 위장병을 앓아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허약했지요. 여기 일 년 넘게 있었으나 별로 차도를 보지 못하고 하산하고 말았습니다. 그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위장병 환자였다고? 사실인가?"

다니자키의 말에는 어느새 반말이 섞여 나왔다.

"그럼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실이듯이 그 학생이 위장병 환자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도 아주 심한 위장병 환자지요. 제가 보기에는 폐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름은 ?"

"서경문이라고 했습니다."

"주소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집 자제라고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어디서 기거했소?"

"법당 오른쪽의 요사채에 있었습니다. 공양주 보살방의 바로 옆방이었지요."

"가 봅시다."

다니자키가 앞을 서고 해월이 뒤를 따랐다. 요사채의 다른 방들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공양주 방 옆방에는 사람이 기거하고 있는 흔적이 있었다.

"지금 기거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요?"

"아, 예. 중이 되려고 입산하였으나 막상 산에 오고 보니 마음을 정할 수 없어 망설이고 있는 청년이 한 사람 있습니다."

"지금 어디 있소?"

"아마 산에 올라갔을 겁니다. 날마다 산에 올라가서 저녁이 돼야 내려옵니다."

"이상한 인간이로군. 그 사람 내려오면 내일까지 주재소에 오도록 이르시오. 아니지. 내가 하룻밤 묵더라도 기다렸다가 만나 봐야겠구만."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돌아가시더라도 그 사람을 필시 내일까지 주재소에 가도록 잘 전달하겠습니다."

"그럴까? 주지스님이 책임을 지는 겁니다."

"그러지요."

"또 다른 사람은 없었소?"

"있었습니다. 이영주라고, 역시 몸이 병약하여 휴양하러 와서 잠시 머물다가 아예 출가하여 해인사로 떠났습니다. 묵곡리 사람입니다."

"법명이 뭐요?"

"성철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어느 절에 있는데?"

"비구승입니다. 머무는 절이 따로 없고 한 철 참선할 도량을 찾아 구름처럼 흘러다니는 수행승이지요. 그들이야말로 진짜 중입니다."

 

다니자키는 해월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당신은 그럼 가짜 중이란 말이오? 그리고 일본의 스님들이 모두 가짜다, 이렇게 들리는데?"

"천만에요. 일본의 불교야 그 나름의 교리와 전통 위에 서 있으니 가짜니 진짜니 따질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선에서는 그런 교리도 없이 황망중에 일본의 것을 배우다 보니 나 같은 가짜도 생기는 법이지요."

"스님의 그릇이 큽니다."

다니자키는 감동도 잘하는 인물이었다.

"그 성철이라는 수행승의 거처를 알거든 알려 주시오. 최근 수행승들 중에서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당치도 않은 이유를 내걸고 작당모의하여 사실상 독립운동을 하는 인물들이 많다고 들었소. 도대체 비구라는 작자들은 이제 조선천지에 천명도 되지 않아 한 줌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게 두고두고 속을 썩이고 있단 말씀이야. 그렇지 않소?"

"아,예. 그렇습니다."

"좋소. 진주에서 왔다는 그 젊은 사람 내일 아침 일찍 주재소로 보내시오. 그렇지 않으면 스님을 달리 대접할 것이오."

다니자키는 문루 아래의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뒤를 돌아보고 거듭 다짐하였다.

 

 

서경문은 법당 뒤편의 소나무 숲속에 숨어 다니자키의 움직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긴 칼을 절거덕거리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을 들여다보고 주지에게 뭔가 지시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어쨌든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경문은 보름 전에 대원사로 다시 찾아왔다. 일본에서 독서회 사건으로 쫓기게 되면서 더이상 동경이나 경성이나 고향인 부산이나 그가 발붙이고 다리 뻗어 쉴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으로 가야겠다. 그것이 서경문의 목표였다. 그러나 중국으로 가기 전에 일본놈들에게 선물을 주고 가고 싶었고, 또 언젠가는 돌아와 저놈들과 싸울 거점을 확실하게 만들어 두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장소는 역시 지리산이었다. 대원사는 안성맞춤의 거점이었다. 주지 해월의 가장된 무관심은 일종의 방조라고 할밖에 없었다. 지리산에는 이미 나라를 잃은 직후부터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은거하며 저항운동을 해왔고 일본이 중국침략의 전쟁을 도발한 이후부터 그 같은 게릴라 활동은 더욱 늘어났다. 그런 인물들을 찾아 하나의 새로운 세력으로 결집시킨다. 그리고 그 세력을 중국대륙의 공산주의 항일세력과 연계시킨다. 이것이 경문의 목표였다.

 

또 하나의 목표는 사재(寺財)를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연결하는 데 자신이 그 고리가 될 길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사찰의 주지들이 깔고 앉아 주무르는 재산이나 그들이 진탕망탕 써제끼는 돈의 규모는 세속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 그런 거액을 주무르는 주지들 중에는 겉으로는 일제에 적극 협력하면서도 뒤로는 중국의 임시정부에 줄을 대어 은밀하게 군자금을 공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범어사의 김구하(金九河)스님이 그랬는데, 스님은 이 은밀한 일이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겉으로는 더욱 일제에 협력하는 척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난세에 처신하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일승 주지들은 이런 정도의 양심을 지키는 일조차 생각 밖이었다. 그들 중에는 절집 재산을 동양척식회사에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아 이를 개인적으로 탕진하는 염치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유림의 막대한 임목의 벌채권을 팔아 그 일부를 챙기는 도적들도 있었다. 선승들이 비를 피하여 참선할 도량마저 점점 사라져 가는 형편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서경문은 영남의 큰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기름이 흐르는 주지들의 주머니를 털어 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밤중에 칼을 들고 주지의 단잠을 깨운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이나 조사의 화두 대신 나라와 민족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얘기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칼이 말을 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한 번 돈을 낸 주지는 순결을 뺏긴 처녀처럼 계속 이쪽의 요구를 잘 들어 주도록 끈을 만들어 두는 것이 요긴한 일이다.

 

이러한 목표가 당장에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리산에 다시 온 이후 보름 남짓 동안 경문은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랬는데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지금 강력하고도 결정적인 방해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해월스님이 어디까지 얘기를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방문을 열어 살펴보았다면 사냥개같은 지서주임과 순진한 산골 암자의 주지 사이에 오고 갔을 법한 대화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경문은 지체없이 절의 오른쪽을 돌아 계곡을 끼고 내달았다. 한참을 달려 내려온 다음에야 오솔길을 더듬어 올라갔다. 길은 벼랑을 끼고 끊어질듯 이어지며 산모퉁이를 굽이굽이 돌아 흐르고 있었다. 몇 굽이를 돌다가 경문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냈다. 산굽이를 막 돌자마자 키높이의 바위가 박혀 있었고 그 주위에 다복솔이 둘러싸고 있어 사람 하나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의 자리였다. 바위 뒤에 숨어 숨을 고르면서 경문은 손에 쥔 지팡이를 살펴보았다. 절 뒤편에 있는 대나무숲에서 가장 굵은 왕대를 잘라 허리께까지 오도록 만든 지팡이였다. 손잡이 부근의 굵은 마디 밑에다 칼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새겨 넣었다. 이 글씨를 새겨 넣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막연히 장난기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글귀의 위력을 이렇게 빨리 드러내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 자가 축지법을 써서 앞질러 내려갔거나 무슨 낌새를 채고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간 것이나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뭉클 솟는데 절거럭거리는 발자욱 소리가 다가왔다. 그 소리는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와 뒤통수를 보이며 모퉁이를 돌았다. 경문은 파사현정의 몽둥이를 어깨높이로 들어올렸다가 비스듬하게 시야를 가린 뒤통수를 향하여 힘껏 후려쳤다. 손바닥에 와 닿는 무게는 뜻밖에도 가벼웠다. 일장기의 히노마루처럼 붉은 물감을 뿜으면서 다니자키 주임은 편안하게 무너졌다. 한밤중의 산계곡보다 더 깊은 적막이 감돌았다. 모든 힘을 다 쏟아 버린 듯 사지에 기운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할 일이 있었다. 무아지경 속에서도 경문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다니자키를 계곡으로 끌고 내려가면 운반하기도 쉽고 파묻기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장마통에 금방 드러날 것이고, 장마가 아니라도 추적하는 눈에 금방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다. 우선은 힘이 들더라도 다니자키의 죽은 몸을 짊어지고 경문은 산비탈을 더듬어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힘이 들어 한 발자욱도 더 떼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는 파묻기 좋은 장소를 찾아냈다. 후미진 곳에 시체를 넣고 짐승들이나 빗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큰 돌을 주워 위에다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쌓고 다시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이 모든 일이 다 끝났을 때는 긴 여름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산자락에는 그늘이 깊어지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갑자기 천지간에 갈 곳이 없어진 그는 어둠이 내려오는 지리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까닭도 없이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륙 년 전 처음 대원사에 와서 머물고 있을 때 만났던 사람, 영주라는 이름의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라고 말로 할 수는 없지만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던 사람, 어느 길로 가든지 일단 길에 나서기만 하면 그 길의 끝을 알고야 말 것 같은, 결코 허술하지 않던 얼굴, 그가 보고 싶었다. 마침 며칠 전에 대원사의 해월스님이 법명을 성철이라고 부르는 그 수행자의 최근 거처를 알려 주었다.

 

 

삼일암을 떠나면서 성철스님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치 바랑 속에 큰 바윗덩어리를 넣어 짊어진 것 같았다. 때는 분명히 말법의 시대이다. 나라는 망하여 백성들이 어미 없는 닭새끼 들처럼 불안하게 생존하여도 어느 방향으로부터도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조차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화하였고 조사들의 수행방법 역시 한갖 언어를 희롱하는 자들의 요술방망이로 전락하였다.

 

지눌이 정혜결사를 일으킨 까닭을 이제야 명백히 가슴 저리도록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이 있어야 이 백성들이 갈 길을 찾는다. 그러나 그 길이란 무엇인가. 불법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일이 아니던가. 불법이 다시 빛을 발하려면 그것을 온전히 깨닫고 실행하는 위대한 인간이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굳게 서야만 한다. 그래야만 뭇 중생들이 그 그늘 아래로 와서 피 묻은 손, 난도질 당한 가슴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불법을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하는 단 한 사람의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암자 앞의 산굽이를 도는데 앞에 청년이 한 사람 마주 오고 있었다. 청년은 성철스님의 앞에까지 오더니 비켜 지나가지 않고 멈추어 섰다. 다음 순간 청년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며 두 손을 모아 합장하였다.

 

"형님, 아니 스님.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으나 그 말투 때문에 성철스님은 청년을 알아보았다. 출가하기 전 대원사에서 함께 있었던 그 학생이었다. 그때는 설익은 중학생이었으나 지금은 십 년이나 겉늙어 버린 듯 고단한 삶의 찌꺼기가 얼굴을 덮고 있었다.

"여긴 웬일이고? 중도 아닌 사람이 방방곡곡의 절을 모두 순례할 참이가?"

"절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마음이 절 아닙니까. 걸어다니는 절, 살아 숨쉬는 절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사람, 절집에 기웃거리며 다니더니 문자를 쓸 줄 아네. 난 도무지 자네 말이 무신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만은."

"스님 도가 아직 열리지 않은갑소. 스님 찾아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날 만나러? 왜?"

"길을 물으러 왔습니다."

"자네는 자네 길을 분명하게 가고 있던 사람이 아니드나. 왜 갑자기 산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대고 있나."

"산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대원사가 있는 바로 그 지리산 골짜기에서 길을 잃었어요."

경문의 말이 워낙 비장하게 울렸기 때문에 성철스님은 이 청년에게 무슨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다. 성철은 길섶의 풀밭에 청년을 앉혔다.

"말해 보그라.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지쳐 빠졌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다니자키, 우리 피를 빨아먹는 독충 한 마리를 죽였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경문은 대원사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대충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성철스님은 물었다.

'자네는 지금 사람을 죽였다는 그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나?"

"아닙니다, 스님."

경문은 분명하게 부정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독충 한 마리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인간을 본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또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왔나."

"괴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독충 한 마리를 죽이고 나니 마음의 괴로움은 손톱만큼도 없으나 갈 길이 없어졌어요. 이 세상 어디에도 발을 붙일 곳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중국으로 도망을 칠 생각입니다. 중이 될 생각도 조금은 있습니다."

"차라리 중국으로 가게. 중이 되면 더 많은 중생들을 악업에 빠뜨리게 될 거니까."

"뜻밖이군요."

경문의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제가 죽인 인간은 우리 백성들 수십만의 목숨을 초개같이 앗아 가고 그들의 터전마저 뺏아 버린 마귀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내가 했던 일은 중생을 악업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중생을 수렁에서 건져 내려는 살신행위나 다름이 없어요. 그런데 스님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껏해야 자신의 마음이 질병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밥을 축내며 수행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마저도 제대로 해내는 스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중이라는 사람들은 부처님보다 일본천황의 만수무강이나 빌어주는 댓가로 절재산을 주무르고 스님 같은 수행승들은 또 그들에게 빌붙어 살면서 수행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하화중생이라는 말은 있지만 대체 중생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성철스님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고요했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살인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싸워야 하고 싸움이란 상대를 죽이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불안합니다, 스님. 과연 우리는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 모두 똑같은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성철스님은 청년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 어깨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라, 중국으로. 당초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 그 길밖에는 길이 없거든 그 길을 가라. 그러나 인생에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자네가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할 뿐이다. 나라를 되찾는 일은 몇 사람의 힘으로 할 일은 아니다. 저들과 싸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혼을 지키고 되찾는 일이야말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혼을 되찾자면 우리가 저들보다 더 위대해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정신이 빈약하고 문화적으로 뒤지는 편이라면 총칼로 나라를 되찾아 놓아도 정신적으로 종놈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스님, 스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지난날 이미 알았어요. 스님께서는 반드시 이 땅의 중생들에게 혼을 되찾아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그러나 근기가 다 같지는 못하잖아요. 저 같은 사람은 이제 떠나야 합니다. 부디 부처님의 가피를 빌어 주십시오."

"부처님의 가피라는 것도 스스로의 마음이 짓는 거다. 그보다는 내 말을 명심해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총칼로는 안되고 이 땅 사람들의 마음을 되찾아 주어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리도 자네가 그리는 그 평등사회라는 것은 없다.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인간의 근기를 무시하고 만들어진 망상일 뿐이다. 그 동안 가난하고 핍박받던 중생들을 한데 뭉치게 하여 힘을 짜 내는 구호로는 그럴듯하겠지만 멀지 않아 인간세상의 목을 죄는 사슬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점도 명심해라."

"그 점이 늘 마음에 켕깁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싸울 수는 없으니까요. 요즘 듣기로는 젊은 선승들이 은밀하게 작당하여 항일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런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일도 중요하다. 불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승속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중이 대체 무엇이냐. 보리구경각을 깨우쳐 그 빛을 중생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러자면 먼저 미망에서 깨어나야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나머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무엇을 성취해도 오래가는 법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놓입니다."

서경문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형님이니까 어리광을 좀 부렸습니다만 스님의 부동심에는 그저 놀랄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 땅 중생들의 밝은 빛이 되십시오. 그 대신 저는 싸우겠습니다."

"어디로 갈텐가?"

"만주로 가겠습니다.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만주에서 유격대를 이끌고 일본놈들을 혼내주고 있다는 그 전설의 인물 말이가. 왜 중경으로 가서 임시정부에 들어가거나 독립군에 들지 않고."

"그쪽으로는 안 갑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디로 가야 할지 그것을 모르겠고 김일성이라는 장군이 과연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 제가 도대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 아니 제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스님을 찾아온 이유도 그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나."

"아니,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백성을 위하고 동포를 위한다는 핑계로 자네 내면에 있는 불만을 충족시키는 가학적인 행동이나 합리화시켜서는 안되네. 인간의 본래 바탕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어떤 이념이나 주의도 정당성을 얻지 못하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부디 저의 길과 스님의 길이 보살도의 어느 길목에서 마주치기를 바라지만 어림없는 소망이겠지요?"

"그 길목을 어디서 찾나? 바로 지금 이 자리가 보살의 입지인 것을."

"아, 스님."

경문은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는 듯이 멍한 눈으로 먼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순천까지 걸었다. 순천에서 경문은 기차편으로 경성으로 올라갔다. 경성에서 잠시 머물다가 만주로 가겠다고 했다.

 

경문과 헤어진 성철스님은 걸어서 탁발을 하며 서산의 수덕사로 향했다. 만공스님의 정혜사에서 동안거를 하기 위해서였다. 금강산에서 돌아온 만공스님이 수덕사의 정혜사에 돌아가 있었으므로 당대의 선승 만공의 그늘에서 가르침을 청할 참이었다. 일찍이 만공스님이 정혜사라는 수행도량을 연 것은 필시 보조지눌이 이미 수백 년 전에 그랬듯이 이 땅 백성들의 정신을 되살리려면 불법을 바로 세우는 길밖에 없다는 대자각에서 비롯된 자비행일 터였다. 도량의 이름마저 정혜사로 부르는 것도 지눌의 정혜결사를 고스란히 재현하려는 의지를 나타내 보이는 것임이 분명했다.

순천에서 수덕사까지의 탁발행은 보름이 넘게 걸렸다. 찌는 듯한 더위와 가뭄으로 목이 타는 들판을 가로질러, 가난과 희망 없는 삶을 붙들고 힘들게 지탱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몸 속으로 녹여 넣으며, 단 한 순간의 화두를 놓지 않으면서 그는 걸었다. 고요한 강물에 비로소 달의 온전한 모습이 비치듯이, 이 고통스러운 중생의 삶이 한갖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면 그것을 비추는 마음의 그릇이 티 없이 깨끗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중생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있는 그대로 함께 앓으면서, 뜨거운 뙤약볕 아래 갈라 터진 논길을 걸었다.

 

그 해 겨울 결제법문에서 만공스님은 법좌에 올라앉아 형형한 눈빛으로 좌하를 굽어보더니 이윽고 주장자를 잡아 세 번 찍은 후에 입을 열었다.

"이것은 있는 마음으로도 알 수가 없고, 없는 마음으로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니, 또한 어떻게 하겠느냐? 만약 이 도리를 투철히 알게 되면 참학(參學)하는 일을 마쳤다 하리라. 대중이 듣기가 지루할 것 같아 내가 대신하여 들어 보이리라. 자세히 보아라."

다시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친 후 법좌에서 내려왔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는 가느다란 신음을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 만공의 법어는 그의 육신이 지닌 무게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고, 여여(如如)하여 부동하는 대선사의 측량하기 힘든 깊이를 전해 주었다. 그러나 성철은 만공스님의 법어에서, 법문을 하는 대선사의 풍기는 분위기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우기 어려운 공동(空洞)을 느꼈다. 이런 느낌은 지난번 금강산에서 만공스님을 대했을 때 느꼈던 아쉬움과 마찬가지였다. 이 공동이 만공이라는 대선사가 지닌 본질적인 그릇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그릇의 크기를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의 가벼움 때문인가, 이런 상념이 잠시 스쳐 가는 것을 눌러 버리고 성철스님은 곧 좌선삼매에 젖어 갔다.

'부모 미생전의 나는 무엇이었는가'하는 화두를 붙든 그는 아득한 우주 저편 적멸 속에 잠겨 있었다. 그 적멸은 다시 의식이 눈떠 있는 현재 내 존재의 원형질로 화하면서 성색이 없고 시공이 없는 화장찰해(華藏刹海)가 되었다.

 

대부분의 선방에서 이미 소문이 나 있었지만 성철수좌의 용맹정진은 독특하여 흉내를 내기가 힘들었다. 일부러 애를 쓰는 일 없이 좌선삼매경의 아득한 깊이를 따라 땅덩어리가 바다에 가라앉듯이 침잠해 버리는 그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그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삼매경에 빠져드는 모습을 대중들은 일찍이 어떤 고승대덕들에게서도 본 일이 없었다. 차츰 대중들은 성철수좌의 몸 둘레에서 은은한 향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눈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성철수좌가 선방대중들로부터 따뜻한 영접을 받는 도반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거꾸로 질시와 폄하의 대상이 되기가 일쑤였다. 성철스님이 틈만 나면 지대방에 버티고 앉아 게걸스럽게 불경을 탐독하고, 불경 외에도 여러 가지 서적들을 참구하는 것을 보고 도반들은 "저 사람은 선승이 아니라 학승이다'라고 폄하하였다.

반대로 교종을 내세우는 측에서는 성철수좌를 두고 "지나치게 수행의 원칙을 고집하는 이상주의자다"하고 경원하였다. 만공을 비롯하여 금오, 용성, 한암 등 당대의 고승대덕들 대부분이 성철수좌를 만나고 나면 마치 자신의 못난 뒷덜미를 들켜 버린 새색시처럼 몰래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성철은 이들 고승을 만나고 법음을 들어도 가슴속에 뚫린 커다란 공동을 메울 길이 없었다.

 

동안거를 끝내는 날 해제법문을 마친 만공은 한 철 공부를 마친 납자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오늘은 해제날이니 여러 수좌들은 그 동안 얻은 바를 앞에 내놓아 보아라."

한 수좌가 필묵을 들어 게송을 읊어 내놓았다. 만공은 그것을 이윽히 들여다보더니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더올렸다.

"여러 수좌들은 이 사람의 살림살이를 들어 보라."

만공은 수좌가 내놓은 게송을 소리 내어 읽었다.

"홍면노자(黃面老子)의 콧구멍을

개미가 간지럽히네.

누가 내게 부처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어둠이 해를 먹었다고 하리라."

 

읽기를 마친 만공은 "수좌의 살림살이가 넉넉하구나"하였다. 수좌는 머리를 숙였다.

"소승의 바랑 속에는 여전히 방귀냄새만 가득합니다."

"내가 늙어 피곤하면 수좌의 방에서 공양 한 끼 얻어 먹을 수는 있겠구나."

수좌는 천하의 선승 만공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셈이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성철스님은 여전히 허전한 공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가를 하고 인가를 받는 풍습은 분명히 옛 조사들의 가풍을 따 온 것이다. 그러나 가볍다. 진실로 한소식을 한 것이 아니라 한소식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허전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만공으로부터 배울 것은 많았고 정혜사에서의 한 철은 성철스님의 수행의 열매를 금강석처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때문에 봄이 되었어도 성철스님은 만공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간월도에 있는 만공의 토굴을 찾아가 여름과 겨울의 안거를 계속하였다. 서해의 차가운 바람이 누더기 속으로 헤집고 들어오는 어느 날 토굴 밖에서 성철스님은 만공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스님께서는 확철대오하셨습니까?"

만공스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동화사에서 한 번, 수덕사에서 한 번......모두 세 번을 확철대오하였느니라."

'그렇다면 화두는 성성하십니까."

"성성하지."

"얼마나 성성하십니까."

"글쎄다. 배추를 뽑으면서 화두를 잡고 있으면 배추 대신에 잡풀을 뽑게 되고, 그런 실수를 안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화두가 없어지느니라."

만공스님의 대답은 솔직하였다. 그러나 그 솔직함이 만공의 법의 그릇을 크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성철스님은 생각했다. 이 스님은 그릇이 크다. 근기도 좋다. 재능마저 있다. 경허라는 큰 스승을 만날 수 있는 행운도 타고 났다. 때마침 쓰러져 가던 조사선의 씨앗이 민족의 불운한 계절을 당하여 거꾸로 왕성하게 피어 오르려 하고 있었다. 이런 기운 속에서 이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이 땅의 조사선은 겨우 옛사람들의 흉내나 내다가 다시 사그러들고 말 것이다. 이런 생각이 만공의 앞에 선 성철스님의 가슴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 갔다.

 

만공은 확철대오를 말하기 전에 화두를 잡는 데 있어 동정일여의 경지에 가 있지도 못하다는것을 느끼자 성철스님은 이 스승의 곁을 떠나 다시 길을 나섰다. 떠나면서 성철스님은 생각하였다. 만공에게는 만공의 그릇만한 역할이 있다.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땅 불교의 앞날을 위해 걱정스러운 점은 있었다. 만공뿐만 아니고 당대의 고승들 대부분이 납자들을 제접하여 너무 쉽게 인가를 해버린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그들로부터 인가를 받은 수좌들이 한소식을 하기는 커녕 겨우 그때부터 비로소 수행을 시작하여야 하는 그런 인물일 경우가 더 많았다. 이렇게 하여 아무렇게나 양산된 '인가받은 인물'들이 공연히 나이만 먹고 절밥을 축낸 뒤에 큰스님 노릇들을 하게 될 뒷날의 이 땅 불교가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출전 : 우리 옆에 왔던 부처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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