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정법념처경(117)-1170

근와(槿瓦) 2016. 1. 15. 00:59

정법념처경(117)-117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161 / 1802] 쪽

업(生業)이거나 혹은 복밭(福田)을 믿었기 때문에 야마천에 태어나더라도 몸의 크기와 얼굴 등이 모두 못하고, 천녀들도 못하며 혹은 여러 곳에 다니거나 음식 등이 못하며 소리와 촉감·맛·색·냄새·목숨 등이 모두 못하고 광명도 못하기 때문에 다른 천자 앞에서 부끄러워한다. 이것은 방일하여 계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세 가지로 각자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거기는 우열이 있다. 오직 부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의 공덕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본성이 그렇게 훌륭하였기 때문에, 마음과 몸의 부드러움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바른 소견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신심이 훌륭하여 아첨하지 않고 굽히지 않으며 남을 몹시 괴롭히지 않는 등 이런 행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부모를 공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혹은 소원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그는 그 업과 같은 마음이 항상 계속한다. 그리고 복밭을 깊이 믿는 힘과 생각하는 공덕에도 하·중·상이 있다. 그런 훌륭한 업으로 천상에 태어나서 그 업과 같은 과보를 받는 것은 끝내 허망한 일이 아니다. 결정코 그렇게 받는 것은 의심할 수 없거늘 하물며 계율을 받아 마침내는 열반에 이르름이겠는가? 그것은 반드시 얻는 것으로서 마침내 허망하지 않으니라.

 

계율을 받는 데는 몇 가지가 있는가? 간략히 말하면 네 종류의 권속이 받는 네 가지의 계율로서 그것은 다 과보를 거두는 것이다. 네 무리는 이른바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등 이 네 무리가 계율을 받는 것이다. 그들의 받는 계율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그 우바새에게는 대강 네 가지가 있으니, 그 네 가지란 이른바 첫째는 일분행(一分行)이요, 둘째는 반분생(半分行)이며, 셋째는 삭삭행(數數行)이요, 넷째는 일체행(一切行)이다. 일분행이란 한 가지 계율만 지키는 것이요, 반분행이란 세 가지 계율을 받아 그것을 행하는 것이며, 삭삭행이란 계율을 항상 받지 않는 것이요, 일체행이란 다섯 가지 계율을 받아 지키는 것이다.

 

또 네 가지 지계(持戒)가 있으니, 그 넷이란, 첫째는 희지계(希持戒)요, 둘째는 반지계(半持戒)며 셋째는 회지계(悔持戒)요, 넷째는 합지계(合持戒)이다. 그 우바새는 학구(學句 : 學處와 같은 말로 戒律을 의미한다)의 바

 

                                                                            [1162 / 1802] 쪽

다에서 차츰 계율을 받되 처음에 삼귀의(三歸依)의 계율을 받아 우바새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을 닦고 오랫동안 관찰한 뒤에 한 학구를 받고 그것을 굳게 지켜 이지러뜨리지도 않고 뚫지도 않으며 구멍을 내지도 않는다. 어떤 것이 이지러뜨리지 않는 것이며, 어떤 것이 뚫지 않는 것이며, 어떤 것이 구멍을 내지 않는 것인가?

 

이지러뜨리지 않음이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것을 받아 지켜 버리지 않고, 한 생각도 계율을 깨뜨릴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남이 깨뜨리더라도 기뻐하지 않고 남의 깨뜨림을 말려서 그로 하여금 법 안에서 편히 머무르게 한다. 그러므로 이지러뜨리지 않는다 한다.

 

뚫지 않는 것이란 그가 받은 일체의 학구에 있어서 뒤에 가서 그것을 버렸다가 다시 그 뒤에 그것을 거두어 가지는 것으로서 자꾸 버리고 자꾸 취하는데 이것을 뚫는다[穿] 한다. 그러나 그는 그 학구를 뚫지 않고 그것을 가진다.

 

구멍을 내지 않는 것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을 구멍[孔]이라 하는가? 그가 처음에 깨끗한 마음으로 선지식에게서 그 학구를 받았으나 받고 난 뒤에는 마음으로 후회하여 그것을 지키지 않고 의심을 낸다. 그는 그 의심에 마음이 끌려 흐린 마음으로 행하고 많이 생각하지 않고 행한다. 그리하여 그는 뒤에 가서 후회의 불에 태워지고는 그 학구를 버리고 버리고는 다시 취하지 않는데 이것을 구멍이라 한다. 만일 누구나 이렇게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구멍을 내지 않는 것이다.

 

또 저 희지계의 우바새는 이지러지고 뚫리고 구멍 난 학구의 계율에 머무른다. 어떤 것을 이지러진 것이라 하는가? 그 마음이 멸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아 선한 마음이 생기면 곧 학구를 취한다. 마치 파초잎이나 번개처럼 그 마음을 움직여 기꺼이 계율을 받고 신심으로 공경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뒷날 외도의 법을 듣고는 후회하여 어리석은 번뇌가 마음을 흐리게 하므로 그 계율을 버리고 뒤에 다시 바른 법을 듣고는 또 그 계율을 받는다. 이것을 이지러뜨림이라 한다.

 

또 이지러뜨림이란 그 우바새는 학구를 의심하면서도 그 계율을 지녀 하늘에 공양하고 바른 법을 생각하여 이렇게 생각한다.'나는 지금 부처님 말씀 때문에 청정하게 되었고 천상에 그 은혜의 힘을 얻

 

                                                                            [1163 / 1802] 쪽

었다.' 이런 마음 때문에 두 곳에 다 공양한다. 그리하여 그 의심으로 법에 의하여 계율을 지키면 이것을 뚫음이라 한다.

 

또 구멍이란 마음속에는 구멍이 있어도 겉으로는 선을 행하여 남에게 보이기 위해 또 공양을 얻기 위해 학구를 받아 가지면 이것을 구멍이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것을 다 버린다.

 

희지계행 우바새란 어떤 것인가? 그 우바새는 한 학구를 취하여 오랫동안 지난 뒤에 다시 다른 학구를 취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한 번만이 아니요, 한 마음이 아니며 한 스승을 따른다. 이와 같이 항상 학구를 취하기를 바라는데 이것을 희행학구 우바새라 한다.

 

둘째의 반지계 우바새란 무엇인가? 반반으로 행을 취하는 것이다. 즉 두 가지를 취했다가 뒤에 세 가지를 취하고, 세 가지를 취한 뒤에 다시 두 가지를 취하며 그 뒤에는 세 가지를 취하고 오래 있다가 또 두 가지를 취한다. 이것을 반행(半行)이라 하는데 반반 가운데서 밑에서 뒤로 행하고 위에서 밑으로 행한다. 왜냐 하면 반반의 학구를 아울러 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합해서 받아 가지는 이를 둘째의 반반합행 우바새라 한다.

 

어떤 것이 셋째의 회(悔)우바새인가? 그는 마음이 어리석기 때문에 먼저 계율을 취하지 않고 다만 부처님들께 깊은 신심을 낸다. 그는 혹 비구에게서 계율을 지키는 결과의 공덕은 한량이 없어 열반에까지 이른다는 말을 듣고는 후회의 불이 그 마음을 태운다. 그제서야 계율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나아가서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율을 지켜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셋째의 회 우바새라 한다.

 

또 넷째의 합(合)우바새란 어떤 것인가? 그는 지계행을 모두 구족한다. 그 합지계행의 우바새는 바른 법을 듣고는 곧 그 바른 법의 글귀와 있는 곳을 다 안다. 즉 경전 가운데 12인연이 있으면 그것으로 12인연의 법을 알고 마음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믿기는 하나 다만 입으로만 갖가지 계율을 모두 섭취하고 만족한다. 즉 한꺼번에 5계를 섭취하고 굳게 가져 이지러뜨리거나 뚫거나 구멍을 내지 않고 목숨을 마칠 때까지 항상 그렇게 지킨다. 네 종류의 우바새는 이상에서 말한 것과 같다.

 

                                                                            [1164 / 1802] 쪽

또 하·중·상의 차별이 있다. 일체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은 5계를 모두 지키는 것이요, 일체 가운데서 가장 못한 것은 희지계인데 그는 최하의 계율을 지키는 우바새이다. 그러나 오직 한 생각만이라도 계율을 섭취하면 천인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고 하늘의 마왕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 왜냐 하면 그는 열반의 성으로 가는 법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천인도 열반의 성을 바라거나 구하지 않는다. 그 땅의 야차는 계율을 지키는 그를 보고 공양하고 예배하며 허공의 야차도 그와 같이 그를 보고는 공양하고 예배한다. 그것은 그들이 법을 따라 행하여 부처님 은혜를 갚고 잘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 야차들은 혹 천인들을 향해 말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현세의 과보를 얻어 왕이나 대신이나 혹은 토지의 주인들도 그를 공양하고 재물을 보시한다. 이 뒤에는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신통은 대단하고 큰 세력이 있어서 어떤 비법을 행하는 사나운 야차들도 그를 괴롭히거나 파괴하지 못한다. 그는 무엇이나 필요한 것은 생각만 하면 다 풍족히 얻어 마음대로 향락한다. 지은 바 업을 다 성취하여 병이 많지 않고 얼굴빛이 청정하며 잠은 안온하고 깨어서는 기뻐하며 처자와 노비 및 다른 손님들도 모두 그를 따르고 떠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훌륭한 세계의 천상에 태어난다. 천상에 태어나서는 몸의 크기와 얼굴이 다 훌륭한데 그것은 지킨 계율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런 업의 힘, 즉 계율을 지켰기 때문에 이런 큰 과보를 얻는 것이다. 본래 인간에서 모은 선업으로 야마천에 태어났지마는 방일하기 때문에 그 선업이 다한다. 그는 또 마음의 업의 그물에 묶이기 때문에 뒤에는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는 그렇게 정진하더라도 마음대로 방일하면 그 천자는 타락할 때에는 곧 후회하고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떨어진다. 그것은 선업이 다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방일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넷째의 훌륭한 우바새로서 현세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니 만일 이렇게 끊이지 않고 정진하면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 부류의 우바새로서 부처

 

                                                                            [1165 / 1802] 쪽

님의 권속이다.

 

또 몇 가지의 우바이가 있는가? 우바이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신(有信)이요, 둘째는 종성(種姓)으로서 차례에 따르는 것이며, 셋째는 조복행(調伏行)이요, 넷째는 근주행(近住行)이다. 이른바 유신이란 그 우바이 종성은 마음을 단련시켜 그 마음이 부드럽고 그 마음을 잘 닦는다. 그녀는 부처님 말씀을 조금만 들어도 잘 알고 음미하며 음미하고는 그 법에 들어 간다. 그녀는 선한 마음에 머무른 뒤에는 계율을 받는데, 계율을 받으면 여자의 마음도 그녀를 구속하지 못하며 외도의 말을 들어도 곧이 듣지 않고 부처님 법을 버리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과는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에 대해 청정한 마음을 내어 5계를 갖추어 받는다. 이것을 유신 우바이라 한다.

 

어떤 것이 종성으로서 차례를 따르는 우바이인가? 그녀는 종성이 현선(賢善)하여 법을 따라 행하고 법에 들어가 법을 믿으며 법의 구원을 받고 법에 귀의하며 법에 맞고 법에 굳세어 악업을 행하지 않으므로 외도의 논사(論師)도 그녀를 파괴하지 못한다. 그녀는 항상 우바새의 종성 가운데 태어나서 부처님에 대해 지극한 신심을 내고, 그 종성에서 여자로 태어나면 그녀는 능히 차례를 따르고, 여자로 난 뒤로부터 언제나 부처님 말씀을 듣고 사문을 공양하며 항상 이치를 듣고 언제나 계속해 마음을 단련하여 계율을 받아 그대로 지킨다. 이것이 종성으로서 차례를 따르는 우바이이다.

 

저 조복행 우바이란 본래는 불·법·승 등을 믿지 않았으나 선지식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부처님 등을 믿고, 남을 가까이 하는 인연으로 남을 믿게 하며, 다른 이의 공덕을 보고 계율을 두루 갖추고 계속해서 계율을 취하면 그녀를 조복 우바이라 한다.

 

또 근주행 우바이란 어떤 여자는 항상 외도를 가까이 하여 그 외도의 법을 알고 그 위의를 본 뒤에, 부처님 제자 사문을 가까이하여 그 위의를 보고 그 법을 듣는다. 그리하여 그 행상과 음식 먹는 것, 거동, 즉 가사를 입고 고요히 오가는 것 등을 보고는 차츰 외도를 버리고 부처님 등을 믿는다. 서로 가까이 하였기 때문에 순종하고 그 계율을 받으면 그것을 근주행 우바이라 한다.

 

                                                                            [1166 / 1802] 쪽

이상 네 종류의 우바이와 네 종류의 우바새를 간단히 말하였다. 믿음과 이해가 있고 마음이 계속하며 남의 인연이 있고 차례로 가까이 하기 때문에 된다는 것을 앞에서 말한 우바새의 모든 인연이요, 우바이도 그리하여 법에 들어 간다. 우바이의 모든 인연과 같이 우바새는 그리하여 법에 들어 간다. 마음이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바새와 우바이 무리들은 그 행이 다르지 않고 일체의 선을 취하여 소견이 바르고 행이 바르다. 그들 마음에 하·중·상이 있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다 훌륭한 천상 세계에 태어나되 야마천에 태어나는 이도 있고, 그가 모은 계율과 같이 바른 행도 같지 않아 다른 천상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계율을 잘 지니고 모은 거기에 상응하여 천상에 태어나기는 하였으나 방일을 행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지 않으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이들은 모두 복업이 다하여 다시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태어난다. 그것은 복덕이 다하고 방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방일하지 않은 천인이 있으면 그는 즐거운 스님의 즐거운 곳에 가리니 그것은 그가 계율을 지켜 잘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일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방일이란 독과 같다. 그런데 일간의 우치한 범부들은 탐욕에 속아 이롭지 않은 온갖 행을 행하여 일체 생사에 얽매여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인이나 사람들은 방일을 버려야 한다.

 

천인이나 사람은 계율을 지켰기 때문에 제일 훌륭한 곳에 태어나지마는 방일의 허물 때문에 복덕이라 한다. 그는 너무 스스로 미혹되었으므로 혹은 나쁜 길에 떨어져 오랫동안 생사에 흘러 다닌다. 모수루타천왕은 이렇게 선한 마음으로 그 천자에게 불탑 안의 판자에 쓴 경전을 보이고 이렇게 말한다.'이 부처님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고 천인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신통으로 이렇게 만드신 것이다.' 천자들은 이 말을 듣고 가장 훌륭한 마음으로 생사를 싫어하여 방일한 행을 독처럼 버렸다. 이것은 우바새 및 우바이 등의 권속을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1167 / 1802] 쪽

정법념처경 제 45 권

원위 바라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6. 관천품

3) 야마천 ⑩

"어떤 것이 비구·비구니 등 두 종류의 권속으로서, 거기에는 각기 몇 종류가 있으며 어떤 공덕이 있고 어떤 행이 있는가? 어떻게 계율을 지키며, 계율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부처님의 제자 사문은 비구·비구니로서 열반을 구해 수행하되 밤이나 낮이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악마의 권속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비구니는 지혜롭고 바르게 행하며 법대로 행하여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열반의 성을 향하여 진리를 구하기 때문에 계율을 지켜 어기지 않는데, 그렇게 하면 열반의 성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어떤 행을 닦아 공덕과 상응하는가? 일체 여자는 애욕을 사랑하고 애욕을 가까이 하는데 그것은 두 가지 쾌락이요, 그녀들에게는 일체의 선이다. 그녀들은 처음에 남자의 몸과 자기 몸을 진실히 관찰한다. 남자의 몸이 자기 몸과 같거나 혹은 큰 것을 보고는 그것이 크면 형제나 부모라는 생각을 내어 그로서 마음을 닦는다. 여자들이란 애욕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남자와 가까이 하기를 항상 희망한다. 즉 낮이나 밤이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자거나 깨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늘 사모한다. 또 그가 젊었거나 늙었거나 혹은 중년이거나 다 그러하며 평지에 있거나 험한 곳에 있거나 괴롭거나 즐겁거나 병이 있거나 병이 없

 

                                                                            [1168 / 1802] 쪽

거나 단속하거나 단속하지 않거나 금하거나 금하지 않거나 양반이거나 상인이거나 곱거나 밉거나 늘 그러하다. 또 혹은 길 가에 살거나 집 안에 있거나 마을에 있거나 늘 그러하고 장엄했거나 갇혀있지 않거나 남편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어른 가까이 있거나 어른 앞에 있거나, 비천한 이 가까이 있거나 젊은이나 늙은이 가까이 있거나, 모든 여자들은 언제고 어디서고 애욕이 그 마음을 결박하여 늘 마음 속에 있다. 마치 불이 뜨겁고 땅이 단단하며 바람이 움직이고 물이 적시는 등, 그 네 가지 경계 가운데 있는 자기 성질은 뒤바뀌지 않고 언제나 떠나지 않는 것처럼, 여자의 애욕도 그와 같아서 항상 따라 다니면서 결박(結縛)하여 잠깐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여자에게는 또 두 가지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시기와 미워하는 것[척妬嫉]이다. 이 두 가지 번뇌에 또 다른 번뇌가 같이 생겨 떠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아첨과 거짓[諛諂]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속임[欺誑]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교만함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몸이 노쇠해지는 괴로운 곳에서 부자 남자를 가까이하여 애욕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조급하고 들떠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친구·아는 이·형제·권속을 모함하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큰 모임 가운데서 위의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두 말하는 것[兩舌]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 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사사로이 말하는 것[私語]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 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음식을 탐하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 다니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해서는 안 될 음욕을 행하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믿기 어려운 것[叵信]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남의 부인이 위의를 파괴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싸우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1169 / 1802] 쪽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남을 욕하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번뇌가 있으니, 이른바 어지러이 파괴하는 것으로서 마을의 울타리나 한 촌락을 어지러이 파괴시키는 것이다. 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 여자를 가까이 한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여자는 똥과 같고 독과 같으며 또 날카로운 칼과 같고, 험한 벼랑이나 큰 불에 타는 광야에 떨어지는 것 같으며 모진 독사 따위와 같다. 여자들의 마음은 다 이와 같다.

 

이런 마음을 가진 여자도 삼보를 뵈옵고는 찬탄하고 기리면서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그 마음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 또 희귀한 법이 있어 그렇게 완고하고 더러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거기는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스스로 마음을 내거나 혹은 남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믿음으로 비구니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낸다는 것은 마음을 잘 단련하는 것이요, 남의 가르침이란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그 선지식의 설법대로 행하면 본래부터 그 마음을 의지해 있어 온갖 허물과 어둠의 무더기를 다 흩어 없어지게 한다. 그렇게 처음으로 집을 떠나 비구니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는 선지식을 가까이 한다. 왜냐 하면 그 선지식의 설법은 온갖 번뇌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즉 선지식은 설법할 줄 알기 때문에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잘 머무르게 하고, 고뇌의 결박을 풀어 해탈하게 하여 안온하고 즐겁게 머무르게 한다. 선지식은 그를 위안하고 인도하여 본래부터 있던 어둠을 다 없애고 훌륭한 도를 가르쳐 본래부터 있던 나쁜 욕심 따위의 가시를 빼어 주며 애욕의 나쁜 곳에서 구원하여 태어나지도 죽지도 늙지도 않는 안온한 곳을 가르친다. 그가 그런 번뇌를 다스리는 법을 나는 지금 차례로 말하여 따라다니는 번뇌를 그와 같이 다스려 그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하리라. 그리고 여자는 그 질투가 남자보다 많으므로 이것 저것을 역순(逆順)으로 다스려 생사를 떠나게 하리라.

 

여자는 애욕이 많기 때문에 그것은 부정관(不淨觀)으로 다스린다. 즉 이 몸을 있는 그대로 보면 그것은 병의 창고요, 악의 덩어리이며 일체 더러운

 

                                                                            [1170 / 1802] 쪽

똥 오줌 등이 담긴 곳이다. 그는 이 몸에 대해서 자기 몸이나 남의 몸을 그 실상 그대로 관찰하여 그 본체를 본다. 이 몸은 본래 어디서 나왔는가? 그는 더러운 정혈(精血)이 어울리고 모여 즙(汁)과 같음을 본다. 즉 두 사람의 나쁜 물이 한데 합해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몸이란 더러운 종자에서 생긴 것이다.

 

또 그 여자는 이렇게 몸을 관찰한다. 이 몸이 더러운 종자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 몸에는 조금도 깨끗한 것이 없다. 또 그 비구니는 아홉 가지 나쁜 종기의 더러운 물건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자세히 관찰할 때 여자의 몸처럼 남의 몸도 그와 같아서, 그들 몸에서 아홉 가지 피고름이 흘러나온다.

 

또 여자 몸에는 세 가지 큰 허물이 있으니, 이른바 여자는 요문(尿門)이 넓고 두 유방에서 젖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또 남자나 여자나 꼭 같이 피고름이 흘러나온다. 즉 두 콧구멍에서 콧물이 나오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두 귓구멍에서 귀지나 피나 혹은 고름이 나오고 입에서 냄새가 나는데, 음식을 먹기 때문에 나고 침이 나오며 밑으로는 대소변·피 따위의 더러운 것이 나온다. 이와 같이 이 몸의 온갖 더러운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몸뚱이 속에서는 티끌만큼도 깨끗한 것이 흘러나오는 것이 없다. 일체는 다 더러운 물건이다.' 이 몸 속에는 어떤 물건이 머물며 어떤 것이 의지해 있는가? 혹 어떤 깨끗한 물건이 이 몸에 가까이 오더라도 몸은 여전히 더럽기 때문에 그 깨끗한 것도 더러워진다. 어떤 청정한 물건이라도 이 몸에 와 부딪치면 곧 더러워진다. 이른바 본래 청정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즉 가장 청정한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이 몸 안에 들어가면 곧 대변이 된다. 그와 같이 청정한 음료수를 마셔도 그것이 몸 안에 들어가면 곧 소변이 된다. 그 밖에 어떤 물건도 이 몸에 부딪치면, 이 몸이 그렇기 때문에 그 깨끗한 물건도 다 더러워진다. 이른바 깨끗한 것이란, 어떤 향기로운 옷도 그것을 입고 몸에서 땀이 나면 곧 냄새가 난다. 또 꽃과 같은 본래 향기로운 것도 몸에 닿으면 시들어 냄새가 난다. 그 비구니는 다시 몸을 관찰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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