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睡眠)을 이겨라

잠을 이겨라(일타스님)

근와(槿瓦) 2016. 1. 13. 01:29

잠을 이겨라(일타스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현대의 고승 중 제선(濟禪) 스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은사인 윤포광(尹包光)스님이 제주도에서 참선하러 왔다고 하여 ‘제선’이라는 법명을 주었습니다.

 

스님은 출가하기 전, 일본에 유학하여 대학을 다니면서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졸업 후 제주도로 돌아와서 하는 일 없이 지내자, 일본경찰들이 요시찰인물(要視察人物)로 지목하여 감시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마침 집안어른들은 적당한 색시가 있다며 결혼을 시켰고 얼마 후 잘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놈이야. 얘를 대통령감으로 키워서 이 나라를 독립시켜야지!’

 

그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옷도 최고급, 먹는 것도 제일 좋은 것들로만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잘 놀던 아이가 “아야!”하더니 탁 쓰러져서 영영 깨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시체를 안고 몇날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의 우울증은 커졌고 집안은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돈 백원을 주었습니다. 
“금강산 구경이나 다녀오너라.”

 

그러나 금강산을 가기는커녕 서울에서 내기바둑을 두다가 돈 백원을 모두 잃어버리자, 노동판에서 일도 하고 구걸도 하며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럭저럭 그의 발길은 묘향산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넓은 감자밭을 일구며 토굴살이 하는 스님을 만났습니다. 토굴에서 며칠을 살다가 스님과 조금 가까워지자, 그는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죽어버린 것일까요?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는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것 알아보는 것이야 간단하지. 7일만 잠 안자고 기도하면 금방 알 수 있어.”
“정말입니까?”
“만일 그렇게 해서 기도성취 못하면 내 목을 베어라. 아니, 부처님 목도 떼어버려라.”
“좋습니다.”

 

그날부터 기도는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런데 평소 때는 그토록 잠이 없던 사람이 기도를 시작하자 잠이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의 감독도 지독하였습니다. 조금만 졸면 언제 나타났는지 주장자로 탁 때리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때려 치워라. 벌써 졸았으니 소용없어. 기도성취 보려거든 다시 시작해.”

 

며칠 동안 졸고 혼나고 졸고 혼나기를 거듭한 그는 ‘먼저 잠 안자는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깡통을 두드리며 감자밭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렇지만 졸음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밭두렁에서 떨어져 거꾸로 쳐박혔는데, 거꾸로 쳐박힌 채 잠에 골아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깨고나면 목이 퉁퉁 부어 있고…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잠과 싸운지 42일째 되는 날, 물건들이 커보이기도 하고 작아보이기도 하는 등 시야는 흐렸지만 잠은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기도를 시작해라.”

 

그는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불렀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죽은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속았구나. 부처도 관세음보살도 원래 없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불상의 목을 떼겠다며 불단 앞으로 가다가 탁자에 소매가 걸려앞으로 넘어졌습니다.
바로 그 찰나, 아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 안으려하자, 아들은 ‘히-‘웃으며 저만치 물러났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겨우 다가가면 또 도망가버리고 도망가버리고… 마침내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저런 놈은 아예 죽여버려야 한다. 저놈을 어떻게 잡아 죽일까? 돌멩이로 머리를 박살낸 다음 밟아 죽일까?’

 

이렇게 못된 생각까지 하다가 아이의 엉덩이를 발로 차자, 아이는 ‘아야!’소리를 지르며 뒤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더니 개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의 뇌리로 일본에서의 유학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머물렀던 친척 아저씨 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개는 그를 너무나 따랐고 말귀도 밝았습니다. 산책을 갈 때도 극장구경을 갈 때도 열심히 쫓아왔습니다.
“너는 극장에 못들어간다. 집에 가 있다가 나중에 오너라.”

 

그러면 개는 집으로 갔다가 그가 극장에서 나올 시간에 맞추어 다시 와서 좋다고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영리하던 개가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통 먹지를 않았습니다. 얼마 더지나자 뼈만 앙상하게 남아 곧 죽을 것처럼 되었습니다. 친척 아저씨는 보다 못해 개를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개가 죽으면 재수없다. 상자에 실어서 교외로 가지고 나가 버려라.”

 

할 수 없이 개를 담은 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교외로 나간 그는, 숲속에 상자를 내려놓고 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버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구나. 네가 죽을 병이 들어 밥도 먹지 않으니…여기 있다가 편안하게 죽어라.”

 

순간, 개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지만 일어서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개가 ‘왕’소리를 지르며 쫓아왔습니다. 비실비실 쫓아오다가 쓰러지고, 쫓아오다가 쓰러지고… 어느덧 날도 저물어 교외의 어떤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였는데, 거기까지 쫓아온 개는 그의 곁에 바짝 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버리고는 못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짝 마른 개를 측은하게 여긴 그 집 주인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먹지 않던 개가 그릇까지 싹싹 핧아 먹고는 기운을 차렸습니다. 이튿날 아침에도 된장국 한 그릇을 말끔히 먹고는 병이 나은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자 헐떡거리며 열심히 따라왔습니다. 천천히 달리면 천천히, 빨리 달리면 빨리 쫓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개가 포플러 나무에 오줌을 누는 틈을 타서 자전거를 힘껏 몰았습니다. 최대 속력을 낸 결과, 그는 개를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달 후에 개가 집으로 왔습니다. 학교가 파하고 돌아와보니 개가 와 있었던 것입니다. 개는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고, 만지는 것도 옆에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주일 정도 집에 있다가 개는 다시 사라져버렸습니다.

 

“아하, 그 개가 나의 아들로 태어나서 제 찢어진 마음의 앙갚음을 나에게 하였구나!”
그는 인과의 법칙을 깨닫고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 뒤 제선스님은 참선수행하여 높은 경지를 이루었고, 나이 육십이 조금 못되었을 때 천축산 무문관(無門關)으로 들어가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6년 동안 정진하였습니다. 그런데 6년을 며칠 앞두고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한 거사가 스님의 수행을 자랑한답시고 TV 인터뷰를 강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도 자취를 감추고 계신 제선스님은 사람의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고요한 학처럼 살아가고 계실 것입니다. 수행하는 이라면 잠에 져서는 안됩니다. 잠을 이기고, 잠을 조절하여 ‘나’를 살려야 합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가 될 것입니다.

 

 

출전 :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일타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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