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睡眠)을 이겨라

잠을 이겨라(일타스님)

근와(槿瓦) 2016. 1. 10. 01:13

잠을 이겨라(일타스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삼경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말라-

 

끝없는 세월 속에서 도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는 수마(睡魔)보다 더한 것이 없다. 열두 시각 어느 때나 또렷또렷하게 의심을 일으켜서 어둡지 않도록 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디에서나 항상 끊임없이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살펴보라.

 

한평생을 헛되이 보낼 것 같으면 만겁이 지나도록 한이 될 것이다. 무상(無常)이 찰나 속에 있으니 날마다 놀랍고 두려운 일뿐이요, 사람의 목숨은 잠깐 사이인지라 한때라도 보장되어 있지 않느니라. 만일 조사관(祖師關)을 뚫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편안히 잠만 잘 수 있겠는가?

 

노래하노라

 

잠자는 뱀처럼 구름이 마음 달을 가렸으니

도 닦는 이 여기 와서 길을 잃고 헤매네.

바로 그때 취모리검 힘껏 잡아 일으키면

구름은 저절로 사라지고 달은 스스로 밝으리

 

-수행 최대의 적은 수면-

 

야운스님은 자경십문의 다섯 번째로 수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오욕 중에 하나인 수면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며칠 먹지 않는 고통은 견딜 수 있어도 며칠 잠자지 못하는 고통은 참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고문 중에 가장 큰 고문은 잠을 못자게 하는 것’이라고까지 하는 것입니다.

 

6·25사변 때의 일입니다. 기차를 타고 피난길에 올랐던 사람들 중에는 죽은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워낙 피난민이 많아 객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기차 지붕 위에 올라타고 가다가 졸음 때문에 떨어져서 죽은 것입니다.

 

나도 피난길에 기차를 탔었습니다. 그러나 겨우 자리를 차지한 것은 기차 승강구의 끝이었습니다. 바랑을 짊어지고 양쪽 손잡이를 꽉 잡고 서서 아래를 쳐다보면 땅이 휙휙 지나가는 것만 보였습니다.

‘떨어지면 영락없이 죽겠구나. 손잡이를 꼭 잡고 있어야지....’

그런데 피난길의 계속된 긴장과 피로 때문인지 밀려드는 잠을 참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습니다. 깜박깜박 잠 속으로 빠져들다가 놀라 정신을 차려보면 손이 느슨해져 있고,‘다시는 졸지 말아야지’하면서도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고.....이렇게 몇 차례나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잠을 참기란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야운스님은 “삼경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말라(除三更外 不許睡眠)”고 하였습니다.

 

삼경(三更)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입니다. 옛날 동양에서는 하루를 12시각으로 나누었습니다.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부터 시작하여 축시(丑時, 새벽 1시~3시)·인시(寅時, 새벽 3시~5시)·묘시(卯時, 오전 5시~7시)·진시(辰時, 오전 7시~9시)·사시(巳時, 오전 9시~11시)·오시(午時, 오전 11시~1시)·미시(未時, 오후 1시~3시)·신시(辛時, 오후 3시~5시)·유시(酉時, 오후 5시~7시)·술시(戌時, 밤 7시~9시)·해시(亥時, 밤 9시~11시), 이렇게 12시각으로 나눈 것입니다.

 

이 12시각 중 밤을 다섯 시각으로 삼고 오경(五更)이라 하였습니다. 밤 7시부터 9시까지인 술시를 초경(初更), 밤 9시부터 11시까지인 해시를 이경(二更),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인 자시를 삼경(三更), 새벽 1시부터 3시까지인 축시를 사경(四更), 새벽 3시부터 5시까지인 인시를 오경(五更)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각 시각의 중간, 곧 밤 8시·10시·12시·2시·4시에 종을 울렸습니다. 초경에는 한번, 이경에는 두 번, 삼경에는 세 번... 이렇게 종을 울려 사람들에게 시각을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운스님이‘삼경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삼경, 곧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만 자고 다른 시간에는 자지 말라고 한 것인지, 삼경, 곧 1경이 2시간이므로 6시간 동안만 잠을 자고 그 외에는 자지 말라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하고 있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의 제3경에만 잠을 자라”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을 모은 <유교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비구들이여, 낮에는 부지런히 선한 법을 닦아 익히고, 초저녁과 새벽에도 또한 그렇게 할 것이요, 밤중에는 경을 읽은 다음에 비로소 쉴지니라.

 

잠자는 인연 때문에 일생을 아무 소득없이 헛되이 보내어서는 안되느니라. 항상 무상(無常)의 불길이 모든 세상을 불사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빨리 자기를 구제해야 할 것이니, 부디 잠만 자지 말라. 모든 번뇌의 도둑이 항상 사람을 죽이려고 엿보는 것이 원수보다 더하거늘 어떻게 잠자기만을 일삼아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을까보냐? 번뇌의 독사가 너희의 마음에서 잠자고 있는 것은 마치 검은 구렁이가 너희의 방에서 잠자고 있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계의 갈퀴로서 빨리 물리쳐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구렁이가 나간 뒤에라야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니, 구렁이를 그냥 두고서 잠을 잔다면 그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라.”

 

이 글을 읽고 나는 생각했습니다.‘부처님께서는 초저녁과 새벽에는 선법을 닦아 익히고 밤중에도 경을 읽은 다음 비로소 쉬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초경이나 제5경에는 마땅히 선법을 닦아야 할 것이고 한밤중에도 경을 읽는 등의 공부를 해야 하리라. 오직 잠을 잘 시간으로는 제3경 두 시간 이상 허락되지 않겠구나.’

 

젊은 시절, <유교경>의 법문에 크게 감동을 느꼈던 나는 제3경 두 시간 외에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태백산 도솔암으로 들어가 홀로 정진할 때는 만 6년 동안 ‘두 시간의 수면’을 지키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하루 두 시간만 자고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선정의 힘이 길러지지 않은 초학자(初學者)라면 두 시간만 자고 정진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자경문>이 초학자를 대상으로 삼은 글이니 만큼 삼경, 곧 ‘여섯 시간 이상 자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럼 세속 사람들에게는 하루 평균 8시간을 자기를 권하는데 출가 수행자들에게는 왜 6시간 이상 자지 말라고 하는가? 수도하는 사람은 육체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요, 세상의 수많은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을 고르게 가지고 참선을 하므로 속인들처럼 정신적·육체적 독소(毒素)가 많이 쌓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6시간 이상 자면 마음이 풀어지고 게을러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독소를 풀어주는 최대의 명약(名藥)인 수면을 많이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 속의 야운스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끝없는 세월 속에서 도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는 수마(睡魔)보다 더한 것이 없다. 열두 시각 어느 때나 또렷하게 의심을 일으켜서 어둡지 않게 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어디에서나 항상 끊임없이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살펴보라.”

 

선방에서 수행하는 수좌들에게 있어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졸음입니다. 망상이 죽끓듯 하지 않으면 졸음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입니다. 특히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가행정진(加行精進)에 들어가면 잠을 이기지 못해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꾸벅꾸벅 졸다가 방바닥에 이마를‘꽝’박는가 하면, 계속해서 옆으로 넘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엉엉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졸음을 쫓아주기 위해 장군죽비로 내리치는 입승스님의 멱살을 잡고 “나는 졸지도 않았는데 왜 때리는 것이냐?”며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녕 망상과 졸음이 없다면 도를 깨닫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만 하겠습니까? 참선 수행자는 오로지 망상과 졸음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런데 외진 곳에서 오래오래 정진하면 망상은 차츰 쉬어지지만, 망상이 없어지고 나면 졸음은 더 자주 찾아옵니다.

 

번뇌가 없는 고요 속의 졸음. 이 졸음은 맛이 좋습니다. 깜박 졸은듯한데 한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이 졸음은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졸음에 맛을 붙이면 암흑의 귀신굴에 빠져들어 헤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출전 :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일타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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