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長)아함경, 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83)-830

근와(槿瓦) 2016. 1. 4. 00:31

중아함경(83)-83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21 / 10006] 쪽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오래 산다고 하여 일어나는 뽐내는 마음은 곧 저절로 없어졌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병들지 않았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름 피우며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는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젊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름 피우며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는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오래 산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름 피우며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느니라."

 

이에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앓는 법과 늙는 법 또 죽는 법 그것은 으레 있는 법인데 범부는 그것 보고 미워하도다. 만일 내가 미워만 하고 이 법을 건너가지 못하면 내게도 또한 이 법 있기에 나도 또한 옳지 못하네. 그가 만일 이렇게 행하면 법을 알아 생을 떠나련만 병이 없는 젊은 사람은 오래 산다고 뽐내는구나. 모든 뽐내는 마음 끊어 버리면 욕심이 없어 편안하게 되리라. 그가 만일 이렇게 깨달으면 욕심에 대하여 두려움 없고

 

                                                                             [822 / 10006] 쪽

생각도 또한 없게 되어 깨끗한 범행을 할 수 있으리.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용상경(龍象經) [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동원(東園)의 녹자모당[子母堂 : 사위성 기원정사(祇園精舍)의 동쪽에 위치한 2층의 큰 강당. 녹모(鹿母) 비사가(毘舍佉)가 180만금을 시주하여 목건련(目揵連)의 감독으로 지어 부처님께 공양한 정사. 동원정사(東園精舍)라고도 한다.]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해질 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당상에서 내려오셔서 말씀하셨다."오다이(烏陀夷)여, 너와 함께 동하(東河)에 가서 목욕해야겠다."존자 오타이가 말했다."예."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오다이를 데리고 동하로 가셔서, 언덕 위에서 옷을 벗고 곧 물에 들어가 목욕하셨다. 목욕을 마친 뒤에 도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으셨다. 그 때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는 염(念)이라는 이름의 용상(龍象)이 있어, 갖가지 소리를 내며 씩씩하게 동하를 건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大龍王)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존자 오다이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세존이시여, 사람들이 몸집이 큰 코끼리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

 

                                                                             [823 / 10006] 쪽

세존께서 말씀하셨다."그렇다. 오다이여, 그렇다, 오다이여. 사람들은 몸집이 큰 코끼리를 보고 이렇게 말하느니라.'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오다이여, 말 낙타 소 나귀 뱀 사람 나무로 큰 몸집을 가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느니라.'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오다이여, 만일 세간이나 하늘 마군 범(梵) 사문(沙門) 범지(梵志)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몸과 입과 뜻으로써 해치지 아니하면, 나는 그를 용이라고 말한다. 오다이여, 여래는 세간이나 하늘 마군 범 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몸과 입과 뜻으로써 해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나를 용이라고 이름하느니라."이에 존자 오다이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제게 위력을 주소서. 선서(善逝)시여, 제게 위력(威力)을 주소서.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부처님 앞에서 용에 알맞은 노래로써 세존을 찬탄하게 하소서."세존께서 말씀하셨다."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이에 존자 오다이는 부처님 앞에서 용에 알맞은 노래로써 세존을 찬탄하였다. 정각(正覺)께서는 인간 세계에 나시어 스스로 제어하여 바른 선정 얻고 깨끗한 행을 닦아 익히고 마음을 쉬어 스스로 즐거워하시네. 사람의 공경과 존중 받아일체법을 뛰어 넘었고

 

                                                                             [824 / 10006] 쪽

또한 하늘의 공경을 받나니 집착이 없는 지극히 참된 사람 일체의 번뇌[結]를 뛰어 넘어서 숲에서 숲을 버려 떠나고 욕심을 버려 무욕(無欲)을 즐기는 것 돌에서 황금이 나오는 것 같네. 널리 듣고 바로 다 깨닫기는 마치 허공에 해가 돋는 듯 일체 용 가운데서 우뚝하기는 뭇 산 위로 솟은 멧부리 같네.일컬어 큰 용이라 말하지만 남을 해치지 않으시니 일체 용 중의 용으로서 진실로 참되어 위없는 용이시라. 온화함과 해침이 없음이 두 가지는 이 용의 발이요 고행과 범행 그것은 용의 행동이라네. 큰 용은 믿음을 손으로 삼고 두 가지 공덕을 어금니로 삼으며 생각은 목이요 지혜는 머리로서 법을 깊이 생각하고 분별하시네. 모든 법을 받아 지니는 것은 배[腹]요

 

                                                                             [825 / 10006] 쪽

멀리 떠남 즐기는 것은 두 팔 숨길의 드나듦에 잘 머물고 속마음은 지극히 잘 선정에 드시네. 용은 다니거나 멈추거나 선정에 들고 앉아서도 누워서도 또한 선정에 들어 용은 모든 때에 선정에 드나니이것을 용의 상법(常法)이라 하느니라. 더러움 없는 집에서 음식을 받고 더러움이 있으면 곧 받지 않으며 나쁘고 깨끗하지 못한 음식 얻으면 그것 버림을 사자처럼 하시네. 만일 공양을 얻게 되면 남을 자애롭고 가엾게 여겨 받나니 용은 남의 보시 받아먹으나 목숨을 보존함에 집착이 없으시네. 크고 작은 번뇌를 끊어 없애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하시어 어느 곳에 가서 노닐더라도 마음에는 얽매임과 집착이 없으시네. 그것은 마치 새하얀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도 진흙 물이 거기에 붙지 못하고 묘한 향기와 사랑스런 빛깔 가진 것 같네.

 

                                                                              [826 / 10006] 쪽

이와 같이 최상의 깨달은 사람 세상에 나서 세상에서 살아도 욕심 때문에 물들지 않으시니 꽃이 물에 물들지 않듯이. 마치 치성하게 타오르던 불길도 섶을 대지 않으면 곧 꺼지듯이 섶 없으면 불은 잇닿지 못해 이 불은 이 때문에 꺼지느니라. 지혜로운 분께선 이 비유를 말해 그 뜻을 알리고자 하시니 이것이 용께서 아시는 바요 용 중의 용께서 말씀하시는 바라. 음욕과 성냄을 멀리 여의고 어리석음을 끊어 무루(無漏) 얻은 뒤 용께선 그 몸을 버려 떠나나니 이것을 이 용의 멸함이라 한다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오다이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설처경(說處經) 제 3 [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827 / 10006] 쪽

"여기 4도 아니고 5도 아닌, 3설처[說處 : 설처(說處 : kathavatthu)는 말[言]의 소의(所依)라는 뜻이다.]가 있다. 만일 비구가 그것을 본[見] 뒤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말하고 싶다면 '나는 보았다'고 말하라. 듣고[聞] 인식한 것[識]도 마찬가지며, 알고[知]나서 비구는 말할 때 '이것이 내가 아는 것이다'고 말하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비구여, 과거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이러한 과거 세상이 있었다'고 말하라. 비구여, 미래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이러한 미래 세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라. 현재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이러한 현재 세상이 있다'고 말하라. 이것을 4도 아니고 5도 아닌 3설처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그것을 본[見] 뒤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말하고 싶다면 '나는 보았다'고 말하라. 듣고[聞] 인식한 것[識]도 마찬가지며,알고[知]나서 비구는 말할 때 '이것이 내가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라. 그 말로 인해 다른 이들이 그 뜻을 잘 배워 얻을 것이며, 말하지 않으면 그 뜻을 잘 배워 익히지 못하게 되리라. 현성의 제자들은 두 귀와 한마음으로 법을 듣는데, 그는 두 귀와 한마음으로 법을 들은 뒤에는 1법을 끊고 1법을 닦아 1법을 증득한다. 그는 1법을 끊고 1법을 닦아 1법을 증득한 뒤에는, 곧 바른 선정을 얻느니라. 현성의 제자는 마음에 바른 선정을 얻은 뒤에는 곧 일체의 음욕[淫]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끊는다. 현성의 제자는 이렇게 하여 심해탈(心解脫)을 얻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그 말로 인해 4처(處)가 있으니, 그것으로써 사람을 관찰하여 이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는가, 함께 말할 수 없는가를 살펴보라. 만일 그 사람이 일향론(一向論)에 일향으로 대답하지 않고, 분별론(分別論)에 분별로 대답하지 않으며, 힐론(詰論)에 힐(詰)로 대답하지 않고, 지론(止論)에 지(止)로 대답하지 아니하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없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없다. 만일 그 사람이 일향론에 일향으로 대답하고, 분별론에 분별로 대답하

 

                                                                             [828 / 10006] 쪽

며, 힐론에 힐로 대답하고, 지론에 지로 대답하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있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있느니라. 또 그 말로 인해 다시 4처가 있으니, 그것으로써 사람을 관찰하여 이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는가, 함께 말할 수 없는가를 살펴보라. 만일 그 사람이 처(處) 비처(非處)에도 머물지 않고 소지(所知)에도 머물지 않으며, 설유(說喩)에도 머물지 않고, 도적(道跡)에도 머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없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없다. 만일 그 사람이 처 비처에도 머물고, 소지(所知)에도 머물며, 설유에도 머물고, 도적에도 머물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있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있느니라. 그 말하는 때로 인해 입의 행[口行]을 쉬고, 자기의 소견을 버리고 원결(怨結)의 뜻을 버리며, 욕심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며, 어리석음을 버리고 거만을 버리며, 말하지 않음을 버리고 아낌과 질투함을 버리며, 이기기를 구하지 말고 남을 항복받으려 하지 말며, 남의 과실을 트집잡지 말고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라.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한 뒤에는 가르치고, 가르친 뒤에는 그쳐, 스스로 기뻐하고 그를 기뻐하게 한다. 이렇게 이치를 말하고 이렇게 일을 말하나니, 이것이 거룩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요, 이것이 거룩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서, 마지막에는 누가(漏) 다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느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다투는 논란이 있고 잡된 생각으로 뽐내는 마음 품고 성인을 비방하고 덕을 헐뜯고 제각기 서로 틈만 엿보며 다만 남의 허물만 찾고 뜻은 남을 항복받으려 하며 다시 서로 이기기를 구하는 것 성인은 이렇게 말하지 않느니라.

 

                                                                             [829 / 10006] 쪽

만일 서로 논의코자 하거든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때를 아나니 법도 있고 또한 이치도 있어 모든 성인의 말씀은 이러 하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다툼도 없고 뽐냄도 없으며 마음에는 싫증을 내는 일 없고 맺음도 없고 또한 누(漏)도 없나니 이치를 따라 뒤바뀌지 않고 바르게 알아 말하며 잘 말하고 그렇게 옳게 여겨 끝내 악을 말하지 않느니라. 다툼으로써 논란하지 않고 또한 남의 다툼을 받지도 않으며 다만 아는 것과 말해야 할 것 이것이 그가 논하는 바이니라. 거룩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그 뜻을 얻어 현재에서도 즐거움 얻고 또한 후세에서도 편안하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총명하고 통달한 사람은 뒤바뀜도 아니고 항상한 것도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830 / 10006] 쪽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설무상경(說無常經) 제4 [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색(色)은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神)이 아니니라. 각(覺)도 또한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니라. 상(想)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니라. 행(行)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신이 아니니라. 식(識)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니라. 이것을 색은 무상이요, 각 상 행 식도 무상이며,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라. 많이 아는[多聞]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하고 7도품(道品)을 닦아 익혀 걸림이 없어 바른 생각[正思]과 바른 기억[正念]이 있느니라.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루(欲漏)에서 심해탈(心解脫)하고, 유루(有漏) 무명루(無明漏)에서 심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해탈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後有]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만일 중생이 아홉 가지 중생 세계에서 곧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의 행(行)을 하여 제일유(第一有)에 이르게 되면, 그 중간에서 그는 제일이요, 그는 크며, 그는 훌륭하고, 그는 최상이며, 그는 제일 높고, 그는 묘하며, 곧 세간의 아라하(阿羅訶 : 아라한)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 세간에서 아라하는 안온과 쾌락을 증득했기 때문이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장(長)아함경, 중아함경(中阿含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아함경(85)-850   (0) 2016.01.06
중아함경(84)-840   (0) 2016.01.05
중아함경(82)-820   (0) 2016.01.03
중아함경(81)-810   (0) 2016.01.02
중아함경(80)-800   (0) 20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