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수능엄경

근와(槿瓦) 2013. 5. 9. 15:47

수 능 엄 경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 초심자에게 긴요한 일


1. 칠취(七趣)를 말함

① 칠취가 생기는 까닭

이렇게 말씀하여 마치시니, 아난다와 및 모든 대중들이 여래께서 열어보이신 반달라(般怛羅)의 뜻을 얻었으며, 아울러 이 경의 요의(了義)인 이름을 듣고, 선나(禪邪)로 닦아 나아가는 성위(聖位)의 더 높은 묘리를 깨달아서 마음이 비어있는 상태로 엉기었다. 이리하여 삼계에서 닦는 마음의 육품의 미세한 번뇌를 끊어버렸다.


그들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 발에 절하고 합장 공경하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대위덕 세존이시여, 자비하신 말씀에 가림이 없으셔서 중생의 미세하게 잠긴 의혹을 잘 열어주시오매, 오늘 저희들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상쾌한 큰 이익을 얻게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묘명(妙明)하고 진정(眞淨)한 묘한 마음이 본래 원만히 두루하였고, 이와 같은 대지 · 초목 · 꿈틀거리는 생명을 지닌 것들 까지도 근본이 원래 진여(眞如)라면 곧 이것이 여래의 성불하신 진체(眞體)인지라 부처님의 본체임이 진실하옵거늘, 어찌하여 다시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하늘 등의 갈래가 있게 되었나이까.

세존이시여, 이러한 것이 본래부터 스스로 있는 것이옵니까? 중생들의 망녕된 습기(習氣)로 있는 것이옵니까.

세존이시여, 보련향비구니는 보살계를 지니다가 음욕을 제가 행하고는 망녕된 말을 하기를 음행은 살생도 아니요 도둑질도 아니어서 업보가 없다고 하였나이다. 이 말을 하고 나서 먼저 여근(女根)에서 맹렬한 불이 일어났고 다음은 몸의 각 마디마디에서도 불이 타면서 무간 지옥으로 떨어졌나이다. 유리왕과 선성비구로 말하여도 유리왕은 구담족을 모두 죽였고, 선성비구는 일체 법이 공하다고 망녕된 말을 하다가 생신(生身)으로 아비지옥에 빠져 들어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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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지옥이 일정한 곳이 있나이까. 또 제각기 업을 발한대로 각각 제가 받는 것이옵니까. 원컨대 큰 자비를 드리우사 어리고 모르는 것을 깨우쳐 주옵서소. 그리하여 모든 계율을 지키는 중생들로 하여금 분명한 이치를 듣고 기쁘게 받들도록 조심하여 범함이 없도록 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잘 물었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사견(邪見)에 들지 않게 하는구나. 네가 이제 잘 들어라.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아난다야, 일체 중생이 실은 본래 참되고 청정하건만 저 망녕된 소견으로 인하여 망녕된 버릇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내분(內分)과 외분(外分)으로 벌어졌느니라.


아난다야, 내분(內分)이란 곧 중생의 분내(分內)니 모든 애욕으로 인하여 망정(妄情)이 발기되고 망정이 쌓여서 쉬지 않으면 능히 애수(愛水)를 내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에 진수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생기고 앞엣 사람을 생각하여 사랑하거나 원망하면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재보를 탐구하여마음으로 침을 흘리면 온몸에 윤기가 돌고, 마음에 음행을 애착하면 남 · 녀의 이근(二根)에 자연히 액(液)이 흐르느니라.


아난다야, 모든 애욕이 비록 다르나 <물>이 흘러 맺힘은 마찬가지니라. 물기는 올라가지 못하나니 자연히 떨어지게 되느니라. 이것이 내분이니라.

아난다야, 외분이라 함은 곧 중생의 분외(分外)이니 모든 갈앙(渴仰)으로 인하여 허상(虛想)이 생기고 그 허상이 쌓여서 쉬지않으면 능히 수승한 기운을 내느니라. 이러므로 중생들이 마음에 금계(禁戒)를 지키면 몸이 가볍고 맑으며, 마음에 주인(呪印)을 지니면 눈매가 늠름하고, 천상에 나기를 원하면 꿈에 날아다니며, 마음을 불국(佛國)에 두면 성스러운 경계가 나타나고, 선지식을 섬기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볍게 여기느니라.

아난다야, 모든 허상이 비록 다르나, 가볍게 들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날아서 움직이는 것은 침몰(沈沒)하지 않으며, 자연히 초월하나니 이것을 외분이라 하느니라.


아난다야, 일체 세간의 나고 죽는 것이 서로 계속하되 나는 것은 순습(順習)을 따르고 죽는 것은 변류(變流)를 따르는데, 목숨을 마칠 때 난촉(煖觸)을 버리기 전에 일생동안의 선과 악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죽음을 거스리고 삶은 순하는 두 습기가 서로 어울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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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생각은 날아서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게 되거니와, 만약 나는 마음에 복을 겸하고 혜를 겸하고, 청정한 원까지 겸하였다면 자연히 마음이 열리어서 十方의 부처님을 뵙고 일체 정토에 원을 따라서 왕생하게 되느니라.


정이 적고 생각이 많으면 날아 오르는 것이 멀지 못하여 날아다니는 선인(仙人)이나, 큰 힘을 가진 귀왕(鬼王)이나 날아 다니는 야차나 땅에 다니는 라찰이 되어 사천(四天)으로 다니되 장애가 없느니라. 그 가운데 만약 착한 원과 착한 마음이 있어서 나의 법을 보호하고 혹 금계(禁戒)를 보호하여 계를 지키는 사람을 따르거나 혹 신주(神呪)를 보호하여 주문을 지송하는 자를 따르거나 혹 선정(禪定)을 보호하여 법인(法忍)을 편안히 지키면 이런 이는 여래의 자리 아래에 머무느니라.


감정과 생각이 균등하면 날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는데, 생각은 밝아서 총명하게 되고 감정은 어두워서 둔하게 되느니라. 감정이 많고 생각이 적으면 축생의 세계에 흘러들어서 중한 것은 털이 있는 것들이 되고 경한 것은 날개가 있는 족속이 되느니라.


감정이 칠할(七割)이고 생각이 삼할인 것은 수륜(水輪)에서 가라 앉아 내려가서 화륜(火輪)의 짬에 태어나는데, 맹렬한 화기를 받으므로 아귀의 몸이 되어서 항상 몸에 불이 타오르며, 물도 몸을 해하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백천겁을 지내야 하느니라.


감정이 구할이고 생각이 일할인 것은 밑으로 화륜을 뚫고 내려가서 몸이 바람과 불이 맞닿는데로 들어가는데, 경한 것은 유간(有間)지옥에 태어나고 중한 것은 무간(無間)지옥에 태어나느니라.


순전히 욕정뿐인 것은 아비지옥에 빠지는데, 만약 그 탐닉(眈溺)하는 마음에 대승(大乘)을 비방하고 부처님의 금계를 훼범(毁犯)하며, 망녕된 거짓법을 설하고 자격없이 신도의 보시를 받으며, 외람하게 공경을 받거나 오역죄 십중죄를 지었다면 다시 十방의 아비지옥에 나느니라.


지은대로 악업은 <그 죄보를>스스로 부르는 것이지만 여럿의 같은 분수 가운데는 같이 받는 일정한 곳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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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옥


아난다야, 이런것들이 모두 저 중생들 스스로가 지은 업으로 감득(感得)하는 것인데, 열가지 익힌 버릇이 인(因)을 지어서 여섯가지의 교보(交報)를 받느니라.


무엇이 십인(十因)인가, 아난다야, 一은 음란한 버릇으로 교접하여 서로 비비기를 쉬지 않으면 그 가운데서 맹렬한 불이 일어나는데, 마치 손을 마주대고 비비면 뜨거움이 나타나는 것과 같으리라. 두 버릇이 서로 타오르기 때문에 무쇠평상과 구리기둥 따위가 있나니, 이러므로 十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음행을 지목하여 욕화(欲火)라고 하셨고 보살은 음욕을 보기를 불구덩이처럼 피하느니라.


二는 탐착하는 버릇으로 고집하는 것이 서로 빨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데, 빨아들이는 것이 그치지 않으므로 거기에 추위가 쌓이고 얼음이 굳으며, 그 속에서 꽁꽁 얼게 되는 것이다. 그건 마치 사람이 입으로 바람을 들이마시면 찬 접촉이 생기는 것과 같으리라.


두 버릇이 서로 침노하므로 덜덜 떨며 신음하는 청 · 정 · 백의 얼음지옥 따위가 있느니라. 그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탐욕하는 것을 이름하여 탐수(貪水)라 하고 보살은 탐욕을 보되 장해(瘴海)를 피하듯 하느니라.


三은 교만한 버릇으로 서로 능멸함이 서로 자세하는 데서 비롯하는데, 거슬려서 흐르기를 쉬지 않을새 이러므로 솟구치고 달리는 파도가 있느니라. 물결을 쌓아서 물이 되나니, 마치 사람이 혀를 스스로 맛보면 침이 생기는 것과 같으리라.


두 버릇이 서로 닥치기 때문에 혈하(血河), 회하(灰河), 열사(熱沙), 독해(毒海), 융동관탄(融銅灌呑) 따위가 있느니라. 이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아만을 가리켜서 어리석음이라는 물을 마시는 것이라고 하고, 보살이 아만을 보되 큰 수렁을 피하듯 하느니라.


四는 성내는 버릇으로 서로 충돌함이 서로 거스르는 데서 시작되나니 거슬림이 쉬지 않으면 마음의 열이 불을 발하고 기운을 녹여 쇠가 되므로 칼산 · 쇠곤장 · 칼나무 · 칼바퀴 · 도끼 · 작두 · 창 · 톱 따위가 있는데 마치 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살기가 뻗치는 것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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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버릇이 서로 치기 때문에 거세(去勢)하고, 다리를 끊고, 허리를 찍고, 목을 베고, 송장을 부수고, 찌르고, 치고 하는 따위의 일이 있나니. 이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성냄을 가리켜서 날카로운 칼이라 하고 보살은 성냄을 보되 죽이는 것을 피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五는 속이는 버릇으로 서로 꾀어서 끌어감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끌어감을 멈추지 않으므로 포승과 고랑으로 묶고 주리틀고 하는 일 등이 있나니 마치 물을 밭에 대면 초목이 생장하는 것과 같으리라.


두 버릇이 서로 끌기 때문에 고랑과 수갑과 항쇄, 족쇄와 채찍과 곤장 따위가 있느니라. 그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간사하고 거짓된 것을 지목하여 참소하는 도적이라 하고 보살은 거짓을 보되 늑대와 이리를 무서워하듯 하느니라.


六은 거짓된 버릇으로 서로 속이는 것이 서로 거짓말하는 데서 시작되는데, 거짓으로 속이는 것을 그치지 않고 날리는 마음으로 꾀를 내기 때문에 티끌과 먼지와 똥 · 오줌 따위 더러움이 있어서, 마치 티끌이 바람을 따르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리라.


두 버릇이 서로 더하기 때문에 빠져서 가라앉는 것과 차 올리는 것과, 날렸다 떨어지는 것과, 떳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 따위가 있나니, 이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거짓으로 속이는 것을 지목하여 겁살(劫殺)이라 하고, 보살은 속임을 보되 뱀을 밟는 것처럼 여기느니라.


七은 원망하는 버릇으로 서로 미워함이 원한을 품는데서 시작되는데, 돌을 날리고, 바위를 굴리고, 뒤주에 가두고 함거에 싣고, 독속에 넣고 부대에 넣어서 메치고 하는 것이 있나니, 마치 음험하고 독기 있는 사람이 가슴 속에 악을 쌓는 것과 같으니라.


두 버릇이 서로 삼키므로 던지고 차고 사로잡고, 치고, 쏘고 내버리고, 움켜쥐고 하는 따위의 일이 있느니라. 이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원수를 지목하여 위해귀(違害鬼)라고 하며 보살은 원한을 보되 짐주(鴆酒)를 마시는 것처럼 여기느니라.


八은 나쁜 소견으로 서로 변명하는 신견(身見), 견취(見取), 계금취(戒禁取), 사오(邪悟)의 모든 업이 어기고 거부하는 데서 시작되어 서로 반대됨을 낳는데 이러므로 왕사(王使)와 주리(主吏)와 증인과 집행자가 증거를 대고 문서를 작성하고 하는 일이 있나니, 마치 길을 가는 사람들이 가고 오고 하면서 서로 만나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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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버릇이 서로 어울리므로 심문하고 넘겨짚고, 고문하고, 조사하고, 수색하고, 들춰내고, 증거대고, 선동자 · 악동자가 조서를 들고 사실을 가리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나니, 그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나쁜 소견을 지목하여 사견(邪見)의 구덩이라 하고, 보살은 모든 허망하고 편벽된 집착을 보되 독의 구렁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여기느니라.


九는 모함하는 버릇으로 서로 덮어씌우는 것이 거짓과 비방에서 시작되는데, 그러므로 산이 합치고, 바위가 합치며, 연자와 맷돌로 부수고 갈고 하는 일이 있나니, 예를 들면 남을 모함하는 놈이 선량한 사람을 괴롭힘과 같은 것이니라.

두 버릇이 서로 배척하기 때문에 누르고, 비틀고, 때리고, 뭉개고, 차고, 쥐어짜고 좁은 구멍으로 뽑아내고 하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원망과 비방을 지목하여 모함하는 범이라고 하고, 보살은 모함하는 것을 보되 벼락을 만나는 것처럼 여기느니라.


十은 들추어내는 버릇으로 서로 드러내는 것이 감추고 덮는데서 시작되는데, 그래서 거울로 비추고 촛불로 밝힘이 있나니 마치 햇빛속에서 그림자를 감출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두 버릇이 서로 고발하기 때문에 나쁜 벗과 업의 거울과 불구슬로 묵은 업을 파헤쳐 드러내고 대질하는 따위의 모든 일이 있나니 이러므로 十방의 일체 여래가 덮어 감추는 것을 음흉한 도적이라 이름하고 보살은 덮는 것을 보되 높은 산을 이고 큰 바다에 들어가는 듯이 여기느니라.


어떤 것을 여섯가지 교보(交報)라고 하는가. 아난다야, 일체 중생이 육식(六識)으로 업을 지어서 받는 나쁜 과보가 육근(六根)으로부터 나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나쁜 과보가 육근으로부터 난다는 것이냐.


一은 보는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니 이 보는 업이 마주치면 임종할 때 먼저 맹렬한 불이 十방세계에 가득함을 보고, 죽은 자의 영혼이 날아 떨어져서 연기를 타고 무간지옥으로 들어가서 두가지 모양에 부딪치게 된다. 하나는 밝게 보이는 것이니 두루 보이는 것마다 갖가지 흉악한 것 뿐이어서 한령없는 무서움에 떠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둡게 보이는 것이니 깜깜하여 보이지 않으므로 역시 한량없는 공포를 겪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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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이는 불이 들음에 작용하면 능히 확탕(鑊湯)과 양동(洋銅)이 되고, 숨에 작용하면 검은 연기와 붉은 불꽃이 되며, 맛에 작용하면 볶은 철환과 쇳물죽이 되고, 접촉에 작용하면 뜨거운 재와 이글이글한 숯불이 되며, 마음에 작용하면 별똥같은 불이 쏟아져서 허공에서 타오르고 있느니라.


二는 듣는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니 이 듣는 업이 마주치면 임종할 때 먼저 파도가 천지를 뒤덮음을 보고 죽은 자의 영혼이 떨어져 내려와서 그 물결의 흐름을 타고 무간지옥으로 들어가느니라. 거기서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게 되나니 하나는 귀가 열려서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정신이 혼란하여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귀가 막혀서 적연(寂然)히 들리는 바가 없어서 넋이 빠져들어가는 것이니라.


이러한 물결이 듣는데 작용하면 꾸짖음이 되고 힐문하는 것이 되며, 보는 것에 작용하면 우뢰가 되고 맹수의 포효(咆哮)가 되고, 악독한 기운이 되며, 숨에 작용하면 비가 되고 안개가 되고 모든 독충을 뿌리는 것이 되어서 그러한 독충이 몸에 가득하게 되며, 맛에 작용하면 고름이 되고 피가 되고, 가지가지의 더러움이 되며, 접촉에 작용하면 축생이 되고, 귀신이 되고 똥과 오줌이 되며, 뜻에 작용하면 번개가 되고 우박이 되어서 혼과 넋이 부서지느니라.


三은 냄새맡는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니 이 냄새맡는 업이 마주치면 임종할 때에 먼저 독한 기운이 원근에 꽉차 있음을 보고, 죽은 자의 영혼이 땅에서 솟아나서 무간지옥으로 들어가느니라. 여기서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니 하나는 코가 열려서 모든 악독한 기운을 심하게 맡고 마음이 요란함이요, 또 하나는 코가 막혀서 냄새가 통하지 못하고 답답하여 땅에 쓰러지는 것이니라.


이러한 기운이 숨에 작용하면 막힘이 되고 통함이 되며, 보는데 작용하면 불이 되고 홰가 되며, 듣는데 작용하면 빠지는 것이 되고 넘치는 것이 되고, 끓는 것이 되며, 맛에 작용하면 썩는 것과 쉬는 것이 되며, 접촉에 작용하면 터지는 것이 되고 는적거리는 것이 되고 큰 살덩어리가 되어 백천 구멍이 생기는데, 한량없는 것들이 빨아먹게 되며 생각에 작용하면 재가 되고 독기가 되고, 모래와 자갈을 날려서 몸뚱이를 쳐부수게 되느니라.


四는 맛을 탐한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니 이 맛의 업이 마주치면 임종할 때에 먼저 철망에 맹렬한 불이 붙어서 온 세계를 뒤덮는 것이 보이면서 죽은 자의 영혼은 밑으로 떨어지다가 그 철망에 걸려서 거꾸로 매달린채 그 머리부터 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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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니 하나는 마시는 기운이 찬 어름으로 맺혀져서 몸뚱이의 살이 얼어 터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토하는 기운이 맹렬한 불꽃으로 날아서 그 골수까지도 태우느니라.


이러한 맛이 맛보는데 작용하면 승복(承服)과 인종(忍從)이 되고, 보는데 작용하면 불타는 쇠가 되고 돌이 되며, 듣는데 작용하면 예리한 무기 칼이 되고, 숨에 작용하면 큰 철룡(鐵龍)이 되어서 국토를 온통 덮어버리고, 접촉에 작용하면 활이 되고 살이 되고 쇠뇌가 되고 쏘는 것이 되며, 생각에 작용하면 뜨거운 쇠가 되어 공중에서 날아서 비오듯 쏟아지느니라.


五는 접촉의 업보가 불러오는 나쁜 결과이니, 이 접촉의 업이 마주치면 임종할 때 먼저 큰 산이 사면으로부터 마주처 와서 합해지므로 다시 나갈 길이 없게 되는 상태가 보이고, 죽은 자의 영혼은 또 큰 철성에 불뱀 ·  불개 · 호랑이 · 사자 따위가 보이는데, 소머리로 된 옥졸과 말머리로 된 라찰들이 손에 창을 들고 성문으로 몰아 넣어서 무간지옥으로 향하느니라.


여기서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압착(壓搾)하는 현상이니 산이 모여들어서 몸을 조이므로 뼈와 살과 피가 무너저 터져나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분리하는 현상이니 칼로 몸을 갈라서 염통과 간 따위를 오려내는 것이니라.


이러한 접촉의 업이 접촉하는데 작용하면 지옥의 길이 되고, 삼문이 되고, 관청이 되고 문초하는 것이 되며, 보는데 작용하면 태우고 사르는 것이 되며, 듣는데 작용하면 치고 때리고 찌르고 쏘는 것이 되며, 숨에 작용하면 비틀고, 조르고, 고문하고, 결박하는 것이 되며, 맛보는데 작용하면 혀를 가르고 베고 재갈물리는 것이 되며, 생각에 작용하면 떨어지고 날리고 지지고 볶는 것이 되느니라.


六은 생각의 업보가 불러오는 나쁜 결과이니 이 생각의 업이 마주치면 임종할 때에 먼저 사나운 바람이 불어서 국토가 무너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죽은 자의 영혼이 상공으로 날리어 올라 갔다가 땅으로 떨어져 바람을 타고 무간지옥으로 들어가서 두가지의 현상을 보게 된다.


하나는 아는 것이 없음이니 극도로 답답라여서 마구 헤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니 알면 곧 고통인지라 한량없이 지지고 볶는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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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옳지 못한 생각이 사념(思念)에 작용하면 형벌을 받는 방소가 되고 증거가 되며, 듣는데 작용하면 마주치는 바위가 되고 얼음이 되고 서리가 되고 먼지가 되고 안개가 되며, 숨에 작용하면 큰 불수레 · 불배 · 불함거가 되고, 맛보는데 작용하면 크게 울부짖고 후회하고 우는 것이 되며, 접촉에 작용하면 크고 작은 고통이 되어 하루 중에도 만번 죽고 만번 깨나고 하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것이 지옥의 열가지 원인과 여섯가지 과보인데, 이것이 모두 중생들의 미망(迷妄)으로 짓는 것이니라. 만약 모든 중생이 짓는 악업이 차면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한량없는 겁을 지내느니라.


육근으로 따로따로 지었거나 그 지은 것이 다른 경계와 다른 근도 겸한 것이면 여덟가지 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몸과 입과 뜻으로 살생 · 도둑질 · 간음을 하면 이 사람은 곧 십팔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삼업을 겸한 것이 아니고, 중간에 혹 한번의 살생이나 한번의 도둑질을 한것이면 이 사람은 삼십육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망녕된 소견으로 망녕된 경계를 보고, 한 근만으로 한 업만 범하였다면 이 사람은 일백팔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이 중생들이 따로따로 지었으나 세계 중에서 분이 같은 지옥에 들어가는데, 이건 망상이 만들어낸 것이고,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니라.



③ 아귀(餓鬼)


그리고 또 아난다야, 중생들이 계율을 비난하여 피하거나, 보살계를 범하거나 부처님 열반을 훼방하거나, 그 밖의 추잡한 업을 지으면 여러 겁동안 불타는 죄보를 받다가 그 죄보를 마치면 여러 가지 귀신의 형체를 받느니라.


만약 본래의 업인(業因)이 물건을 탐한 죄였다면 이 사람이 죄를 마치고는 물건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괴귀(怪鬼)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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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탐한 것이 죄가 된 사람은 죄를 마치고는 바람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발귀(魃鬼)라고 하느니라.


의혹을 탐하여 죄가 된 사람은 죄를 마치면 짐승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매귀(魅鬼)라고 하느니라.


원한을 탐하여 죄가 된 사람은 죄를 마치고는 벌레를 만나서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충독귀(虫毒鬼)라고 하느니라.


기억을 탐하여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마치고는 쇠운(衰運)을 만나면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여귀(癘鬼)라고 하느니라.


오만함을 탐하여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마치고는 기운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아귀라 하느니라.


거짓을 탐하여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마치고는 어둠(幽暗)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염귀(魘鬼)라고 하느니라.


밝은 것을 탐하여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마치고 정령(精靈)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망량귀(魍魎鬼)라고 하느니라.


이루는 것을 탐하여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마치고 밝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역사귀(役使鬼)라고 하느니라.


당(黨)을 탐하여 죄가 된 사람은 죄를 마치면 사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나니 이것을 전송귀(傳送鬼)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사람들은 모두 감정만으로 추락하였다가 업화(業火)로 타서 없어지고 올라와서 귀신이 된 것이니 이러한 것들이 모두 제 망상의 업이 불러온 것이다. 보리를 깨달으면 곧 묘하고 뚜렷이 밝아져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니라.


④ 축생(畜生)


그리고 또 아난다야, 귀신의 업보가 다하면 감정과 생각이 모두 공하여지고 비로소 세간에서 빚졌던 사람과 원수로 대하던 사람을 만나는데, 그때 축생의 몸이 되어서 그 과거의 빚을 갚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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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에 붙었던 괴귀(怪鬼)는 물건이 사라지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와서 태어나는데 흔히 올빼미 종류가 되느니라.


바람에 어울렸던 가뭄귀신은 바람이 사라지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와서 태어나는데 흔히 흉한 것을 상징하는 것들이 되느니라.


짐승에게 붙었던 매귀(魅鬼)가 짐승이 죽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와서 태어나는데, 흔히 여우의 종류가 되느니라.


충고의 귀신은 그 의지했던 충이 죽고 보가 다하면 세간에 태어나되 흔히 독이 있는 것들이 되느니라.


쇠운과 어울렸던 여귀(癘鬼)가 쇠운이 끝나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태어나는데 흔히 회충의 무리가 되느니라.


기운을 받았던 아귀는 기운이 사라지고 과보가 다하면서 세간에 태어나되 흔히 먹히는 것들이 되느니라.


어둠과 어울렸던 염귀(魘鬼)는 어둠이 사라지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태어나는데, 흔히 옷으로 되느니라.


정령(精靈)과 어울렸던 망량귀(魍魎鬼)는 어울렸던 것이 사라지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태어나되 흔히 철따라 옮기는 것들이 되느니라.


밝고 영험하던 역사귀신(役使鬼)은 밝음이 없어지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태어나되 흔히 좋은 징조의 무리가 되느니라.


사람에게 의지했던 귀신은 사람이 죽고 과보가 다하면 세간에 태어나되 흔히 순종(循從)하는 것들이 되느니라.


아난다야, 이것들이 모두 업의 불로 말리어서 그 묵은 빚을 갚고 축생이 되는데, 이것들도 모두 제 그 허망한 업이 끌어온 것이어서 만약 보리를 깨닫는다면 이 망녕된 연(緣)은 본디 있는 것이 아니니라.


네가 말한대로 보련향비구니나 유리왕이나 선성비구의 그러한 악업이 본래 스스로 나타낸 것이라,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요 땅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사람이 준 것도 아니어서, 제 망녕된 생각이 부른 것을 스스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보리심 가운데서는 모두 헛것이어서 망녕된 생각이 어리어 맺힌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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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인취(人趣)


또 아난다야, 이 축생들이 묵은 빚을 갚는데 있어서, 만약 그가 갚을 것보다 넘는 것을 갚았다면 이 중생은 다시 사람이 되어서 그 더 갚은 것을 도로 받게 되느니라. 그런데 이 경우 만약 그 더 받은 자가 힘이 있고 복덕이 있는 자라면 인간계에서 사람의 몸을 잃지 않고 더 받은 것을 갚게 되지만 만약 그럴만한 복이 없는 자라면 그가 도로 축생이 되어서 더 받은 만큼의 것을 갚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돈이나 물건으로 갚을 만큼 갚으면 그것으로 그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그의 목숨을 죽여서 혹 그 살을 먹는데 이렇게 해서 미진겁을 지내도록 서로 먹고 먹히고 하는 것이 마치 바퀴가 돌 듯 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그침이 없다. 이것은 사마타를 닦거나,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때를 제외하고는 그치게 할 수가 없느니라.


너는 알아라. 저 올빼미 종류는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人道)에 태어나면 완악(頑惡)한 것들에 참여하느니라.


저 흉한 것을 상징하는 것들은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어리석은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저 여우의 종류는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심술궂은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저 독기있는 것들은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용렬한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저 회충의 종류는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미천한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저 잡혀먹히는 것들은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유약한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저 옷으로 되는 것들은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노동하는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저 철을 따라 이동하는 것들은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글자를 아는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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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좋은 징조의 무리는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총명한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저 철을 따라서 옮기는 것들은 갚을 것을 갚고나서 형상을 회복하여 인도에 태어나면 통달한 무리에 참여하느니라.


아난다야, 이들은 다 묵은 빚을 갚고 사람의 형상을 회복하였으나 모두 시초를 알 수 없는 과거의 뒤바뀐 업으로 서로 살려고 하고 서로 죽이면서 여래를 만나지 못하거나 바른 법을 듣지 못하고 온갖 번뇌 속에서 법칙대로 윤회하고 있으니 이런 무리야 말로 가련한 자라고 한다.


⑥ 신선


아난다야, 또 사람으로서 정각(正覺)을 의지하여 삼마지를 닦지 않고 따로 망녕된 생각으로 닦아서 형체를 견고히 하는데 생각을 두고 인적(人跡)이 미치지 않는 산림에서 노니는 열가지의 신선이 있느니라.


아난다야, 저 모든 중생들이 먹는 것을 견고히 하되 쉬지 않아서 먹는 도가 원만하게 성취되면 지행선(地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초목을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약의 도를 원만히 성취하면 비행선(飛行仙)이라고 하느니라.


금석을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변화하는 도가 원만히 성취되면 이것을 유행선(遊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움직임과 그침을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기운과 정기가 원만히 성취되면 이것을 공행선(空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진액을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윤택한 덕이 원만히 이루면 이것을 천행선(天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정색(精色)을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순수한 기운을 마시는 것이 원만히 이뤄지면 이것을 통행선(通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주문과 금계(禁戒)를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술법을 원만히 성취하면 이것을 도행선(道行仙)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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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사억(思憶)이 원만히 성취되면 이것을 조행선(照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사귀어 만남을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감응이 원만히 성취되면 이것을 정행선(精行仙)이라고 하느니라.


변화를 견고히 하여 쉬지 않고 깨달음이 원만하게 성취되면 이것을 절행선(絶行仙)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들이 모두 사람으로서 마음을 단련하되 정각을 닦지 않고 따로 장생하는 이치를 얻어서 천세 만세를 사는데 깊은 산속이나 혹은 큰 바다섬 속 같은 인적이 이르지 못하는 데서 살지만, 이들도 역시 윤회하여서 망녕된 생각으로 흘러 도는지라 삼매를 닦지 않기 때문에 과보가 끝나면 다시 와서 모든 갈래로 들어가느니라.


⑦ 천취(天趣)


아난다야, 세간의 사람들이 항상 머물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 · 첩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하는데, 그러나 정당치 않은 간음(邪陰)에는 마음이 흘러가지 않고 고요하고 맑아져서 밝은 빛이 나는 자는 목숨을 마친 뒤에 해와 달에 이웃하게 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四천왕천이라고 하느니라.


자기의 아내에게도 음심과 애욕이 엷어졌으나 청정하게 지낼 때 온전한 맛을 얻지 못하는 자는 목숨을 마친 뒤에 해와 달이 있는 데를 지나서 인간의 꼭대기에 있게 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도리천(忉利天)이라 하느니라.


음욕의 경계를 만나면 잠간 어울리지만 떠나면 생각이 없어져서 인간의 세상에서 동요됨이 적고 안정함이 많은 자는 목숨을 마친 뒤에 허공 가운데 밝게 머물러 있어서 해와 달의 광명이 올려비추지 못하므로 이 사람들은 자기의 광명이 있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수염마천(須燄摩天)이라고 하느니라.


언제든지 고요한 그대로 있지만 접촉해야 할 경우가 오면 어기지 못하는 자는 목숨을 마친 뒤에 높이 정미(精微)한 곳에 올라가서 밑의 모든 인간계와 하늘들의 세계와도 접촉하지 않는다. 그래서 괴겁(壞劫)인 때에도 三재가 미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도솔타천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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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스로는 욕심이 전혀 없고, 상대방의 요청에 응하여 행동할 뿐이므로 접촉하는 동안에도 마치 아무 맛도 없는 밀을 씹는 것과 같은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에 초월하여 변화하는 곳에 태어난다. 이와 같은 한 무리들이 있는 곳을 낙변화천(樂變化天)이라고 하느니라.


세간의 마음이 없으면서도 세간과 같이 일을 행하고, 일을 행하여 어울리면서도 여기에 아주 초월한 자는 목숨을 마친 뒤에 두루 능히 변화있는 경지도 변화없는 경지도 초월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들이 있는 곳을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러한 육천(六天)이 형상으로는 비록 흔들림에서 나왔으나 마음은 아직도 어울리는 자취가 있으므로 여기까지의 세계를 욕계(欲界)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세간의 많은 마음을 닦는 사람들이 선나(禪那)를 가자(假藉)하지 않으매 지혜가 없고, 다만 몸을 단속하여 음욕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다니거나 앉거나 간에 생각을 모두 없애고, 애욕에 물들으려 하지 않아서 욕계에 머물고자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생각에 따라서 범천의 무리가 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의 세계를 범중천(梵衆天)이라고 하느니라.


욕심의 버릇이 없어지고 욕심을 여읜 마음이 나타나서 모든 율의(律儀)를 좋아하고 따르므로 이 사람은 때에 응하여 능히 범덕(梵德)을 행한다. 이와 같은 무리를 범보천(梵輔天)이라고 하느니라.


몸과 마음이 묘하고 원만하며, 위의(威儀)에 부족함이 없으며, 청정한 금계(禁戒)를 지키면서 밝은 깨달음까지 겸하면, 이런 사람은 때에 응하여 능히 범천의 무리를 통솔하는 대범왕이 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대범천(大梵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세가지 수승한 무리는 어떠한 고뇌도 핍박하지 못하나니, 비록 참된 삼마지를 바르게 닦은 것은 아니지만 청정한 마음 가운데 모든 번뇌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것을 초선(初禪)이라 하느니라.


아난다야, 그 다음의 범천은 범천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범천의 행실이 원만하며, 맑고 깨끗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고요한 가운데 빛을 내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소광천(少光天)이라고 하느니라.


빛과 빛이 서로 어울려서 밝게 비췸이 다함이 없으며 十방세계를 두루 비추어서 유리를 이루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무량광천(無量光天)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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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한 광명을 받아들여서 교화의 체(體)를 성취하고 청정한 교화를 드날려서 응용하되 다함이 없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광음천(光音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세가지 수승한 무리는 어떠한 근심 걱정도 능히 핍박하지 못하나니 비록 참된 삼마지를 바르게 닦은 것은 아니지만 청정한 마음 가운데 거칠은 번뇌를 이미 굴복시켰으므로 이것을 이선(二禪)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러한 하늘 사람은 원만한 광명이 음성을 이루고, 소리를 내어서 묘한 이치를 드러내며 정미로운 행을 이루어서 적멸(寂滅)한 즐거움과 통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소정천(少淨天)이라고 하느니라.


청정한 공이 앞에 나타남에 거기서 한량없는 것을 끌어낼 수 있으며,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적멸한 즐거움을 이루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무량정천(無量淨天)이라고 하느니라.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원만하고 청정하며, 깨끗한 덕을 성취하고, 수승한 의지(勝託)가 앞에 나타나서 적멸한 즐거움으로 돌아가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변정천(遍淨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세가지 수승한 무리는 크게 수순(隨順)함을 이루고, 몸과 마음이 안온하여 한량없는 즐거움을 얻나니, 비록 참된 삼마지를 바르게 닦은 것은 아니지만 안온한 마음에 환희를 갖추었으므로 이것을 삼선천(三禪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또 다음 하늘사람은 몸과 마음을 핍박하지 아니하여 괴로움의 원인이 이미 다하였으나 즐거움도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므로 오래되면 반드시 무너지는 것이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두 마음을 한꺼번에 버리어서 거칠고 무거운 현상이 없어지고 청정한 복의 성품이 생기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의 이름을 복생천(福生天)이라고 하느니라.


버리는 마음이 원융(圓融)하여서 수승한 이해(理解)가 청정하여지고 복이 막힘이 없는 가운데 묘하게 수순함을 얻어 미래재(未來際)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복애천(福愛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하늘에 두 갈래의 길이 있으니 만약 먼저의 마음에서 한량이 없는 청정한 광명과 원만하고 밝은 복덕을 따라서 닦아 증득하면서 머물면 이러한 무리는 광과천(廣果天)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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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먼저의 마음에서 고와 낙을 모두 싫어하고, 버리는 마음을 정밀히 연구하되 끊임없이 계속하여 버리는 길을 끝까지 추궁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멸하고 생각이 타고 남은 재와 같이 되어서 오백겁을 지내는데, 이 사람이 생과 멸로써 인(因)을 삼았기 때문에 생멸하지 않는 성품을 밝히지 못하여서 처음 반겁에 멸하였다가 나중 반겁에는 생하나니, 이런 무리를 무상천(無想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네가지 수승한 무리는 모든 세간의 고와 낙의 경계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비록 함이 없는 참다운 부동(不動)의 경지는 아니지만 얻는 바가 있다는 마음에는 공용(功用)이 순수하게 익었으므로 이것을 사선천(四禪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가운데 또 다섯 불환천(不還天)이 있으니 하계(下界)의 구품습기(九品習氣)를 한꺼번에 끊어버리고 고와 낙을 모두 잊어서 하계에는 있을 데가 없으므로 버리는 마음이 같은 이 <사선천> 가운데 거처를 세우는 것이다.


아난다야, 고와 낙 두가지가 다 없어져서 투쟁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무번천(無煩天)이라고 하느니라.


움직이거나 그치거나 홀로 행하여서 상대의 여지가 없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무열천(無熱天)이라고 하느니라.


시방세계에 묘하게 봄이 원만하고 청정해서 걸리고 지저분한 온갖 티끌 현상이 없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를 선견천(善見天)이라고 하느니라.


정미로운 견(見)이 앞에 나타나서 무엇을 하든지 걸림이 없어지면 이런 무리를 선현천(善現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기미(機微)를 알고, 색성(色性)의 성품까지 완전히 파악해서 변제(邊際)가 없는데 들어가면 이러한 무리를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불환천은 저 사선천의 네 천왕들도 듣고 부러워 만 할 뿐, 능히 보고 알지 못하나니, 마치 이 세간에 있어서 광야(曠野)나 심산(深山)에 있는 거룩한 아라한이 거처하는 도량을 세속의 거칠은 사람들은 못보는 것과 같으니라.


아난다야, 이 십팔천은 홀로 행하여 상대함이 없지만 형상의 누(累)가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여기까지를 색계(色界)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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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난다야, 유정천(有頂天) 가운데서 두갈레의 길이 있으니 만약 놓아버리는 마음에서 지혜를 얻어서 그 지혜의 빛이 원만하게 통하면 문득 티끌세계(塵界)에서 벗어나서 아라한을 이루고 보살승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무리는 마음을 돌이킨 큰 아라한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놓아버리는 마음에서 버리는 일을 성취하고, 몸뚱이가 장애된다는 것을 깨달아 그 장애되는 것을 없애버리고 공(空)에 들어가면 이러한 무리를 공처천(空處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장애가 소멸되고 무애(無礙)의 무(無)도 없어지면 그 가운데 오직 온전한 아뢰야식과, 말라식의 미세한 반분이 남게 되나니, 이런 무리를 식처천(識處天)이라고 하느니라.


공도 색도 모두 없어졌고, 식심까지도 온통 없어져서 시방이 고요하고, 툭트이어서 갈 바가 없어지면 이런 무리를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라고 하느니라.


식(識)의 성품이 움직이지 않게 되면 멸(滅)로써 끝까지 연구하다 다함이 없는 가운데 다한다는 성품을 발명하여, 있는 듯 하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한 것 같으면서 다한 것이 아니니, 이러한 무리를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이라고 하느니라.


이들이 공(空)을 궁구하였으나 공의 이치를 다하지 못하였나니 불환천(不還天)으로부터 성도(聖道)를 다한 자라면 이러한 무리를 마음을 돌리지 못한 둔한 아라한이라고 하고, 만일 무상천(無想天)으로부터 모든 외도천(外道天)들이 공을 궁구하고 돌아가지 못하였다면 유루(有漏)에 미하며 들은 것이 없으므로 문득 윤회로 들어가느니라.


아난다야, 이 모든 천상의 천인들은 범부로서의 업보를 받는 것이므로 그 업보가 다하면 다시 윤회로 들어가지만 저 천왕들은 보살로서 삼마지 가운데서 노닐면서 점차로 향상하여 성자로서 회향하는 길을 닦는 것이니라.


아난다야, 이 사공천(四空天)은 몸과 마음이 없어지고 선정의 성품이 앞에 나타나서 업과(業果)의 색이 없어졌으므로 이로부터 끝까지 무색계(無色界)라 하느니라.


이것이 모두 묘각(妙覺)의 밝은 마음을 모르고 망녕된 것을 쌓아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삼계가 허망하게 있게 된 것이며, 그 중간에 망녕되게 칠취(七趣)를 따라서 빠지므로 보특가라(補特伽羅)들이 각각 그 무리를 따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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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난다야, 이 삼계 안에 다시 네가지의 아수라가 있나니, 만일 귀신 갈래에서 바른 법을 수호한 힘으로 신통을 얻어서 허공에 들어가는 것이면 이런 아수라는 알에서 나는 것이며, 귀신 갈래에 속하느니라.


만약 하늘 갈래에서 덕이 내리어서 떨어진 것이 해와 달에 이웃한 데 있는 것이면, 이런 아수라는 태로 나는 것이고, 사람 갈래에 속하느니라.


어떤 아수라왕은 세계를 관장하고, 힘이 세고 두려움이 없으므로 능히 범왕 · 제석천 · 사천왕과 더불어 권세를 다투나니, 이 아수라는 변화해서 있는 것이므로 하늘 갈래에 속하느니라.


아난다야, 별도로 한층 하열한 아수라가 있으니, 큰 바다 속에서 생겨나 수혈구(水穴口)에 잠겨 있으면서 아침에는 허공에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물로 돌아가서 잔다. 이 아수라는 습기(濕氣)로 생기는 것이므로 축생의 갈래에 속하느니라.


아난다야, 이와 같은 지옥 · 아귀 · 축생 · 인간 · 신선 · 하늘 · 아수라의 일곱 갈래를 정밀하게 연구하면 모두 어둠에 잠긴, 함이 있는 꼴이라, 망상으로 생을 받고, 망상으로 업을 따르는 것인지라, 묘하고 뚜렷이 밝은 조작이 없는 본심에 있어서는 다 공화(空華)와 같아서 원래는 있는 바가 없고 한결같이 허망한 것이어서 다시 어떠한 근거가 없느니라.


아난다야, 이 모든 중생들이 본 마음을 모르고 이 윤회를 받나니, 한량없는 겁이 지나가도 참되고 청정함을 얻지 못하는 것은 모두 살생 · 도둑질 · 간음을 따르는 탓이며, 이런 것이 있는데는 귀신의 갈래이고, 없는 데는 하늘 갈래인데, 있는데와 없는데를 오르락 내리락하여 윤회성(輪廻性)을 일으키느니라.


만일 묘하게 삼마제를 발하게 되면 곧 묘하고 항상하고 고요하여 있는 것 없는 것이 둘 다 없어지고, 둘 다 없다는 것도 없어지면 살생하지 않는다, 도둑하지 않는다, 간음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으리니 어찌 살생 · 투도 · 사음을 따르는 일이 있으랴.


아난다야, 삼업(三業)을 끊지 않고 제각기 따로 짓는데, 제각기 따로 짓지만, 그 여럿이 따로 짓는 것에는 분이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곳이 없지 않으나, 망녕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망녕이 나는데는 인(因)이 없으므로 따라서 궁구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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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힘써 수행하여 보리를 얻고자 하거든 세가지 혹(惑)을 없애야 한다. 세가지 혹을 없애지 못하면 비록 신통을 얻더라도 그것이 다 세간의 인위적(人爲的)인 공용(功用)이라 익힌 버릇이 없어지지 않으므로 마도(魔道)에 떨어지나니 비록 망녕을 제거하고자 하여도 헛된 노력과 거짓만 더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딱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네 그 망녕은 스스로 짓는 것이니 보리의 허물이 아니니라.


『이렇게 하는 말은 정설(正說)이고, 다르게 하는 말은 마왕의 말이니라.』



2. 오십가지 마(魔)를 말함


① 마가 생기는 원인


그때 여래께서 설법의 자리를 마치려 하시다가 사자상(師子狀)에서 칠보의 안석을 잡아당겨서 자금산(紫金山)과 같은 몸을 돌이켜 다시 기대앉으시고 대중과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유학(有學)인 연각과 성문이 오늘에 마음을 돌려서 큰 보리인 최상의 묘각(妙覺)으로 나아가는데, 내가 이미 참된 수행법을 말하였지만 너희들이 아직도 사마타와 비바사나를 닦는데 있어서 미세한 마의 장난이 생기는 것은 모른다. 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나는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여 마음을 씻는 것이 바르지 못하게 되면 사견(邪見)에 떨어지느니라.


너의 음마(陰魔)나 천마(天魔)나 귀신이 붙거나 도깨비를 만날 적에 마음에 분명하게 알지 못하여서 도적을 자식으로 알기도 하고, 또 그 중에서 조금 얻은 것을 만족해 하면 마치 第四선천(禪天)의 들음이 없는 비구가 성과(聖果)를 증득하였다고 망녕된 말을 하다가 하늘의 과보가 다되어 쇠하는 모양이 나타나면 아라한도 또 몸을 받는다고 비방하다가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되리라. 너희는 잘 들어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자세하게 분별하리라.


아난다가 일어섰다. 그리고 그 모임에 더 배워야 할 자들과 함께 기뻐서 절하면서 가르침을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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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와 및 모든 대중들아, 너희들은 이걸 알아야 한다. 이 항상함이 없는 세상의 열두가지 종류의 중생들의 본각(本覺)인 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원만한 마음의 본체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둘이 없고 다름도 없건만 네가 망상으로 진리를 덮은 것이 잘못이어서 거기서 어리석음과 애욕(愛欲)이 생기고, 또 그것을 두루 어둡게 하는 원인이 되어서 허공의 성품이 있게 되었으며, 변화와 혼미가 거듭되어 세계가 생긴 것이니, 이 시방의 작은 먼지같은 항상함이 없는 국토들이 모두 어두운 망상을 바탕으로 해서 서있는 것이다.


저 허공이 네 마음에서 생긴 것이 마치 한조각의 구름이 맑은 하늘에서 일어난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더구나 저 허공속에 있는 모든 세계이겠느냐.


너희들이 선나(禪那)를 닦아서 삼마지를 장엄하여 시방의 보살과 번뇌가 다한 대아라한들과 더불어 마음 정기가 맑게 통하면 바로 그 자리가 고요하게 맑아지면서 일체 마왕과 귀신과 모든 범부 · 하늘들이 그 궁전이 까닭없이 무너짐을 볼 것이며, 대지가 진동하여 갈라지고 물 · 뭍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놀라지 않는 것이 없으리라.


범부들은 혼미하여서 변천되는 것을 모르지만, 저것들은 모두 다섯가지 신통을 얻고 누진통(漏盡通)만 못 얻었는데, 이 티끌세상을 애착하거늘 어찌 너로 하여금 그들의 처소를 허물게 하겠느냐. 그러므로 귀신과 천마와 망량과 요정들이 삼매를 닦을때 몰려와서 너를 방해하느니라.


그러나 저 마들이 비록 크게 노하더라도 저것들은 티끌 속에 있고 너는 묘각(妙覺)속에 있으므로 바람이 빛을 부는 것 같고 칼로 물을 베는 것 같아서 조금도 저촉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끓는 물과 같고 저것들은 찬 얼음덩이와 같으니 더운 기운이 차츰 가까워지면 곧 녹을 것이다. 저것들이 한갓 신통력을 믿지만 그것들은 다만 객(客)일 뿐이니 이루고 못이룸이 네마음 속의 오음(五陰)의 주인에게 달린 것이다. 주인이 만일 혼미하면 객이 그 짬을 타는 것이니, 그 자리에서의 선나가 확실하여 미혹이 없으면 저 마의 장난이 있더라도 너를 어찌할 수 없으리라.


그늘이 없어지면 밝음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저 삿된 것들은 모두 어두운 기운을 받은 것이니 밝음은 능히 어둠을 파하는 것이므로 가까이 한즉 스스로 없어지거늘 어떻게 감히 머물러 있으면서 선정을 흔들어 어지럽히겠느냐.


만약 밝게 깨닫지 못하여서 오음에 어두워지면 너는 반드시 마의 자식이 되어서 마인(魔人)을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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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가는 특히 졸렬한 것이지만 그가 주문만으로도 너를 홀려서 부처님 율의(律儀)를 파하되 팔만의 행 중에서 한가지 계만은 헐을 수 있었다. 마음이 청정하였기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것이 네 그 보배로운 각(覺)의 온전한 몸을 무너뜨릴 것이니, 그렇게 되면 마치 재상의 집이 갑자기 적몰(籍沒)을 당한 것과 같아서 완연히 영락(零落)되어서 구할 수가 없으니라.


② 색음(色陰)의 마


아난다야, 네가 도량에 앉아서 모든 생각을 없애어서 그 생각이 만약 다하면 그 생각을 여읜 경지에 일체가 정미롭고 밝아져서 동(動)에도 정(靜)에도 끌리지 않고, 생각함과 잊음에 한결 같거든, 마땅히 이런 처지에 머물러야 삼마지에 들게 되는 것인데, 그때 마치 눈 밝은 사람이 큰 어둠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정미로운 성품은 묘하고 청정하나 마음이 아직 빛을 내지 못하나니 이것을 색음의 움집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눈이 명랑하여 시방이 환하게 열리면서 다시는 어둠이 없이 되면 이것은 색음이 다한 것이다. 이렇게 된 사람은 능히 겁탁(劫濁)을 초월하리니, 그 색음의 원인을 관찰하면 견고한 망상이 그 근본이었던 것이다.

아난다야, 이 가운데 있으면서 묘하고 밝은 성품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사대(四帶)가 얽히지 않으면 잠깐 동안에 몸이 능히 장애에서 벗어날 것이니 이것은 정미롭고 밝은 것이 앞 경계에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공부의 힘으로 잠깐동안 이렇게 된 것이고, 성인으로서 얻은 경지는 아니니, 성인의 경계라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약 성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면 여러 사마(邪魔)들의 장난을 받으리라.

아난다야, 또 이 마음으로 묘하고 밝은 성품을 정미롭게 연구하여 그 몸이 안으로 밝아지면 이 사람이 홀연히 몸 속에서 회충 따위를 집어내어도 몸이 완전하여 조금도 상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정미롭고 밝은 것이 몸뚱이에 흘러넘친 것이다. 이런 일은 정미로운 수행으로 잠간 동안 그렇게 되는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약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을 하면 곧 여러 사마의 장난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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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마음으로 안과 밖으로 정미롭게 연구하여 그때 혼과 넋과 마음과 뜻과 정신이 몸뚱이만 제외하고는 모두 서로 간섭하여 들어가서 서로 손이 되고 주인이 되면, 홀연히 공중에서 법을 설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혹 시방에서 신비로운 이치를 설명하는 것을 듣게도 되나니, 이것은 정신과 넋이 번갈아 이합(離合)하면서 착한 종자를 성취하는 것이라, 잠깐 이런 일이 있는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곧 여러 사마의 장난을 받으리라.


또 이 마음이 맑게 드러나고 밝게 사무쳐서 안으로 밝아지면 시방이 두루 염부단금 빛으로 되면서 모든 것이 여래로 화하고 그때 갑자기 비로자나불이 천광대(天光臺)에 앉으셨는데 천불(千佛)이 둘러 싸고 있으며, 백억국토와 연꽃이 동시에 나타남을 보게 될 것이니 이것은 심혼(心魂)이 영오(靈悟)에 물든 것이라, 심광(心光)이 밝아져서 모든 세계에 비추으므로 잠깐동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곧 여러 사마의 장난을 받으리라.


또 이 마음으로 묘하고 밝은 성품을 정미롭게 연구하되 관찰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억누르고 항복하고 제지함이 뛰어나면 홀연히 시방의 허공이 七보색도 되고 百보색도 되어서 동시에 두루 가득하되 서로 걸림이 없어서 청 · 황 · 적 · 백이 분명하게 나타나느니라. 그러나 이것은 억누르는 공덕이 뛰어나므로 잠깐 동안 이렇게 되는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여러 사마의 장난을 받으리라.


또 이 마음으로 연구함이 밝고 사무쳐서 정미로운 빛이 산란하지 아니하면 문득 밤중에 어둔 방안에서도 여러 가지 물건을 보되 백주와 다르지 않고 또 그 오둔 방안의 물건도 없어지지 아니하리니, 이것은 마음이 세밀하고 보는 것이 맑아져서 어둠을 뚫어보게 되므로 잠깐 동안 이렇게 되는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마음을 짓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일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곧 여러 사마들의 장난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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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마음으로 뚜렷이 허융(虛融)한데 들어가면 몸뚱이가 홀연히 초목과 같아져서 불로 지지고 칼로 깎아도 조금도 아프지 않으며, 또는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고 설사 살을 깎아도 마치 나무를 깎는 것과 같을 것이니 이것은 오진(五塵)이 모두 사라지고 사대성(四大性)이 배제(排除)되어서 한결같이 순수한데 들어가므로 잠깐 동안 이렇게 되는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마음을 짓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여러 사마들의 장난을 받으리라.


또 이 마음으로 청정함을 성취하여서 마음을 맑히는 공부가 지극한데 이르면 홀연히 대지와 시방의 산하가 불국을 이루며 칠보가 구족하고 광명이 두루 가득함을 볼 것이며, 또 항하사 여래가 허공계에 가득하고, 누각과 궁전이 화려함을 보기도 하고, 아래로는 지옥을 보고 위로는 천궁을 보되 장애가 없으리라. 이것은 좋아하는 생각과 싫어하는 생각이 날로 심화되어서 그 생각이 오래 쌓인 것이 그러한 현상으로 변화된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할 수 있으나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여러 사마들의 장난을 받으리라.


또 이 마음으로 연구하기를 심원(深遠)하게 되면 문득 밤중에 멀리 있는 시정(市井)의 거리나 친족이나 권속을 보기도 하고 그의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것음 마음을 핍박하여서 그 핍박이 극도에 이르면 마음의 광명이 튀어 나오기 때문에 막힌 밖엣 것을 보게 되지만 그러나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마음을 짓지 않으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일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여러 사마들의 장난을 받으리라.


또 이 마음으로 연구하는 것이 지극하다 보면 형체가 순간 순간 달라지는 선지식을 보기도 하는데 이것은 사특한 마음이 도깨비를 받아들였거나 혹은 천마가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제멋대로 설법하여 기묘한 것을 통달하게 하는 것이고,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성인의 경지라는 마음을 짓지 않으면 마의 장난이 없어지려니와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에 빠지면 곧 여러 사마들의 장난을 받으리라.


아난다야, 이와 같이 선나에 나타나는 열가지 경계는 모두 색음(色陰)에 대하여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어울리므로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인데 중생이 어두워서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인연을 만났을 제 혼미하여서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면 큰 망어를 하는 것이고,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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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마땅히 <이 가르침에>의하여 여래가 멸한 뒤 말법 가운데에서도 이 이치를 널리 알려서 천마들로 하여금 그 짬을 얻지 못하게 하고, <바른>법을 보존하고 지켜서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하여라.


③ 수음(受陰)의 마


아난다야, 저 선남자가 삼마데와 사마타를 닦는 가운데 색음이 다한 자는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보되 밝은 거울 속에 제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소득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능히 쓸 수 없는 것이 마치 가위눌린 사람이 손발이 완연하고 보고 듣는 것이 분명하건만 마음이 가위에 눌려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수음의 움집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가위눌린 증세가 그치면 그의 마음이 몸에서 떠나서 제 얼굴을 볼 수 있으며, 가고 머무름이 자유로워서 조금도 장애되는 것이 없이 된다. 이렇게 되면 수음이 다한 것이다. 이 사람은 능히 견탁을 초월하나니 그 <수음의>원인을 관찰하면 허명(虛明)한 망상이 근본이었느니라.


아난다야, 저 선남자가 이 가운데 있어서 큰 광명이 비침을 얻고, 마음이 밝아진다. 안으로 억누름이 분에 지나면 문득 그 곳에서 끝없는 슬픈 마음을 내게 되어서 심지어 모기 ․ 등에 따위를 보고도 적자(赤子)와 같이 여기면서 불쌍한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리느니라. 이것은 공부에 지나치게 억누른 탓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깨닫고 미혹되지 않은 채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만일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곧 비마(悲魔)가 마음속에 들어가서 사람만 보면 슬피 울기를 한없이 하여 바른 삼매를 잃고 결국 타락하게 되리라.


아난다야, 또 정(定)가운데서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하여 수승한 모양이 앞에 나타남을 보고 지나치게 감격하면 그런 가운데서 한없는 용기가 생기고 마음이 맹렬하고 날카로우며 뜻이 부처님과 같은 것처럼 되어서 삼(三)아승지 겁을 한생각에 초월하였다고 큰 소리를 치게 된다. 이것은 공부의 작용으로 지나치게 자부(自負)해진 탓이다.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깨닫고 미혹되지 않은 채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광마(狂魔)가 그 마음으로 들어가서 사람만 보면 자랑하며 아만이 비할 데 없어서 그 마음에 위로는 부처님도 보이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니 바른 삼매를 잃고 결국 타락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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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 정(定)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들이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해지면 앞에는 새로 얻은 것이 없고 뒤에는 예전에 의지하던 것이 없어졌음을 보고, 지력(智力)이 쇠퇴하여서 중휴지(中隳地)에 들어간다. 거기서 아득히 보이는 것이 없으면 문득 마음에 고갈(枯渴)상태가 생겨서 어느 때나 침울한 생각이 엉겨있게 되는데 이것을 가지고 그는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라고 하리라.


그러나 이것은 마음을 닦음에 지혜가 없어서 스스로 잃어버림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일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곧 억마(憶魔)가 그의 마음을 거머쥐어서 한곳에 달아놓게 되나니, 바른 삼매를 잃고 결국 타락하리라.


또 정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들이 색음이 없어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 혜력(慧力)이 정(定)보다 지나쳐서 용맹하고 날카로운데 떨어지면 여러 가지 수승한 생각을 마음에 품게 되어 자신이 이미 노사나불인가 의심하면서 조금 얻은 것을 구족한 것으로 알으리라.


이것은 마음을 쓰되 항상하게 살피지 못하고 지견(智見)에 빠진 것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쉽게 만족할 줄 아는 하열한 마가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보면 나는 최상의 제일가는 진리를 얻었다고 할 것이니 바른 삼매를 잃고 결국 타락하리라.


또 저 정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들이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해지면 새로운 경지는 얻지 못하였고 예전 마음은 이미 없어졌음을 보는데 이것을 보고는 스스로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문득 끝없는 근심이 생겨서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고 독약을 먹은 것 같으며, 살고 싶은 생각도 없어져서 사람을 보면 조르기를 「내 목숨을 끊어서 어서 해탈을 하게 해달라」고 하느니라.


이것은 수행에 있어서 방편을 잃은 것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일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항상 근심하는 마가 그 마음으로 들어가서 손에 칼을 잡고 제 살을 베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혹은 항상 근심하면서 깊은 산 숲속으로 달아나서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도 할 것이니 바른 삼매를 잃고 결국 타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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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 정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들이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한 것을 보고 청정한 가운데에서 마음이 안온해지면 다음에는 홀연히 저절로 한량없는 기쁨이 생겨서 그 마음 속 기쁨을 스스로 제지할 수 없게 되기도 하나니 이것은 가볍고 편안함을 제지할 지혜가 없는 것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기뻐하고 즐거워 하기를 좋아하는 마가 그 마음에 들어가서 사람만 보면 웃고, 길 거리에서도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고 하면서 걸림이 없는 해탈을 얻었다고 하나니, 바른 삼매를 결국 잃고 타락하리라.


또 저 정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들이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 스스로 만족하다고 하면 문득 까닭없는 큰 아만이 일어나서 만(慢) · 과만(過慢) · 만과만(慢過慢) · 증상만(增上慢) · 비열만(卑劣慢) 등이 일시에 한목 발생하여 마음 속에서 시방의 여래도 오히려 가벼히 여기나니 더구나 하위인 성문 · 연각이겠느냐.


이것은 수승함을 보고 스스로 가눌만한 지혜가 없는 것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곧 큰 아만마(我慢魔)가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탑이나 불상에 예배하지 않고, 경이나 불상을 부수면서 단월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금이요 동이며, 혹은 흙과 나무다. 경이라는 것도 나뭇잎이거나 헝겊이다. 육신이 참된 것인데 이것에는 공경하지 않고 도리어 흙과 나무 따위를 숭배한다는 것은 실로 뒤바뀐 짓이다.」고 하게 된다. 그러면 그를 깊이 믿는 자가 있어서 그를 따라서 부숴서 땅속에 파묻고 할 것이니 중생을 의혹하게 하여 무간지옥에 들어가게 하는 짓이라, 바른 삼매를 잃었으니 마땅히 타락하리라.


또 저 정 가운데서 선남자들이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 정명(精明)한 가운데 정미로운 이치를 원만히 깨달아 크게 수순함을 얻으면 그 마음에 홀연히 한량없는 가볍고 편안함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제 성인이 되어 대자재를 얻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지혜를 인하여 경청(輕淸)함을 얻은 것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일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가볍고 맑은 것을 좋아하는 마가 그 마음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만족하다고 하고 다시 더 나아갈 것을 구하지 않게 되느니라. 이런 무리가 흔히 무문비구(無聞比丘)가 되어서 후생을 의혹으로 그르쳐서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하나니, 바른 삼매를 잃은지라 마땅히 타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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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 정 가운데서 선남자들이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 밝은 깨달음 가운데 허명(虛明)한 성품을 얻으면 그 가운데서 홀연히 영멸(永滅)상태로 돌아가서 인과도 없다 하고 일향히 공(空)한 데 빠져서 공한 마음이 앞에 나타나 영원히 단멸(斷滅)하였다는 생각을 갖기에 이른다.


이것을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약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공마(空魔)가 그 마음에 들어가서 계행을 지키는 이를 소승(小乘)이라고 비방하고, 보살은 공을 깨달았는데, 무엇을 지키고 범하고가 있느냐고 하면서 항상 신심이 있는 단월을 대하여 술과 고기를 먹고 음행을 거리낌없이 하더라도 마의 힘이 있어서 상대방 사람들을 사로잡아 의심과 비방이 생기지 않게 된다. 귀신의 마음이 들은 지 오래면 혹 똥 · 오줌을 먹으면서도 술 · 고기와 같은 것으로 한결같이 모두 공한 것이라 하여 부처님 율의를 파하고 사람들을 그르쳐서 죄에 빠지게 할 것이니 바른 삼매를 잃었는지라 마땅히 타락하리라.


또 저 정 가운데에서 선남자들이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는 그 허허로운 밝음에 맛을 붙여서 그것이 마음의 심층에까지 깊이 들어가면 그 마음에 홀연히 무한한 애욕이 생기고 애욕이 심해지면 광증이 발동하여 문득 탐욕이 되리라.


이것은 정의 경지에서 편안하고 순한 것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을 스스로 유지할 지혜가 없어서 모든 욕경(欲境)으로 잘못 들어간 것이다. 깨달으면 허물이 없지만 성인의 경지가 아니니 만일 성인의 경지라는 견해를 지으면 욕마(欲魔)가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한결같이 음욕을 설하면서 그것을 보리도라 하고, 모든 속인 신도들에게 교화한다고 하면서 평등하게 음욕을 행하되 그 행음한 자를 가리켜 법자(法子)를 가졌다고 하느니라.


이것이 귀신의 힘이기 때문에 말세에 있어서 어리석은 범부를 포섭하게 되나니 그 수가 백 · 이백 · 혹은 오육백, 심하면 천도 만도 될 수 있느니라.


그러다가 마의 마음이 싫증이 나서 그의 몸에서 떠나버리면 이미 위력이 없어졌으므로 관헌의 제재를 받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중생을 그르쳐서 무간지옥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바른 삼매를 잃었는지라, 마땅히 타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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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야, 이와 같은 열가지 선나의 경계가 나타나는 것은 모두 수음에 대하여 마음이 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인데, 중생이 어두워서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고 이런 인연을 만나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면 큰 망어가 되는지라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이 여래의 말씀을 가져다가 내가 멸도한 뒤에 말법에 전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 뜻을 깨닫게 하며 천마들로 하여금 그 짬을 얻지 못하게 하여라. 그리하여 보존하고 보호하여서 위없는 도를 이루도록 하여라.


④ 상음(想陰)의 마


아난다야, 선남자가 삼마데를 닦아서 수음이 다하면 비록 번뇌는 다하지 못하였으나 그 몸뚱이를 떠난 것이 마치 새가 새장에서 나온 듯하고, 범부의 몸으로부터 위로 보살의 육십가지 성인의 지위를 지나고 의생신(意生身)을 얻어서 가는 곳마다 걸림이 없으리라.


마치 어떤 사람이 깊이 잠들어서 잠꼬대를 할 적에 이 사람(자신)은 비록 알지 못하나 그 말이 말소리가 똑똑하고 차례가 있어서 자지 않는 사람은 모두 그 말을 아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상음의 움집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동하던 생각이 다하고 떠있던 생각이 없어져서 각(覺)의 밝은 마음이 먼지와 때를 씻어버린 것 같으면 대체로 나고 죽음에 대한 처음과 나중의 일을 원만히 비추리니 이것은 상음이 다한 것이라, 이 사람이 능히 번뇌탁(煩惱濁)을 초월할 것이니, 그 인유(因由)를 살펴보면 융통한 망상으로 근본이 되었던 까닭이다.


아난다야, 저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定)이 밝음을 내는 삼마데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으로 뚜렷이 밝음을 사랑하고 그 정밀한 생각을 날카롭게 하여 선교(善巧)함을 탐하여 구하면 그 때 천마가 그 짬을 타서 정령을 날려서 사람에게 붙어가지고 경의 진리를 설한다. 그러나 그 마가 붙은 사람은 제게 마가 지폈다는 것을 모르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저 선교함을 구하는 선남자에게로 가서 자리를 펴게 하고 법을 설하는데 그 형상이 잠깐동안에 비구로 바뀌어가지고 법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하고, 혹은 제석천왕으로, 혹은 부녀자로, 혹은 비구니로도 된다. 그리고 어둔 방에서 잠을 자면 몸에서 광명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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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그 <법을 듣는 선교함을 구하는>사람은 어리석어서 그것을 보살로 알고 그의 교화를 믿어서 마음이 흔들려 방탕하게 된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계율을 파하고 가만히 탐욕을 행하면서 입으로 재앙과 상서와 변이를 말하기를 좋아하고 혹은 여래가 아무곳에 출현했다느니 혹은 겁화가 있다느니 혹은 난리가 난다느니 하여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그 집으로 하여금 재산이 까닭없이 없어지게 하느니라.


이것은 괴귀(怪鬼)가 나이가 늙어서 마가 된 것인데 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느니라. 그러고나면 그때부터 제자와 스승은 함께 관헌에 걸리게 되느니라. 그러니 너희는 이것을 깨닫고 윤회로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 미혹하여서 모르면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느니라.


아난다야,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하고,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에 이리 저리 다니며 놀기를 좋아하고 그 정미로운 생각을 가볍게 날려서 돌아다니기를 탐하여 구하면, 그 때 천마가 그 짬을 타서 정령을 날려서 사람에게 붙게하여 경의 진리를 말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제게 마가 붙은 것을 모르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저 놀기를 구하는 선남자에게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설법을 하는데, 제 형체는 변함이 없으나 그 법을 듣는 자가 홀연히 제가 보련화에 앉았고, 둘레가 온통 자금광(紫金光)덩어리로 된 것을 보게 되어, 그것이 청중 전부에게 각기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서 미증유(未曾有)함을 얻었다고 하리라.


이 사람이 어리석어서 그것을 보살인줄 알고 마음이 음탕하게 되어서 부처님 계율을 파하고 가만히 탐욕을 행하리라.


그것 <마가 붙은 사람>이 부처님이 세상에 응화하신 것을 말하기를 좋아하여 어느 곳의 누구는 어느 부처님의 화신으로 왔고, 아무개는 어느 보살이 와서 인간으로 화한 것이다고 하면, 이 사람은 그것을 보기 때문에 갈앙심(渴仰心)이 생기고 사견이 자꾸 일어나서 지혜가 소멸되느니라.


이것은 발귀(魃鬼)가 나이가 늙어서 마가 된 것인데, 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느니라. 그러고나면 그때부터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헌에 걸리느니라. 그러니 너희는 이것을 먼저 깨닫고 윤회로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 미혹하여서 모르면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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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이 이치에 계합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정미로운 생각을 맑혀서 계합되기를 탐하여 구하면 그때 천마가 그 짬을 얻어서 사람에게 붙게 하여 경의 진리를 설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제게 마가 붙은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저 계합을 구하는 선남자에게로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설법을 하는데, 그의 형체와 또는 법을 듣는 사람의 형체가 밖으로는 변한 것이 없으나 그 청법하는 자로 하여금 법을 듣기도 전에 마음이 스스로 열리어서 잠깐 잠깐 달라지되 숙명통을 얻기도 하고 타심통을 얻기도 하며, 혹 지옥을 보기도 하고, 혹 인간의 좋고 나쁜 여러 가지 일을 알기도 하며 혹은 게송을 설하고 경을 외우기도 하면서 제각기 기뻐하여 미증유를 얻었다고 하게 하느니라.


이 사람이 어리석어서 보살인 줄 잘못 알고 마음에 애착하여 부처님 계율을 파하고 가만히 탐욕을 행하느니라.


그것<마가 들린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도 큰 부처 작은 부처가 있는데 어느 부처는 선불(先佛)이고 어느 부처는 후불(後佛)이며, 또 그 중에는 진짜 부처와 가짜 부처가 있고, 남불(男佛)과 여불(女佛)이 있으며, 보살도 마찬가지라고 하면 이 사람이 그걸 눈으로 보게 되므로 본심을 씻어버리고 사특한 소견으로 쉽게 들어가리라.


이것은 매귀(魅鬼)가 나이 늙어서 마를 이룬 것이다. 이것이 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고 제자와 스승은 함께 관헌에게 잡히게 되리라. 너희가 이걸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지 않지만 미혹하여 모르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고 뚜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이 근본을 사랑하여 만물이 변화하는 성품의 시초와 끝을 궁구하려고 그 마음을 가다듬어서 밝게 분석하기를 탐하여 구하면 그때 천마가 그 짬을 얻고 정령을 날려서 사람에게 붙게 하여 경의 진리를 설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처음부터 제게 마가 붙었다는 것을 모르고 역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저 근원을 추구하는 선남자에게로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법을 설하는데 몸에 위신이 있어서 그 구하는 자를 꺾어서 자리 아래에 굴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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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는 비록 법을 듣지 못하였어도 자연히 마음으로 복종하게 되고 그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열반과 보리와 법신을 곧 이 현전의 우리 육신 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여 아버지에서 자식에로 대대로 서로 낳는 것이 곧 항상 있어서 끊어지지 않는 법신이라고 하며, 오로지 현재를 가리켜서 부처님 국토라고 하는 것이고, 따로 정토니 금색상이니 하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그 사람이 이것을 믿고 받아들여서 먼저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몸과 목숨으로 귀의하면서 미증유를 얻었다고 한다.

이들이 어리석어서 그것을 보살로 알고 그 마음을 추구하며, 부처님 계율을 파하고 가만히 탐욕을 행하게 되느니라.

눈 · 귀 · 코 · 혀가 모두 정토요, 남 · 녀의 두 근(根)이 곧 보리 열반의 참된 곳이라고 하면 저 무지한 자들이 이 더러운 말을 믿으리라.

이것은 고독귀(蠱毒鬼)와 염승귀(魘勝鬼)들이 오래 묵어서 마를 이룬 것이라, 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저 사람의 몸에서 떠나는데,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헌에 잡히리라. 너희들이 먼저 이것을 깨달으면 윤회에 들지 않을 것이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이 밝음을 발한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에 <성현에게>매달려서 감응하기를 마라고 두루 정밀한 노력으로 명감(冥感)하기를 구하면 그 때 천마가 짬을 얻어서 정령을 날려서 사람에게 붙어가지고 경의 진리를 설하는데, 그 사람은 제게 마가 붙은 것을 모르고 역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감응을 구하는 선남자에게로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법을 설하는데,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깐 동안에 제 몸이 백살 천살이나 된 것처럼 보이게 하여 그들이 애착하는 마음을 내어 떠나지 못하고 그의 종이 되어서 여러 가지 공양을 바치되 피로를 느끼지 않게 하며 자리 밑에 있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전세상의 스승이거나 본래의 선지식으로 알게하여 특별히 법을 위한 사랑을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교풀처럼 붙어서 미증유를 얻었다고 하게 하느니라.


이 사람이 어리석어서 보살로 잘못알고 그에게 친근하여 부처님 계율을 파하고 숨어서 탐욕을 행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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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또 말하기를 「내가 전세에 어느 생에서 아무를 먼저 제도하였는데, 그때는 내 아내였고 혹 첩이었으며, 형이었고 동생이었는데, 이번에 또 제도하게 되었으니 너와 더불어 어느 세계로 가서 어느 부처님께 공양하리라」고도 하리라.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하리라. 「따로 대광명천이 있는데 부처님이 거기 계시고 일체 여래가 쉬고 계시는 곳이다」고. 저 무지한 무리들은 그 허황된 거짓말을 믿고 제 본심을 상실하느니라.


이것은 여귀라는 것이 오래 묵어 마가 된 것인데, 그것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버린다. 그때 그 제자와 스승은 함께 관헌에 잡히나니 너희는 먼저 이걸 깨닫고 윤회에 들지 말아야 한다. 미혹하여 모르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이 깊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여 자기를 극복하고 부지런히 너력하여 그늘진 곳에 있으면서 고요함을 탐하여 구하면 그때 천마가 짬을 얻어서 정령을 날려서 사람에게 붙게 하고, 경의 진리를 설하게 하면 그<마가 붙는>사람은 제게 마가 지핀 줄을 모르고 역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고요함을 구하는 선남자에게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법을 설하는데 듣는 자로 하여금 제각기 과거의 업을 알게 하며, 혹은 거기 누구 한 사람에게 「네가 지금 죽기도전에 벌써 축생이 되었구나」하고 다른 한 사람에게 저놈 뒤에 가서 꼬리를 밟으라고 명령하는 따위 수작을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쓰러져서 일어날 수 없도록 하기도 하느니라.


이렇게 되면 온 대중이 마음을 기우려 기쁘게 굴복한다, 그리고 또 누가 무슨 마음을 일으키면 벌써 그것을 알며, 부처님의 율의보다도 더 어려운 정진을 하면서 비구들을 비방하고 제자들을 꾸짖는다. 남의 비밀한 일을 들추어내되 혐의지는 것을 피하지 않고, 길흉화복을 예언하는데 그때에 이르면 조금도 틀리지 않느니라.


이것은 대력귀(大力鬼)가 묵어서 마로 된 것인데 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이 사람의 몸에서 떠나느니라. 그리고는 곧 제자와 스승이 관헌에 잡히느니라. 너희가 이것을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지 않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이 알고 보기를 좋아하여 부지런히 애써 연구하여 숙명통(宿命通)을 구하면, 그때 천마가 그 짬을 얻어서 정령을 날려 사람에게 붙게 하여 경의 진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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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가 붙은>사람은 마가 붙은 것을 알지 못하고 역시 말하기를 「내가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저 알기를 구하는 선남자에게 와서 자리를 펴게하고 법을 설하는데 이 사람이 까닭없이 그 설법을 하는 처소에서 큰 보주(寶珠)를 얻기도 하며, 그 마가 혹 때로는 축생으로 화하여서 입으로 구슬이나 여러 가지 보배나 문서나 인장 따위 기이한 것을 물어다가 먼저 그 사람에게 주고 뒤에 그 몸에 붙기도 하며, 혹은 듣는 사람을 꾀어서 땅속에 들어가면 거기 명월주(明月珠)가 있어서 그곳을 비추어서 그들이 미증유를 얻었다고 하게도 하느니라.


그것은 도 흔히 약초를 먹고 좋은 음식도 먹지 않으며, 혹 때로는 하루에 삼(麻)씨 한알과 보리 한알만 먹고도 형체가 충실한데 이것은 마의 힘이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서 비구들을 비방하고 제자들을 꾸짖는데, 혐의를 생각하지 않느니라. 또 다른데 있는 보배와 시방의 성현들이 숨어있는 데를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뒤를 따르는 자가 가끔 기이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이것은 산림 · 토지 · 성황 · 천악의 귀신이 묵어서 마가 된 것인데 혹 음행을 선전하여 부처님 계율을 파하고 받들어 섬기는 자들과 더불어 가만히 오욕을 행하며, 혹 정진을 하되 순전히 초목을 먹고 일정한 행사가 없으면서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는데 그때는 제자와 스승이 흔히 관헌에 잡히게 되느니라. 너희는 이것을 먼저 깨닫고 윤회에 들어가지 말아라. 미혹하여 모르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에 신통을 좋아하며 갖가지 변화에서 그 변화의 원리를 연구하고 신통력을 탐하여 구하면 그 때 천마가 그 짬을 얻어서 정령을 날려서 사람에게 붙게 하여 경전의 진리를 설하는데 그 <마가 붙은>사람은 마가 붙은 것을 알지 못하고 역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저 신통을 구하는 선남자에게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법을 설하는데, 이 <마가 붙은>사람이 혹 손으로 화광을 잡고 그 불빛을 쥐어서 듣는 사부중의 머리위에 나누어 놓으면 그들의 정수리 위에서 불꽃이 두어자씩이나 일어나되 뜨겁지도 않고 타지도 않느니라.


혹은 물위에 다니기를 평지 밟듯하고, 혹은 공중에 편안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으며 혹은 병 속에도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 있기도 하며, 혹 환기(換氣)하는 구멍으로도 나가고 담장을 뚫고 나가되 조금도 걸림이 없는데, 다만 군병(軍兵)의 무기에만 자재하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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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부처님이다」하면서 백의(白衣)를 입고 비구의 절을 받으며 참선과 계율을 비방하고 무리들을 꾸짖으며 남의 일을 들추어 내되 거리낌이 없으며, 입으로 항상 신통자재함을 말하며, 혹 사람들로 하여금 곁으로 불국토를 보게도 하지만, 귀신의 힘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고 진실한 것이 아니며, 음행을 찬탄하고 추잡한 짓을 예사로 하며, 여러 가지 외설한 것을 가지고 법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것은 천지에 힘이 큰 산정(山精)이나 해정(海精)이나 풍정(風精), 하정(河精), 토정(土精)이나 일체 초목의 여러겁을 쌓아온 정령이나 혹은 용의 정령이나 혹은 목숨을 마친 신선이 다시 살아서 매(魅)가 된 것이거나 혹 신선의 기한이 차서 마땅히 죽었어야 할 것이 형체가 무너지기 전에 다른 요괴(妖怪)가 붙은 것이 오래 묵어서 마가 된 것인데 이것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저 사람의 몸에서 떠나게 되고, 그뒤에는 제자와 스승이 흔히 관헌에 잡히게 되느니라. 너희는 이것을 먼저 깨달아서 윤회에 들어가지 말아라.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삿된 생각을 만나지 않아서 뚜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지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이 멸(滅)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여 변화하는 성품을 연구하고 깊은 공(空)을 구하면 그때 천마가 그 짬을 얻어서 정령을 날려 사람에게 붙게 하고 경의 진리를 말하게 하는데, 그 <마가 붙은>사람은 마가 붙은 것을 모르고 역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공을 구하는 선남자에게로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법을 설하다가 홀연히 그 형체를 공하게 하여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기도 하고 다시 공에서 갑자기 나와서 출몰이 자재하니라.


또 그것이 제 몸을 유리처럼 투명하게도 하며, 혹은 수족에서 전단향기가 나도록도 하며, 혹은 대소변이 사탕같게도 하면서 계율을 훼방하고 출가한 이를 경천하느니라. 그리고 또 늘 말하기를 「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으며, 한번 죽으면 아주 없어져서 다시는 후신(後身)이 없고 범부도 성인도 없다」고 하며, 비록 공적(空寂)을 얻었다고 하나 가만히 탐욕을 행하는데, 그 음욕을 받은 자도 역시 마음이 공하여져서 인과를 없다고 하느니라.


이것은 일식 월식의 정령이나 금 · 옥 · 지초(芝草) · 기린 · 봉 · 거북 · 학 따위가 천만년을 지내면서 죽지 않고 영이 되어 국토에 출생한 것이 오래 묵어서 마가 된 것인데, 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면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고 그 뒤엔 제자와 스승이 흔히 관헌에 잡히느니라. 너희가 이걸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지만 미혹하여 모르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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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서 묘한데다가 두렷한 정이 밝음을 내는 삼마디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이 장수를 사랑하여 애써서 기미(機微)를 연구하고 영생(永生)을 구하여 분단생사를 버리고 변역생사를 얻어서 미세한 상이 항상 머물기를 바라면 그때 천마가 그 짬을 얻어서 정령을 날려서 사람에게 붙게 하고 경전의 진리를 설하게 하느니라. 그러면 그 <마가 붙은>사람은 제게 마가 붙은 것을 모르고 역시 말하기를 「나는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저 영생을 구하는 선남자에게 와서 자리를 펴게 하고 법을 설하는데 다른 지방으로 왕래하는 것이 걸림이 없다고 장담을 잘하며, 혹 만리 밖에 갔다가 순식간에 돌아오는데 그 지방의 물건을 가지고도 오느니라.


혹은 어느 곳 한 방안에서 두어 걸음쯤 되는 거리인데 누구를 시켜서 동쪽에서 서쪽 벽으로 가보라고 하면 급히 가기를 여러해를 하여도 이르지 못하도록 한다. 이런 일로 인하여 마음으로 부처님이 오셨구나 하고 믿게 하느니라.


그것이 늘 말하기를 「시방의 중생이 모두 내 아들이다. 내가 모든 부처님도 낳았다. 내가 세계도 만들어 내었다. 내가 원불(元佛)이다.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 자연이고 수행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고 하느니라.


이것은 세간에 머무는 자재천마가 그의 권속인 차문다나 사천왕의 비사동자 중에서 발심하지 못한 것을 시켜서 그 허명(虛明)함을 이용하여서 그의 정기를 먹게한 것이다. 어떤 때는 스승을 인하지 않고, 수행하는 사람이 직접, 집금강이라고 하는 것이 「네게 장구한 명(命)을 준다」고 하는 것을 보게 하며, 혹은 미녀의 몸을 나타내어서 탐욕을 성하게 행하도록 하여 일년도 못넘기고 간과 골이 말라버리게 하며, 입으로 혼자 말하는 것이 듣기에 요매(妖魅)같은데 앞에 사람은 자세히 알지 못하며, 흔히 관헌에 잡혀서 형벌도 받기 전에 먼저 말라 죽게도 하는 등 저 사람을 못견디게 하여서 결국 죽게 하리라. 너희가 이걸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미혹하여 모르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아난다야, 똑똑히 알아라. 이 열가지 마가 말법시대에 나의 법가운데 출가하여 수도하는 척하면서 사람의 몸에 붙기도 하고 스스로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여, 다 정변지(正遍知)를 이뤘다고 하리라. 음욕을 찬탄하고 부처님 계율을 파하여 악마의 스승과 제자가 음(媱)과 음으로 서로 전하리라.


이러한 삿된 정령들이 그의 심부(心腑)를 매혹(魅惑)하여 가까우면 구(九)생이고 오래면 백(百)세를 지내면서 참으로 옳게 수행하는 이들로 하여금 마의 권속이 되게 하나니, 죽은 뒤에는 마의 백성이 되어서 정변지를 잃어버리고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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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먼저 적멸(寂滅)을 취하지 말 것이며, 비록 무학(無學)을 얻더라도 원을 세우고 말법시대에 들어가서 대자비를 일으켜서 바른 마음으로 깊이 믿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마가 붙지 못하게 하고 바른 지견을 얻게 하여라. 내가 너를 제도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니 부처님 말씀을 준수하는 것이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니라.

아난다야, 이와 같은 열가지 선나의 경계가 나타나는 것은 다 상음(想陰)에 대하여 마음이 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인데, 중생이 어두워서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고 이런 인연을 만났을 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면 큰 망어가 되는지라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이 여래의 말씀을 가져다가 내가 멸도한 뒤 말법인 때에 전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 뜻을 깨닫게 하고, 천마들로 하여금 그 짬을 얻지 못하게 하여라. 그리하여 보존하고 보호하여서 위없는 도를 이루도록 하여라.


⑤ 행음(行陰)의 마


아난다야, 저 선남자가 삼마디를 닦아서 상음(想陰)이 다하면, 이 사람이 평상시에 꿈과 생각이 없어져서 깨거나 자거나 한결 같으며 각의 밝음의 허허롭고 고요함이 마치 개인 하늘과 같아서 다시는 거칠고 무거운 물질의 거리낌이 없으며, 모든 세간의 대지와 산하를 보되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하여 와도 묻는 것이 없고 가도 표가 없어서 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비취어서 응하며, 묵은 습기(習氣)는 조금도 없고 오직 정미롭고 참된 것 하나뿐이어서 생멸의 근원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래서 시방의 열두 종류의 중생을 모두 보되 그것들의 생명의 내력까지는 통달하지 못하나 함께 나는 기초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반짝거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 이것이 부근진(浮根塵)이 생기는 근본이니 이것을 행음의 움집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이 아른거리고 반짝거리는 근본 성품이 원래의 고요함 속에 들어가서 본래의 습기를 한번 맑히면 마치 파도가 가라앉으면 맑은 물이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니 이것은 행음이 다한 것이라, 이 사람이 능히 중생탁을 초월하리니, 그 원인을 관찰하면 깊고 그윽한 망상으로 근본이 되었던 까닭이니라.


아난다야, 이 바른 지견을 얻은 사마타 가운데의 모든 선남자의 밝음 만으로 응결된 바른 마음에는 열가지 종류의 천마도 그 짬을 얻지 못하나니, 여기서 비로소 정미롭게 연구하여 생류(生類)의 근본을 끝까지 궁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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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종류(本類)가운데서 생기는 근원이 드러나서 저 그윽하게 맑고 아른거리는 두렷한 본원을 관찰하고, 그 두렷한 본원 가운데에 헤아림을 일으킨다면 이 사람이 두가지 무인론(無因論)에 빠지리라.


一은 이 사람이 근본 원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태어나는 기틀이 드러남을 얻고는 눈의 八백공덕에 의지하여 八만겁안에 있는 중생들을 본즉, 업보의 흐름이 구비쳐 돌아서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는지라, 중생들이 그곳에서 윤회하는 것만 보이고, 八만겁 밖의 일은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곧 이런 견해를 짓나니, 즉 이러한 세간의 모든 중생이 八만겁 이전에는 원인이 없이 저절로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헤아리므로 바른 지견을 잃고, 외도(外道)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느니라.


二는 이 사람이 끝이 인(因)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 왜냐하면 이 사람이 이미 태어나는 근본을 보았으므로 사람은 사람을 낳고 새는 새를 낳고, 까마귀는 본래부터 검고, 따오기는 본래부터 희고, 사람과 하늘은 본래부터 서서 다니고, 축생은 본래 기어다니며, 흰 것이 씻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검은 것이 물들여서 만든 것이 아니라, 八만겁 동안 변함이 없었으니 이제 이 몸이 다한 뒤에도 역시 이러할 것이다. 내가 본래로 보리를 보지 못하였거늘 어찌 다시 보리를 이루는 일이 있으리요. 그러므로 오늘의 온갖 물상(物象)이 다 끝도 인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느니라.


이렇게 헤아리므로 바르게 두루 아는 것을 잃고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성을 의혹하나니 이것을 제일 외도가 세우는 무인론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삼마디 가운데의 모든 선남자가 밝으므로 응결된 바른 마음을 지키면 마가 짬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거기서 중생들의 근본을 끝까지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고 항상 아른거리는 근원을 관찰하고 그 두렷하고 항상한 것 가운데 헤아림을 일으킨다면 이 사람은 네가지 변상론(遍常論)에 떨어지느니라.


一은 이 사람이 마음과 경계의 성품을 궁구하여 두곳이 인(因)이 없다고 하고, 닦아 익혀서 이만겁 동안의 시방의 중생들의 생멸을 능히 알고는 모두 순환(循環)하는 것이고 산실(散失)하지 않는다고 헤아려서 항상하다고 하느니라.


二는 이 사람이 사대의 근원을 궁구하여 네가지 성질이 항상 있는 것이라고 하고, 닥아 익혀서 사만겁 동안의 시방의 중생들의 생멸을 능히 알고는 모두 그 체(體)가 항상한 것이고 산실하지 않는다고 헤아려서 항상하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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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은 이 사람이 육근과 말라식(末那識)과 같은 집수식(執受識)을 궁구하여 마음과 의식의 본원인 성품이 항상하다고 하고 닦아 익혀서 팔만겁 동안의 일체 중생이 순환을 계속하여 산실하지 않는 성품인 것을 알고는 항상하다고 헤아리느니라.


四는 이 사람이 이미 생각의 근원을 다하였으니 태어나는 이치에 다시 흐르고 그치는 운전이 없으리라 하여 생멸하는 마음이 이제 아주 없어졌으매, 원리가 저절로 생멸하지 않음을 이루었다고 마음으로 헤아려서 항상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항상하다고 헤아리므로 바르게 두루 아는 것을 잃고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성을 의혹하나니 이것은 제2의 외도가 세우는 원상론(圓常論)이니라.


또 삼마디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가 바른 마음으로 굳게 응집(凝凝)하면 마가 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고 항상 흔들려 동하는 본원을 보고는 자기와 또 다른 것에 대하여 헤아림을 일으킨다면 이 사람은 네가지 뒤바뀐 소견인, 一분은 항상함이 없고 一분은 항상하다는 희론에 떨어지느니라.


一은 이 사람이 묘하고 밝은 마음이 시방에 두루함을 보고는 그 맑고 고요한 것을 구경의 신아(神我)라고 하고 여기서 헤아리기를 나는 시방에 두루한 밝음으로 응집된 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일체 중생이 내 마음 가운데서 스스로 나고 스스로 죽으니 나의 심성(心性)은 항상한 것이고 저들의 생멸하는 성품은 참으로 항상함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라.


二는 이 사람이 마음을 보지 않고 시방의 항사국토만을 두루 보고서, 겁에 무너지는 데는 구경의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 하고, 겁에 무너지지 않는 데는 구경의 항상함이라고 하느니라.


三은 이 사람이 나와 마음을 따로 보아서 정세(精細)하고 미밀(微密)하기가 미진과 같은 것이 시방에 흘러돌아도 그 성품은 달라지지 않는데 그것이 능히 이 몸으로 하여금 나고 죽고 하게 하는 것이라 하여, 그 변괴하지 않는 것은 나의 항상한 성품이고 나에서 흘러 나오는 일체의 나고 죽음은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四는 이 사람이 상음이 다함을 알고 행음이 흘러돎을 보고는 행음이 항상 흘러돎을 항상한 성품이라 헤아리고 색 · 수 · 상 따위가 없어진 것을 항상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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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분은 항상함이 없고 일분은 항상하다고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나니 이것은 제3의 외도가 세우는 일분상론(一分常論)이니라.


또 삼마디 가운데서 선남자가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면 마가 그 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고 항상 흔들려 움직이는 근원을 관찰하고 분위(分位)가운데에 헤아림을 낸다면 이 사람은 네가지 유변론(有邊論)에 떨어지느니라.


一은 이 사람이 마음으로 헤아리기를 태어나는 본원의 흐르는 작용이 쉬지 않는다 하여 과거와 미래는 유변(有邊)이라 헤아리고, 상속하는 마음은 무변(無邊)이라 헤아리는 것이다.


二는 이 사람이 팔만겁까지는 관찰할 수 있어서 중생이 보이는데 팔만겁 전으로 올라가면 고요하여 듣고 보이는 것이 없다. 그는 듣고 보이는 것이 없는 곳을 무변이라고 하고 중생이 있는 곳을 유변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三은 이 사람이 헤아리기를 나는 두루 아는 것이니 무변성을 얻었다고 하고, 저 모든 사람들은 나의 앎(知)가운데 나타나는데 내가 저들의 아는 성품(知性)을 알지 못하나니 저들은 무변한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하여 다만 유변성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四는 이 사람이 행음이 공한 것이라고 궁구하고 그 제가 보는 마음대로 생각하되 모든 중생이 한 몸 가운데에 모두 반은 생하는 것이고 반은 멸하는 것이라고 헤아려서 세계의 온갖 것도 모두 반은 유변이고 반은 무변인 것이 분명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또 삼마데 가운데서 선남자가 굳게 응집한 바른 마음에는 마가 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고 항상 흔들려 동하는 본원을 보고는, 알고 보는 가운데서 헤아림을 낸다면 이 사람은 네가지의 죽지 않으려고 교란(矯亂)하는 뒤바뀐 변계허론(徧計虛論)에 떨어지느니라.


一은 이 사람이 변화의 본원을 관찰하여 천류(遷流)하는 곳을 보고는 변한다고 하고, 서로 계속되는 곳을 보고는 항상하다고 하며, 볼 것을 보는 데는 나는 것이라 하고, 볼 것을 보지 못하는데는 없어지는 것이라 하며, 서로 계속하는 인(因)이 끊어지지 않는 데를 느는 것이라 하고 서로 계속하는 가운데 새가 뜨는 데를 감하는 것이라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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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나는 데를 있는 것이라 하고, 서로서로 없어지는 데를 없는 것이라고 하여, 이치로는 통틀어 보고 마음으로는 따로 보았으므로, 법을 구하는 사람이 와서 그 이치를 물으면 대답하기를 「내가 지금 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하여 언제나 말을 어지럽게 하여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글귀를 잃게 하느니라.


二는 이 사람이 마음의 서로서로 없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고 무(無)를 인하여 증득하였다 하여 누가 와서 물으면 다만 한 글자 무(無)라고만 대답하고 무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니라.


三은 이 사람이 그 마음의 각각 있는 곳을 살펴보고 유(有)를 인하여 증득하였다 하여 누가 와서 물으면 다만 한 글자 시(是)라고만 대답하고 시(是)를 제외하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니라.


四는 이 사람이 유와 무를 함께 보아서 경계가 두갈래인 때문에 마음도 어지러워져서 누가 와서 물으면 대답하기를 있기도 한 것이 곧 없기도 한 것이요, 없기도 한 가운데 있기도 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일체를 교란하여서 추궁하여 물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헤아려서 허무하게 교란하여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잃는 것이니 이것은 第五의 외도의 네가지 죽지 않으려고 교란하는 뒤바뀐 변계허론이다.


또 삼마디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가 굳게 바른 마음으로 응집하면 마가 그 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고 항상 흔들려 움직이는 근원을 관찰하고 끝이 없는 흐름에 헤아림을 낸다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상(相)이 있다는 뒤바뀐 마음에 떨어지느니라.


혹 몸뚱이를 견고하게 하면서 색(色)이 곧 나(我)라고 하고 혹 내가 원만하여 모든 국토를 두루 머금었다고 보고 내가 색을 지녔다 하며, 혹 저 앞에 반연되는 것들이 나를 따라서 돌아간다 하여 색이 내게 속하였다고 하고, 혹 또 내가 모든 행(行)을 의지한 가운데서 계속된다 하여 내가 색에 있다고 하나니, 모두 죽은 뒤에 상이 있다고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십육상(十六相)이니라.


이로부터 혹 헤아리기를 필경 번뇌며, 필경 보리여서 두 성품이 나란히 달리므로 각각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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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은 뒤에 상이 있다고 헤아리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나니 이것은 제 六의 외도가 세우는 오음(五陰)가운데 죽은 뒤에 상이 있다고 하는 뒤바뀐 마음의 희론(戱論)이니라.


또 삼마디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가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면 마가 그 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고 항상 흔들려 움직이는 근원을 관찰하고 먼저 없이한 색 · 수 · 상 가운데에 헤아림을 낸다면 이 사람은 죽은 뒤에 상이 없다는 뒤바뀐 마음을 내는데 떨어지리라.


그 색이 없어진 것을 보고 몸이 인(因)한 바가 없다고 하고, 그 상(想)이 멸한 것을 보고 마음이 매인 바가 없다고 하며, 그 수(受)가 멸한 것을 보고 다시 연결함이 없다고 하여서, 음(陰)의 성품이 사라져 버렸으니 비록 태어나는 이치가 있더라도 수(受)와 상(想)이 없으므로 초목과 같은 것이라 이 형질(刑質)이 현재 이 상태에서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 것인데 죽은 뒤에 다시 무슨 상(相)이 있겠느냐고 한다. 이리하여 죽은 뒤에 상(相)이 없다는 헤아림이 순환하여서 여덟가지 무상(無相)이 있느니라.


여기서 열반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도 일체가 모두 공하여서 한갓 이름만 있고 결국 완전히 끊어져 버린다고 하는데, 이렇게 죽은 뒤에 없다고 헤아리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나니 이것은 第七의 외도가 오음 가운데서 세우는, 죽은 뒤에 상(相)이 없다고 하는 뒤바뀐 마음의 희론(戱論)이니라.


또 삼마디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면 마가 그 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으면서 항상 흔들려 움직이는 근원을 관찰하고 행음(行陰)이 있는 가운데 수음과 상음은 없어졌으므로 유(有)와 무(無)를 쌍으로 헤아려서 자체가 서로 파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죽은 뒤에 모두 아니라고 하는 뒤바뀐 희론을 일으키는데 떨어지느니라.


색음과 수음과 상음 가운데에서는 유(有)를 보아도 유가 아니고, 행음이 변천하여 흐르는 속에는 무(無)를 보아도 무가 아니라고 하여 이와 같이 순환하여 <네가지>음에서 여덟가지의 모두 아니라는 것으로 궁구하고, 어느 한가지 음에서 보아도 죽은 뒤에는 다 상이 있고 상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또 모든 것의 성품이 변천하는 것이라고 헤아리고 통하여 깨달았다는 마음을 발하여 유도 무도 모두 아니라고 하니 허(虛)와 실(實)을 분간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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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은 뒤에는 모두 아니라고 헤아려서 후제(後際)가 혼몽(昏懵)하여 말할 수 없으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에 성품을 의혹하나니 이것은 第八의 외도가 五음 가운데서 세우는 죽은 뒤에 모두 아니라는 뒤바뀐 마음의 희론이니라.


또 삼마디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가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면 마가 그 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으면서 항상 흔들려 움직이는 근원을 관찰하고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없는 것이라는데 헤아림을 낸다면 이 사람이 일곱가지 단멸론에 떨어지느니라.

혹은 몸이 멸한다고 헤아리며, 혹은 탐욕이 멸한다고 하며, 혹은 고(苦)가 멸한다고 하며, 혹은 가장 즐거움이 멸한다고 하며, 혹은 고도 나도 아닌 것이 멸한다고 헤아려서 이렇게 순환하여 일곱군데를 궁구하되 이것이 모두 현전(現前)에 소멸하고는 다시 회복될 수 없다고 하느니라.


이렇게 죽은 뒤에는 단멸한다고 헤아리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나니 이것은 第九의 외도가 오음 가운데서 세우는 죽은 뒤에는 단멸한다는 뒤바뀐 마음의 희론이니라.


또 삼마디 가운데서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면 마가 그 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하고 맑으면서 항상 흔들려 움직이는 근원을 관찰하고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있다는 헤아림을 내면 이 사람이 다섯가지 열반론에 빠지느니라.


혹은 욕계천(欲界天)을 바른 의지처라고 하나니, 두렷이 밝음을 보고 애모(愛慕)하는 때문이며 혹은 초선천(初禪天)을 그렇다고 하나니 성품에 근심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二선천을 그렇다고 하나니 마음에 고통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三선천을 그렇다고 하나니 지극한 기쁨이 따르기 때문이며, 혹은 四선천을 그렇다고 하나니 고와 낙 두가지가 다 없어서 윤회하는 생멸성을 받지 않는 때문인데, 그러나 이것은 샘이 있는 하늘임을 모르고 한이 없는 경지로 알아서 이 다섯군데를 안온한 수승하고 청정한 의지처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이 돌아서 다섯군데를 최상의 경지(究竟이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다섯군데가 현재 열반이라고 헤아리기 때문에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나니 이것은 第十의 외도가 오음 가운데서 현재 그대로 열반이라고 세우는 뒤바뀐 마음의 희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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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야 이와 같은 열가지 선나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다 이것이 행음에 대하여 마음이 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인데, 중생이 어두워서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고 이런 현상을 만났을 제 잘못 안 것을 옳게 안 것이라 하며,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니 큰 망어가 된다. 그래서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너희들은 반드시 이 여래의 말씀을 가져다가 내가 멸도한 뒤에 말법인 때에 전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 뜻을 깨닫게 하고 마음의 마(心魔)로 하여금 깊은 죄를 일으키지 않게 하여라. 그리하여 보존하고 보호하여서 삿된 소견을 지워버리고 그 몸과 마음이 참되고 옳은 것을 깨닫게 하며, 위없는 도에 대하여 갈림길로 나아가지 않게 하고, 마음으로 조금 얻은 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게 하여 대각왕(大覺王)의 청정한 표지가 되게 하여라.


⑥ 식음의 마


아난다야 저 선남자가 삼마디를 닦아서 행음이 다하면 세간성(世間性)이라고 해야할 그윽하고 맑으면서 흔들려 움직이는 동분생기(同分生機)의 그 깊고 미세한 벼릿줄이 문득 파괴되면서 보특가라의 업을 따르던 깊은 명맥(命脉)의 감응이 아주 끊어져버린다. 그리고 열반의 하늘이 곧 밝게 열리게 되는데 그건 마치 닭이 첫홰 뒤에 울면 동방에 훤한 빛이 드러나는 것과 같아진다. 그리하여 六根이 허정(虛靜)하게 되어서 다시 설치지 않고 안팎이 고요하고 맑고 밝아서 들어 갈 바가 없는 데로 들어간다.


이렇게 되어서 시방의 열두 종류의 목숨을 받는 내력을 깊이 통달하고, 그 연유를 관찰하고 근원을 잡은지라 모든 무리에게 불려가지 않는다. 이리하여 시방 세계에 있어서 같음을 얻었고 정미로운 색에도 빠지지 않으면서 그윽하고 신비로움이 발현되나니 이것은 식음(識陰)의 움집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여러 무리의 부름 가운데서 이미 같음을 얻었는지라 여섯 문을 없애고, 합하여 열리는 것이 성취되면 보는 것 듣는 것이 하나로 통하여 서로 작용함이 청정하여지고 시방 세계와 몸과 마음이 폐유리처럼 안팎이 밝게 사무치리니 이것을 식음이 다한 것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능히 명탁(命濁)을 초월하나니 그 <식음의> 인유(因由)를 관찰하면 그림자와 같이 허무한 망상이 그 근본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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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야, 이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하였음을 궁구하고 식음으로 환원하여 생과 멸이 없어지고 나면 아직 적멸한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했으나 자기의 몸으로는 육근에 막혔던 것이 통하여 열리고 시방의 모든 무리와도 지각(知覺)이 통하여서 그 맑게 통한 지각으로 능히 원원(圓元)에 들어가느니라.


그러나 만약 돌아가는 바를 참되고 떳떳한 인(因)이라고 세워서 수승하다는 견해를 낸다면 인할 바에 인하였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사비가라(娑毘迦羅)들이 명제(冥제)로 돌아가는 것과 반려가 되리니, 부처님의 보리를 모르고 올바른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것은 첫째로 얻었다는 마음을 세우고, 돌아갈 과(果)라는 것을 이룸이니 원통을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지게 되어 외도종(外道種)에 나느니라.


아난다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이 이미 멸하였으나 아직 적멸한 데서 정묘함은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일 돌아가는 바에 그것을 자체로 보고, 저 온 허공계와 열두 종류의 중생들이 다 내 몸에서 한결같이 흘러나왔다하여 수승하다는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이 능(能)이 아님을 능(能)이라 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무변신(無邊身)을 나타낸다는 마에수라와 반려가 되어 부처님 보리를 모르고 지견(知見)을 잃느니라.


이것을 第二의, 능히 한다는 마음을 세우고 일이 된다는 과(果)를 이루는 것이라, 원통을 이루고 열반성을 등지게 되어서 내가 두루 원만하다고 하는 대만천(大慢天)의 종류에 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이 이미 멸하였으나 아직 적멸한 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약 돌아가는 바에 귀의해야 할 바라는 생각을 두면, 스스로 의심하기를 내 이 몸도 마음도 거기서 흘러나왔고 시방의 허공까지도 모두 거기서 생겼을 것이라고 하여 그 모든 것이 일어나는 근원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를 참되고 항상한 몸이어서 생멸이 없다는 견해를 짓는다. 이것은 생멸 가운데 있으면서 항상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 일찍 하는 것이므로 불생멸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생멸까지도 모르면서 그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서 훌륭하게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항상함이 아닌 것을 항상하다고 집착하는데 떨어지는 자재천의 반려가 되므로 부처님의 보리를 모르고 지견을 잃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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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第三의 인의심(因依心)을 세워서 망계과(妄計果)를 이룸이니 원통을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지는 도원종(倒圓種)에 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이미 생과 멸을 멸하였으나 아직 적멸한 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약 지각(知覺)의 대상에 두루 원만한 앎(知性)이 있다하여 앎을 인한 견해를 세우고 시방의 초목도 다 뜻이 있어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면, 그리하여 초목이 사람도 되고 사람도 초목이 된다고 하며, 가릴 것 없이 두루 다 안다고 하여 수승하다는 생각을 하면 이 사람은 앎이 없는 것을 앎이라고 집착하는데 떨어져서 일체가 각(覺)이라고 고집하는 바탁 ․ 산니와 반려가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모르고 지견을 잃으리라.


이것은 第四의 원만히 아는 마음을 헤아려서 허황되고 잘못된 과(果)를 이룸이니 원통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고 거꾸로 아는 종류에 나리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이 이미 멸하였으나 적멸한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약 원융(圓融)하여진 근(根)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순수함을 얻고는 문득 원융하여 변화하는 데서 일체의 것이 발생한다 하여 불의 광명을 구하고 물의 청정을 좋아하며 바람의 유통을 사랑하고 물질(塵)의 형성(形成)을 보아, 제각기 숭배하여 섬기면서 이 여러 가지의 것(塵)들이 발생의 작용을 하는 근본원인이라고 하여 항상 있다는 견해를 세우면 이 사람은 무생(無生)을 생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애써서 불을 섬기고 물을 위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가샤파 같은 바라문과 반려가 되리라. 그리하여 부처님 보리를 모르고 올바른 지견을 잃으리라.


이것은 第五의 숭배와 섬김을 계착(計着)하여 어둔 마음으로 물건을 따르면서 망녕된 인(因)을 세우고 망녕된 과를 구하는 것인지라 원통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고 변화를 뒤바꾸는 종류에 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이 이미 멸하였으나 적멸한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약 원명(圓明)에 대하여 이것은 밝은 가운데 허한 것이니 여러 가지 변화는 옳지 않으매 없애야 한다고 하고 영원히 없는 자리(永滅依)를 귀의할 바라고 하면서 수승한 견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돌아갈 데 아닌 것을 돌아갈 데라고 고집하는데 떨어져서 무상천(無想天)의 순야타(舜若多)들과 반려가 되어서 부처님 보리를 모르고 올바른 지견을 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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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 六의 두렷이 허무하다는 마음으로 공하여 없는 과(果)를 이룸이니 원통을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지는지라, 단멸의 종류에 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이 이미 멸하였으나 적멸한 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약 두렷하고 항상한 데서 몸을 견고히 하여 항상 머물려하되 정미롭고 원만한 성품과 같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여, 이것이 수승한 견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탐할 것이 아닌 것을 탐착하는 데 떨어져서 오래 살기를 구하는 아사타(阿斯陀)들과 반려가 되어 부처님 보리를 모르고 올바른 지견을 잃으리라.


이것은 第七의 목숨의 근원에 집착하여 허망한 것을 견고히 하려는 인을 세워 길이 수고하는 과(果)로 나아가는 것이니 원통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게 되어 망녕된 생명을 늘리려는 종류에 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이 이미 멸하였으나 적멸한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약 목숨이 서로 통함을 보고 진로(盡勞)를 머물러 두려하되 그것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서 문득 이 계제에 연화궁(蓮華宮)에 앉아서 일곱가지 보배를 널리 변화하여 두며, 예쁜 아가씨들을 많이 모아 마음대로 즐기리라고 하면서 훌륭한 생각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참이 아닌 것을 참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타기가라들과 반려가 되어서 부처님 보리를 모르고 올바른 지견을 잃으리라.


이것은 第八의 사특한 생각의 인을 발하여 치성한 진로(塵勞)의 과를 세움이니 원통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고 천마(天魔)의 종류에 나리라.


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이 이미 멸하였으나 아직 적멸한 데서 정묘함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목숨이 밝아진 가운데서 곱고 거칠음을 분별하며 참됨과 거짓됨을 판단하고 인과 과가 서로 갚는 것이라 하여, 오직 감(感)하고 응(應)하는 것만 구하면 청정한 도를 등지나니 이를테면 고(苦)를 보고 집(集)을 끊으며, 멸(滅)을 증득하려고 도를 닦아서 멸에 이르면 고(苦)만 쉬고, 다시 전진하지 않으면서 수승한 견해를 쓰는 것이라고 하나니 이런 사람은 정성성문(定性聲聞)에 떨어져서 증상만(增上謾)인 무문(無聞)비구들과 반려가 되어서 부처님 보리를 모르고 올바른 지견을 잃느니라.


이것은 第九의 정응심(精應心)을 원만히 하여 취적과(趣寂果)를 이룸이니 원통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게 되어서 전공종(纏空種)에 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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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가 모든 것이 공함을 궁구하고 생과 멸을 이미 멸하였으나 적멸한데서 정묘함을 아직 원만히 하지 못하고, 만약 원융하고 청명한 각명(覺明)에서 깊고 묘함을 연구하여 밝히고 이것이 열반이라고 하여 전진하지 않으면서 수승하게 알았다는 생각을 낸다면 이 사람이 정성벽지(定性辟支)에 떨어져서 마음을 돌리지 못하는 연각(緣覺) · 독각(獨覺)들과 반려가 되어 부처님 보리를 모르고 올바른 지견을 잃으리라.


이것은 第十의 원융한 각과 통하는 마음을 내어 고요하고 밝은 과를 이룸이라. 원통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고, 각이 두렷이 밝으나 두렷한 것을 변화하지 못하는 종류에 나느니라.


아난다야, 이 열가지 선나에서 중도에 잘못된 견해나 미혹으로 인하여 만족치 못한 것을 만족하게 증득하였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다 식음에 대하여 마음이 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이 자리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이 완미(頑迷)하여서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고 이러한 현상을 만날 적에 제각기 전부터 애착하여 익힌 어두운 마음으로 스스로 휴식하면서 그것이 마지막 편안한 귀의처라 하여 스스로 위없는 대 보리를 만족하였다고 하는 큰 망어를 이루는 것이니 외도와 사마(邪魔)는 받는 업보가 끝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성문과 연각은 더 나아가지 못하느니라.


너희들은 마음을 먹고 여래의 도를 받들어서 이 법문을 내가 멸도한 뒤에 말세에 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널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 뜻을 알게 하며 마를 보고 스스로 깊은 죄를 짓는 일이 없게 하여라. 편안히 보호하고 가엾이 여겨 구원하여서 삿된 인연을 쉬게 하고 그의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불지견에 들게 하여 처음부터 성취하도록 갈림길로 들지 않도록 하여라.


이러한 법문은 과거 세상 항하사 겁중의 미진수 여래께서 이를 의지하여 마음을 열고 위없는 도를 얻었나니 식음이 만약 다한다면 너의 모든 근(根)이 현전에 서로 휘뚜루 작용할 것이며, 휘뚜루 작용하는 가운데서 보살의 금강건혜로 들어가서 두렷이 밝은 정미로운 마음이 그 속에서 변화하여 마치 깨끗한 유리 속에 달을 넣은 것 같으며 이와 같이 십신(十信) ·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廻向) · 사가행심(四加行心)을 초월하여 보살이 닦는 바 금강십지(金剛十地)와 등각(等覺)이 두렷이 밝으며, 여래의 묘한 장엄의 바다에 들어가서 보리를 원만히 하고 얻을 바 없는 데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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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거의 부처님이 사마타 중의 비바사나에서 각명(覺明)으로 분석하신 미세한 마의 장난이니라. 마경(魔境)이 나타나거든 네가 잘 알아서 마음의 때(垢)를 씻고 사특한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면 음마(陰魔)는 소멸되고, 천마는 부숴지고 대력(大力)귀신은 넋을 잃고 도망하며 이매망녕(魑魅魍魎)은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며, 바로 보리에 이르도록 부족함이 없을 것이요, 하열(下劣)한 사람은 더욱 정진하여 어둬지지 않으리라.

만약 말세의 모든 우둔한 중생으로서 선나를 알지 못하고 설한 법을 알지 못하나 삼매 닦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을, 네가 그들이 사마(邪魔)와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든 일심으로 권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나의 불정다라니주를 가지게 하여라. 만약 외우지 못하거든 선당(禪堂)에 써 두거나 혹은 몸에 지니게 하여라. 모든 마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느니라. 너는 마땅히 시방의 여래께서 드리우신 끝까지 닦아 나아가는 가르침을 공경하여 받들어라.


⑦ 오음의 근본


아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사하여 절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대중 가운데서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오음에는 다섯가지 망상이 근본이 되었나이다. 그런데 저희들이 평상시에 부처님의 미세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나이다. 그런데 이 오음은 한꺼번에 없애야 하나이까, 차례로 끊어야 하나이까. 또 이 다섯겹은 어디까지나 경계이옵니까. 원컨대 부처님께서 대자비를 베푸시와 이 대중의 청명한 눈이 되게 하소서, 말세의 모든 중생의 장래에 눈이 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정미롭고 참되고 묘하고 밝은 본각이 원만 청정하여 사생(死生)과 진구(塵垢)와 허공까지도 머물러 두지 않건만, 모두 망상으로 인하여 생겼느니라.


이것이 원래 본각으로서 묘하고 밝고 정미롭고 참된 것인데, 허망하게 모든 기세간(器世間)을 발생시켰나니, 그건 마치 연약달다가 제 머리를 모르고 그림자를 잘못 아는 것과 같으니라.


망(妄)이란 것이 원래 인(因)이 없는지라 망상 가운데서 인연을 세우고 인연을 모르는 자는 자연이라고 하지만 실은 저 허공도 환(幻)으로 생긴 것이어서 인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것이 모두 중생의 망녕된 마음이 헤아리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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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야, 망(妄)이 생긴 데를 알면 망의 인연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망이 원래 없는 것이라면 망의 인연을 말하더라도 원래로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알지 못하고 자연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랴. 그러므로 여래가 오음의 본인은 다 같이 망상이라고 하느니라.


네 몸뚱이는 먼저 부모를 인한 생각으로 난 것이니 네 마음이 생각이 아니면 능히 생각 가운데 와서 생명을 전하지 못하였으리라.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마음에 신 맛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생기고 높은데 오른 것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간지럽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벼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 것이 온 것도 아니니, 네 몸뚱이가 반드시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입에 침이 어떻게 신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 생기느냐. 그러니 너는 알아야 한다. 네 그 현재의 색신(色身)은 第一의 굳어진 망상이니라.


높은 데 오른다는 생각이 능히 네 몸뚱이로 하여금 참으로 간지러움을 받게 하는 것인즉 수음(受陰)이 생김으로 인하여 색체(色體)를 능히 움직이는 것이니 네가 지금 순하면 좋고 거슬리면 해로운 두가지 작용을 第二의 허명(虛明)한 망상이라고 하느니라.


네 그 생각이 네 몸뚱이를 시키나니 몸이 생각의 종류가 아니라면 네 몸이 어떻게 생각에 따라서 부리는 바가 되어서 가지가지로 물상을 취하되 생각과 상응하느냐. 깨면 생각이요 자면 꿈이니 이건 곧 네 생각이 망정(妄情)으로 흔들리는 第三의 융통망상이라 하느니라.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지 않고 금방금방 모르는 동안에 옮기여서 손톱 발톱이 자라고 모발이 나며, 기운이 줄고 얼굴이 쭈그러지고 해서 밤낮으로 대사(代謝)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난다야, 이것이 만약 네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몸이 변천하며, 반드시 그것이 참너라면 어찌하여 그것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냐. 네 그 행음(行陰)이 잠시도 머물지 않는 것을 第四의 깊고 은밀한 망상이라고 하느니라.


또 네 그 정미롭고 밝은 것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것을 항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몸에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생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실로 순수하고 참된 것이라면 망녕된 버릇을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이 일찍이 한 기이한 것을 본 뒤로 몇해를 지내는 동안에 기억하는지 잊었는지 모르다가 뒤에 문득 그걸 다시 보면 기억이 완연하여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 정미롭고 맑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 가운데도 생각 생각에 훈습(熏習)을 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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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야, 마땅히 알라. 이 맑고 고요함이 참이 아니니 그건 마치 아주 급히 흐르는 물이 보기에는 고요한 듯하나 흐름이 빨라서 보이지 않는 것이지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만약 그것이 생각의 본원(本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생각의 훈습(熏習)을 받겠느냐. 네가 육근을 서로 통용(通用)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망상은 없어질 때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네가 현재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가운데 훈습하는 기미를, 맑고 고요한 속에 있는 第五의 허무하고 뒤바뀐 미세한 정상(精想)이라고 하느니라.


아난다야, 이 다섯가지 수음(受陰)은 다섯가지 망상으로 된 것이니라.

네가 이제 인계(因界)의 얕고 깊음을 알고자 하느냐. 색(色)과 공(空)은 색음(色陰)의 변제(邊際)요, 촉(觸)과 이(離)는 수음(受陰)의 변제며, 기억(記憶)과 망실(忘失)은 상음(想陰)의 변제요, 멸과 생은 행음(行陰)의 변제며, 맑고 고요한데 들어가고 맑고 고요한데 합하는 것은 식음(識陰)의 변제니라.


이 오음(五陰)이 원래 중첩하여 생겼나니, 생(生)은 식(識)을 인하여 있고 멸(滅)은 색으로부터 없어지느니라. 이치로는 대번에 깨달을 수 있어서 깨달음을 따라서 사라지지만, 현상면에 있어서는 갑자기 없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차례로 없어지는 것이니 내가 이미 겁바라 수건의 매듭으로 보였거늘 무엇을 몰라서 다시 묻느냐.


너는 이 망상의 근원에 대하여 마음으로 통달하고 말법시대에 수행하는 사람에게 전하여서 허망함을 알아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열반이 있음을 알려서 삼계(三界)에 애착함이 없도록 하여라.」


유 통 분


아난다야, 만약 어떤 사람이 시방에 두루한 허공에 칠보를 가득히 채운 것을 수 없는 모든 부처님께 받들어 공양하여서 마음에 그냥 지내치는 일이 없이 한다면 이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께 보시를 올린 인연으로 복을 얻음이 얼마나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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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가 대답하였다.


허공이 다함이 없고 진보도 한이 없나이다. 옛적에 어느 중생은 부처님께 칠전(錢)을 보시하고도 죽어서 전륜왕이 되었나이다. 그런데 하물며 허공을 다하고 불세계에 충만한 진보로 보시하옵는다면 겁이 다하도록 헤아려도 미칠 수 없나이다. 이 복이 어찌 끝이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허망함이 없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몸으로 四중죄와 十바라이죄를 갖추어 짓고, 순식간에 이곳과 다른곳의 아비지옥을 낱낱이 돌고 내지 시방의 무간지옥까지도 빠짐없이 돌아야 할 것이로되 능히 한 생각만 이 법문을 가져다가 말법의 시대에 배우는 자에게 가르치면 이 사람의 죄장(罪障)이 즉시로 소멸하고 그 받아야 할 지옥의 고인(苦因)이 안락국으로 변할 것이니 이 복은 앞의 보시한 사람보다 백배 천배 천만억 배로도 내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아난다야, 만약 어느 중생이 능히 이 경을 외우고 능히 이 주문을 지니면 내가 아무리 겁이 다하도록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느니라. 나의 가르침에 의하여 말하고 나의 가르침과 같이 도를 수행하면 곧 보리를 성취하고 다시 마의 장난이 없으리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하늘 · 사람 · 아수라 및 모든 타방의 보살과 二승과 성선동자와 처음 발심한 大력귀신들도 다 크게 기뻐하면서 절하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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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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