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큰스님 말씀

선가(禪家)의 설(식과 심의식)

근와(槿瓦) 2015. 12. 1. 18:44

선가(禪家)의 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항상함(恒)과 사량(審)은 식 가운데 네 가지의 분별이 있느니라. 제8식은 항상하면서 사량이 없으니 나(我)에 집착하지 않아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요, 제6식은 사량하면서 항상하지 않으니 나에 집착하여 끊어짐이 있기 때문이요, 전5식은 항상하지도 않고 사량하지도 않으니 나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요, 제7식은 항상하면서 또 사량하니 나를 집착하여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니라.

恒之與審이 識中에 有四句分別하니라. 第八識은 恒而非審이니 不執我하여 無問斷故요 第六識은 審而非恒이니 以執我有問斷故요 前五는 非恒非審이니 不執我故요 第七識은 亦恒亦審이니 以執我無問斷故니라.

 

항(恒)이란 식이 항상 상속하는 것을 말하고 심(審)은 사량분별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잠재적으로 사량분별하는 것과 드러나게 사량분별하는 것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8식 가운데 네 가지의 구별이 있습니다. 제8식은 항상하면서 사량이 없습니다(恒而非審). 나를 집착하지 않으나 그 작용하는 활동이 상속하여 끊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몸을 바꾸어서 다른 생사를 받게 될 때까지도 간단이 없습니다. 동시에 사량분별을 하지 않는데 그것은 순전히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6식은 제8식과 반대로 언제나 사량분별을 하지만 항상 계속되지는 않습니다(審而非恒). 붉은 것을 보면 붉은 데에 머물고, 검은 것을 보면 검은 데 머무르며, 어떤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일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연속되는 정신활동은 제8식이며, 6식은 시시각각으로 경계를 따라 간단이 있어 사량분별을 근본으로 삼으며 상속을 하지 않습니다.

 

전5식은 곧 눈 · 귀 · 코 · 혀 · 몸의 다섯 가지 식을 말하는데, 이 전5식은 항상하지도 않고 사량하지도 않습니다(非恒非審). 예를 들면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이 눈의 수정체에 어떤 사물이 비치는 그 순간을 전5식의 작용이라 하고, 거기서 푸른 것이라든지 붉은 것이라든지 그 무엇을 인식하게 될 때는 전5식의 영역이 아니며 의식의 영역에 속합니다. 즉 전5식의 활동은 순전히 무의식적인 것으로 사량분별이 없습니다. 또 7식이나 6식같이 연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물이 눈에 비칠 때는 있고, 비치지 않을 때는 없어서 완전히 끊어져버립니다. 제7식은 항상 상속하면서 또한 항상 사량하는데(亦恒亦審) 이것은 잠재적으로 제8식을 의지해서 항상 연속하며, 항상 연속한 가운데 잠재적으로 나(我)와 나의 것(我所) 등을 사량하고 있습니다.

 

현수스님같은 분은 ‘항상한다(亦恒)’하는 것은 제8식에다 붙여버리고 ‘사량한다(亦審)’하는 것은 제6식에 갖다 붙이면 제7은 따로 세울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우리의 정신상태를 분석해 보면 제7식을 따로 두는 것이 논리상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이 심 · 의 · 의식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마음을 물리치고 단박에 생김이 없는 지견의 힘에 들어가도다.

損法財滅功德은 莫不由斯心識이라 是以로 禪門은 了却心하고 頓入無生知見力이니라.

 

불법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제일 큰 방해물은 심 · 의 · 의식입니다. 선문에서는 공부하여 자성을 깨치는데 제일 방해되는 것이 제8아뢰야이니 이 아뢰야부터 제거해야 된다고 합니다. 선종에서는 지극히 미세한 제8아뢰야를 제8마계(第八魔界)라 규정합니다. 누구든지 공부를 아무리 잘하여 완전히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었다 해도 거기서 살아나지 못하면 제8마계에 떨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예전의 조사가 입을 모아 똑같이 말하는 소리입니다. 오매일여가 되고 완전한 무심경계에 들어갔다고 해도 선문에서는 이것을 제8마계라 부르며 견성이라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언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不疑言句 是爲大病)’이라 하여 근본적으로 배격했습니다. 그러한데, 제8식은 그만두고 제6의식의 사량분별 속에서 경계가 조금 바뀌고 어떠한 지견이 생겼다고 이것을 견성이라 알면 자기만 망할 뿐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남에게 가르치게 되어 자타가 모두 망하게 됩니다. 옛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은 언제나 구경각을 견성이라 하고 6식은 물론 제8아뢰야의 경계까지도 견성이 아니라 했는데, 의식분별이나 객진번뇌를 가지고 견성이라 주장하면 부처님 말씀이나 조사님 말씀과는 근본적으로 틀리는 비법(非法)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전 : 백일법문 상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