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큰스님 말씀

무념(無念)

근와(槿瓦) 2015. 12. 7. 18:39

무념(無念)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앞에서 무념을 말씀하셨는데 아직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념이란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어서 나머지 생각으로 구함이 없음이며, 모든 경계와 사물에 대하여 영영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무념이니라. 무념이란 참된 생각(眞念)을 이름함이니 만약 생각으로 생각을 삼는다면 곧 삿된 생각(邪念)이요 바른 생각(正念)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에게 육념(六念)을 가르치면 생각이 아님(非念)이다'라고 하나니,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邪念)이요 육념이 없으면 곧 참된 생각(眞念)이라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우리가 무념법(無念法) 가운데 머물러서 이와 같은 금색의 삼십이상을 얻어 큰 광명을 놓아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나니, 이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이 설명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머지 승(乘)들이 능히 알 수 있으리오'하였느니라. 무념을 얻은 사람은 육근(六根)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연히 모든 부처님 지견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법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 곳집이며 또 법의 곳집이라 하니 곧 능히 일체가 부처이며 일체가 법이니라. 왜냐하면 무념인 까닭이니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느니라.

 

돈오의 내용이 무념(無念)을 근본으로 하므로 무념을 완전히 성취하면 이것이 성불이고 견성이고 구경각이고 해탈이고 열반이라고 지금까지 많이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돈오의 근본 내용 전체를 다 알려면 무념의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이지 무념의 내용을 확실히 모를 것 같으면 「돈오요문」의 근본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무념에 대해서 설명을 더 하는 것입니다.

 

일체처(一切處)란 모든 장소 모든 공간을 말하는데 일체처라고 해서 장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또한 일체시 즉 모든 시간도 다 포함하는 것이니 일체처란 말 속에는 시간·공간의 의미가 다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념이란 일체처 일체시에 모든 무심함을 뜻합니다. 무심이란 주관적으로는 내 마음 속에 일체 망념이 다 떨어져서 청정무구하여 일체의 바깥 경계를 대할 때 물들지 아니하고 동요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안의 마음(內心)과 바깥의 경계(外色)가 함께 동요하지 않고 물들지 않음을 무념의 경계 무심의 경계라고 하는 것이니, 무심이 되면 팔풍에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체에 자유자재하므로 이것을 돈오라고 합니다. 무념이란 곧 선악도 버리고 시비도 버리고 유무도 버리고 모든 차별을 버린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것을 진념이라 하고 보리라고 하니 진여정념(眞如正念)을 말합니다. 그러나 무념이라고 해서 생각이 아무 것도 없는 목석과 같은 단멸공이 아니라 항사묘용이 원만구족하여 수용자재함을 말하는 것이니 진념이란 모든 망념을 떠난 진여대용을 말합니다.

 

육념(六念)이란 부처님을 생각(念佛)하고, 법을 생각(念法)하고, 승가를 생각(念僧)하고, 계율을 생각(念戒)하고, 보시를 생각(念施)하고, 하늘을 생각(念天)하는 여섯가지 생각을 말합니다. 다른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하늘을 생각한다고 하는 하늘이라는 것은 천상(天上)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하늘 가운데 하늘(天中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높은 곳, 다시 말하면 구경열반과(究竟涅槃果)를 말하는 것이지 천상(天上)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天上)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천상이란 업을 따라가서 나는 생멸법(生滅法)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육념(六念)이란 열반과(涅槃果)까지 말하는 것이지만 색계(色界)에서 보면 모두 생멸법입니다. 진실로 청정한 무념에서 볼 때는 모두가 생멸이지 실제의 진념(眞念)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진념을 성취하려면 부처란 생각도 버리고 법이라는 생각도 버리고 승이라는 생각도 버리고 계라는 생각도 버리고 보시라는 생각도 버리고 천상천하에 유아독존한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것도 버려서 조금이라도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념이란 세간법도 출세간법도 버리고 유위법도 무위법도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유위법은 버리고 무위법을 취하거나 세간법을 버리고 출세간법을 취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이고 육념이 없으면 진념인 것입니다.

 

'무념법 가운데 머물러서 금색의 삼십이상을 갖추어 큰 광명을 놓아서 시방세계를 다 비춘다'고 하는 것은 무념이란 부처님의 마음자리를 그대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 마음자리의 공덕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아무리 미래겁이 다하도록 설명한다 하여도 티끌만큼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을 누구에게 전해주려고 해도 전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부처님의 마음자리인 무념을 알 수 있느냐 하면 열심히 공부해서 모든 망념을 제거하여 진여본성을 확철히 깨쳐 돈오해야만 이 불가사의한 해탈경계를 알고 그 공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께서 이 경을 좇아서 나온다'하는 이 '경'은 진여자성 즉 무념을 말하는 것으로서, 부처님 말씀을 적어놓은 종이 조각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종이 조각에 쓴 글자만 '경'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마외도(邪魔外道)로 떨어져 불법을 영원히 모르고 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한 이 '경'을 알려면 무념을 깨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무념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지견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무엇을 좇아 세웁니까?"

"무념을 좇아서 세우니 무슨 까닭인가?

경에 이르기를 '머무름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비유컨대 밝은 거울과 같다'고 하였으니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남이니라. 왜냐하면 거울이 밝은 까닭에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배우는 사람의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에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아인심(我人心)이 없어져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한 까닭으로 능히 한량없는 지견이 나느니라.

 

돈오란 금생을 떠나지 않고 곧 해탈을 얻으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비유컨대 사자새끼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자인 것과 같으니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돈오를 닦을 때에 곧 부처님 지위에 들어 가느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순이 나서 그 봄을 여의지 않고 곧 어미 대나무와 같게 되어 함께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음이니, 왜냐하면 마음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출전 : 돈오입도요문론 강설(著 : 大珠慧海스님, 說 : 성철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