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구감

선가구감(1)

근와(槿瓦) 2013. 9. 29. 00:49

선가구감(1)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난 것도 아니며 죽음도 없었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주해

한 물건이란 무엇인고?

○ 옛 어른이 송(頌)하기를

「옛부처 나기 전에 뚜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

이것이 한 물건의 난 것도 아니며, 죽음도 없고, 이름 지을 길도, 모양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六祖) 스님이 대중에게 묻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이 알겠느냐?」

하매 신회 선사(神會禪師)가 곧 나와 대답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부처 성품이올시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懷讓禪師)가 숭산으로부터 와서 뵈오니, 육조가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할 때에 회양은 어쩔 줄 모르다가 8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가령 한 물건이라고 한대도 맞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맏아들 된 까닭이다.

 

삼교(三敎)의 성인(聖人)들이

모두 이 말에서 나왔느니라.

뉘라서 말하여 볼 사람이 있느냐?

눈썹이 빠질라.

 

풀이

○ : 일원상(一圓相)이라 하는데, 삼조 승찬(僧璨)대사의 신심명(信心銘)에,

   「허공같이 뚜렷하며, 모자랄 것도 없고, 남을 것도 없다.」라고 한 말이 있다. 마음이라거니 성품이라

      거니, 진리라거니, 도(道)라거니 하여, 억지로 이것저것 여러 가지로 이름을 붙였으나, 어떤 이름도

      맞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 그 참 모양을 바로 그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서 안과 밖이 없으며, 무궁한 시간에 사뭇 뻗쳐서 고금(古今)과 시종(始終)이 없고, 또한 크다 작다,

      많다 적다, 낮다 높다 시비할 수 없으며 거짓이다 망령되다 거룩하다 모든 차별을 붙일 길이 없는 것

      이므로, 부득이한 동그라미로써 그것을 표시하는 바이다. 이것을 좀 자세히 설명하기 위하여 혜충

     (慧忠)국사는 아흔 일곱 가지 그림으로써 가르쳐 보이기도 하였다. 그 전체를 바로 가르칠 수가 도저

      히 없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려고 한다면「입을 열기 전에 벌써 그르쳤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도는 알거나 알지 못하는 데에 있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다. 깨쳐서 부처가 된다고 하지마는, 깨친

      바가 있다면 부처가 될 수 없다. 그리하여,석가여래도 몰랐고 모든 조사들이 그 법을 전하거니 받

      거니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아는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을 다 뛰어 넘는 뜻이다. 불

      교의 목적은 부처님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부처가 되고, 부처에서까지 뛰어넘어야 하

      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원상의 이치를 철저하게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무슨 소용 있

      으랴?

 

가섭(迦葉) : 범음으로「마하아가아샤바」인데「가아샤바」는 성이요,「마하아」는「크다」는 말이니,

      많은 재산을 다 흩어 남을 주고, 부처님의 제자 되어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10대 제자 가운데도

      의(衣) · 식(食) · 주(住)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 정진하는 두타행(頭陀行)의 제일이었으며, 부

      처님의 의발(衣鉢)을 받은 상수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을 말할 때에는 그가 초

      조(初祖)가 된다.

 

육조(六祖) :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대사를 육조라

      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요, 지금 광동성 조경부 신흥에서 나서 세 살때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

      난하여 공부하지 못하고, 매일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스물 네 살 때에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 황매산에 가서 오조

      홍인(弘忍)대사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8개월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다가 오조가 법을 전하려

      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말도록

 

이라 하였는데 노 행자(盧行者)는

 

보리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  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 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하여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16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40여 명이 있었다. 당(唐)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원년

(713)에 76세로 입적하였다.

 

신회(神會) : 호북성 양양부 고씨(高氏)집에서 났다. 어려서 유교(儒敎)와 도교(道敎)의 글에 정통하더니,

                 후한서(後漢書)를 보다가 불교의 묘한 이치를 알고, 출가하여 경을 많이 숭상하였다. 처음엔

                 형주의 옥천사(玉泉寺)에 가서 3년 동안이나 신수(神秀)대사를 모시고 있다가, 그가 측천(

                 天)황후의 청을 받고 서울로 가게 되자 그의 지시로 육조의 법회로 갔다. 그 때의 나이가 13

                 세라기도 하고, 44세였다고도 한다. 육조의 법을 받은 뒤 낙양(洛陽)의 하택사에 있으며 육

                 조의 종지(宗旨)를 크게 드날려서 신수의 종지가 쓰러지게 되었다. 어사 노혁(盧奕)의 무고

                 로 여러 해 동안 귀양살이하였고, 안 녹산(安祿山)의 난에는 군비와 군수품을 많이 모집하여

                 나라에 바치었다. 790년에 93세로 입적하였는데 그의 저술은 현종기(顯宗記) 한 권, 신회어

                 록(神會語錄) 3권, 하택미결(荷澤微決) 한 권이 있다. 그의 문하에 유능한 이가 많아서 한동

                 안(1백 50년 가량) 하택종(荷澤宗)이 큰 세력을 떨치었다.

 

회양(懷讓)선사 : 섬서성 흥안부 두씨(杜氏)의 집에서 났다. 16세에 출가하여 육조의 법회에 가서 8년 만

                 에야 견성하여 그 법을 받고, 전후 15년 동안 모시고 지내다가 남악(南岳) 반야사(般若寺) 관

                 음대(觀音臺)에서 교화하니, 그 법을 받은 제자가 아홉 분이 있었다. 그 속에는 신라(新羅)의

                 본여(本如) 선사가 있다. 667년에 나서 744년에 입적하였다.

 

삼교(三敎)의 聖人 : 불교의 석가여래와 도교(道敎)의 노자(老子)와 유교(儒敎)의 공자(孔子)를 이름이다.

 

출전 : 선가구감(著 : 청허 서산대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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