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대반열반경(19)-190

근와(槿瓦) 2015. 11. 21. 21:57

대반열반경(19)-19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181 / 10007] 쪽

.......라. 마(摩, ma)는 보살들의 엄숙한 제도(制度)니, 대승의 대반열반이므로 마(ma)라 하느니라. 야(耶, ya)는 보살들이 간 데마다 중생들을 위하여 대승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야(ya)라 하느니라. 라(囉, ra)는 탐욕·성냄 ·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진실한 법을 말하므로 라(ra)라 하느니라. 가벼운 음 라(羅, la)는 성문승은 흔들리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대승은 편안하여 흔들리지 않음이라 하나니, 성문승을 버리고 위없는 대승을 부지런히 닦으므로 라(la)라 하느니라. 화(和, va)는 여래 세존께서 중생들에게 큰 법비를 내림이라 하나니, 세간의 주문 · 술법의 경전이라, 그러므로 화(va)라 하느니라. 사(賖, a)는 세 가지 화살을 멀리 떠남이니, 그러므로 사( a)라 하느니라. 사(沙, sa)는 구족하다는 뜻이니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곧 온갖 대승 경전을 듣고 지니는 것이므로 사(sa)라 하느니라. 사(娑, sa)는 중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며 마음을 즐겁게 함이니, 그러므로 사(sa)라 하느니라. 하(呵, ha)는 마음이 즐거움이라 하나니, 신기하게 세존은 온갖 행을 여의었고, 이상하게 여래께서 반열반에 드시므로 하(ha)라 하느니라. 라(羅, lam)는 마군이란 뜻이니, 한량없는 마군들도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깨뜨리지 못하므로 라(lam)라 하며, 또 라(lam)는 내지 일부러 세상을 따라서 부모와 처자를 두는 것이므로 라(lam)라 하느니라. 로(魯, r) · 류(流, r) · 로(廬, ) · 루(樓, ) 이 네 글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 · 교법 · 승가와 대법(對法)이니라. 대법이라 함은 제바달(提婆達)이 일부러 승단을 파괴하며 가지가지 형상을 변화시킴과 같은 것이니 계율을 제정하기 위한 것이므로 지혜 있는 이는 그렇게 알고 두려운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이것은 세상을 따르는 행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로(r) · 류(r) · 로( ) · 루( )라 하느니라.

 

                                                                                                                  [182 / 10007] 쪽

숨을 들이키는 소리는 혀가 코를 따르는 소리이다. 긴 소리, 짧은 소리, 뛰어나는 소리 따위로 음에 따라서 뜻을 해석함이, 모두 혀와 이로 인하여 차별이 있나니, 이런 글자들이 중생의 구업(口業)을 깨끗하게 한다. 중생의 불성은 그렇지 않아서 문자를 빌린 뒤에야 깨끗하여지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성품이 본래 깨끗한 것이므로 비록 5음 · 6입 · 18계에 있더라도 5음 · 6입 · 18계와 같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중생들은 모두 귀의하여야 하며, 보살들도 불성인 인연으로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고 차별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반쪽 글자가 모든 경서(經書)와 기론(記論)과 문장의 근본이 되느니라.  또 반쪽 글자의 뜻은 모든 번뇌를 말하는 근본이므로 반쪽 글자라 하고, 완전한 글자는 모든 선한 법을 말하는 근본이니, 마치 세상에서 나쁜짓 하는 이를 반쪽 사람이라 하고, 선한 일하는 이를 완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 같으니라. 이와 같이 모든 경서와 기론은 다 반쪽 글자로 근본을 삼거니와, 만일 여래와 바른 해탈도 반쪽 글자에 들어간다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문자를 여읜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온갖 법에 거리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참으로 해탈을 얻었느니라. 어떤 것을 가리켜 글자의 뜻을 안다고 하는가.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반쪽 글자를 없앨 줄을 안다면 이는 글자의 뜻을 안다고 할 것이요, 만일 반쪽 글자만을 따르는 이는 여래의 성품을 모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글자가 없는 뜻이라 하는가. 선하지 못한 법을 친근하여 닦는 이는 글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며, 또 글자가 없는 것은 비록 선한 법을 친근하여 닦으면서도 여래의 항상하고 무상함과, 늘 있고 늘 있지 않음과, 법보 · 승보와 계율과 잘못 된 계율과, 경전과, 잘못된 경전과, 마군의 말과 부처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렇게 분별할 줄을 모르는 이는 글자가 없는 뜻을 따른다 하느니라. 내가 지금 글자가 없는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하였으니,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 반쪽 글자를 여의고 완전한 글자를 잘 알아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마땅히 글자의 수를 잘 배우겠나이다. 저희들이 지금 위없는 스승을 만나서 여래의 은근한 가르침을 받았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칭찬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바른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

 

                                                                                                                  [183 / 10007] 쪽

라."

 

14. 새 비유[鳥喩品]

이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새에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린제(迦隣提)요 다른 하나는 원앙이다. 함께 다니면서 서로 떠나지 아니하나니, 괴롭고 무상하고 내[我]가 없는 법도 그와 같아서 서로 여의지 못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괴롭고 무상하고 내가 없는 법이 저 원앙과 가린제새 같다 하나이까?" "선남자야, 다른 법이 괴로움이요, 다른 법이 낙이요, 다른 법이 항상함이요, 다른 법이 무상이요, 다른 법이 나요, 다른 법이 내가 없음이니, 마치 벼가 삼이나 보리와 다르고, 삼과 보리는 또 콩 · 조 · 감자와 다른 것 같으니라. 이런 여러 가지가 움 트고 싹 나고 내지 꽃과 잎이 모두 무상하거니와, 열매가 익어 사람이 사용할 적에는 항상하다 하나니, 왜냐 하면 성품이 진실한 까닭이니라." "세존이시여, 이런 것들이 만일 항상하다면 여래와 같나이까?" "선남자야, 그대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만일 여래가 수미산과 같다 하더라도, 겁이 무너질 때[懷劫]에 수미산은 무너지지만, 여래가 어찌 무너지겠느냐. 선남자야, 그대는 이런 생각을 가지지 말라. 모든 법이 열반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항상한 것이 없나니, 세간 법으로 말하므로 열매가 항상하다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나이다."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내지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면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할 것이며, 이 경을 듣기만 하면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 같아서 모든 인간 사람 천상 사람을 이익케 하느니라.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분명히 앎으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암마라 나무가 꽃이 처음 필

 

                                                                                                                   [184 / 10007] 쪽

적에는 무상하다 하지만 열매가 익어서 이익함이 많으면 항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적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하거니와, 이 경을 듣고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곧 모든 세간 사람 천상 사람을 이익케 하나니,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알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금의 광석이 녹을 적에는 무상한 것이요, 녹아서 순금이 되면 이로움이 많으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그와 같이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적에는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하지만 이 경을 듣고 나서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모든 세간사람 천상사람을 이익케 하느니라.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아는 것이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참깨가 기름을 짜기 전에는 무상하다 하지만, 짜서 기름이 되면 이익함이 많으므로 항상하다 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적에는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하지만 이 경을 듣고 나서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모든 인간 사람 천상 사람을 이익케 하나니,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분명히 아는 것이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여러 가지 흐르는 물이 모두 바다로 가는 것같이, 모든 경전의 선정 삼매를 닦으면 모두 대승 대열반경으로 돌아가나니, 왜냐 하면 끝까지 불성이 있음을 잘 말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다른 법이 항상하고 다른 법이 무상하며 내지 내가 없는 것도 그와 같다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근심하고 슬퍼하는 독한 살을 이미 여의었나이다. 근심하고 슬퍼함을 하늘이라 하지만 여래는 하늘이 아니며, 근심하고 슬퍼함을 사람이라 하지만 여래는 사람이 아니며, 근심하고 슬퍼함을 25유라 하지만 여래는 25유가 아니어서, 여래는 근심이나 슬퍼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근심과 슬픔이 있다고 하오리까?" "선남자야, 무상천(無想天)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만일 생각이 없다면 수

 

                                                                                                                  [185 / 10007] 쪽

명이 없을 것이요, 수명이 없으면 어찌하여 5음 · 6입 · 18계가 있으리요. 이러한 이치로 무상천의 수명이 머무는 데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나무의 신[樹神]이 나무를 의지하여 있거니와, 결정코 가지에 의지하거나 마디에 의지하거나 줄기에 의지하거나 잎에 의지하였다고 말할 수 없으며, 비록 일정한 곳이 없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나니, 무상천의 수명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깊고 깊어 알기 어려운 것이니, 여래가 진실로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뇌가 없지만, 중생에게 대자비심을 일으키어 근심 · 슬픔이 있는 듯이 나타내어 중생들 보기를 라후라처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무상천들이 가진 수명은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요, 다른 이는 미칠 수 없으며, 내지 비상비비상천도 그와 같으니라. 가섭이여, 여래의 성품은 청정하고 물들지 않음이 화신(化身)과 같거늘, 어찌하여 근심 · 슬픔 · 괴로움· 시끄러움이 있겠느냐. 만일 여래에게 근심 · 슬픔이 있다면 어떻게 모든 중생을 이익하고 부처님 법을 널리 선포하며, 없다고 하면 어떻게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한다 하겠느냐. 만일 라후라처럼 평등하게 보지 않는다면 이런 말은 곧 허망한 것이니라. 이러한 뜻으로 선남자야, 부처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으며 법도 헤아릴 수 없으며 중생의 불성도 헤아릴 수 없으며 무상천의 수명도 헤아릴 수 없나니, 여래가 근심이 있는지 근심이 없는지는 부처님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허공에는 집이나 티끌이 머물러 있을 수 없지만, 만일 집이 허공을 인하여 머물지 않는다 하면 옳지 않느니라. 이런 이치로 집이 허공에 머물렀다 허공에 머물지 않았다 할 수 없나니, 범부들은 집이 허공에 머물렀다 하지만, 허공은 실로 머물 데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성품이 머물 수 없는 연고니라. 선남자야, 마음도 그와 같아서 5음 · 6입 · 18계에 머물렀다거나 머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무상천의 수명도 그러하고, 여래의 근심 슬픔도 그러하니, 만일 근심 슬픔이 없다면 어떻게 중생을 평등하게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 한다고 말하며, 만일 근심 슬픔이 있다면 어떻게 성품이 허공과 같다고 말하겠느냐. 선남자야, 마치 환술쟁이가 가지각색 궁전을 변화시켜 만들고 죽이고 기르고 얽매고 놓아주며, 또 금 · 은 · 폐유리 · 보물과 숲과

 

                                                                                                                   [186 / 10007] 쪽

나무들을 만들어도 모두 참된 성품이 없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세상을 따라서 근심 슬픔을 나타내지만, 진실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이미 대반열반에 들었거늘 어찌하여 근심 · 슬픔 · 괴로움 · 시끄러움이 있겠느냐. 만일 여래가 열반에 들었으니 이것이 무상하다 하면 이 사람은 근심 슬픔이 있는 것이요, 만일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고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하면 이 사람은 근심 슬픔이 없는 줄을 알겠거니와, 여래가 근심이 있고 없는 것은 알 사람이 없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하품 사람은 하품 법만 알고 중품 · 상품 법은 모르며, 중품 사람은 중품만 알고 상품은 알지 못하거니와, 상품 사람은 상품도 알고 중품 · 하품도 아는 것같이 성문 · 연각도 그와 같아서 자기의 처지만 알고 있다.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자기의 처지와 다른 이의 처지까지 알므로 여래를 걸림없는 지혜라 하는 것이며, 환술 같은 변화를 나타내어 세상을 따르는 것을 범부의 육안으로는 진실하다 하지만, 여래의 걸림없고 위가 없는 지혜를 알고 자 함은 옳지 아니하며, 근심이 있고 없는 것은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으로 다른 법은 내가 있고 다른 법은 내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원앙과 가린제의 성품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 법은 마치 원앙이 함께 행하는 것과 같나니, 가린제와 원앙은 여름에 물이 불으면 높은 곳을 가리어서 새끼를 두고 기르며, 그런 뒤에 본래대로 편안히 노니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바른 법에 머물게 함은, 저 원앙이나 가린제가 높은 곳을 가리어 새끼를 두는 것 같나니, 여래도 그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할 일을 마치고는 대반열반에 들어가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다른 법은 괴롭고 다른 법은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모든 행은 괴로움이요 열반은 즐거움이니 제일 미묘하여 모든 행을 무너뜨리는 까닭이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으로서 열반을 얻는 이를 제일 즐거움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야, 내가 말한 것 같이 모든 행이 화합한 것을 늙고 죽음이라 하느니라."

 

                                                                                                                  [187 / 10007] 쪽

삼가하고 놀지 말라. 이런 것이 감로니라. 방일하고 안 삼가면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하느니라. 방일하지 않은 이는 안 죽을 데 얻게 되고 방일하게 노는 이는 죽을 길만 가게 되리. 방일함은 함이 없는 법이요, 함이 있는 법은 제일 괴로운 것이며, 방일하지 아니함은 열반이니 열반은 감로라 하여 제일 즐거움이니라. 모든 행을 따라감은 죽는 것이니 제일 괴로움을 받고, 열반에 나아가면 죽지 않는 것이니 가장 훌륭한 낙을 받느니라. 만일 방일하지 아니하면 비록 모든 행을 모으더라도 이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죽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몸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방일이요 어떤 것이 방일하지 않음인가. 성인 아닌 범부는 방일이라 하나니, 항상 죽는 법이요, 세상에서 뛰어난 성인은 방일하지 않으므로 늙고 죽음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제일가는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에 드는 까닭이니, 이런 이치로 다른 법이 괴로움이요 다른 법이 즐거움이며, 다른 법이 나이고 다른 법이 내가 없음이라 하였느니라. 사람이 땅에서 공중을 쳐다볼 때 새가 날아간 자리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선남자야, 중생도 그러하여 하늘눈이 없고 번뇌 속에 있어서 스스로 여래의 성품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무아의 비밀을 말하였다. 왜냐 하면 하늘눈이 없는 자는 참 나를 알지 못하여 제멋대로 나라는 것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번뇌들로 인하여 짓는 함이 있는 것은 무상하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법은 항상되고 다른 법은 항상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정진하는 날쌘 사람

 

                                                                                                                  [188 / 10007] 쪽

산꼭대기에 있게 되면 평지나 넓은 들에 있는 범부들을 항상 보게 되리. 위가 없이 훌륭한 지혜 궁전 올라가면 제 근심을 소멸하고 중생 근심도 마냥 보리. 여래는 한량없는 번뇌를 모두 끊고 지혜의 산에 있으면서, 중생들이 한량없는 번뇌 속에 항상 있는 것을 보느니라." "세존이시여, 게송으로 말씀하신 이치가 그렇지 않으니, 왜냐 하면 열반에 들어가면 근심도 기쁨도 없거늘, 어찌하여 지혜의 궁전에 올라가며, 또 어떻게 산 위에 있으면서 중생을 보리까?" "선남자야, 지혜의 궁전이라 함은 열반을 말함이요, 근심이 없는 이는 여래요, 근심이 있는 이는 범부니, 범부는 근심하는 것이므로 여래는 근심이 없느니라. 수미산 꼭대기는 바른 해탈을 말함이요, 정진함은 수미산이 흔들림이 없음에 비유하고, 평지는 함이 있는 행이니, 모든 범부들이 평지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행을 짓느니라. 지혜란 것은 바른 깨달음을 말함이니, 유(有)를 여의고 항상 머물기 때문에 여래라 하느니라. 여래는 한량없는 중생들이 항상 모든 유의 독한 살에 맞았음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여래는 근심이 있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께서 근심과 슬픔이 있다 하오면 등정각(等正覺)이라 할 수 없겠나이다." "가섭보살이여, 모두 인연이 있는 것이니, 교화를 받을 만한 중생이 있는 곳을 따라서 그 가운데 여래가 태어나는 것이며, 비록 태어나더라도 실로는 나는 일이 없으므로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가린제나 원앙 등의 새와 같다고 하느니라."

 

                                                                                                                  [189 / 10007] 쪽

대반열반경 제 9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15. 달 비유[月喩品]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마치 사람들이 달이 뜨지 않음을 보고는 달이 없어졌다고 말하면서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달의 성품은 참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며, 다른 지방에 달이 뜰 때 그 지방 중생들이 달이 떴다고 하지만 달의 성품은 참으로 나는 일이 없음 같으니, 왜냐 하면 수미산이 가리워서 나타나지 못할지언정 달은 항상 있는 것이어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니라. 여래 · 응공 · 정변지도 그와 같아서 여래가 삼천대천세계에 나타나 혹 염부제에서 부모를 가지게 되면 중생들은 말하기를 염부제에 나셨다 하고, 혹 염부제에서 일부러 열반을 나타내면 여래의 성품은 진실로 열반이 없지만 중생들은 모두 여래가 참으로 열반에 들었다 함이 비유컨대 달이 없어졌다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성품은 나고 없어짐이 없건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났다 없어졌다 하는 듯이 보이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여기서 보름달일 적에는 다른 곳에서는 반달을 보고, 여기서 반달일 적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름달을 보고는 모두 초하루다 하여 초승이란 생각을 가지고 달이 둥글어진 것을 보고는 보름이라 하여 보름달이란 생각을 냄과 같으니, 달의 성품은 이지러지거나 둥글어지는 일이 없고 수미산으로 인하여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염부제에서 혹 처음 나는 것을 보이기도 하고 혹 열반에 드는 것을 보이기도 하나니, 처음 나는 것은 초하루 달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아기가 처음 났

 

                                                                                                                  [190 / 10007] 쪽

다 하고, 일곱 걸음을 걷는 것은 초이틀 달과 같고, 혹 글방에 들어가는 것은 초사흘 달과 같고, 출가함을 나타내는 것은 여드레 달과 같고, 미묘한 지혜의 광명을 놓아 한량없는 중생의 마군을 깨뜨리는 것은 보름달과 같으며, 혹 32상과 80종호를 나타내어 스스로 장엄하다가 열반을 나타내는 것은 월식함과 같거든, 중생들의 보는 것이 한결같지 아니하여 혹은 반달로 보고 혹은 보름달로 보고 혹은 월식으로 보지만, 달의 성품은 진실로 늘고 줄고 월식되 는 일이 없고, 언제나 둥근 달인 것같이, 여래의 몸도 그와 같으므로 항상 머물러 있고 변역하지 않는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보름달이 모든 곳에 비칠 적에, 간 데마다 도시나 시골에나 산 · 구렁 · 강물 · 우물 · 못 · 물그릇에 모두 나타나거든, 모든 중생이 백 유순이나 백천 유순 길을 갈 적에, 달이 항상 따라오는 것을 보고는, 어리석은 범부들은 허망한 억측을 내어 말하기를, '내가 본래 아무 도시의 집에서 이 달을 보았는데 이제 이 못에서도 보니 이것이 본래 보던 달인가, 그 달과 다른 달인가' 하여 제각기 생각을 달리하며 달의 형상이 크고 작은 것도, 혹 은 소줏고리와 같다 하고 혹은 수레바퀴와 같다 하고 혹은 49 유순과 같다 하며 모든 사람이 달의 광명을 보지만, 혹은 둥글기가 쟁반과 같다 하여, 달은 본래 하나이건만 여러 중생들이 제각기 달리 보는 것과 같나니, 선남자야, 여래도 그러하여 세상에 나타나거든, 어떤 하늘 사람이나 세상 사람은 여래가 지금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축생들은 여래가 지금 자기의 앞에 있는 줄로 생각하며, 귀머거리나 벙어리는 여래를 볼 적에 귀머거리나 벙어리 같다고 하며, 여러 중생들의 말과 음성이 제각기 다르거든, 모두 생각하기를 여래가 자기네 말과 같은 말을 한다고 하며, 또 각각 자기의 집에 와서 자기네의 공양을 받는다 하며, 어떤 중생은 여래의 몸이 엄청나게 크다고 보기도 하고, 대단히 작다고 보기도 하며, 어떤 이는 여래가 성문의 모양이라 보고, 혹은 연각의 모양이라 보며, 또 외도들은 여래가 지금 자기네의 도에 들어와서 도를 배운다 생각하고, 어떤 중생은 여래가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 났 다고 생각하거니와, 여래의 참 성품은 달과 같아서 곧 법신이며 나고 없어짐이 없는 몸이건만, 방편으로 나타내는 몸이 세상을 따르느라고 한량없는 본래 업의 인연을 보이는 것이어서, 간 데마다 태어나는 줄로 보임이 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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