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長)아함경, 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22)-220

근와(槿瓦) 2015. 11. 6. 12:38

중아함경(22)-22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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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인하여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 따위의 가해를 받는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하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하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일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땅히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 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닐며, 이렇게 2 3 4방과 4유 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그 비구는 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을 비유하면 마치 갓 시집온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볼 적에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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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탐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치 재목과 진흙과 물풀로써 허공을 덮으면 집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처럼,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몸도 그와 같아서 힘줄과 뼈와 피부와 살과 피로 허공을 싸면 곧 몸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眼處)가 무너지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안의 안처와 빛깔, 안식이 바깥 빛깔을 알면 이것은 색음(色陰)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요, 상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思陰)이요, 식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識陰)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왜냐 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5성음(盛陰)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 상성음(想盛陰) 행성음(行盛陰) 식성음(識盛陰)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內]의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가 무너지고 바깥의 법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의식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의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법이 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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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안의 의처와 법과 의식이 바깥의 색법을 알면 이것은 색음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요, 상(想)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思)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이요, 식(識)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왜냐 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5성음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 각성음 상성음 행성음 식성음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 과거 미래 현재의 5성음을 싫어하며, 싫어한 후에는 곧 욕심이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면 해탈하며, 해탈하면 해탈을 알게 되어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존자 사리자가 이와 같이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정행설법(正行說法)이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라고 하는 것으로서 널리 포섭하고[廣攝] 두루 관찰하며[廣觀], 분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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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分別] 드러내며[發露], 믿음을 열고[開仰] 시설(施設)하며, 나타내 보이고[顯示] 나아가게 한다[趣向].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 무소착(無所著) 등정각(等正覺)들께서도 또한 이 정행설법이 있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서 널리 포섭하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했다. 미래의 모든 여래 무소착 등정각들께서도 또한 이 정행설법이 있을 것이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서 널리 포섭하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할 것이다. 지금 나 현재의 여래 무소착 등정각도 또한 이 정행설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서 널리 포섭하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한다. 사리자 비구는 총명한 지혜 신속한 지혜 민첩한 지혜 예리한 지혜 넓은 지혜 깊은 지혜 고통에서 벗어나는 지혜 환히 아는 지혜 변재의 지혜가 있다. 사리자 비구는 진실한 지혜를 성취했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면, 사리자 비구는 능히 남을 위하여 더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사리자 비구는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자세히 가르쳐 주고 두루 보여 주며, 분별해 주고 드러내 주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할 때에, 한량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사리자 비구는 능히 바른 소견으로써 사람을 인도하고, 목건련 비구는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최상의 진제(眞際)에 서게 하나니, 이른바 번뇌[漏]가 완전히 다한 자들이다. 사리자 비구는 모든 범행을 나게 하는 것이 마치 생모(生母)와 같고, 목건련 비구는 모든 범행을 자라게 하는 것이 마치 양모(養母)와 같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자는 마땅히 사리자와 목건련 비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공경하고 예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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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하면 사리자와 목건련 비구는 모든 범행자를 위하여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다. 이에 존자 사리자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오셨다. 이른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자세히 가르치시고 두루 보이시며, 분별하고 드러내시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시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하신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習聖諦 : 苦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남[生]은 괴로움이요 늙음은 괴로움이며, 병은 괴로움이요 죽음은 괴로움이며, 원수와 만남도 괴로움이요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간략하게 줄여서 5성음(盛陰)이 괴로움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남[生]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남이란 이른바 저 중생과 그리고 저러한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생기면 생겨나고 나오면 나오게 되며, 성립되면 성립되게 되어 5음(陰)을 일으킨 뒤에는 명근(命根 : 목숨)을 얻는다. 이것을 남[生]이라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남이 괴로움이다라고 하는 말은 이른바 중생은 태어날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온몸이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온 마음이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온몸과 마음이 다 고통을 느낀다. 몸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뜨거움을 느낀다.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뜨거움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또한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뜨거움을 느낀다. 몸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으로 다 느낀다. 마음도 열 번뇌 근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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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또한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여러 현자들이여, 남[生]이 고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 고통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란 이른바 이 모든 중생과 저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늙어지면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며 젊음은 날로 쇠해진다. 허리는 굽고 다리는 휘어지며, 몸은 무겁고 상기병에 걸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늘어져 주름살은 마치 얽은 것 같으며, 모든 감각기관들도 다 낡고 얼굴빛도 추악해진다. 이것을 늙음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 고통이라고 말한 것은 중생들이 늙을 때에는 몸이 다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고통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병이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질병이란 이른바 두통 눈병 귓병 콧병 낯병 입술병 잇병 혓병 잇몸병 목병 천식 기침병 구토 후비(喉痺) 지랄병 등창 경일(經溢) 피가래 열병 여윔병 치질 이질 따위이다. 만일 이러한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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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병이 갱락촉에서 생겨 마음을 떠나지 않고 몸 속에 있으면 이것을 병이라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병의 고통이란 이른바 중생이 앓을 때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뜨거움은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여러 현자들이여, 병이 괴로움이라고 한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죽음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죽음이란 이른바 저 중생과 저러한 중생의 무리들은 목숨을 마치게 되어 있어 항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죽으면 흩어져 사라지고, 목숨이 다하면 부서지고 명근이 닫긴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죽음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중생은 죽을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 번뇌 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죽음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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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현자들이여, 원수나 미워하는 것을 만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원수나 미운 것을 만난다는 것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안처(眼處)와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함께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사귀고 가까이하게 되며 함께 어울리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와 같이 외처(外處)의 갱락(更樂) 각(覺)상(想) 사(思) 애(愛)도 또한 그와 같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에게는 실로 6계(界)가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지계(地界)와 수계(水界) 화계(火界) 풍계(風界) 공계(空界) 식계(識界)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함께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사귀고 가까이하게 되며 함께 어울리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을 원수와 미운 것을 만나는 것이라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원수나 미운 것을 만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은 원수를 만날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으로 다 고통을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원수와 미운 것을 만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이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사랑하는 안처와 이처 비처 설처 신처 의처가 그것이다. 이런 것들이 달라지고 흩어져 서로 호응하지 못하게 되며 서로 떠나 모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며 화합하지 못하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와 같이 외처의 갱락 각 상 사 애도 또한 그와 같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에게는 실로 6계(界)가 있으니, 사랑하는 지계와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가 그것이다. 이런 것들이 달라지고 흩어져 서로 응하지 못하게 되며 서로 떠나 모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며, 가까이하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게 되면 괴로움이 된다. 이것을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

 

                                                                               [219 / 10006] 쪽

은 이별할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이른바 중생은 나는 법[生法]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나는 법을 떠나지 못한다. 자신[我]을 나지 않게 하고자 해도 그것은 실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늙는 법 죽는 법 시름하는 법도 또한 그러하다. 걱정하고 슬퍼하는 법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걱정하고 슬퍼하는 법을 떠나지 못한다. 자신을 걱정하고 슬퍼하지 않게 하고 싶어도 이 또한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괴로운 것으로써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고 여겨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괴로운 것으로서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면, 이것을 바꾸어 사랑할 만한 것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즐거운 것을 가지고 사랑할 만한 것이라 여겨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즐거운 것이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이것을 항상 오래 있게 하여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사상(思想)은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고 여겨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사상이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는 것이라면, 이것을 바꾸어 사랑할 만한 것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사상을 사랑할 만한 것이라 여겨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사상을 가지고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을 항상 오래 머물러 변하지 않는 법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

 

                                                                               [220 / 10006] 쪽

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간략하게 줄여 5성음(盛陰)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른바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 상성음(想盛陰) 행성음(行盛陰) 식성음(識盛陰)이 그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5성음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과거에도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였고, 미래에도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일 것이며, 현재에도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참된 진리로서 헛되지 않고 진여(眞如)에서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뀌지도 않는 참된 진리로서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如是諦)에 부합된다. 성인이 가진 것이요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본 것이요 성인이 깨달은 것이며, 성인이 얻은 것이요 성인이 바르게 두루 깨친 바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애의 발생과 괴로움의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라고 하는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안처와 이처 비처 설처 신처 의처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애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습(習)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내가 이와 같이 이 법을 알며,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환히 알며, 이와 같이 자세히 보고 이와 같이 깨달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을 애의 발생과 괴로움의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만일 처자 노비 하인 권속 토지 가옥 점방 이자가 불어나는 재물 따위를 사랑하고,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하여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습(習)이라 한다.' 그는 이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를 안다. 이와 같이 외처(外處)의 갱락 각 상 사 애도 또한 이와 같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6계(界)가 있으니, 지계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만일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습(習)이라 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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