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큰스님 말씀

중도(中道)

근와(槿瓦) 2015. 10. 23. 00:35

중도(中道)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김병용이 봉암사에 도착한 것은 저녁공양이 막 끝난 시각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원주스님이 늦은 시간에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하여 물었다.

"성철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성철스님이 분명 이 절에 계십니까."

 

"계시긴 합니다만, 막 공양을 끝낸 시간이라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처사님께서는 공양 드셨습니까?"

"서울에서 내려오느라 바삐 서두는 바람에 아직 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저런, 이쪽으로 오십시오."

 

원주스님은 김병용을 채공간 옆의 대중방으로 안내한 후 밥상을 차려 내왔다. 식은 보리밥에 열무김치가 전부였으나 허기진 김병용은 단숨에 물에 말아 밥 한 그릇을 비워 냈다.

 

"서울서 오셨다면, 우리 스님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이름만 듣고 찾아왔습니다."

 

"이름만 듣고? 연세도 많으신 처사님께서 스님에게 간절한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스님의 도가 높다는 소문을 듣고 길을 물으러 왔습니다."

 

"우리 스님 아주 엄하신 분입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설마 만나 뵙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요."

"미리 겁내실 것은 없습니다."

 

원주스님은 웃으면서 앞장을 섰다. 성철스님은 저녁공양 후 대중선방 앞의 작은 방에서 혼자 쉬고 있었다. 방문 앞에서 원주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김병용에게 일렀다.

"철스님 앞에 나가시면 삼배를 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알고 계십니까?"

 

처음듣는 얘기였다. 그러나 듣고 보니 그것은 당연히 그리해야 할 도리였다. 불, 법, 승은 삼보이다. 따지고 보면 삼보는 일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님들은 최상승의 도를 닦아 이를 중생들에게 가르치면서도 신분상으로는 천민취급을 받아왔다. 가르침을 받는 신도들이 오히려 스님들을 부리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그제야 원주스님은 안심이 되는 듯 방문 앞에 다가서서 낮은 목소리로 기척을 했다.

"스님, 서울에서 신도 한 분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원주스님이 방문을 열었다. 작은 방이었다. 방 한쪽의 나무 빗장에 잿빛 누더기 장삼 한 벌이 걸려 있을 뿐 방안에는 아무 것도 놓이거나 걸려 있지 않았다. 성철스님은 그 작은 방의 안쪽 벽을 향해 앉아 좌선에 젖어 드는 중이었다. 그는 손님을 향하여 돌아앉았다.

 

김병용은 스님의 얼굴을 보자 그가 누군지 곧 알아보았다. 지난날 대원사에서 해인사로 갔던 그 청년, 그 사람이 분명했다. 세월이 흐르고 머리는 깎았으나 광대뼈가 불거지고 눈이 부리부리한 그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얼굴은 그대로였으나 그 얼굴과 온몸이 담고 있는 무게는 옛날의 그 청년이 아니었다. 희양산의 암반처럼 천 근의 무게로 앉아 있는 스님의 모습을 한참 눈이 부신 듯 바라보던 김병용은 엎드려 세 번 큰절을 올렸다. 성철스님이 가벼운 합장으로 인사를 받았다.

"스님에게는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으셨군요."

 

"거사님께서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찾으러 다니십니까?"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뿐입니다. 한평생 불서를 모으고 읽고, 법이 높은 스님네를 찾아 산사를 기웃거리며 말품을 팔았지만 이제 도대체 무엇을 그리 찾아 헤맸는지 그것조차 모를 정도로 아둔해졌습니다. 여기서 스님을 만나 뵈니 마치 철퇴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듯합니다."

 

"헛된 발걸음과 귀동냥으로 아까운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 어찌 거사님 한 분뿐이겠습니까. 불법의 희미한 등불이 꺼진 이래로 이 땅의 사문들조차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닦아도 육도(六道)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릇된 길로만 가고 있는 중입니다."

"스님, 용서하십시오."

 

김병용은 성철스님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얼굴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스님의 얼굴에서 그 옛날 대원사에서 약탕관을 끼고 육신의 병고를 달래려고 애를 쓰던 허약한 청년의 모습을 찾으려고 해봤습니다. 그때도 나는 산사를 찾아다니며 불경을 구하고, 불경을 읽어 얻은 지식을 밑천으로 큰스님이라 자처하는 사람들과 지식을 겨루고 논하기를 즐기면서 그게 곧 성불에 이르는 길인 줄로 착각하며 스스로 자위하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때 병고로 시달리며 허약한 몸을 추스르고 있던 그 청년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때의 모습을 어디다 감췄습니까?"

 

성철스님은 웃음을 머금었다. 구도의 길을 찾아 나섰을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향도 모르면서 막연히 걷는 길에 동무가 됐던 최초의 도반을 만난 것 같은 따뜻한 정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가고, 그 많은 세월동안 끝없이 불법을 구하여 걸어온 두 사람이 이제 다시 만난 것이었다. 한 사람은 인생의 황혼에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깨달음의 정점에 서서,

 

성철스님이 입을 열었다.

"거사님께서 헛되고 헛되다 하여 한탄하시는 것은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깨치면 부처인데 마음 밖에서 아무리 구하고 평생을 돌아다녀 봤자 부처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불교는 성불이 목적이고 부처란 마음속에 있으니 내 마음속 부처를 찾아야지 마음밖에서 부처를 찾아 시방세계를 돌아다닌들 헛고생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비록 시방여래의 십이부경의 청정하고 묘한 이치를 항하수 모래알 같이 기억하여도 다만 희론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결정코 명료하게 인연과 자연을 설명하므로 사람들이 너를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칭찬할지라도, 여러 겁 동안 쌓아 온 다문의 훈습으로는 마등가(摩登伽)의 난을 면할 수는 없느니라. 이런 까닭에 아난아, 네가 억겁 동안 여래의 비밀스럽고 미묘한 법문을 기억하더라도 하루동안 무루업을 닦아서 세간의 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벗어남만 같지 못하느니라.'

 

또 일찍이 연수(延壽)스님은 그의 보살계 서문에서 말하기를 '육도만행(六道萬行)을 닦아서 성불하려는 것은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깨치지 않고 밖에서 무엇을 구하면 끝내 헛되고 헛되다는 한탄만 거둘 뿐이라는 뜻입니다."

김병용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결심이 선 듯 그는 얼굴을 들어 스님을 바라봤다.

 

" 그 옛날 지리산 자락의 한 객방에 머물고 있을 무렵에는 스님이나 나나 성불의 바른 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대체 스님은 그 동안 어느 길로 가서 부처님 숨은 곳에 다다른 것입니까?"

김병용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석가는 서천(西天)에서 속이고 달마는 동토(東土)에서 속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눈 속에 서서 팔을 끊고 평지에 무수한 사람을 묻는다. 선재동자가 호떡을 사서 손을 펴니 도리어 한덩어리 무쇠로다. 여기에 사람에게 속지 않을 큰 장부가 있는가? 가섭존자여, 비록 한때의 영광을 얻었으나 도리어 두 발을 잘렸구나."

 

성철스님의 게송은 신비로운 울림으로 김병용의 가슴에 퍼져 흘렀다. 그러나 그것뿐 마음의 골짜기에는 무거운 빗장이 가로질러져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성철스님은 다시 입을 열어 멀리 산 너머에서 들리는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로 게송을 읊었다.

"부처는 중생의 원수요, 조사는 보살의 원수라. 쌍림에 몸을 누이니 하늘에서 꽃이 쏟아지고, 웅이산(熊耳山)에 흙을 덮으니 땅에서 갖가지 풀이 솟아난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임이여, 산은 높고 물은 깊으며, 부처를 살리고 조사를 살림이여, 해는 어둡고 달은 검다."

 

조주스님에게 어떤 중이 하직인사를 드리자 조주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 있는 곳에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에서는 빨리 지나가라.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잘못 말하지 말아라.'그러자 떠나려던 중이 '그러면 가지 않겠습니다'했지요. 조주스님 말하기를 '수양버들 꽃을 꺾는구나. 수양버들 꽃을 꺾는구나."

성철스님은 묵묵히 김병용을 바라보았다. 김병용은 여전히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성철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거사님의 달은 어디에 감춰 두었습니까? 이제 꺼내 보시오."

 

그제서야 김병용은 얼굴에 밝은 빛을 떠올렸다. 그러면 내 근기에 따라 묻겠습니다. 석가세존게서는 대체 무엇을 하러 세간에 오신 겁니까. 그 분이 가르친 팔만사천의 법문을 꿰뚫는 진리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허허, 거사님께서는 대체 자신이 뭐하러 이 깊은 산중에 찾아왔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그 말씀이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으로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일체만유를 다 둘러보시며 감탄하여 말씀하기를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중생이 여래와 같은 지혜덕상이 있건마는 분별망상으로 깨닫지 못하는구나'했으니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시작이며 끝이고 부처님이 세간에 오신 이유이자 거사님과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근본까닭인 것입니다."

 

"아"

김병용은 깊은 신음소리를 토해 냈다.

 

성철스님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토록 진리는 간단하고도 쉬운 것인데 어찌하여 삼천 리 밖을 돌아 변죽을 울리며 한평생을 탕진하고도 마침내 성불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되는 것인가. 이는 대개 언어문자에 끄달려 바르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어문자란 심의식(心意識)의 표현입니다. 이 언어문자를 부처님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하셨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누구든지 그 손가락 끝을 따라 허공에 있는 달을 보아야 할 것인데 바보는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쳐다보면서 달이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천 년 만 년 가도 영원히 달을 보지 못하고 맙니다.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을 말씀하신 것은 바로 달 가리키는 손가락을 펴 보이신 것이니 그 손가락을 물고 빨고 해보았자 달은 보지 못하고 맙니다. 언어문자에 집착해서 손가락 끝만 보지 말고 허공의 저편에 있는 달, 자성을 깨쳐야만 성불의 길에 오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하고 김병용은 목이 잠긴 듯 말을 끊었다.

'나같이 천박하고 욕심 많고 무능한 인간이 정말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유한하여 태어나자마자 곧 죽음으로 내달리는 이 하찮은 존재의 근본에 불성이 있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얘기일까요."

 

성철스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처님이 만고의 태양처럼 찬란한 까닭인즉 인간존재의 위대성을 발견한 그 대목 때문입니다. 불교는 처음과 끝이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을 완성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데, 바로 그 인간이 절대적 존재라는 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이고 가르침입니다. 자기 자신이 절대적 존재이며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계발해서 완전한 인격을 완성하자는 것이지요. 이것을 게송으로 읊어 보겠습니다.

 

기이하다 네 집의 큰 보배창고여

무한하고 신기로운 공력 측량키 어렵네

의지를 문득 벗어나 마음근원을 사무치면

신령한 빛이 영원토록

무너지지 않는 몸을 비추도다."

 

김병용은 또다시 땅이 꺼질 듯한 긴 한숨을 토해 냈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는 것, 무엇을 깨닫느냐 하면 내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 요체임을 알았다 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껍질을 깨고 한걸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요. 크게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을 배우고 익히는 교(敎)가 있고, 부처님의 수행방법을 따라가는 선(禪)의 두갈래 길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아시겠지요. 교에 있어서도 중생의 근기에 따라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가 벌어지고, 언어문자를 버린 선의 세계에서도 천만 가지 다른 길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교(敎)든 선(禪)이든 어느 방법을 취하더라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망상과 집착입니다. 내가 지금 거사님에게 법문을 하고 있으나 이것이 오히려 거사님을 죽이는 독약과 같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부처가 되려는 병, 조사가 되려는 병, 이 모든 병을 고치고 참된 자유를 찾아 자재한 경지에 이르려면 우리의 자성을 깨우쳐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옛날 무착(無着)스님이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그 절의 공양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가마솥에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그 팥죽 위에 문수보살이 현신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향을 피우고 대중을 운집시키려고 야단이 났을 터인데 무착스님은 팥죽을 젓던 주걱으로 그 문수보살의 뺨을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문수는 네 문수고 무착은 내 무착이로다'하고 소리쳤습니다.

 

이제 거사님께서 '성철은 네 성철이고 나는 나로다. 긴 소리 짧은 소리 무슨 잠꼬대가 그리 많으냐'고 달려든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사님께 크게 절을 하고 오히려 가르침을 청할 것입니다.

길을 밖에서 찾으면 안됩니다. 삼계가 불타는 집(三界火宅)이요, 사생이 고해(四生苦海)라고 합니다만 화택과 고해가 다 마음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속의 고해를 두고 성철이에게 물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저어 가지 않으면 한 걸음도 가지 못하는 것이 깨달음의 길입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만난 이후 거사님과 내가 걸어온 길이 달랐다면 여기서 갈라졌을 것입니다.

 

이제 자성의 불성을 깨닫는 방향으로 길을 제대로 잡은 후에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고 교와 선을 겸전하며, 경전을 배우면서 참선하고 조사어록을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경행(經行)과 좌선(坐禪)의 병행전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화두(話頭)를 놓지 말고 자나깨나 참구하는 것이 성불의 지름길이라고 조사님들이 말씀하고 있으니 그 길을 충실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제 내가 화두 하나를 드릴 테니 밤낮으로 놓지 말고 성불의 지름길로 삼으십시오.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고(不是心 不是物 不是佛 是甚麼)."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바위에 부딪쳐 흩어지고 다시 모여 흐르는 물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리고,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덧바른 창호지 문살 사이로 달빛이 기웃거렸다. 가벼운 숨소리에도 춤을 추듯 흔들거리던 등잔불이 가물거렸다.

 

원주스님이 기척을 하더니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와 누룽지가 담긴 함지박과 계곡수를 담은 물대접을 내려놓았다.

"절집살림이 워낙 곤궁하여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하니 행여 허물하지 마십시오."

원주는 자신의 죄라도 되는 양 쩔쩔매는 시늉을 하며 진심으로 미안해 했다.

 

"과분합니다."

김병용은 계곡수를 한 모금 마시고 누룽지 조각을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 갔다. 원주는 소리 없이 물러가고 누더기 창호지에는 다시 달빛이 찾아와 귀를 갖다 댔다.

 

김병용은 계곡수 한 모금을 더 마시고 입을 열었다.

"나는 미천한 장사를 하면서도 젊을 때부터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불원천리하고 찾아가 재물을 다 털어 넣더라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 바다와 같은 경전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기왕에 이 늙은 몸을 제접하셨으니 모쪼록 가르침을 주십시오."

 

성철스님은 계곡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추긴 후에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어떤 스님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경전을 수집하고 또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거사님에게 상식에 가까운 얘기를 하는 것이 뭣하기는 합니다마는, 어차피 오늘 밤은 밑도 끝도 없이 저 도도한 대양을 저어 가기로 작심한 터이니 처음부터 얘기를 풀어 나가기로 하지요.

 

다른 종교와는 달리 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은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바다와 같은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많은 경전들 중에는 어떤 때는 이런 방편, 또 어떤 때는 저런 방편을 말씀하는 까닭에 얼핏 보면 서로 모순되는 것도 없지 않아 갈피를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후세인들은 부처님께서 오십 년간 설법하신 가르침 전체를 체계화하고 배열하여 자기 종파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교학적으로 이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 줄여서 교판, 또는 판석이라 하지요. 이 교판을 가장 잘 세운 이가 천태종의 지자대사(智者大師)와 화엄종의 현수대사입니다.

지자대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의 방식에 따라 여덟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이를 오시팔교(五時八敎)라 합니다. 五時中,

 

첫째는 화엄시(華嚴時)이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시고 불교 최고의 진리를 말씀하신 스무하루 동안의 설법 기간을 말합니다.

 

둘째는 녹야원시(鹿野苑時)로 화엄시 이후 십이 년간 소승교를 설하셨는데 이때의 설법을 결집한 것이 아함경(阿含經)이라고 하여 이 시기를 또한 아함시라고도 합니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이니 대소승법을 함께 설하여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나 고르게 이익을 주는 설법의 시기를 말합니다. 유마경, 사익경, 능가경, 능엄삼매경, 금강명경, 승만경 등이 이때의 가르침을 결집한 경전들입니다.

 

넷째는 반야시(般若時)로서 방등시 이후 이십이 년간 반야경을 설법하신 시기이며,

 

다섯째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법하신 마지막 팔 년간의 시기입니다.

 

팔교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교화방법을 달리한 점에 착안하여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로 나누고, 설법의 내용에 따라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의 네 가지로 나눈 것을 합하여 팔교라고 합니다.

 

그중에서 장교란 경장, 율장, 논장의 삼장에 의하여 세운 교법으로서 소승자리교를 말하는데 아함경, 오부율, 바사론, 구사론 등의 교학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통교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에 공통되는 가르침이며, 별교란 보살승의 수행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가르침입니다. 원교란 사(事)와 이(理)가 원융한 중도실상을 설명하므로 대승 가운데 최고로 깊은 가르침을 말합니다.

 

화엄종의 현수대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교로 분류하여 소승교(小乘敎), 대승시교(大乘始敎), 대승종교(大乘終敎), 돈교(頓敎), 원교(圓敎)의 다섯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거사님께서 기왕에 알고 계시는 일들을 이처럼 구차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지자대사나 현수대사가 교판을 통하여 한결같이 불교의 최고 위치를 원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자대사는 법화경과 화엄경을 원교라 하고, 현수대사는 법화경을 돈교로 분류하고 화엄경만을 원교라 주장하지만 어찌 됐든 교상판석 중에서 가장 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두 스님의 판석이 모두 원교를 불교의 최고의 원리로 보고 있는 사실은 일치합니다.

 

그럼 원교란 무엇이냐. 거사님께서 물었던 불교의 원리가 무엇이냐, 또는 팔만대장경의 바다를 저어 가는 나침반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금부터 하려는 것입니다.

 

지자대사는 말하기를 '원교란 중도를 나타내니 양변을 먹느니라'했습니다. 또 보충해서 말하기를 '마음이 이미 맑고 깨끗해지면 양변을 다 막고, 바르게 중도에 들어가면 두 법을 다 비추느니라'곧 했습니다. 불교의 가장 높은 가르침은 원교이며, 원교를 꿰뚫는 최고의 진리는 중도이니 중도야말로 불교의 근본원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철스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김병용을 건너다보았다. 김병용은 늙고 병든 몸답지 않게 꼿꼿한 자세로 앉아 온몸을 던져 스님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중도란 무엇입니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성철스님이 대답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세상의 향락만 버릴 줄 알고 고행하는 이 괴로움도 병인 줄 모르고 버리지를 못하는구나. 참으로 해탈하려면 고와 낙을 다 버려야 한다. 이변을 버려야만 중도를 깨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변을 버리고 정등각(正等覺)하였다' 는 초전법륜은 의심할 수 없는 부처님의 근본법이며, 이것을 부처님의 중도대선언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양변을 다 막는다 하는 것은 상대모순을 다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현실세계란 상대모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과 불, 선과 악, 옳음과 그름, 괴로움과 즐거움, 너와 나 등의 상대모순이 상극하고 대립하며 투쟁하는 세계입니다. 이런 대립모순의 세계에서는 진정한 자유와 해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상대모순의 양변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백장(百丈)스님은 '있음과 없음에 떨어지지 아니하니 누가 감히 화답하리오'했고, 마조(馬祖)스님의 제자인 대주(大珠)스님은 '마음에 이미 양변이 없으면 가운데도 또한 어찌 있을 것인가. 다만 이렇게 얻은 것을 중도라 이름하니 참으로 여래의 길이니라'했습니다.

 

그러나 자꾸 중도다, 중도다 하니 중도라는 것이 어디 말뚝 박히듯이 박혀 있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세상사람들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가운데(中)'하고는 아득히 다른 얘기입니다. 억지로 이름을 붙이자니 가운데가 된 것일뿐 '가운데'에 고정이 된다면 그것도 집착이며 변견이 되고 맙니다.

 

중도사상이야말로 부처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던 독창적인 사상입니다. 유교에서는 희노애락이 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희노애락이 나서 적당하게 사용되는 것을 화(和)라고 하며, 이를 통틀어 중용이라 부릅니다마는 양변을 여의면서 동시에 양변을 융합하는 대승적 진리로서의 중도와는 다릅니다.

 

이 중도의 진리는 불교의 독창적인 진리이면서 또한 이 세상 모든 종교에 두루 통할 수 있는 원통무애한 진리라는 점에서 수승한 힘을 지녔지요. 다른 종교가 그 자신 외에 다른 진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고들 있는 데 반하여 유독 불교만이 모든 종교의 진리를 두루 끌어안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중도의 사상에 있습니다. 금강경에서 '일체만법이 모두 불법이다'한 것도 이 소식을 전하는 말입니다.

 

가물거리던 등잔이 비지직하고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을 태우고 꺼져 버렸다. 방안에는 희미한 달빛이 엷게 깔려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둠 같은 것은 이미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중도의 진리를 어디서 가져 왔을까요."

 

성철스님이 대답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많지만 철학적으로 깊이 파헤쳐 들어가면 마침내는 영원성이 있다거나 영원성이 없다거나 하는 두 가지 견해밖에 없습니다. 즉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없다고 보고,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있다고 보는데,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양극단에 치우친 변견입니다. 개개의 사물에 내재하는 어떠한 영속적인 실체성을 "자아"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계시던 당시 인도의 여러 종교가와 철학가들은 삼라만상의 제법에 자아가 있다거나 없다는 두 견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아가 있다는 것은 상견(常見, 常主論)과 같고, 없다는 것은 단견(斷見, 斷滅論)과 같은 것이라 하여 이 두 극단을 물리치고 중도를 선언한 것이지요.

 

생문바라문이 세존에게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구담(瞿曇, 고타마)이시여, 일체는 있는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일체가 있다 함은 첫번째 극단이니라.'

 

'구담이시여, 일체는 없는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일체가 없다는 것은 두번째 극단이니라. 바라문이여, 이 양변을 떠나서 여래는 가운데에 의하여 법을 설하느니라. 무명(無明)에 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에 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이와 같은 것이 이 모든 괴로움(苦)의 쌓임이며 모임(集)이니라. 무명의 남음이 없고, 탐욕을 떠나고 없애 버리면 행이 없어지고, 행이 없어짐에 의하여 식이 없어지며 식이 없어지면 이 모든 괴로움의 쌓임이 없어지느니라.'

 

중도의 사상이야말로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와 연기(緣起)의 법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김병용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있다, 없다는 양변을 여의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공(空)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극단이 아니겠습니까?"

 

성철스님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서 헤매는 수가 많은데 이제 들어 보십시오. 불교를 말할 때 그 근본교리로서 삼법인(三法印)이니 사법인(四法印)이니 하는데 이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모든 현상계는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며, 이와 같이 상주불변하는 성품이 없기 때문에 제법무아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에 실체가 없는 사실을 깨달아 집착과 번뇌를 여의게 되면 이것이 곧 열반적정인 것이지요. 삼법인, 또는 사법인 중의 무아라는 것을 대승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불교만큼 공사상에 철저한 종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공이야말로 불교의 비밀을 여는 열쇠일 수도 있지요. 긴말 할 것 없이 불교에 있어서의 공이란 흔히 사람들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때의 단멸공이나 색멸공이 아니라 색의 자성이 공하다는 색성공(色性空)이며,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연기가 성립된다는 뜻에서 자성공(自性空)이라고도 합니다. 부처님은 공을 바람 같다고 비유를 했습니다. 모양을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으나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옛 조사스님들은 색성공의 이치를 이렇게 읊었지요.

'비고 비어 고요하고 고요하여 딴 물건이 아니요 나무들은 푸르고 푸르며 철쭉꽃은 붉도다.'

 

대승의 반야경에서 오온(五蘊)이 공하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제법무아의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공사상에 이르러 마침내 불교의 울울창창한 진리의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게 되었다. 김병용은 용수보살의 중론(中論)과 중국의 삼론종(三論宗)이 번잡하게 펼쳐 놓은 논리의 맥락을 물었고, 성철스님은 그 까다로운 지혜의 가닥을 쉽게 풀어 손아귀에 넣은 다음 늙고 병이 들었으나 지혜에 한없이 목마른 김병용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성철스님이 등불을 들고 앞장을 서고, 그 뒤에서 스님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뒤엉긴 수해(樹海)를 헤쳐 나가는 긴 여행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유식(唯識)의 고개를 넘고 천태와 화엄의 골짜기를 지나 마침내 선(禪)의 봉우리에 닿으니 산사의 긴 밤도 끝나 가려 하고 있었다.

 

"죄송스럽기 이를 데가 없는 일입니다마는, 밤이 새도록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여전히 새벽바람에 뼛골이 시릴 뿐입니다. 대개 불교의 근본목적이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있거니 이 나이가 되도록 증득한 것이 성불에서는 아득히 멀다는 절망을 느낀 것이 그나마 소득이라면 스득이겠지요. 부디 스님께서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성철스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돌연히 고함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무명을 깨뜨릴 것인가. 아니면 번개 같은 방망이가 날아올 것인가. 그러나 그것도 아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의 고요한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견성성불이란 자성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니 중생의 자성, 즉 불성을 바로 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중도가 곧 불성이라고 하셨으니 결국 중도를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성불하는 것입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보면 '즉시에 확철대오하여 돌이켜 본래 마음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부처님이나 중생이나 다같이 가지고 있는 본래 마음, 즉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을 얻는 것이지 깨쳤다고 해서 전혀 엉뚱한 그 무엇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에게 있던 물건을 도로 찾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견성이 곧 성불이고 성불이 곧 견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견성하여 성불한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견성이 곧 구경각(究竟覺)이므로 더 나아갈 곳이 없습니다.

 

「마조어록(馬祖語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기의 본성을 한 번 깨치면 영원히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해가 나올 때에 어둠과 합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지혜가 뜨면 번뇌의 어두움과는 같이하지 아니하므로 마음과 경계를 함께 요달하여 망상이 나지 아니한다. 망상이 나지 아니하니 곧 무생법인이다. 본래 있는 것이 지금 있으니 수도와 좌선을 빌리지 않으며 닦지도 않고 좌선하지도 않는, 이것이 즉 여래의 청정선이다.'

 

옛 조사님들의 말한 바 그대로 견성성불이란 오랜 정진 끝에 확철대오하는 것이지 벽돌을 쌓듯이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는 산술적인 작업은 아닙니다.「능엄경」에도 '생각이 다한 사람은 평상시에 꿈이나 생각이 소멸하여 자나깨나 깨달음이 밝고 마음자리가 비고 고요하여 마치 푸른 하늘과 같아서 다시는 거칠고 무거운 육식망상의 그림자에 빠지는 일이 없느니라'했습니다. 마음자리가 자나깨나 항상 같은 상태를 오매항일, 또는 오매일여라 하는데 무릇 공부하는 대장부라면 이 경지에 이른 후라야 비로소 구경각에 들어가는 관문 어귀에 선 것이라 하겠지요."

 

"스님"

김병용이 성철스님의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었다.

 

"아무리 깨달음을 얻은 후라고 하여도 때로는 망상이 구름일듯할 터인데 보임공부를 계속하여 무위에 들어가야 비로소 성불하지 않겠습니까. 즉 나 같은 사람에게는 스님의 확철대오와 오매일여의 경지는 너무 아득하여 따라잡기 어려우므로 다른 스님들이 말하는 것 같이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더 쉬울 듯하군요."

 

성철스님은 김병용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냥 한 번 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보조스님께서 근기 약한 중생들을 가르친답시고 잘못 말한 폐단이 여기에 이르고 있으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조스님께서 돈오, 해오했다는 사람을 어떻게 그렸느냐 하면「절요(節要)」에 이런 구절이 보입니다.

'처음은 말을 하지 못하나 점점 말을 하게 되고 점점 행동하여 바로 평소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평소같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성불한다는 뜻입니다. 보조스님의 말한 대로라면 돈오한 사람의 경지란 어떤 것인고 하면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은 알지만은 망상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법문도 옳게 못하고 문답도 못하지만 점점 닦아 가서 결국에는 부처를 이룬다 하는 경지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돈오가 아니며 견성이 아닙니다. 애당초 견성이 아닌, 무명의 바다에 빠져 망상에 목덜미를 끌려다니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깨달았다' 하는 데서부터 문제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깨달았다' 하면서도 객진번뇌가 전과 다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근본무명이 남아 있으니 바로 깨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어찌 된 셈인지 객진번뇌를 등에 진 사람들을 모조리 '깨쳤다'고 인가를 해주고 스스로 인가하는 웃지 못할 일이 풍미하고 있으니 참으로 큰 병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망상이 일어 스스로 완전히 깨치지 못했음을 알았을 때 다시 발심하여 깨쳐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임한다, 점수한다 하여 시건방을 떨고 있으니 섶을 지고 불을 끄러 가는 격입니다. 오매일여하고 확철대오하여 견성성불하는 일이 어렵다고 하여 그 높은 경지 자체가 없다고 억지를 부리면 이 나라 불교는 앉은뱅이가 될 것이고 여러 세대 이후에는 아예 진흙탕에 던져질 것입니다. 산이 높아 오르기 어렵다 하여 그 산이 없다고 우기는 격이니까요."

 

김병용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잘못을 비는 어린아이와 같은 형용이었다. 오랜 침묵 끝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님께서는 오매일여하시고 확철대오하여 견성성불하셨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님은 게송을 읊었다.

 

"밤에도 밝은 주렴 밖에 풍월이 낮과 같고

마른 나무 바위 앞에 화초가 항상 봄이로다.

무상정각은 눈 속의 가시요

대비보살은 지옥의 남은 찌꺼기로다.

흰 학은 높이 날고 붉은 토끼는 빨리 달아나며

누런 꾀꼬리 노래 부르고 범나비는 춤춘다.

허허허, 알겠느냐?

들놀이 북이 둥둥 울리며 태평을 축하하니

구구는 원래 팔십 일이로다."

 

게송을 읊기를 마치자 새벽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물결처럼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거의 동시에 도량을 도는 스님의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천 년이 하루같이 세월의 시작을 알렸다.

 

김병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더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었다. 밤새워 주고받았던 말들이 새벽안개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삼배를 마친 김병용은 그 자리에 엎드려 잠이 들었는지 숨이 멎었는지 꼼짝하지 않았다. 성철스님은 예불을 드리기 위하여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신선한 새벽바람이 옷깃 속으로 파고들며 살아 있는 기쁨을 일깨워 주었다.

 

김병용은 그날 아침 서울로 떠났다가 일 주일 후에 트럭 가득히 평생 모았던 불서를 싣고 봉암사로 내려왔다. 그 불서들을 성철스님에게 바치면서 김병용은 말하였다.

"내가 그래도 복이 있어 생전에 산 부처를 친견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지옥의 업화는 비껴 가겠지요."

 

 

출전 : 우리옆에 왔던 부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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