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회 참여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인간이 산다는 것은 자연 안에서 사회적으로 얽혀져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살려면 먼저 자연에 있으면서 자연을 초월하고 자기 안에 있으면서 자기를 초월하는 본성을 발견해야 한다. 즉 우리가 종단 · 민족 · 인류 등 거대한 공동체를 말하지만 인간의 실존은 역시 각 개인의 인격성에 있기 때문에「상구보리 하화중생」을 모토로 하는 우리 불자들은 우선 그 생활태도에 있어서 근면 검소하고 창의와 진취에 용감한 생활적 인간이 되어야 하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겸손 친절하며 협동 봉사하는 도덕적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불자들의 단합된 운동을 통하여 급격한 사회 변천과 함께 가치기준 자체가 변혁되는 기술적 문명 속에서도 세대나 문화 형태를 초월한 우리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행위의 이상적 표준인 6바라밀적 가치체계를 확립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의 조건반사적인 잡다한 가치들은 인간을 무원칙 무윤리의 행동자로 타락시켜 사회 존립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은 외부적인 잡다한 조건의 유혹과 압하에서도 인간의 인간됨이 그 정신적 주체성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아완성을 위하여 정진해야 한다.
또한 역사는 이런 강한 정신력과 도덕성을 행사하는 능동적인 인간집단에 의하여 조성될 뿐만 아니라 자연 또는 사회 등 환경의 도전에 대한 역사적 기능적 중심은 바로 개인의 창조적 인격활동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나라와 세계의 환경은 어떠한가?
세계는 지금도 양대진영의 대립이 심각한 대로 있다. 군축을 운위하면서도 군확은 치열하게 경합되고 있다. 인도지나에서는 여전히 화염이 오르고 있다. 남북 문제는 국제간의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핵전쟁을 경계하면서도 인류는 한 찰나에 전멸될 수 있다는 위험신호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의 도전에 인류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이런 도전에 대한 외면은 바로 역사의 사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 불자들은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특혜를 받아 산업 건설의 국가적 사명을 수행할 외자 기업체들은 대다수가 불실의 암을 안고 있다. 음성적인 축재로 억대의 고급주택 영유가 공공연하게 경쟁되고 절대 다수의 동포들이 빈한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이런 사실들을 고발해야 할 지성인들은 체념 또는 무관심의 길을 걷고 있고 또한 누구보다도 이런 현실을 시정해야 할 종교인들마저 배타적인 대립과 문화창조에의 무관심과 현실도피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환경의 도전에 대한 이런 퇴폐적인 자세로써 과연 우리의 새 역사가 건설될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나와 함께, 크게는 민족과 세계와 함께 더 크게는 우주의 삼라만상과 함께 부처님의 광명과 자비를 나누고 섬기며 사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 요청인 6바라밀을 실천하여 높은 인격을 갖춘 인간이 되었다 할지라도 자기 인격의 고결을 지키는데 머무르고 만다면 그것은 그 한갖 이기적인 미덕의 교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모든 진선미를 역사 속에 심어 사회와 중생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의 미덕과 복지를 위하여 봉사하는 이타적인 보살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의 새 역사는 주어질 것이며, 역사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성스러운 집단의 출현을 대망한다.
이런 대망 속에서 새해를 맞이한 우리 조계종단은 종무행정의 일반적 기조를, 무의미하고 잡다한 세속적 가치의 대립투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에, 공통적이고 궁극적인 불교적 가치 또는 목적을 제공하여 인간의 비인간화를 방지하고 분열된 제계층 세력을 통합하는 사회적 사명의 완수에 두기로 한다. 따라서 우리 종단은 부처님의 광명과 자비로 제반 사회분야에 걸쳐 다음과 같은 사회적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첫째, 교육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교육이란 지(智) · 정(情) · 의(意)의 조화적인 발전에 의한 자아완성을 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교육은 과학 만능적인 발전의 결의로 말미암아 지적 측면만의 발전을 꾀하여 인간을 마치 기계나 도구와 마찬가지로 다루어 온 점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물량 건설에 앞선 인간건설을 위한 이른바, 인간 본위의 교육관을 확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둘째, 문화 예술 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예술이란 인간생활의 일상적 의미를 예술적 의미로 승화시키는 이른바 인간 의식의 내면적 갈등에서 미적 양심과 희열을 찾아내는 창조적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대상 과정도 거치지 않은 듯한 추상미술, 음률의 조화도 느낄 수 없는 듯한 전위음악, 모든 것이 마구 동원될 수 있다는 조형조각, 미학이 완전히 배제된 소설,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인 시와 같은 현대예술은 인간정신의 유기적 질서를 파괴하여, 일반대중에게 미적 공감을 전달하지 못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섹스와 만화 그리고 코메디처럼 손쉽게 긴장과 피로를 풀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저속한 통속문화에 빠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퇴폐적인 상업문화를 배격하고 대중의 지성과 정서를 계발하여 그들을 저속성의 수평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는 건전한 대중문화의 예술관을 수립하는 데 지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셋째, 매스콤 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매스 미이디어란 한 나라의 문화풍조와 그 내용을 개선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대중의 보다 높은 지적 심미적 자질의 향상과 그것으로 한 민주시민성을 함양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매스 미디어는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선전도구나 영리기관으로 타락됨으로써 대중생활의 안녕과 이익을 가져오지 못할뿐더러 그것을 알지 못하는 불안과 갈등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대중의 현대적 생활의 기초가 되는 합리적 사고력과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 주며 또한 불교 복지사회(불국정토)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궁극적 실제자에 관한 신념과 과학적 지식과 새로운 기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 그리고 불교적 인도주의자와 책임감 등을 교화적으로 제공하는 이른바 실질적인 문화적 문맹성을 지양한 목표 지양적인 매스콤관을 보급하는 데 교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넷째, 과학 기술 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과학기술이란 인간생활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적극 활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발달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든가 의약품의 발달이 인체를 변화시킨다든가, 기술적인 진보가 인간을 유폐시킨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기호나 일련번호와 같은 기술적 장치에 따라 움직이게 함으로써 인간성이 말살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인간을 위한 인간의 궁극적 행복과 존재의의를 보다 근본적으로 보장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다섯째, 법률 행정 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법률이란 통치자나 권력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법인데, 법치주의는 그저 겉치레의 액세서리거나 프로그램적인 외형에 그침으로써 법률에 의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고 가능하다는 형식적인 법치주의로 타락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반인간적인 법과 행정의 도구화가 국민의 발전과 개선의 능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양심의 공백과 규범의 혼란을 초래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이른바 처벌보다 교도 우선의 교육형주의를 확장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여섯째, 사회 구조 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사회란 혁명이건 변혁이건 진보이건 간에 개혁을 어디까지나 인간 복지의 구현을 위한 제도적 발전을 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사회는 그 개혁과정에서 옛 전통과 새 질서 사이를 이어 주는 내면적 규범의 구심점을 상실한 데다 사회변혁의 심화확대로 말미암아 지역간의 격차, 세대간의 단절, 계층간의 거리를 크게 벗어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사회변혁이 몰고 온 정신적 및 공업적인 각종 공해와 사회 각 계층간의 대립을 제거하는 사회발전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이른바 불교적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일곱째, 산업 경제 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경제란 생산에 기여한 노력과 성과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업간 또는 산업간의 소득 격차는 날이 갈수록 격심해져 그간 저소득만을 감수해야 했던 중소기업 내지 농공업 노동자로 하여금 주권자이면서 동시에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했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산업간의 불균형에 의하여 야기된 근로자들의 인간적 소외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협동적 노동운동의 전개 또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종교적 여가선용과 기업경영에서의 노동 착취 의식을 불식함으로써 근로자의 취업기회 및 직업선택 자유 도의 증대와 기업인의 사회적 소임의 자각과 공공투자의 확대를 권장하는 이른바 불교적 경제윤리관을 실천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여덟째, 정치 제도 부문을 말하자면 원래 정치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되며 국가의 제도나 시책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야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정치는 비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정치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반면 비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인간을 극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상실되고 공허한 자유와 형식적인 민주제도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나」의 부재 속에서 진행되는 제도적 노예화를 반대하고 자율적 판단과 창조적 의식을 가진 주체적인「나」를 회복하는 이른바 인간적 자유화를 위한 민권신장운동을 전개하는데 지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출전 : 수상록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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